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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전환 제2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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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6,336회 작성일 21-03-07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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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가 금방 날아오르려고 할 때 허담은 옆에 앉은 주인호에게 아프리카지방의 기후풍토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고 하였다. 다섯명으로 이루어진 정부대표단에는 3명이나 이 지역에 처음 가보는 사람들이 끼여있었다. 얼마동안 한담을 하다가 시간이 가고 이야기밑천이 떨어지고나니 모두 침묵에 잠기게 되였다. 고르로운 비행기 동음, 가도가도 끝이 없는 하늘 그리고 아득히 펼쳐진 대지… 창밖으로 그것을 내려다보고있노라면 누구나 인차 우주속에 있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게 된다.

허담은 솜송이같은 구름이 끝없이 흐르고있는 대공을 여겨보기도 하고 또 눈을 감고 이러저러한 명상에 잠기기도 하였다. 하나의 땅덩어리우에 수십억이 오기작거리며 살고있다. 그러면서 적당히 국경이라는 금을 그어놓고 그것을 위해 총포성을 울리고 서로 살륙도 하고있는것이다.…

한참동안이나 이러저러한 부질없은 생각에 깊이 빠져있다가 이번에는 함박눈 내리는 밤에 김정일동지와 함께 대동강가를 거닐던 때를 상기하였다. 리치는 어떻게 되였든 내가 갈 인생행로는 그이께서 정해준 그길인것이다. 수령님의 권위를 옹호하기 위하여 그리고 수령님의 권위로 대외사업에서 해야 할 일이 많고많다. 근본적인 의의를 가지는것은 우리 당을 그 어떤 풍파에도 드놀지 않게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나자신은 대외사업에서 자기 할바를 원만히 수행하는것이다. 그러자면 얼마전에 그이께서 지적해주신것 즉 여기서 이 허담이 당성이나 로동계급성, 인민성도 찾아보게 되여야 할것이다.…

평양을 떠나서 모스크바에서 하루밤을 묵고 그다음은 에짚트의 수도 까히라에 내리였다. 로정은 매우 순탄하여 세네갈에서 사흘동안 일을 보고 그다음에 말리의 수도 바마코에 도착하였다.

이번 세네갈, 말리, 기네 등 서아프리카 5개 나라를 방문하는 정부대표단은 최근년간의 대외사업정형을 통보하고 신흥세력나라들사이에 협조를 강화하고 일치보조를 취할것과 자주적립장에서 평화와 친선을 도모하도록 하기 위한 의견을 교환하는것이였다. 때문에 한개 나라에서 두세번의 면담이 있게 되고 수도나 지방 참관이 한두군데 있는 정도였다.

바마코비행장에 내린것은 오후 6시가 넘어서였다. 지평선우에 익은 꽈리같은 태양이 놓여있는 때였다. 열대지방이긴 하지만 쟈까르따처럼 적도선상이 아니기때문에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비행장은 허허벌판에 대통로처럼 외가닥 활주로가 하나 째여져있어서 매우 단조롭게 보이였다. 세네갈과 마찬가지로 눈에 띄는 모든것이 아프리카다운 풍경인데 여기서 하나 더 첨부되는것은 바다가 없는 내륙이며 순전히 사막만이 펼쳐져있다는 특이한 점이였다.

하늘도 땅도 그리고 함석지붕이 대부분인 거리풍경도 모두 뿌연 모래빛이였다. 우리 사람들의 의식에는 사막이란 깔깔한 모래알로 알기 쉬운데 그런것이 아니라 감탕먼지라고 해야 근사할것이다. 여기 사람들의 모든 생활습성은 모래 그리고 매일 규칙적으로 내륙에서 밀려오는 열풍과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엇바뀌는 이런것들로 형성공고화되여있었다.

우리 대사관에 들어가서도 첫눈에 띄는것은 추운 겨울에 문풍지를 꼼꼼히 하는것처럼 바깥바람이 들어오지 못하게 짬을 바른것이다. 려장을 풀고 목욕을 하고나자 이 지방풍습에 익숙된 주인호는 허담에게 말하였다.

