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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전환의 년대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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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4,153회 작성일 20-11-02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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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겹쌓인 피로에 접하면 위탈로 애를 먹었으나 문혁은 현장의무실에 찾아갈 생각조차 못하였다. 아버지가 정성껏 지어준 보약도 먹으며 말며 하면서 노상 현장에 붙어살다싶이 했다.

《문혁이, 자기 몸을 너무 혹사하지 말라구. 공사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네.》

박광운이 보다 못해 걱정스럽게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문혁은 박광운이한테서 그 말을 한두번만 듣지 않는다. 그럴 때면 그는 볕에 탄 거무스레한 얼굴의 움푹 꺼진 두눈을 껌벅이면서 말했다.

《고맙습니다. 한데 나는 힘든줄도 피곤도 모르겠군요.》

그는 이따금 심한 현기증때문에 자주 멈춰서거나 주저앉군 했지만 그 누구에게도 내색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이였다.

숙소에 들어와 잠간 아프고 쓰린 배를 눌러잡고 침상우에 엎디여있던 강문혁은 밖에서 들리는 말소리에 벌떡 일어나 앉았다.

《타입을 하루이틀 중지했대!》

《어째서?》

《뭘 그리 놀래나? 타입속도가 지내 빠르니 그러겠지. 시당비서동지가 중지시켰다누만.》

《시당비서가?》

《며칠전부터 타입속도가 양생시간과 맞지 않는다구 하지 않았나?》

《순전히 그것때문에 중지시킨다는거요?》

《또 다른 리유가 있는지도 모르지. 어쨌든 새로운 기초안을 가지고 시공을 하니 순탄치는 않을거야.》

그 순간 강문혁은 벌떡 일어나 문을 박차고 달려나갔다. 그가 다급히 현장에 도착하니 일군들속에서 안경을 낀 김광성의 얼굴이 제일 먼저 눈에 띄였다.

(기초설계자체를 문제 삼을수는 없다. 그렇다면?…)

서둘러 김광성이한테 다가가려는데 그곁에 서있던 유민호가 얼굴이 벌개서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비서동지, 재삼 말씀드리는데 결정적으로 대책이 있어야 한다구 봅니다. 물론 다시 기초안에 되돌아가 검토하기는 어렵습니다. 저도 그건 인정합니다.》

김광성이 안경속의 날카로운 눈초리로 유민호를 쏘아보았다.

《인정한다는 사람의 말투가 왜 그렇소? 동문 모든 요소들을 다시 력학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이자 말하지 않았소?》

유민호가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그거야 만약의 경우를 고려해서 한 말이지요.》

《여보, 무슨 말라빠진 놈의 만약이요? 그따위 소릴 하겠으면 내앞에 얼씬도 하지 마오.》

김광성은 그만 성을 내였다. 발라맞추는듯 하던 유민호의 얼굴도 금시 시뻘개졌다.

강문혁은 놀랐다. 자기의 통판기초설계를 시인하지 않던 때의 유민호와 별반 달라진게 없었다.

그의 모호한 립장이 이제는 일종의 경멸감을 자아낼뿐이였다. 하지만 문혁은 실장에 대한 불쾌한 감정을 묵새기고 유민호가 뭐라고 하건 상관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육체적으로 극도의 피로에 달했으나 정신적으로는 활력과 신심에 넘쳐있는 그였다.

강문혁은 마음을 크게 먹고 김광성이한테로 다가섰다.

《비서동지, 래일은 다시 타입을 하게 됩니까?》

그제야 강문혁이를 알아본 김광성이 안경을 추슬러올리며 말했다.

《동문 무엇이 불안해서 그러오?》

김광성은 어딘가 없이 얼굴표정이 굳어진듯 하였으나 이내 수그러진 어조로 말했다.

《안심하오. 하루이틀 공사를 중지하는거야 무슨 큰 문제요? 제 주장만 정당하다면 말이요.》

김광성은 안경을 번뜩이며 저쪽으로 걸어가면서 함께 따라서는 사람들한테 말했다.

《어쨌든 타입은 좀 중지해야겠소. 혼합된 타입물은 마저 쓰시오.… 공사기일도 지켜야지만 일단 문제가 제기된것만큼 어물쩍하게 넘어갈수야 없잖소?》

김광성은 더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탑의 안정성이요, 기초에 대한 재검토요 하는 따위의 말같은것은 애당초 입밖에 내지도 않았다.

김광성을 비롯한 일군들이 사라진후 문혁이와 단 둘이 남았을 때 유민호는 이렇게 물었다.

《문혁동무,… 동문 시당비서동지가 왜 타입을 중지시켰다고 생각하오?》

《별수 있소? 현장에서 소동을 일구는데…》

《그건 무슨 소리요?》

유민호는 얼굴이 벌개서 문혁을 쳐다보다가 뒤말을 이었다.

