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강자 51, 5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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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에 점적바늘을 꽂고 침대에 누워있는 리석민의 얼굴엔 피기라고는 전혀 찾아볼수가 없었다.
의사들의 말에 의하면 원래 혈압이 높은데다가 뽐프가 파렬되는 순간에 받은 정신적충격에 의하여 뇌출혈을 일으켜 왼쪽다리에 마비가 왔다는것이였다.
그들은 내놓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리석민의 추측에는 호전이 된다고 하여도 더는 자기 일을 할수 없을것 같았다.
리석민은 허무감에 잠기였다.
이제는 아무 쓸모도 없는 인간아닌 인간.
인생은 시작도 좋아야 하지만 마감장식도 아름다와야 한다고 하였는데 지금 나에게 차례진 불행을 두고 과연 무엇이라고 하여야 하는가. 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였는가. 그 말썽많은 고양정뽐프탓인가?!
그런것 같기도 하고 아닌것 같기도 하였다.
자신이 어떻게 되여 구렁텅이로 기울어지는 수레에 몸을 싣게 되였는지 곰곰히 돌이켜보는 리석민의 머리속에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지난 일이 흉물처럼 떠올랐다.
창전거리건설초기 설비소요목록을 작성할데 대한 과업을 받았을 때 김원삼이 뭐라고 했던가.
자금이 많이 드는 뽐프는 수입에 의존하지 말고 동주뽐프공장에 맡기자고 했었지.
선뜻 결심을 못하고있는 나에게 윤상배는 또 뭐라고 했던가.
기술이 발전하였다는 나라들도 만들지 못하는 고양정뽐프를 기술적으로 허약한데다가 만들어본 경험도 없는 동주뽐프공장에 맡겼다가 무슨 과오를 범하자고 그러는가.
무조건 수입해야 한다. 그 길만이 과오없이 살아온 인생을 깨끗하게 마무리할수 있다.
유혹적인 윤상배의 입김에 과오를 범하지 않으려면 그의 말을 듣는것이 현자의 선택이라고 생각했었지.
하다면 그 선택을 하게 된 밑바닥에는 무엇이 깔려있었던가.
자인하건대 수입과정에 떨어지는 리득금이였다.
아ㅡ 언제부터 내가 돈맛을 들이였던가.
소급해보면 총명하고 타산밝은 윤상배의 앞길에 날개를 달아준것이 그의 은사로 되여 그가 외국출장갔다가 돌아올 때마다 주머니에 넣어주는 금전과 물건을 받기 시작해서부터 저도 모르게 흑심에 빠진것은 아닌지.
그것이 자기도 모르게 몸에 밴탓에 수입을 주장하는 윤상배의 말에 귀를 기울인것은 아닌지.
한창 뽐프문제가 물망에 올랐을 때 윤상배가 지나가는 말처럼 하던 말이 생각히웠다.
이젠 나이도 적지 않은데 여생의 락을 위해 뭘 좀 꿍져놓은것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이담에 자식들 뒤바라지를 할수 있다.
꿀같은 그 말에 공감하였다 할가. 아니면…
그후 어떻게든 뽐프수입을 성사시키리라 마음먹고 당시 우리 나라에는 고양정뽐프를 만드는 단위가 없다는 절호의 기회를 리용하여 지휘부일군들과 웃기관을 납득시켜 수입동의를 받고 즉시 윤상배를 수입대방에 급파하였었지.
그런데 순풍에 돛을 달고 거침이 없이 씽씽 나가던 수입안이라는 돛배가 뜻밖에 나타난 동주뽐프라는 암초에 부딪칠줄이야.
그것을 피해보려고 하였으나 억척같은 암초는 끄떡을 않았지. 돌이켜보면 탈선의 원인은 간단하다.
그것은 우리자체의 힘으로 해결할수 있는것은 절대로 수입에 의존하지 말고 자력갱생할데 대한 당정책을 결사관철할 의지와 신념이 떨떨한데 있었고 자기도 모르게 돈맛, 재물맛에 현혹되였기때문이 아닌가.
아, 후회가 막심하구나. 내 처음 김원삼의 의견과 리대철의 충고에 정신을 차렸더라면 오늘처럼 비참한 운명을 당하지 않는건데…
쓰린 마음으로 자신을 돌이켜보는 리석민의 눈귀가 축축해졌다.
자신에게 어떤 벌이 차례질것인가를 가늠해보았다.