《여기서는 모든 일을 아침일찍부터 시작해서 늦어도 오후 2시나 3시까지는 끝내야 합니다. 그때부터 열풍이 오는데 먼지가 일고 너무 더워 아무것도 해내지 못합니다.》

허담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사관의 도서실을 돌아보고와서 대사에게 우리 수령님을 흠모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설명해달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밤깊도록 자세한 이야기를 듣게 되였다.

신봉자들가운데서 맨 처음으로 꼽아야 할 대상인 이곳 바마코대학의 철학교수 라케니트는 나이 올해 56이고 아버지가 백인혼혈이라는데 그는 외탁을 해서 이곳 토색을 그대로 가지고있었다. 피부는 윤기나는 흑갈색이고 키는 대통령 모디보케이타보다 약간 작은 정도의 장신자라고 한다. 그는 일주일이 멀다하게 찾아와서 김일성동지의 저작들을 달라고 한다는것이다. 그가 주동이 돼서 약 1년어간에 차츰 인원이 불어나 이제는 교원, 기자 또는 학생들속에 대상인원이 부쩍 늘어났다는것이다.

허담은 이야기를 듣노라 밖이 어두워진것도 몰랐다. 대사관성원이 저녁식사시간이 되였다고 알리자 그는 손을 들어 잠간 기다리라고 하고는 대사에게 말했다.

《그를 한번 만나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오늘낮에 알아보니 아직 료양소에서 돌아오지 못했다더군요. 그 철학박사는 말리호수를 지나 친부끄츠라는데에 가서 치료를 받고있는데 한달 가까이 됩니다. 소화기도 나쁘고 어지럼증이 심하다고 합니다.》

《거참 유감이구만요.》

허담은 못내 섭섭해하였다.

대사는 말하기를 라케니트교수는 《자주성을 옹호하자》라는 우리 나라 《로동신문》 사설이 나오자 그것을 읽은 즉시로 이 나라 주요방송과 회견하여 자기의 인상을 피력했다는것이다.

그전부터 《김일성선집》을 비롯한 우리 당 문헌들을 깊이 연구하였는데 아마 발취노트만 해도 십여권이 훨씬 넘을것이라고 했다.

새로 출판된 수령님의 로작 《우리 나라 사회주의농촌문제에 관한 테제》 등 몇권의 신간도서가 대사관에 와있다는것을 알고 빨리 퇴원해야겠는데 야단났다고 하더라는것이였다. 그리고 라케니트교수는 늘 우리 나라에서 높은 급의 대표단이 오면 자기와 상면시켜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우리 수령님에 대해서, 우리 나라에 대해서 더 깊이 알려는 그의 열망은 갈수록 더 해간다는것이다.

허담은 감심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다 우리 수령님께서 지니신 높은 권위를 말해주는게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아까도 전화로 련계가 있었는데 부상동지가 왔다니까 한번 만나봤으면 좋겠는데 몸이 허락치 않아 올수 없다는거죠. 막 안타까와하더군요.》

허담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무엇인가 생각난듯 대사에게 물었다.

《가만, 거기까지 거리가 얼마나 됩니까?》

《세네갈을 거쳐 오셨으니까 짐작이 가시겠는데 그만한 거리는 좀 못되고 아, 그렇지. 호수의 서쪽이니까 한 400키로쯤 될것 같습니다.》

《자동차로 몇시간이나 걸립니까?》

《대여섯시간… 아니 그럼, 거기까지 가보시려구 그럽니까.》

대사는 펄쩍 뛰였다.

허담은 응대가 없이 의자팔걸이에 팔굽을 세운채 손으로 턱을 고이고 물끄러미 어둠속에 잠긴 창문을 바라보고있었다.

(어떻게 한다?)

우리 수령님을 그처럼 흠모하고있다는 학자를 만나지 않고 떠난다는것이 어쩐지 도리가 아닌것 같았다.

