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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강자 27, 2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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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5,628회 작성일 21-01-2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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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지배인방은 고양정뽐프제작에 선발된 사람들로 북적거리였다.

대상설비생산이 긴장한것만큼 기사장, 부기사장과 과장급일군들은 그냥 생산지휘를 하게 하고 각 직장에서 한두명의 기술자, 기능공들을 뽑아 제작조를 무었다.

총책임은 리대철이 맡고 엄명선을 참모장격으로 임명하였다.

목형과 조형틀을 모두 새로 제작하여야 하는것만큼 선행공정인 목형제작을 위해 주물직장 목형공들외에 건설직장의 목공들을 인입시키기로 하였는데 그중에 창근이도 뽑히였다.

리대철은 창근의 이름밑에 밑줄을 그어놓고 생각을 깊이 해보았다.

공장의 목공들중에서 창근이가 제일 손재간이 있다는것을 인정하나 건달기가 있는 그에게 중요한 일을 맡기기가 서슴어졌던것이다.

이번 기회에 창근이녀석을 꼭 틀어쥐고 채찍질을 하면 어느 정도 채심하지 않을가.

처의 말을 들어보면 요즘 창근이와 송화가 어성버성한 사이라는데 한 말뚝에 묶어놓으면 화해가 되지 않을가.

아닌게아니라 창근이와 송화는 사무실 한구석에 등을 돌려대고 앉아있었다.

피끗 그들을 띠여본 리대철의 마음은 아릿하였다.

송화를 잃을가보아 전전긍긍해한다는 창근이가 그와 이마를 마주하고 일하면 고분고분해질것 같기도 하였다.

좋다, 한번 대담하게 믿고 창근이에게 일감을 맡겨보자.

결심을 세운 리대철이 제작조성원들을 둘러보았다.

《설계를 다 보았소?》

《다 보았습니다.》

엄명선이 제작조를 대표하듯 대답하였다.

《그래, 어떻소? 처음 해본다고 해서 겁을 먹은 사람은 없소?》

《겁을 먹다니요? 남들이 만드는데 우리라고 못하겠는가 하는 배심만 있으면 세상에 못할것이 있습니까?》

나이지숙한 목형반장이 씩 웃으며 장담하는 소리이다.

《옳소! 그런 자존심과 배짱이면 강자가 될수 있을거요. 그래 목형반장동문 목형제작을 끝내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것 같소?》

《글쎄요, 종전에 새로운 형의 뽐프를 만들 때에는 목형이 한달이상 걸렸는데… 어쨌든 최대한 당기겠습니다.》

목형반장의 두리뭉실한 소리에 엄명선이 골살을 찡그리였다.

《늦어도 20일동안에 끝내야 합니다. 목형이 선행되여야 다음공정이 따라선다는걸 명심하고 전투를 벌려야겠습니다.》

《20일이면 밥먹구 잠잘시간도 안 차례지겠군. 색시가 좋아 안하겠는걸.》

누군가의 능청에 모두 웃었다.

한쪽구석에 꾸어온 보리자루처럼 앉아있던 창근이가 눈을 뜨부럭거리며 엄명선이쪽을 흘겨보았다.

잘못 걸려들었다는 불만이랄가 어쨌든 심기가 불편하다는 심정이 그 눈길에 담겨져있었다.

리대철이 창근의 심리를 포착하고 침질을 하려고 하는데 별안간 문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한 녀인이 뛰여들었다.

《지배인동지!》

울음섞인 녀인의 급한 소리에 방안의 사람들의 눈길이 그에게로 쏠리였다.

공구직장 창고원이였다.

일찌기 남편을 잃고 중학교에 다니는 딸과 단둘이 사는 그는 집안의 기둥이 없어서인지 활기가 없고 사람들과의 교제도 싫어하는것으로 하여 공장에 있는지 없는지 가늠하기 힘든 녀인이였다.

그런 그가 이렇게 무엇에 놀랜 토끼처럼 지배인방에 서슴없이 뛰여들었다는것은 비정상적이고 놀라운 일이였다.

그것도 눈물을 안은채 달려온걸 보니 무슨 심상치 않은 일이 있는듯 싶었다.