직무해임으로 끝날것인가, 아니면…
나들문이 조심히 열리며 윤상배가 주저주저 들어섰다.
《좀 어떻습니까?》
리석민이 빛이 바랜 눈길로 윤상배를 쳐다보며 머리를 흔들었다.
그때 리석민의 머리맡에 앉아 턱방아질을 하던 로친이 잠에서 깨여났다.
《자네 왔구만. 약을 써서 혈압은 정상으로 된것 같은데 마비는 쉽게 풀릴것 같지 않구만.》
윤상배가 들고온 손가방에서 호화포장을 한 약 한통을 꺼냈다.
《이걸 써보십시오. 뇌출혈치료에 특효가 있다고 합니다.》
약품을 받아쥔 로친이 눈물이 글썽해서 떠듬거렸다.
《고맙네. 언제봐야 임자가 진국이야. 령감이 펄펄할 때에는 뭘 해결해달라, 뭘 어째달라 하며 집이며 사무실에 문턱이 닳도록 찾아다니던 사람들이 저렇게 시체처럼 누워있으니 그림자도 안 보이누만. 사람들이 어쩌면…》
제 설분에 눈물을 떨구는 로친을 보며 윤상배가 낯간지러운 소리를 하였다.
《그러게 겨울이 와야 솔의 푸름을 안다고 하지 않습니까.》
리석민은 어제까지만 하여도 혈붙이처럼 살가왔던 이 윤상배가 어쩌면 간신처럼 느껴졌다.
조만간에 뽐프문제가 법적으로 상정되면 그때가서도 이녀석이 방금 내뱉은 푸른 솔같은 소리를 할텐가.
생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불구가 된 사람은 언제나 따뜻한 동정에 의탁한다고 하였는데 이제는 윤상배한테서 그걸 바란다는것은 허황하기 그지없음을 느끼는 리석민의 입에서는 무거운 한숨만 새여나왔다.
그런데 이녀석이 여기에 나타난 진의도는 무엇인지…
《대방에게 당장 들어와서 사고원인을 규명하라고 확스를 보냈습니다. 내 그자들을 가만두지 않겠습니다. 손해배상을 곱으로 받아내고 거래를 끊겠습니다. 그러면 이번 일로 비판은 좀 받을수 있어도 책임추궁은 없을듯 합니다. 무역거래에서 그런 일은 종종 있는게 아닙니까.》
리석민은 윽벼르며 기염을 토하는 상배의 말을 듣기가 역스러운듯 눈을 감아버리고말았다.
리속을 따지면서 침발린 소리를 하는자는 반드시 속으로 노리는것이 있다더니… 날보고 자기를 변호해달라는거겠다?!
썩은 고기 비단천에 싼다고 비단천이 냄새를 막는다더냐.
윤상배는 아무런 반응도 없이 죽은듯이 누워있는 리석민을 보기가 민망한듯 메사해서 방을 나섰다.
로친이 뒤따라나오며 뭐라고 말을 한것 같은데 한마디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실 윤상배가 리석민을 찾아온것은 만약 일이 터지는 경우 그의 도움을 받을가 해서였다.
문제가 어떻게 서든 리석민이 어떻게 처신하는가 하는데 따라 죄가 커질수도 있고 무마될수도 있는것이다.
허나 까딱 아무런 반응도 없는 리석민을 본 윤상배는 실낱같은 기대가 허물어졌음을 탄식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제 남은것은 어떻게든 대방을 꺼꾸러뜨리는것이였는데 그것이 꽤 가능하겠는지…
한발 잘못 디디면 천길나락으로 굴러떨어질것만 같은 벼랑턱에 선 윤상배의 입에서는 절망적인 한숨이 새여나왔다.
52
뽐프시운전을 성공한 기쁨에 한껏 취한 제작조성원들은 며칠째 평양견학의 나날을 보내고있었다.
리대철은 첫날 옥류관에서 식사를 한 후 공장으로 내려갔다.
그들은 가는 곳마다에서 영웅처럼 떠받들리우며 귀빈대우를 받았다.
땅바닥에 발디딜새없이 승용차와 소형뻐스들이 그들을 태우고 만경대와 대성산으로 질주하였고 청류관과 련못관 등 식당들에서 산해진미를 차려놓고 기다리였다.
웃고 떠들며 환희에 잠긴 제작조성원들중에서 제일 바쁜 사람은 창근이였다.
그 모든것을 촬영기에 담자니 언제 눈코뜰새가 없었다.
