장편소설 계승자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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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정위원장 서정환은 곡산공장구내에 《갱생》차를 세우기 바쁘게 보이라직장에 갔다. 그사이 달포나마 매일이다싶이 와서 저질탄보이라개조사업을 지도하다가 행정위원회사업이 바빠 며칠만에 다시 현장에 나타난터였다. 낮교대를 마친 열관리공들이 말끔하니 옷을 갈아입고 보이라현장철문으로 우르르 쓸어나오다가 그와 맞다들리자 꾸벅꾸벅 인사를 했다. 서정환은 아래켠에 있는 개조한 저질탄보이라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기관장과 재영이 두사람이 회관에서 쓰다남은 긴 나무걸상에 앉아 불길이 얼른거리는 화구를 보고있었다. 송풍기소리도 고르롭고 화실안에서 솟구치는 빨간 미분탄불가루가 이따금 방아확을 넘어나는 쌀가루처럼 조금씩 화구턱밖으로 새여나오는것을 보면 저질탄보이라가 순조롭게 돌아가는것 같았다. 보이라직장의 열관리공들은 말할것 없고 그가 포치해서 동원시킨 시내 공장, 기업소 열공학전문가들과 기술자들이 합심한 노력이 열매를 맺은것이 확실하였다. 그가 보기에는 수일간에 걸쳐 벌린 저질탄보이라개조전투에서 제일 수고한 사람은 기관장과 재영이였다. 그들은 하루밤도 보이라작업장을 떠나지 않고 긴 나무걸상에서 번갈아 누워자며 화실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돌보았다. 두사람은 지금도 외출복을 갈아입지 않고 재먼지와 검뎅이 묻은 옷차림새 그대로였다. 《그새 잘있었습니까?》 《행정위원장동지 나오셨구만요.》 기관장은 서정환을 보고 반가이 몸을 일으켰다. 재영은 서정환이쪽에 얼핏 고개를 돌렸을뿐 무표정한 얼굴로 움쭉 일어나더니 웃켠 보이라로 스적스적 가버렸다. 서정환은 그새 훌쭉 여윈 아들의 옆모습을 지켜보고나서 긴 걸상에 걸터앉았다. 보이라에 처음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들의 낯빛은 싸늘하고 곁을 주지 않지만 그다지 괴롭지 않았다. 아들의 그런 태도에 습관되기도 했지만 언제든지 아들의 가슴에 엉켜붙은 슬라크재덩이가 부서져 내리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있는 그였다. 《기관장동무, 저질탄보이라가 고분고분 말을 잘 듣습니까?》 《사흘째나 정상가동을 하고있습니다.》 《증기압도 떨어지지 않구요?》 《화실의 불길에 따라 조금씩 변동이 있기는 한데… 그만하면 괜찮은 축입니다.》 기관장은 서정환이 내미는 담배곽에서 한가치 뽑아들었다. 시행정위원장의 운전사가 꾸레미를 들고와 긴 걸상에 놓았다. 순녀가 재영에게 입히라고 싸보낸 속내의와 세타였다. 순녀는 서정환이 보이라에 갈 때마다 재영이와 열관리공들이 먹으라고 음식을 싸보내군 했지만 아들은 종시 떡 한짝, 순대 한쪼박 집어먹지 않았다. 그래도 순녀의 지성은 마르지도 끊어지지도 않고 계속되는것이였다. 말없이 앉아 담배를 피우는데 웃켠 보이라에 갔던 재영이가 왔다. 그는 벙어리장갑 낀 손으로 이마채양을 하고서 저질탄보이라화구안을 살피였다. 