가슴이 선뜩해난 리대철이 성급하게 물었다.

《무슨 일이요?》

녀인이 꺽꺽 목멘 소리를 하였다.

《글쎄 시도시경영과에서 오늘중으로 집을 완성 못하면 허물어버리겠다고 합니다.》

《집을 허물다니? 그건 무슨 소리요?》

숨을 죽이고 지켜보던 사람들이 수군거리였다.

《저런, 큰일났구만.》

《집을 왜 허문단 말이요?》

《저 동무의 집이 어디요?》

리대철은 심중해졌다.

얼마나 막급했으면 이렇게 정신없이 뛰여들었겠는가.

부지중 리대철은 창고원의 집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를 쳤다.

그러니 이제껏 저 녀인과 언제한번 마주서본적이 없다는것을 의미하지 않는가.

공장에 하많은 종업원들을 이름만 알고있어도 큰거라고 위안하며 생활에 전혀 관심하지 않았다는 죄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리대철은 의자를 차고 일어섰다. 다른 사정도 아니고 생활의 보금자리인 집을 헐리우게 되였다는데 가만있을수가 없었다.

뒤늦게라도 녀인을 도와주고싶었다.

《당장 도시경영과로 가기요.》

헤덤비며 사무실을 나서려던 리대철은 돌아서며 제작조성원들에게 소리쳤다.

《동무들은 돌아가서 분담받은 일들을 하시오.》

창고원이 방안사람들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어보이고 리대철의 뒤를 따라 사무실을 나섰다.

시인민위원회 도시경영과장을 만나 창고원의 집일을 처리하고 공장으로 돌아오는 리대철의 마음은 납덩이가 매달린듯 무거웠다.

방금전 도시경영과장이 하던 말이 귀에서 떨어질줄 몰랐다.

《물론 그 집문제는 응당 우리 도시경영과에서 맡아 해결해주어야 할 일이요. 그렇다고 일군들이 자기 종업원들의 생활에 대하여 무관심해서야 되겠소. 그 공장이야 서까래 몇대, 기와 2백~3백장을 해결못할데도 아니지 않소. 부모가 구실을 못하면 자식들이 남들앞에서 주접이 들고 자존심이 꺾이듯이 공장일군들이 자기 종업원들의 생활에 무관심하면 업신여김을 당하기가 십상이요.》

어찌보면 자기들이 할 일을 공장에 떠맡기는 말 같았지만 생각해볼 여지는 있었다.

문득 멀리 흘러간 합숙생활시절이 생각히웠다.

어느해 설날을 앞둔 저녁이였다.

최근에 온 합숙생들의 잔등에는 돌짐처럼 무거운 배낭들이 지워져있었다.

공장들에서 공급받은 물자들이였다.

고기와 기름, 당과류, 과일, 술 등을 펴놓은 방안은 식료상점매대를 방불케 하였다.

그것을 보는 리대철은 얼굴이 화로불처럼 달아올랐다.

자기는 고작해서 술 두병에 고기 1키로그람이 전부였던것이다.

바늘방석에 앉은 심정이였다.

기분들이 좋아서 자기네 공장일군들이 종업원들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어떻게 노력하였는가를 자랑하는 그들을 보는 리대철은 자존심이 상하였다.

일만 일이라고 하면서 종업원들의 생활에 무관심한 공장일군들이 섭섭하였다.

그 시절의 리대철과 오늘의 창고원이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그도 아마 공장에 대한 애착이 없을것이다.

사실 창고원의 집문제는 복잡한것이 아니였다.

지난 3월 창고원의 집으로 갑자기 친정어머니가 짐을 싸들고 들이닥치였다.

웬일인가 해서 묻는 딸에게 일흔이 지난 어머니는 남편없이 홀로 직장일도 할래 아이도 키울래 고생많은 딸을 위해 동자질이라도 해주려고 찾아왔다는것이였다.

법동에서 홀로 사는 어머니가 늘 마음에 걸려 편지때마다 어서 와 함께 살자고 써보낼 때는 동의를 하지 않던 어머니가 이렇게 급작스레 찾아올줄은 몰랐다.