《이건 시당비서동지자신이 당적인 견지에서 취한 조치요.》

《그렇다면 왜 구태여 나한테 묻소?》

《우리끼리야 말 못할게 뭐요? 보다싶이 탑은 80m나 올라갔소. 동문 무섭지 않소? 지금이야말로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할 때요.》

《못하는 소리가 없구만. 우리끼리요 뭐요 할게 있소? 시당비서앞에서도 진작 그렇게 자신의 견해를 밝혔어야지.》

문혁은 쇠소리가 나게 면박을 주었다. 평시에 어질던 사람이 일단 성이 나면 여간 거칠어지지 않는다. 문혁이도 바로 그렇게 량볼을 푸들푸들 떨었다.

《도대체 당신을 리해할수 없구만.》

《리해하지 못할게 있소? 난 탑의 안정성때문에 마음을 쓸뿐이요. 내 말이 과했다면 량해하오.》

문혁은 한동안 낯선 사람을 대할 때처럼 유민호를 묵묵히 지켜보았다. 그는 돌아서서 기술준비실로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신경이 곤두선 탓인지 가뜩이나 귀찮게 굴던 위탈이 심해져 허리마저 제대로 펼수 없었다.

기술준비실은 텅 비여있었다.

방안으로 들어선 문혁은 배를 움켜잡고 걸상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제길, 내가 괜히 흥분하는게 아닌가? 탑이 80m나 올라갔으면 좋은거지. 무슨 변이라도 난것처럼 놀라서 뛰여다니는가.)

문혁은 자신이 불만스러웠다. 게다가 위까지 쓰려나며 이마에 진땀이 뿌직뿌직 돋아났다. 하필 이런 때 위가 말썽을 일으킬건 뭔가?… 아니 절대로 쓰러져서는 안된다. 그의 눈앞에 분초를 아껴가며 공사를 내밀던 건설자들의 땀투성이 얼굴이 다가들었다. 그런데 공사가 중지되지 않는가, 무엇때문에, 무엇때문에?… 수천명 건설자들이 그렇게 안타까이 묻는듯 했다. 제 주장만 정당하면 무슨 걱정인가고 격려해주던 시당비서의 말도 고막을 두드리며 다시금 울려오는것 같았다. 한시바삐 이 골머리 아픈 소동의 진상을 밝혀내여야 한다.

문혁은 문이 열리고 방안에 박광운이가 들어온줄도 몰랐다. 걸상등받이를 꽉 틀어잡고 삐뚜름히 앉았던 그는 힘겹게 일어나 서류함의 설계도면을 들고와서 책상우에 펼쳐놓았다. 박광운이 《문혁이!》 하고 큰소리로 부르면서 다가왔다.

《동무 얼굴이 왜 그래. 엉?》

《내가 어떻다구요?》

문혁은 책상앞에 앉아 흐릿한 눈길로 광운을 바라보았다.

《여보, 제 몸건사도 못하며 도면이 다 뭔가. 싹 걷어넣고 한시간만이라도 좀 누웠다 오라구, 어서!》

《나야 고질적인 위병쟁이가 아니요? 난 뭐니뭐니해도 시당비서동지를 보기가 미안해 죽겠소. 내 설계때문에 심사숙고하여 마음고생이 많았지. 다 탑의 안전을 위해서였는데… 면목이 없단말이요.》

문혁은 시당비서이야기를 꺼내자 어째서인지 눈물이 솟아났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원하림박사를 참모회의에 파견해주시고 시당비서도 참가하여 자기의 설계를 지지해나섰을 때 얼마나 기뻤던지 모른다. 한번 조용히 만나서 최종심의를 한 날 버릇없이 맞선 일에 대해 사죄라도 하고싶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꼴이람? 정말이지 면목이 없었다.

《문혁이, 방금전에 림성욱소장동지도 왔소. 한시바삐 이 소동을 수습하고 공사를 추진시키기 위해서요. 그런데 동무가 넘어지면 되겠나? 무조건 좀 쉬라구. 내 보기엔 정말 아짜아짜해. 진짜 동무가 쓰러질것 같단 말이야.》

《내가? 이거 말 좀 시키지 마오.》

문혁은 박광운이와의 말씨름질에 위탈이 숙어진듯 해서 제법 큰소리를 쳤다. 이젠 일에 달라붙을수 있을것 같았다. 잠시후 책상우의 설계도면을 당겨놓고 열심히 들여다보던 문혁은 일어나 밖으로 뛰여나갔다. 수십번도 더 보고 검토한 설계를 붙안고 씨름질해야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이미 과학적으로 충분히 확증된 설계인데… 두말할 여지없이 시공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것이였다. 문혁은 지휘부밖으로 따라나온 박광운이 어디로 가는가고 소리쳐 물었으나 대답도 없이 시공참모를 찾아가 급히 시공일지를 요구했다. 기초타입때부터 교대별로 각기 작성한 일지를 걷어안고 돌아온 문혁의 가슴은 세차게 두근거리였다. 그러나 성급히 일지를 번져보던 문혁은 창자가 뒤틀리는 아픔을 참느라 책상모서리를 꽉 움켜잡았다. 금시 정신을 잃고 쓰러질것만 같았다. 문혁은 그런 고통스러운 부대낌속에서도 마음을 다잡고 자신을 나무랐다. 내가 왜 이렇게도 헤덤비는가? 중요한것은 혼합물의 타입속도와 양생시간을 기술규정의 요구대로 정확히 지켰는가 하는것이다. 공사기일을 앞당기기 위해 건설자들이 혼합물의 양생시간을 최대한으로 줄일수 있는 열보장대책을 세우고 타입속도를 부쩍 높였는데 거기서 사달이 생긴것 같은 의혹이 비껴들었다. 아닌게 아니라 어느날 과열로 인해 구조물의 표면이 타서 약간의 손상을 입었으나 별다른 일이 없었다는 기록이 있어 날자를 보니 바로 기단공사때였다.