(전화로 만날가? 아니 전화로야 어떻게 심중의 말을 다 나눌수 있겠는가.)

얼굴도 모르는 라케니트가 오래전부터 가깝게 지내던 벗으로 생각되면서 그를 한번 만나지 않고서는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을것 같았다. 더는 말고 가까이에서 한번 그를 보거나 하다못해 그의 손이라도 쥐여보고싶었다.

허담은 어떻게 되여 미지의 학자가 그렇게 친근하게 다정한 벗처럼 그리워지는지 알수 없었다.

허담은 후날에야 그것이 자기와 학자를 친형제와 같이 굳게 련결시킨것은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뜨거운 흠모심이였다는것을 깨달았다.

다음날부터 허담은 서둘러대였다. 면담도 전격적으로 하고 시간을 한껏 아끼였다. 바마코교외의 참관도 략하였다.

오직 라케니트교수를 만나야 한다는 마음이 불같이 타올랐다.

대사는 대표단의 일정에 없을뿐더러 일부러 고생을 사서 어려운 길을 부득부득 떠나려는 허담에게 사막의 열풍을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자기는 책임질수 없다고 충고삼아, 위협삼아 말하였다.

하지만 허담은 입가에 빙그레 맑은 웃음을 피워올릴뿐이였다.

그는 대사한테서 받았던 수령님의 농촌테제문헌과 자기가 대사관에서 짬짬히 학습하던 당대표자회에서 하신 수령님의 보고(단행본)를 서류가방에 넣었다.

대사는 한사코 만류해나섰다.

《모험입니다. 크게 고생할수 있습니다. 다음 일정도 생각해야 하잖습니까. 아직 기네, 나이제리아, 앙골라가 앞에 있다는걸 고려해서…》

그러나 허담은 한걸음도 양보할수 없었다.

말리에서의 일정을 끝내고 허담은 400키로행군을 단행하기로 하고 나섰다. 《벤즈 200형》은 기운차게 달리였다. 뒤자리에 허담이와 주인호가 앉고 앞에는 젊은 운전수 두명이 탔다. 사막지대인지라 속도는 최하 80, 보통 100정도 나갔다. 새벽 4시, 아직 동쪽하늘이 트이지도 않았는데 승용차는 사막지대로 그어놓은것 같은 일직선도로를 살같이 달리였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사막이였다. 세계에 널리 알려진 사하라사막 서남쪽기슭에서 그 종심깊이로 들어가는것이다.

사막 한복판에 강이 하나 흘렀다. 강이라고 하니 강인가부다하지 그저 보기에는 사막 한쪽에 그어진 우묵한 고랑이였다. 한 30분에 한번씩 운전수들이 교대를 하였다. 너무나 곡선이 없고 들추는것도 없기때문에 깜박 졸기가 일쑤이고 한번 착각을 일으키면 엄청난데로 빠져들어갈수 있기때문이였다.

머리를 들면 진회색의 하늘과 땅뿐이다. 그외는 동쪽에서 떠오른 놋대야와 같은 태양 하나! 천태만상이라는것이 죄다 생략되고 이것이 전부이다.

허담은 너무나 특이한 풍경을 놀라운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기였다.

(여기 사람들의 마음은 어떤가. 자연처럼 이렇게 단순한가 아니면 정반대로 되여있을가.)

그는 입가에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어느쪽이든 아무 소용이 없는것이다. 그러나 부질없는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아이쿠!》

운전수가 비명을 질렀다. 급정거하는 바람에 앞으로 쏠리였다가 반동력을 일으켜 엉덩방아를 찧은것이다.

《왜 그러오?》

주인호가 물었다.

《모래사태가 났습니다.》

두명의 운전수가 동시에 내렸다.