창고원은 딱하였다. 문제는 단칸방에 가구장식품까지 갖추고 살다나니 세명이 한방에서 잠도 자지 못할 형편이였다.

생각끝에 집앞 터밭자리에 자그마하게 방 한칸을 늘구려고 도시경영과의 승인을 받으려 했으나 한두번에 될 일이 아닌지라 좌우간 집부터 늘궈놓고 보기로 작정하고 달라붙었다.

중학교에 다니는 딸과 함께 짬짬이 토피를 찍어 벽체를 쌓기 시작하였는데 공장일이 바쁘다보니 마음먹은대로 진척이 되지 않았다.

이웃들에서는 공장의 도움을 받으면 제꺽 짓겠는데 아낙네가 역사질을 하는가고 하였지만 이미 부지배인에게 도움을 청했다가 쏜 총알이 되다싶이 한 상태라 두번다시 손을 내밀고싶지 않았다.

그러던차에 시적으로 꾸리기사업이 진행되면서 창고원의 집이 백지장에 찍힌 먹물처럼 도시경영과 일군들의 눈에 걸려들게 되였다.

무너진 집처럼 보이는 집터를 본 도시경영과 사람들이 자의대로 집을 짓는다며 오늘중으로 마무리를 하지 않으면 헐어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바람에 울며불며 사정을 하던 창고원은 급해맞아 지배인방으로 뛰여들었던것이다. 기껏 쌓은 벽체를 허물어버린다는게 말이나 되는가.

창고원의 집을 돌아본 리대철은 장정로력 셋이서 하루품만 들이면 마무리를 할수 있는것을 일군들의 무책임으로 하여 연약한 녀인이 남들에게 머리를 숙이고 울고불게 하였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쓰리였다.

알고보니 창고원의 제기를 받은 부지배인은 공구직장장과 경리과에 전화 한통 하는것으로 《도와》주었다.

직장장은 바쁜 일이나 마무리하고 온 직장이 달라붙어 와닥닥 끝내자고 꿀발린 소리를 하고는 가시아버지 돈 떼먹듯 하였다고 한다.

경리과장 역시 집짓는 허가를 받아주겠다고 말만 했지 오늘까지 꿩 구어먹은 자리란다.

《동네사람들이 뽐프공장 일군들은 도대체 어떻게 돼먹은 인간들인가고 욕을 할 때 할말이 없었습니다.

아래사람들은 일군들에게 생활상문제를 제기할 때 백번천번 재보고 제기합니다. 그 제기라야 집을 지어달라는것도 아니고 극히 소박한것입니다. 그때마다 묵살하는 일은 없습니다. 하자, 알았다 하고는 돌아앉아서는 머리나쁜 아이 구구표 까먹듯 하지요. 그걸 알리없는 본인들은 행여나 해결되기를 기다립니다. 하루, 이틀, 사흘… 한달이 지나도록 해결이 안되면 실망을 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가족측에서는 제기한 사람을 탓합니다. 도대체 공장에서 일을 어떻게 하였길래 일군들이 너를 도리깨아들 취급을 하는가고 말입니다. 결국 그 사람의 인격은 도리깨아들값이 되고말지요. 얼마나 서럽겠습니까.》

울면서 한 창고원의 말이였다. 무심히 스쳐들을수 없는 말이였다.

부지배인이나 공구직장장, 경리과장처럼 아래사람들이 제기하는 의견을 무시한탓에 산생된 오늘과 같은 일이 자기에게는 없었는가 곰곰히 생각해보던 리대철은 한달전 정양소 소장이 찾아와 돼지우리를 지을 세멘트를 해결해달라고 제기한 일이 돌이켜졌다.

그때 뭐라고 했던가. 해결해주겠다고 했던가, 후에 보자고 했던가.

기연가미연가 잘 생각나지 않았지만 해결을 못해준것만은 사실이였다.

그러니 정양소 소장이 날보고 뭐라고 하였을것인가.

나같은 일군들의 무책임성때문에 아래사람들속에서 일군들에게 제기하느니 아래사람들끼리 해결하는것이 낫다는 말이 생겨난것이 아닐가.