《기관장아바이, 탄재를 털어줘야 할것 같애요.》 재영은 두사람이 있는 긴 걸상쪽에 등을 돌린채 퉁명스레 말했다. 《벌써 슬라크가 앉았나? 들춰주지.》 기관장이 담배연기를 내불며 심드렁히 대꾸했다. 재영이가 쇠장대를 집으려 하자 서정환은 벌떡 일어나 아들한테로 갔다. 《내가 쇠장대질을 해보자.》 재영은 쇠장대를 도로 철판바닥에 내려놓고 아무말없이 탈의실쪽으로 가버렸다. 서정환은 재영의 쌀쌀한 푸대접이 거슬렸지만 아들을 도와준다는 생각에 스스럼없이 쇠장대를 집어들었다. 뒤에서 기관장이 념려했다. 《옷을 어지럽히겠습니다.》 《작업복인걸요.》 서정환이 쇠장대의 고리모양의 손잡이를 거머쥐는데 기관장이 벙어리장갑을 내밀었다. 《재영이가 이걸 나무통에 올려놓은걸 보면 아버지가 끼라는겁니다. 아버지손을 다 걱정하구… 녀석이 괜찮아지는것 같습니다. 겉은 시퍼래있지만 속은 정이 살아나는 모양입니다.》 기관장이 은연중 기뻐서 웃음을 지었지만 서정환은 눈뿌리가 쿡 쑤시게 아파왔다. 어디 쇠장대질을 해볼테면 해보라고 내팽개치진 않은것이다. 그는 얼른 기관장의 손에서 아들의 때묻은 벙어리장갑을 받아끼고는 팔뚝에 한껏 힘을 주어 쇠장대를 수평으로 쳐들었다. 불에 휘여든 쇠장대끝을 화구턱에 올려놓고 화실속으로 깊숙이 들이밀었다. 서정환은 보이라에 와서 여러번 쇠장대질을 해본지라 어지간히 익숙한 동작으로 고리손잡이를 배허벅에 붙이고 연방 지레대질을 해서 불판에 엉킨 슬라크덩이를 떼냈다. 힘에 부치는 일이였지만 화실안에서 빨간 불싸래기들이 꽃보라마냥 춤추는것을 보면 재미도 났다. 그의 온몸이 땀에 젖었다. 화구에서 뿜어나오는 뜨거운 열에 더 땀이 나는것이였다. 그가 팔소매로 얼굴의 땀을 닦으며 한숨 돌리는데 탈의실쪽에서 기관장이 재영의 어깨를 끌어안고나왔다. 재영은 기관장에게 마지 못해 이끌려 긴 걸상에 털썩 주저앉았다. 《가만 앉아있으라구. 이제 또 자리를 뜨문 아예 걸상에 비끄러매놓겠어.》 기관장은 윽박질렀다. 《내가 집에 갔다올동안 보이라불을 잘 보라구. 별다른 일은 없겠지만.》 기관장은 한마디 더 오금을 박고는 활개를 저으며 가버렸다. 서정환은 아들과 자기의 관계를 좁혀주려고 애쓰는 기관장이 눈물나게 고마왔다. 그는 걸상에 꼿꼿해 앉아있는 아들쪽은 보지 않고 다시금 쇠장대를 수평으로 집어들었다. 쇠장대끝을 화구턱에 걸쳐놓는데 불쑥 그의 어깨에 목수건이 툭 드리워졌다. 어느새 재영이가 그의 곁에 다가온것이였다. 아들은 묵묵히 그의 손에서 벙어리장갑을 벗기고 쇠장대를 나꾸채듯 잡아당겼다. 그는 처음으로 아들의 손에서 사내다운 억센 힘을 느꼈다. 재영은 서정환이더러 그만하고 쉬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 없이 그저 어깨로 아버지를 슬그머니 밀어버리고 쇠장대를 화구안에 쑤셔넣었다. 서정환은 재영이가 걸쳐준 목수건으로 땀을 문지르고 긴 걸상에 주저앉았다. 한바탕 육체로동을 하고난 뒤의 쾌감과 함께 어떤 이름할수 없는 후덥고도 불안이 가신 즐거운 기분이 온몸에 밀려들었다. 그는 재영의 손에서 가볍게 움직이는 쇠장대를 줄곧 바라보며 오늘은 순녀에게 기쁜 소식을 가져갈수 있지 않을가 하는 희망을 품었다. 이제까지 그를 피하거나 거들떠보지도 않던 아들이 오늘은 처음으로 벙어리장갑이며 목수건이며… 정을 잇대는것이였다. 