짐칸에서 평삽을 꺼내들고 길을 메운 모래를 치기 시작하였다. 앞이 보이지 않을만치 모래가 쌓여있었다. 시간은 아침 6시였다. 거리를 보면 3분의 1이 되나마나한 지점이였다. 그런데 이상한것은 모래를 퍼제끼고있는 두 청년은 기분이 평온하고 그것을 흔히 있는 일로 알고있는것이였다. 난처해진 허담이 먼데를 바라보고있는데 주인호가 담배불을 붙이자면서 한마디 하였다.

《걱정할건 없습니다. 여기서는 이런 일이 흔히 있으니까요. 우리 조선으로 말하면 자그마한 시내물을 하나 건느는것이나 같습니다. 지금 6시니까 시간은 넉넉합니다.》

주인호의 말대로 한 30분동안 모래를 쳐서 대수간 길을 내고 차를 뽑게 되였다. 그런데 놀라운것은 세워놓은 차를 뽑기 어려울만치 바퀴가 묻힌것이다. 모두 달라붙어 영차영차를 해서 장애구간에서 빠져나왔다.

차는 또 달리였다. 날이 밝으면서 해풍이 세게 불어 앞이 뽀얗게 흐려졌다. 그러나 승용차는 기세좋게 몽롱한 모래안개속을 뚫고들어갔다.

《에익, 이거 또!》

차는 다시 멎었다. 먼저번과 꼭같은 방법으로 작업이 진행되였다.

장애가 거듭되자 허담은 가슴이 묵직해졌다. 그러면서도 그는 왕청같은 생각을 하고있었다. 어느 책에서 보니까 레닌이 림종순간까지 애독했다는 어느 한 단편소설이 생각났다. 바로 이와 비슷한 정황에서 있은 일이였다. 굶주린 사람과 병들고 굶주린 맹수와의 결투였다. 인간의 힘과 긍지를 보여준 이야기는 아직 생생히 머리에 남아있었다.

주인호는 운전수의 삽을 뺏아들고 모래를 쳐내고있다. 얼굴은 한껏 침울해지고 군소리 한마디 없는 재빠른 동작은 매우 초조해있다는것을 알수 있게 하였다.

허담이도 불안을 감출수 없었다. 삽이라도 하나 더 있다면 도울 생각이지만 그렇게 할수 없었다. 그래 그는 사태가 밀린 한 10메터구간을 왔다갔다하면서 시간가늠을 해보게 되였다. 또다시 30분이 흘러갔다. 차를 뽑아 평탄한 길우에 내세웠지만 전번처럼 그렇게 쾌재를 부르는 사람이 없었다. 전번에 《나왔다!》 하고 소리쳤던 주인호도 쓴입을 다실뿐 말이 없고 운전수들은 담배를 붙여물고 인차 발동을 걸었다.

《여유시간 2시간을 가지고 떠났으니까 이제는 1시간이 남았는가요?》

허담은 주인호의 기분을 이런 식으로 타진해보았다.

《아직 완완합니다. 이제 한시간정도면 절반지점에까지 갈수 있으니까요.》

차는 속도를 한껏 높이였다.

그리하여 고작해서 10키로 남짓한 지점까지 단숨에 댈수 있었다.

시간은 벌써 오전9시가 되였다. 그런데 난처한 일이 또 벌어졌다. 일행이 편안한 마음으로 앞을 내다보고있는데 《아이구야?》 하고 운전수가 소리쳤다. 마치 집게에 집히는것 같은 비명이였다.

차가 멎는것과 함께 앞을 내다보게 된 허담은 순간에 온몸이 굳어지고말았다.

엄청난 모래산이 앞을 막아섰는데 새파란 승용차 한대가 다 묻혀버리고 뒤꽁무니만 약간 남은것이 보이였다. 사람은 아무데도 보이지 않았다. 정황이 딱해지자 차를 그냥 둔채로 어데론가 가버린것이 틀림없었다.

모두다 긴장해졌다. 누구도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말로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재난이 앞에 가로놓인것이다. 일행이 모두 흩어져 각기 제나름으로 수습책을 생각해보았다.