결국 쥐여짜면 일군들과 로동자들을 물과 기름처럼 갈라놓는 위험한 요소이다. 때문에 당에서는 늘 일군들이 아래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려보고 무엇이 걸렸는지, 무엇때문에 가슴앓이를 하는가를 알아보고 제때에 풀어주어야 한다고 강조하지 않는가.

리대철은 공장에 돌아가면 일군들을 모여놓고 오늘의 일을 이야기해주고 교훈을 찾도록 하리라 마음먹었다.

공장구내로 들어서는데 때마침 김철에 갔던 화물자동차가 지나가다가 멈춰섰다.

운전칸문이 열리더니 운전사가 뛰여내리며 리대철에게 꾸벅 인사를 하였다.

《지배인동지! 지금 김철에서 돌아오는 길입니다.》

《그래 실어왔소?》

기대를 안고 묻는 리대철의 물음에 운전사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벙글거리였다.

《예. 적지 않게 10톤을 실어왔습니다.》

《그래!》

리대철의 얼굴에 기쁨이 확 피여났다.

선철 10톤이면 고양정뽐프제작에 큰 도움으로 된다.

《김철 지배인아바이가 지배인동지의 편지를 보더니 나라의 자존심을 세우는 일인데 뭘 아끼겠는가고 하면서 그 자리에서 판매과장을 불러 당장 해결해주라고 했습니다.》

《그래!》

김철 지배인의 진정이 눈물겹도록 고마왔다.

《허, 그 령감에게 어떻게 인사를 한다?》

《아닌게아니라 신세갚음소리를 했더니 세계를 딛고 올라설 뽐프만 만들면 된다나요.》

《역시 제철소지배인이 대틀이거던.》

기분이 뜬 리대철이 운전사에게 어서 가서 부리라고 손짓을 하였다.

운전사가 차에 오르자 자동차가 움씰 주물직장쪽으로 굴러갔다.


28

 

송화로부터 처녀의 진정을 우롱한 협잡군과는 다신 상종하지 않겠다는 최후통첩을 받은 창근의 심사는 장마철 맹꽁이처럼 불어났다.

생각할수록 기가 막히였다.

협잡군이라는 말은 인간부류에서 론의할 가치도 없는 쓰레기와도 같은것인데 송화는 가차없이 창근에게 그런 락인을 찍어놓았다.

분통이 터질노릇이였지만 제 눈을 제가 찌른격이 된 창근은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게 되였다.

송화 아버지가 잉어매운탕을 끓여놓고 청한 그날 제 흥에 떠서 이제부턴 송화와 함께 극장과 영화관에도 가고 식당에도 가자고 한 말이 그만 빈말로 되는 바람에 그런 오명을 쓴것이다.

그 이튿날 퇴근시간이 되기 바쁘게 화장경대제작을 부탁받은 집으로 줄달음치던 창근은 송화로부터 걸려온 손전화를 받게 되였다.

퇴근을 했으니 어디서 만나자는가고 하는 송화의 물음에 아무 생각없이 왜 만나자고 그러는가, 무슨 일이 있는가고 반문하였다.

그러자 송화는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잉어매운탕을 두그릇이나 곱배기를 하더니 머리가 여차해진게 아닌가고 하며 어제 한 약속을 상기시키였다.

그 말에 창근은 깜짝 놀랐다. 그제야 자신이 송화앞에서 번지르르한 약속을 했음을 깨달은 창근은 눈앞이 아찔해졌다.

내가 무슨 정신에 그런 희떠운 소리를 했을가.

야단이였다.

자기가 가고있는 집의 세대주로 말하면 창근이가 소망하는 대외건설에 옮겨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 그의 아주머니와 한 약속을 어기면 만사가 물거품이 되고만다.

어떻게 할것인가를 바재이던 창근은 송화에게 오늘은 사정이 급박해서 그러니 후에 보자고 구구히 변명을 하였다.

그랬더니 송화는 대번에 사내대장부는 일구이언을 안한다면서 자기와의 약속이 중요한가 아니면 급박하다는 그 사정이 더 중요한가고 따지고들었다.

진퇴량난에 빠진 신세가 된 창근은 송화도 리해시키고 제볼장도 보기 위해 별의별 오그랑수를 다 써보았지만 약속을 법처럼 여기는 송화는 요지부동이였다.