쇠장대질을 끝낸 재영은 손밀차를 끌어다 화구밖에 흩어진 탄재가루를 곽삽으로 퍼담았다. 그리고는 더 할 일이 없어 작업복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가열기와 압력계를 올려다보고있었다. 《재영아, 이리와 앉으려무나.》 서정환이 나직이 곱씹어 타일러서야 재영은 긴 걸상 한켠에 엉치를 붙였다. 낡은 걸상이 삐걱거렸다. 《땀을 닦아라.》 서정환은 목수건을 아들에게 건네주었다. 보이라작업장은 송풍기의 고르로운 동음과 가열기에서 증기가 새여나오는 부드러운 소리만이 규칙적으로 들린다. 《아버지.》 한참만에 재영이가 고개를 쳐들고 침묵을 깨뜨렸다. 《아버진 언제까지 공장에 오겠어요?》 《보이라에 오지 말라느냐?》 《그랬으면 해요. 이제는 저질탄보이라도 개조하고… 령산탄을 때게 됐는데 그만해도 되잖아요?》 《저질탄보이라는 좀 더 두고봐야 한다. 그런데… 넌 내가 오는게 귀찮느냐?》 《…》 《난 보이라에 오고싶어 온다. 령산탄을 땔수 있도록 보이라를 고치고… 그 일에 누구보다 앞장에 서고 보이라에서 먹고 자며 떠나지 않는 네가 걱정되구… 널 보고싶어 오는거다.》 서정환은 긴 걸상의 꾸레미를 재영이한테 밀어놓았다. 《어머니가 보내는거다. 갈아입을 속내의와 털세타다.》 재영은 입을 꾹 다물고 쇠로 부어낸듯 움직이지 않았다. 《아버지… 어머니한테 말씀드려줘요. 더는 먹을것과 옷가지를 보내지 말아달라구요. 난 내절로… 내 힘으로 살고싶어요.》 《그래야지. 제 힘으로 살아나가는게 옳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동무들과 집단과 친지들과 서로 위해주면서 살아야 사는 맛이 있지 않겠니. 더구나 자기를 키운 부모의 인정을 자꾸 베여던지는건 옳은 처사가 아닐게다.》 《…》 《재영아, 옹졸하게 그러지 말고 오늘 저녁은 집에 들어가자꾸나.》 서정환은 아들한테로 한발 다가앉으며 은근히 말했다. 《사람들앞에서 이 행정위원장이 자꾸 공장에 오는 딱한 처지를… 생각해주려무나.》 《그래서… 말하는거예요. 공장에 오지 마세요. 내가 하루 어머니를 찾아가 뵙겠어요. 그리고… 이따금 휴식일에… 집에 가군 하겠어요.》 서정환은 금시 아들의 손을 잡고 차에 태워가지고 떠나게 된것처럼 기뻤다. 아들이 자기를 데리려 끈덕지게 찾아다니는 아버지의 수고와 구차스런 처지를 동정하고 괴로와하는것만으로도 기쁜것이였다. 《고맙다 재영아, 네가 이 메마른 아버지를 깊이 리해해주는구나.》 서정환은 코마루가 찡해났다. 눈구석이 축축히 젖었다. 《네 생각대로… 마음 편한대로 하거라. 그렇지만 한가지 알아야 할게 있다. 넌 어렸을 때 어머니와 같이 공장에 왔다가 친애하는 지도자동지를 만나뵈온 생각이 나느냐?》 《제 가슴에 새겨진 일을 잊을수 있겠어요?》 《그래, 그때부터 우리 가정은… 나와 너의 어머니 그리고 너는 지도자동지의 품에 안겼다. 나쁜놈들때문에 떨어진 나를 구원해주신분도 집을 뛰쳐나간 네가 잘못됐을가봐 걱정되여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찾도록 하신분도 지도자동지이시다. 그분께서는 내가 무엇때문에 희생된 로동자의 어린 아들을 키웠는가고… 당을 따르려는 아들의 사상을 보지 못했다고 비판하셨다. 