(이게 뭐야?) 문혁은 정신을 버쩍 차리고 보고 또 보았다.

그런데 시공참모는 왜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가? 그럴수밖에… 그것이 시공과정에 흔히 있을수 있는 일이였음을 기술적으로 따져가며 엄밀히 계산한 문혁은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 다시한번 시공일지를 급히 들여다보았다. 자기의 계산수치가 정확한지 사소한 빈틈이 생길세라 꼼꼼히 재확인한 문혁은 드디여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쩐지 기쁠대신 눈물이 왈칵 솟구쳐올랐다.

책상우의 종이장을 움켜쥔 문혁은 출입문이 떨어져나가게 발길로 내지르며 방에서 뛰여나갔다. 그는 지휘부앞의 외등불빛을 지나 어둑시근한 탑건설현장으로 달려가다가 우뚝 멈춰섰다. 잠에 취한 사람처럼 머리가 휘휘 내둘리였다. 문득 저기 올려다보이는 탑신우의 백열등이 그 무슨 둥그런 열매처럼 빙글빙글 돌아갔다. 그러자 공사중에 있는 탑신이 완공된 탑처럼 커다랗게 확대되면서 그우에서 활활 타오르는 거대한 홰불이 밤의 장막을 밀어던지며 사위는 온통 대낮처럼 밝아지는듯 하였다. 잠시 그런 환각속에 서있던 문혁은 다시금 다급히 걸어갔다. 그러다가 공사장의 울퉁불퉁한 공지에 들어선 문혁은 무엇엔가 걸려 움푹 꺼져들어간 구뎅이속으로 굴러떨어졌다.

머리에 둔한 타격을 받은듯 한 감을 느끼며 그는 의식을 잃었다.

때마침 건설장의 처녀가 옆으로 지나가다가 문혁을 띄여보고 질겁하여 비명을 질렀다. 뒤이어 그 사실을 전해듣고 허겁지겁 달려온 박광운이 《문혁이, 정신을… 정신을 차려!》 하고 문혁의 량어깨를 안아흔들면서 고함을 쳤다.

문혁한테서는 아무 응대도 없었다. 그의 입술이 겨우 움싯거리였다.

《이게 어떻게 된거야? 문혁이!》

박광운은 눈을 희번득거리다가 뒤따라온 처녀에게 지휘부에 림성욱소장과 시당비서가 있으니 당장 알리라고 바쁜 소리를 질렀다.

처녀가 달려가고 뒤따라 림성욱이와 김광성, 지휘부성원들 두세명이 함께 왔다.

《여보, 누가 쓰러졌단말이요?》

림성욱이 다가들며 성급히 물었다.

《문혁이가…》

《뭐라구? 언제?》

《금방…》

박광운은 짤막히 대답하고 자기의 뻘겋게 물든 손바닥을 바라봤다. 문혁이가 넘어지면서 어디에 되게 부딪친게 분명했다. 그의 바른쪽 관자노리는 피투성이가 되여 번들거렸다. 박광운이 다른데 더 다치지 않았나 하여 여기저기 살펴보다가 문혁의 주먹을 잡고 그것을 펴려고 안깐힘을 썼다.

《소장동지, 문혁이가 손에 종이장을 쥐였는데…》

《무슨 종이장말이요?》

《어디 주먹이 펴져야 알지요. 어찌나 꽉 움켜잡았는지… 뭘 계산한 종이 같습니다. 조금만… 조금만… 조금만 계십시오.》

박광운이가 겨우 문혁의 손에서 구겨진 종이장을 뽑아내고 성급히 펴보았다.

《여보, 거 어두워서 온전히 보이기나 하오?》

《보입니다! 문혁이가 끝내 균렬이 아니라는것을 해명했습니다. 자, 보십시오!》

림성욱에게 종이장을 내미는 박광운의 두눈에 눈물이 핑 감돌았다. 그제야 문혁이가 사고해명을 하고 쓰러졌음을 알게 된 림성욱이 종이장을 바라보다 말고 문혁의 어깨를 와락 그러안았다.

《문혁이!》

림성욱은 목 멘 소리로 부르짖고나서 박광운을 얼른 돌아보았다

《내 차를… 내 차를 불러오오. 빨리!… 우선 병원으로… 병원으로 가오!》

《알겠습니다.》

박광운이가 성큼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혁은 여전히 의식을 차리지 못한채 림성욱의 승용차에 실려 병원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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