무조건 오늘중으로 시예술극장에서 하는 공연을 구경시켜달라는것이였다.

응석을 부리듯 하며 검질기게 물고늘어지는 송화의 요구에 진땀을 뺀 창근은 제발제발 사정을 하여 래일은 꼭 약속을 지키겠노라 다짐을 두고 겨우 떼버리였다.

허나 다음날도 약속을 지키지 못하였다.

했더니 창근을 보고 상대할만한 대상이 못되는 협잡군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감투를 씌운것이다. 그거야 정을 떼겠다는것이 아닌가.

그럴만도 하였다. 영란이모의 말에 의하면 공장의 일부 사람들이 창근과 송화를 놓고 형편없이 짝이 기운다고 한다는데 그 말을 들은 송화가 무슨 생각인들 안해보았겠는가. 이러다가 송화를 잃는게 아니야? 아직 한번도 일생문제에서 자기와 송화가 남남이 될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는 창근은 송화가 자기를 버릴가봐 겁이 났다.

그것은 도저히 상상할수 없는 일이였다.

그런 일이 있을가봐 송화의 충고대로 마음을 도슬려먹고 맡은 일을 착실히 해보려고 애써보았지만 한번 맛본 꿀단지에서 입을 떼기가 조련치 않았다.

시내 곳곳에서 가구주문자들이 《모시러》오는데 그걸 어떻게 뿌리치며 수고비라고 주머니에 찔러주는 돈을 어떻게 마다한단 말인가.

그것때문에 송화의 눈에 나서 한동안 《랭전》상태였다가 며칠전에야 겨우 《평화》를 되찾은가부다 했었는데 이번에는 영영 헤여나올수 없는 함정에 빠지게 되였다.

이미 마음속에서 창근이 자기를 지워버린듯 한 송화를 돌려세우기가 조련치 않을것 같았다.

종횡무진하는 상념에 빠져 발가는대로 걸음을 옮기던 창근은 누군가가 어깨를 툭 치는 바람에 흠칫 놀라 굳어졌다.

돌아보니 리대철이였다.

《너 요즘 뽐프제작조에 출근하니?》

여느때없이 살가운 물음이였다.

《그럼요. 래일부터 목형을 시작한다기에 기다리고있지요.》

《그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너도 잘 알지?》

《알지 않구요.》

창근은 대답은 그렇게 하였지만 영 마음에 들지 않는 일에 맞다들렸다는 생각을 털어버릴수가 없었다.

목형을 잡고늘어지면 코를 꿴 송아지신세가 되고만다.

가구주문이 련달은 때에 시간을 내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손에 쥐였던 보물을 놓친것만큼이나 아쉬웠다.

그렇다고 못하겠다고 발버둥질을 할수가 없었다.

뽐프제작조 인원선발을 당위원회와 합의하고 하였다는데 무슨 할 소리가 있단 말인가.

좋기는 맡겨진 일을 잽싸게 해치우고 시간을 따내는 수다.

《내 방으로 좀 가자.》하는 리대철의 말에 창근은 공연히 속이 활랑거리였다.

또 무슨 욕을 하려고 방으로 가자고 하는가.

까짓거, 갈테면 가자. 이번에도 욕을 하면 가만있지 않을테다.

그때 방송선전차에서 경쾌한 경음악이 울리더니 사무실들과 직장들에서 사람들이 마당으로 우르르 달려나와 질서정연하게 렬을 지어섰다.

업간체조시간이였던것이다.

그들의 앞으로 체육복을 입은 송화가 나섰다.

인차 방송선전차에서 노래 《우린 사랑한다》의 선률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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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모두 송화의 동작에 맞추어 률동체조동작들을 하는데 제법이였다.

리대철도 로동자들속에 끼여 동작을 하였다.

어슬렁어슬렁 대렬속에 끼여든 창근은 동작을 몰라 물에 빠진 사람 허우적거리듯 손과 발을 놀리는데 가관이였다.

언제 한번 업간체조에 제대로 참가해본적이 없으니 그럴수밖에…

옆사람들의 동작을 띠여보며 따라하느라 하였지만 어느 동작 하나 제대로 되는것이 없다.