내 심장에 친아버지의 뜨거운 정을 부어주신분은 진정 지도자동지이시다. 난 같은 피줄을 가진 사람들만이 모여 가정을 이루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당의 사상을 따르고 당과 한마음이면 피줄이 달라도 한가족으로 굳게 결합될수 있는것이다. 너와 나는 사상의 피줄이 맺어졌기때문에 아무리 어려운 처지에 빠져도 헤여질수 없다. 사람의 정은 피줄보다 사상에 통한다.》 서정환은 자신을 그토록 강렬히 양아들한테로 떠밀어준 인정세계의 근원을 터치고나서 후련히 긴 숨을 내뿜었다. 재영은 머리를 숙인채 어머니가 보내준 옷꾸레미를 풀어안고 주무르기만 했다. 갑자기 고르로운 동음으로 돌아가던 송풍기가 거치른 소리를 내였다. 가열기에서 삑삑 소리가 나고 화실안의 연소되지 않은 불가루가 화구밖으로 뭉청뭉청 쏟아져나왔다. 보이라에 무슨 고장이 생긴게 분명했다. 아버지와 아들은 당황해서 마주 쳐다보았다. 그리고 두사람은 거의 동시에 뛰쳐일어나 화구앞에 들이닥쳤다. 《송풍기를 꺼야지 않겠니?》 《안돼요. 그럼 불이 죽구 불판에 슬라크가 녹아붙어요.》 《재굴길이 메서 화구가 게우는게 아니냐?!》 서정환의 미심쩍은 말에 재영의 눈이 빛났다. 《어쩌면!… 아버지, 제 생각과 같애요!》 재영은 웨치듯 뇌이고서 작은 삽을 들고 보이라뒤쪽으로 달려갔다. 서정환은 한켠에 나딩구는 쇠갈구리를 집어들고 아들의 뒤를 따랐다. 탄재가루가 빠지는 연도의 뒤출구를 막은 비상철판 걸턱을 벗기고 안을 들여다본 재영은 몇초 견디지 못하고 머리를 뽑았다. 재영은 뜨거운 화기와 숨막히는 탄연기를 먹고 기침을 해대며 겨우 말했다. 《사슬콘베아가 멎었어요. 재굴길의 불너미가 멘것 같아요.》 서정환은 비상철판을 열고 들여다보았다. 10여m길이의 컴컴한 재굴길끝에 있는 불너미에서 누러 붉은 불길과 빨간 재가루가 타래치고있었다. 불길에 얼핏얼핏 드러나는 사슬콘베아불너미의 홈에 벌겋게 식지 않은 재가루가 차서 거의나 메우고있는것이였다. 서정환은 얼굴이 데는것처럼 뜨거워나고 숨막혀 철판을 덮었다. 보이라를 세우던가 재굴속에 들어가 녹은 연재를 파내던가 대책을 세워야만 했다. 령산탄이 발열량이 낮고 회분이 어방없이 많다보니 불재가루가 불너미에서 녹아붙던가 미처 빠지지 못하는것이였다. 아들의 말처럼 보이라를 세울수는 없었다. 그러나 보이라를 세우지 않고 불길이 타래치는 재굴속에 들어간다는것은 목숨을 내대는 위험한 노릇이였다. 기관장이나 열관리공들을 데리러다니느라면 때가 늦는다. 그러나 그들이 온다고 해도 어차피 재굴속에 들어가 불너미에 엉켜붙어 멘 연재를 파서 재처리장에 걷어내야 할것이다. 서정환은 재영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하나의 생각과 결심에 도달한 아버지와 아들의 눈길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재영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물통을 가져다가 쇠국자로 물을 퍼서 자기 머리와 어깨에 부었다. 서정환도 아들의 손에서 쇠국자를 받아쥐고 다급히 자기 몸에 물을 끼얹었다. 그는 비상철판을 열어제끼고 먼저 안으로 들어가려는 재영의 어깨죽지를 잡아당겼다. 《내가 들어가겠다. 넌 여기 있거라.》 