허담은 모래둔덕을 가로질로 거리를 가늠해보았다. 10메터이상 파제껴야 하였다. 그러자면 11시, 12시까지 해야 하는데 이제 기껏해야 2시간정도 있으면 열풍이 불어닥칠것이였다.

주인호에게 물었지만 그도 묘안이 없노라고 하였다. 얼마동안 토론을 해보다가 허담은 단호한 결심을 내리였다. 차는 돌려보내고 주인호와 함께 걸어서 갈 작정을 하였다. 시간이 약간 모자라긴 하지만 부지런히 걸어서 10키로정도 가면 강이 나지는데 그러면 목적지에 무사히 가낼수 있었다.

《갑시다. 10키로도 되나마나하니까.》

허담의 말에 주인호가 반발해나섰다.

《부상동지, 1시간 30분동안에 10키로를 걸어야 합니다. 그러다간 모래속에 묻힐수도 있습니다. 부상동진 아까부터 자꾸 가슴을 움켜쥐는데 열풍속에 견뎌내지 못합니다.》

아닌게아니라 몸에 익숙되지 않은 메마른 공기와 열풍으로 하여 심장부위가 자주 뻐근해왔다.

《그렇다고 되돌아설순 없지 않습니까?》

허담은 결연히 손을 내저었다.

《정 그렇다면 이렇게 하는것이 어떻습니까. 지금까지 우리가 온 로정은 별일 없었으니까 차를 돌려가지고 갔다가 래일이나 모레 기회를 보아 다시…》

《아아, 복잡하게 이러지 맙시다.》

이렇게 되여 주인호는 마지 못해 허담이 하자는대로 따라나서지 않을수 없었다.

허담은 뒤좌석에 놓았던 두툼한 서류가방을 꺼내 누가 빼앗기라도 하려는듯 두팔로 그것을 꽉 부둥켜안았다.

두 운전수는 돌아갔다가 다시 오기로 하였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을 구멍이 있다더니 기분이 열리였다. 이제 기껏해야 한 10리 걸으면 되였다. 그런데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던것처럼 열풍이 불어닥치기 시작하였다.

숨이 꺽꺽 막히고 피부가 따끔따끔하였다. 온통 모래판이다보니 걸음도 잘되지 않았다. 맥이 빠진데다가 초조하기까지 해서 더 걸음이 나가지 않았다. 5분이 멀다하게 물을 마셔야 하였다. 온몸을 불에 굽는것 같아 걸음을 떼기 힘들었다. 입안에는 모래가 자금자금 씹히고 눈을 뜰수 없었다.

《좀 쉽시다.》

주인호가 간청하듯이 말하였다. 나이는 두세살 아래지만 체대가 크고 겉늙다보니 주름이 많았다. 우거지상을 한 그는 물을 마시고 나서 허담을 향해 짜증을 내였다.

《이놈의 날씨만 아니였어두 벌써 다 갔겠는데 이거야 어디…》

점점 숨이 가빠지는 허담이 오히려 이렇게 말했다.

《좀더… 기운을 냅시다.》

《부상동지! 지금 우리는 아무 일 없는것 같지만 이제 한걸음 삐뚝해서 자빠지는 때면 순간에 모래무덤속에 들게 됩니다. 저기를 보십시오. 강한 열풍이 넘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한두시간 지체하면…》

《위협하지 마시오.》

허담은 갑자기 모래가 미끄러워 앞으로 꼬꾸라졌다. 그러나 혼신의 힘을 다해 일어나 내짚었다. 마치 깊은 눈길을 걷는것과 비슷하였다. 그는 입술을 짓씹으면서 기운을 내였다. 이것은 일종의 항거였다. 불순한 자연에 대한 항거인 동시에 주인호가 은근히 잡아당기는 유혹에 대한 항거였다.

서류가방을 번갈아 안으면서 행군은 계속되였다. 자주 엎어지였다. 서로 부축해가면서 걷고 또 걸었다. 거리를 보아서는 이제 한시간이면 넉넉할것 같은데 목에서는 겨불이 타고 다리가 뻣뻣해져 한걸음도 더 내짚을수 없게 되였다.