창근의 그 모양을 보며 주위사람들이 키득거리였다.

이런 난사라구야. 달아날수도 없고… 어쩐다?

얼굴 뜨겁게 창피를 당하느니 가만히 서서 지켜보는것이 나을것 같았다.

망두석처럼 굳어져 이 사람, 저 사람의 동작을 훔쳐보던 창근의 눈길이 그만 송화와 부딪쳤다.

순간 비웃음이 스치는 송화의 얼굴이 눈뿌리를 지지였다.

다시는 상대를 하지 않을듯 왼고개를 트는 송화를 보는 창근은 모욕을 당한것 같아 속이 울컥 하였다.

이젠 내가 쉰밥이란 말이지. 실컷 태가락 부려봐라.

업간체조가 끝나자 사람들이 삼삼오오 떼를 지어 작업장으로, 사무실로 흩어져갔다.

리대철이 다가오며 빈정거렸다.

《이자 네 꼴을 보니 꼭 뼈대없는 문어같더구나. 봐라, 얼마나 집체생활에 빠졌으면 률동체조동작 하나 제대로 못 따라하는걸… 한심하지.》

창근은 들은체도 않고 힝 코김을 내불었다.

쳇, 눈두 밝다.

앞서 걷는 리대철을 쫓아 사무실로 들어선 창근은 의자에 앉으려다가 책상 맞은켠에 놓여있는 앞차대를 보고 그쪽으로 다가섰다.

《아니, 지금이 어느때라구 이런 구식차대를 놓고있어요?》

그 말에 선풍기스위치를 누르려던 리대철이 뻥해서 돌아섰다.

《구식이라니?》

《이걸 보라요. 형식도 낡은데다가 도색도 한심하지. 내가 이제껏 이걸 왜 모르고있었는가. 당장 추세에 맞는걸로 교체하자요.》

창근의 희떠운 소리에 리대철은 어이가 없어 껄껄 웃었다.

《허허허, 창근이 손재간이 좋다고 시내에 소문이 짜하다고 하는데 어디 한번 솜씨를 좀 볼가.》

《아, 앞차대같은거야 이틀이면 멋쟁이로 만들지요 뭐.》

《그렇다, 그럼 수고비는 얼마나 내야 되냐?》

《그건 보통 한개당…》 하던 창근은 얼른 말을 돌리였다.

《아, 내 아무렴 이모부한테 돈을 받겠어요? 여론 나빠지게…》

선풍기를 켜놓고 의자에 앉은 리대철이 중떠보듯 물었다.

《야! 너 이제껏 개인들의 가구제작을 해주고 얼마나 벌었니?》

속이 찔린 창근의 낯빛이 금시에 익은 고추빛이 되여 외마디소리를 내질렀다.

《벌긴 뭘 벌었다는거예요. 부탁을 하니 도와준거지요.》

《저런, 대단한 자선가인걸. 됐다. 지나간 일은 령으로 치고 이제부턴 정신차려 일을 하거라. 하긴 고양정뽐프를 제작하느라면 언제 헛눈 팔새가 없을테니 엉치를 든든히 붙이고 일을 해서 소문을 내봐라. 정창근이가 질적으로 달라졌다는 말을 듣게 말이다. 그렇게 되면 송화의 마음도 돌아설게다. 알겠니?》

귀에 거슬리는지 밤알이라도 문것처럼 볼이 부어있던 창근이가 꿰진 소리를 하였다.

《송화소린 하지도 말라요. 제가 뭘 잘났다구. 만나기만 하면 훈시질을 하려고 접어드는걸 보면 어이가 없어서… 아, 글쎄 날 소학생취급하려든다니까요.》

《뭐가 어쩌구 어째? 세살난 아이 말도 들을 땐 들으랬어. 정신을 차리고 길을 곧추 가라는데 그게 싫다는거냐? 너 같은건… 송화한테 된매를 맞아봐야 정신차려. 너도 알지, 송화가 제대군인이라는걸…》

손바닥으로 책상을 내리치며 목청을 돋구는 리대철을 마주보며 창근은 맞받아 소리쳤다.