재영의 감동에 찬 눈이 서정환을 일별했다. 《안돼요!… 내가 들어가야 해요!》 재영이 단호히 말했으나 아버지의 억센 손에 끌려 뒤전에 밀려났다. 《재처리사슬콘베아는 내가 잘 안다. 옛날 우리 공장보이라에 있었다.》 그래도 재영은 서정환을 밀치며 다가들었다. 《아버지, 안돼요. 위험해요!》 서정환은 안타까이 부르짖는 아들의 눈에 수정같은 눈물이 핑 고이는것을 보았다. 자기를 위하는 불같이 뜨거운 진정을 본 서정환은 목이 꺽 메여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얘야, 종래로 아버지된 사람은… 제 자식을… 죽을 고비에 넣지… 않는다.》 서정환은 사랑스런 아들의 어깨를 힘껏 껴안아주고는 작은 삽과 쇠갈구리를 쥐고 재굴속에 들어갔다. 얼굴에 단 열기가 확 끼쳐오고 숨이 막혔다. 재굴속에는 산소가 부족하고 탄내와 재가루가 뿌옇게 꼈다. 서정환은 허리를 구부리고 사슬콘베아의 긁개바가지들을 손더듬으로 짚어가며 불너미쪽으로 전진했다. 얼굴이 데는것처럼 뜨거워났다. 젖은 모자를 눈덕까지 눌러쓴 그는 불너미의 긁개바가지를 무둑히 덮은 불재를 삽으로 퍼냈다. 대뜸 삽날이 부딪쳤다. 불재가 쌓여 녹아붙은것이였다. 그는 숨막히는 열기속에서도 사슬콘베아가 멎은 원인이 예견대로 맞고 고장을 퇴치할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다. 곡괭이맞잡이의 굵은 쇠갈구리를 가지고 들어오기 잘한것 같았다. 그는 쇠갈구리로 녹아붙은 불재를 찍어냈다. 조금씩 떨어졌다. 온 얼굴과 몸은 더운 땀에 흠뻑 젖었다. 얼굴피부가 익는것 같고 점점 숨이 차왔다. 이를 악물고 쇠갈구리를 세차게 찍으니 슬라크에 묻혔던 긁개바가지의 삐죽한 톱날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는 밖으로 나가서 숨을 돌리고 들어와야겠다는 생각마저 잊어버리고 긁개바가지주변의 녹아붙지 않은 불재를 정신없이 삽으로 퍼내고 슬라크를 쇠갈구리로 뜯어냈다. 《아버지- 그만하고 나오라요!》 재처리출구밖에서 웨치는 아들의 목소리가 가늘게 들려왔다. 인제는 흘릴 땀도 없어지고 맥이 진해가는 속에서도 서정환은 아들의 목소리에서 어린 시절에 자기를 그처럼 따르고 응석부리던 천진스럽고 명랑하던 부름의 메아리를 되새겨보는것이였다. 《아버지!- 빨리 나오라요!》 재굴안을 메우는 아들의 목소리… 어린 시절 목소리는 그의 심장의 피를 끓게 하였다. 자기에게도 이 세상 모든 아버지들처럼 아들이 있다는… 자기의 정신과 마음과 성품을 물려받을 살붙이 아들이 있다는 드높은 자부심에 그는 눈물을 흘렸다. 눈앞이 보이지 않고 숨을 쉴수 없었다. 서정환은 육신을 더 지탱하기 어려운 마지막극한점에 이르러서도 물러나지 않고 안깐힘을 짜내여 슬라크를 뜯어냈다. 마침내 긁개바가지가 깨끗이 드러나고 사슬콘베아가 스르륵 돌기 시작했을 때 그는 쓰러지고말았다. 《아버지! 아버지-》 가까이에서 아들의 목메인 부르짖음소리가 들리는것 같고 재굴속에 들어온 아들이 자기 팔을 황황히 잡아당기는것을 그는 몽롱해가는 의식속에서 느끼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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