촬영기를 어깨에 걸치고 인상적인 장면들을 찍느라 바삐 돌아치는 창근의 모습은 마치 전문촬영가 같았다.
허나 기름진 화면을 담기 위해 애쓰는 그에게 제일 안타까운것은 매번 정향이때문에 반복수정을 해야 하는것이였다.
모두 얼굴들이 환해있는데 정향이만이 두드러지게 울상이 되였으니 말이다.
웃으라, 웃으라 목청을 돋구며 소리치기도 하고 일부러 웃기기 위해 걸죽한 롱담도 던져보았으나 허사였다.
송화와 명선이도 끝내 정향을 설복시킬수가 없었다.
그래 창근은 아예 정향을 화면에서 뽑아버리고말았다.
사람에게 있어서 제일 고통스러운것은 남들이 웃을 때 웃지 못하는것이였다.
정향에게는 평양에서의 하루하루가 고문과도 같은 지겨운 순간순간이였다.
그것은 아버지때문이였다.
아버지가 직접 사들여왔다는 뽐프의 파렬을 직접 제 눈으로 목격한 정향은 아버지의 운명도 깨여지고말았다는 공포감에 사로잡히였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없었다.
죄는 지은데로 간다고 나라와 민족의 존엄과 자존심을 팔아먹은 아버지앞에 남은것은 준엄한 법적인 판결뿐이였다.
그러면 우리 집은… 하긴 둥지가 뒤집혀졌는데 알인들 성하겠는가.
이 사실을 어머니가 안다면…
밤새 어머니에게 알려야 할지 말지 골백번 생각을 굴리던 정향은 드디여 결심을 내리고 집으로 향하였다.
사형선고와도 같은 아버지의 소식을 어머니에게 전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심장이 터질것만 같았다. 그래도 알려야 했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씻을념 않고 허청허청 걸음을 내짚는 정향을 길가던 사람들이 뜨아해서 쳐다보았다.
정향은 사람들이 자기 아버지의 행위에 대하여 다 알고있는것만 같아 고개를 들수가 없었다.
얼굴의 살이 푹 깎인데다가 고역이라도 치른듯 생기라고는 한점도 찾아볼수 없는 휘주근한 딸의 정상을 본 선월은 그 어떤 불길한 예감에 가슴이 후두두 뛰였다.
《아니, 정향아, 너 이게 무슨 꼴이냐. 무슨 일이 있었니?》
온몸의 기운이 다 빠진듯 한 정향이가 선월의 품에 파고들며 어린애마냥 왕ㅡ 울음을 터뜨리였다.
《엄마!》
정향을 꼭 그러안은 선월은 더 묻지 않고도 딸이 왜 이 지경이 됐는지 가늠할수 있었다.
아니아니하면서도 설마하였던 남편의 일이 끝내 터지고말았다는 생각에 가슴이 미여지는것만 같았다.
한동안 섧게 흐느끼던 정향이가 얼굴을 들며 울먹이였다.
《어머니, 이 일을 어쩌면 좋아요. 아버지가… 아버지가…》
선월은 억이 막혀 그 자리에 폴싹 주저앉았다.
그의 량볼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눈앞이 캄캄하였다.
남편에 대한 원망에 앞서 자기가 남편을 다잡아주지 못한 자책이 가슴을 허비였다. 정신이 흐리마리해졌다.
어머니가 받아안은 충격을 이겨내지 못할가봐 겁이 난 정향은 무릎을 꺾고앉으며 두손을 꼭 감아쥐였다.
《엄마, 마음을 굳게 먹어. 제발… 제발 맥을 놓지 말아. 아버지가 과오를 씻으려면 엄마가 맥을 놓아선 안돼. 내 말 들어요?》
실성한 사람모양 멍해있는 선월에게 딸의 목소리가 우뢰소리처럼 들리였다.
정기없는 눈으로 딸을 쳐다보는 선월의 입에서 맥빠진 소리가 흘러나왔다.
《우리 집의 행복을 다시 찾을수 있을가?》
정향은 당황해졌다. 갑자기 오한이라도 만난듯 몸이 떨리였다.
마음속에 품고있던 의문을 지금 어머니가 자기에게 묻고있다.
정말 우리 집의 행복을 다시 찾을수 있을가.
대답을 기다리듯 빤히 쳐다보는 어머니의 애절한 눈길을 마주보는 정향은 입술을 꽉 깨물며 고개를 끄덕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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