《내 정신이 어떻다고 그래요. 그리구 세상에 처녀가 송화 하나뿐이라구 송화, 송화 하는가요.》

《하하하!》

갑자기 리대철이 너털웃음을 터뜨리였다.

방안이 흔들거릴 정도로 폭소를 하는 리대철을 쳐다보는 창근의 표정은 혼빠진 사람모양 눈정기가 풀어져있었다.

눈물이 날 정도로 시원스럽게 웃고난 리대철이 눈을 가로뜨며 코웃음을 쳤다.

《야, 속에 없는 소리 하지도 말아. 네가 열번 죽었다가 세상에 다시 나도 송화만 한 처녀를 만날것 같아 그따위 생주정을 해? 그래두 뭘 달았다구 흰소린 잘 친다. 좋아, 너 진짜 송화가 싫으면 맘대로 해라. 나나 네 이모도 더는 상관을 안할테니. 그리구 내 송화 아버지를 만나면 네녀석을 단념하라구 할테다. 알겠지?》

숨가쁘게 조여대는 리대철의 탕개에 궁지에 빠진 창근은 공연히 객적은 소릴 했다는 후회로 하여 몸둘바를 몰랐다.

《아니, 그렇게까지 할거야 있어요. 뭐…》

《됐어. 난 일구이언 몰라.》 하고 또 한번 엄포를 놓는데 책상우에 놓여있던 전화기가 다급하게 울어댔다.

얼른 송수화기를 집어든 리대철의 안색이 긴장되였다.

《예, 지배인 리대철입니다. 예…》

전화를 받던 리대철이 창근에게 나가라는듯 한손을 내저었다.

쫓기듯 밖으로 나선 창근은 속이 훌떡거려 참을수가 없었다.

뭐, 내가 열번 죽었다가 세상에 다시 나도 송화만 한 처녀를 만나지 못한다구? 사람을 우습게 봐도 분수가 있지.

바람맞은 갈대모양 퉁기친 마음을 진정 못하던 창근은 자신이 결김에 실언을 했음을 느끼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제길, 세상에 처녀가 송화 하나뿐인가 하는 소린 왜 했담.

정창근이 넌 언제봐야 격하면 감정과 리성을 분간 못하는게 탈이야.

엎지른 물을 다시 주어담지 못한다는데 이거 야단났는데…

이모부가 송화 아버지를 만나 이 정창근이를 단념하라고 하겠다고 했지. 정말 송화 아버지를 만나면 야단인데…

이제라도 제발 송화 아버지만은 만나지 말아달라고 사정을 해볼가.

한번 결심을 하면 뒤걸음질을 모르는 이모부인데…

절망의 수렁창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창근의 눈앞에 자기에 대한 말을 듣고 실망해서 한숨을 내부는 송화 아버지의 모습이 환영처럼 얼른거렸다.

에라, 될대로 되라. 이미 쑤어놓은 죽인데 까짓거 송화와 헤여지면 한동안 마음은 괴롭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잊혀지겠지.

그때쯤이면 도소재지에 있는 대외건설로 소환되여갈지 혹시 알겠는가.

뒤죽박죽이 된 자신의 운명을 마음내키는대로 재단을 하는 창근에게 경종을 울리듯 손전화기신호음이 울리였다.

꿈쩍 놀라 주머니에서 손전화기를 꺼내보던 창근의 얼굴은 사막에서 샘물을 만난것처럼 기쁨이 살아났다.

《안녕하십니까. 정창근입니다. 예? 내 문제를, 대외건설사업소 지배인동지에게 상정시켰다구요?》

증폭건을 누르자 상대방의 거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응. 자네의 목공기능에 대한 말을 듣더니 적임자라고 좋아하더군. 그러니 조만간에 좋은 소식이 있을터이니 마음놓고 기다리라구.》

《고맙습니다. 성의를 잊지 않겠습니다.》

《물론 그래야지. 누구나 가고싶다고 마음대로 가는 곳이 아니거던. 그렇지 않은가?》

《그럼요.》

전화를 끊은 창근의 마음은 번화한 도소재지로 들어서는듯 한 기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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