그들은 고개를 짓숙이고 걸었다. 걷는다기보다 지친 다리를 모래우로 질질 끌고가는것이다. 먼지가 뽀얗게 끼여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맥이 빠진 허담은 자주 먼지투성이인 안경을 닦느라 주춤거리였다.

열풍이 시작되였다. 때때로 회오리를 일으켜 사람을 팽이 돌리듯 해놓군하였다. 그럴 때면 땅에 엎드려 바람이 자기를 기다려야 하였다. 멀리서 보면 뽀얀 먼지속에서 두개의 그림자가 아물거리는것으로 보일것이다. 그들은 드팀없이 한걸음한걸음 전진하고있었다.

허담의 얼굴은 고통과 모래먼지로 혼탕되여 무색무표정이 되고말았다.

오전 10시 30분! 열풍이 미쳐나서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다는 바로 그무렵에 그들은 마침내 오아시스의 초입에 들어서게 되였다.

이곳 말을 알고있던 주인호는 다섯번이나 물어서야 라케니트가 있는 료양소에 들어설수 있었다.

딱 들어붙은 곱슬머리에 안경을 낀 라케니트는 전후사연을 듣고는 그저 놀랍고 반가와 《아이야-야-》 할뿐이였다.

인사말이 오가고 다 자리에 앉았을 때 주인호가 말했다.

《교수선생을 만나기 위해 우리 허담부상동지는 난생처음 이런 고생을 했습니다.》

《무슨 용무이기에…》

《무슨 용문가구요?》

어떻게 그 뜨거운 사연을 단마디로 표현할가 하고 말마디를 고르고 있는데 허담이 스스럼없이 말을 건네였다.

《특별한 용무는 없습니다. 우린 그저 교수선생의 병문안이나 하자고. 그리구 낯도 익힐겸…》

《아니? 그 험한 길을… 사실은 제가 조선에서 온 손님들을 만나고싶었습니다. 제가 뭐라고…》

교수는 고개를 돌리고 슬며시 손끝으로 눈굽을 훔치였다.

그는 허담이 가져온 수령님의 로작을 받아쥐고는 격정을 누를길 없는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참말 감사합니다. 김일성각하께서는 동지들과 같은 의로운 전사들과 함께 계시니 행복합니다. 그리고 훌륭합니다. 그런 전사를 키워내고 그런 전사들의 호위를 받고있으니말입니다. 저는 60이 되여오는 이날까지 철학을 전문으로 연구해왔는데 오늘은 각하를 세계적 위인으로 존경하며 숭배하고있습니다.》

라케니트는 저작선집의 가위를 펴들고 김일성동지의 사진을 가리키면서 《이분은 위인중의 위인입니다. 저는 한생을 바쳐 이분을 경모하고 이분의 저작을 연구할 작정입니다.》라고 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허담은 하루밤 꼬박 새우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책 두권을 가져다준것으로 해서 그토록 상대방을 기쁘게 하리라고는 상상도 할수 없었던것이다. 비록 피부색이 다르고 혈통이 다르고 지나온 력사가 다르지만 위대한 진리를 따르고 위대한 위인을 따르는데는 지구상의 동서남북 가림이 없이 공통적이라는것을 절감하였다.

(아, 이것이야말로 혁명전사의 행복이라는것이 아니겠는가!)

그로부터 20일이 지나 허담은 조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앉아있었다. 서아프리카에서 쏘피아에 와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쏘피아에서 또 모스크바까지 와서 다시 비행기를 갈아타고 바야흐로 평양으로 향하게 되였을 때 허담은 기나긴 비행길의 려독도 려독이지만 사막의 열풍을 겪으면서 얻은 과도가 겹치면서 가뜩이나 심장질환이 있던차라 비행기안에서 쇼크를 일으켜 쓰러졌다. 응급치료가 있었으나 비행장에서 곧장 병원으로 후송되여가지 않을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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