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 칼럼] 원숭이도 평등을 원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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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작성일 25-11-15 16:27 조회 46 댓글 1본문
[강산 칼럼] 원숭이도 평등을 원하는데
[민족통신 편집실]
얼마 전 어떤 다큐멘트리에서 아주 흥미로운 동영상을 보았다. 미국 아틀란타의 영장류 학자 프란스 드발이 불평등에 관하여 원숭이를 상대로 한 실험에 관한 것이었다. 즉, 원숭이가 불평등에 관하여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실험이었다.
먼저 원숭이 두 마리를 각자 우리에 넣어두고는 실험자가 얼마간의 돌을 원숭이에게 나눠주고는 돌 한 개를 원숭이가 실험자에게 건네주면 오이 한 조각을 주었다. 원숭이들은 오이를 받아먹기 위하여 기꺼이 돌 한 개를 주었고 실험자는 몇 차례 동안 오이를 건네주었다. 그러다가 오른편의 원숭이에게는 오이 대신 포도를 주었고 왼편의 원숭이에게는 계속해서 오이를 주었다.
원숭이들은 포도를 오이보다 10배 더 좋아한다고 한다. 그렇게 두어 차례 오른편 원숭이에게는 포도를 주고 왼편의 원숭이에게는 오이를 주니 왼 편의 원숭이가 우리 넘어 오른편 원숭이를 살펴보고는 받은 오이를 먹지 않고 실험자에게 던져버렸다. 계속해서 똑 같은 실험을 계속하니 오른편의 원숭이는 그저 포도를 받아먹는데 반하여 왼편의 원숭이는 오이를 받기를 거부하고 벌떡 일어서서는 격리된 창살을 마구 흔들며 크게 분노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실험은 결국 인간보다 훨씬 미개하다고 여겨지는 원숭이조차 불평등에 대하여 참지 못하고 분노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떠할까? 자본주의 세상의 불평등은 포도와 오이로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천문학적 숫자로 더 크다. 똑 같은 일을 해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차이를 두는가 하면 더 쉬운 일을 하면서도 열 배 백 배의 돈을 받기도 한다. 심지어 원숭이처럼 돌을 건네줄 필요도 없이, 그러니까 노동을 할 필요도 없이 상위 1%의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천 배 만 배의 재화를 물려받고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의 인간은 그야말로 엄청난 불평등의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위에서 계속)
그렇지만 자본주의 세상에서 불평등에 대하여 분노를 폭발시키는 일은 드물다. 인간이 원숭이보다 불평등에 관하여 너그럽기 때문일까? 원숭이보다 적어도 수백만 년 이상 진화된 인간이 절대로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인간은 어떤 동물보다 더 평등을 추구하고 평등하게 되기를 바라는 존재다. 그런 인간이지만 자본주의 세상에서 권력과 자본가들이 그들을 위하여 만들어놓은 법과 규범과 질서, 경찰과 군대, 국가의 공권력, 태어날 때부터 받아온 세뇌교육으로 대다수가 자본주의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본주의 형의 인간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자본주의 세상에서도 자본가들에게 별로 손해가 되지 않는 평등은 어쩔 수 없이 주어졌다. 예를 들어서 똑같이 한 표를 행사하는 선거 때의 투표나 남녀평등, 인종차별 금지 등이다. 그렇지만 가장 근본적인 경제적인 평등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법과 권력으로 어느 누구도 건드릴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
만일 누군가 경제적인 평등을 말한다면 남녘이라면 국가보안법에 걸릴 수도 있어 감옥에 가거나 공산주의자로 낙인 찍어 사회적으로 매장시킨다. 그러니까 자본주의 세상에서 생존을 위한 철저한 세뇌교육을 받고도 평등을 추구하는 진보적인 사람들이 얼마간 있다 하더라도 저들 권력과 자본가들이 만들어놓은 지금의 교묘하게 왜곡된 자본주의 세상을 바꿔낼 수가 없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자본주의 세상에서 태어나 자라고 세뇌교육을 받은 대다수 민중은 경제적인 불평등에 대하여 그것이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는 대신 그 불평등이 사회적인 문제가 아니고 개인적인 문제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왜 나는 가난한 부모를 둔 가정에서 태어나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하고 한탄하기도 하며, 힘들게 학교를 마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몇 푼의 월급을 위하여 온갖 수모를 당하기도 하고, 고생 고생을 해서 돈벌이에 몰두하다 건강을 상하기도 하며, 힘들게 사업을 하였다가 조금 모은 재산을 모두 날리기도 하며, 그 가운데 일부는 돈벌이에 성공하였다해도 단지 부모를 잘 만나 거액의 재산을 물려받은 갑부들에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자본주의 세상의 경제적인 불평등이지만 아무도 이 제도 자체를 탓하지 않고 개인 스스로의 문제로 여기고 마는 것이다.
이렇게 자본주의 세상은 보다 높은 존재로 진화되어야 할 인간을 '불평등에 분노하는 원숭이'보다 못한 존재로, 아니 온 세상에 만연한 불평등을 원숭이 만큼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미개한 존재가 되도록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런 자본주의 세상의 인간에게 무슨 미래가 있을 수 있을까? 자본주의 안에서는 그 해답을 절대로 찾을 수 없다. 기존의 법과 질서, 공권력이 경제적인 평등을 이루는 일이라면 필사적으로 저지할 것이다. 날이 갈수록 경제적인 불평등이 더욱 심화된 암울한 미래가 있을 뿐이다.
인류의 미래는 오직 사회주의 조선에 있다. 지구상에서 경제적 평등을 이룬 나라는 오직 조선밖에 없다. 조선은 해방직후 1046년 3월 토지개혁을 시작으로 처음부터 경제적인 평등을 추구하였다. 당시 인구의90% 이상인 모든 농민들에게 평등하게 똑 같은 면적의 땅을 나눠주었다는 것은 천지개벽 이후 처음 일어난 일이니 이 얼마나 획기적인 일인가?
자본주의 세상이 조선을 고립시키고 악마화 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인류가 조선을 바로 알고 자신이 살아가는 나라가 조선처럼 경제적인 평등을 추구하는 것을 것을 막아내기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조선의 목을 조이고 제재를 가해왔지만 지금의 조선은 모든 것들을 극복하고 우뚝 섰다. 수많은 나라들이 조선을 배우며 중국도 러시아도 조선과 교류하는 시절이 온 것이다.
원숭이도 분노하는 불평등인데 어찌 인간으로서 불평등을 겪으면서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인간은 원숭이보다 수백만 년 이상 진화한 존재로 당연히 온 인류가 평화롭고 평등한 존재로 살아가는 것을 추구해야만 한다. 경제적인 평등을 이루는 것은 온 인류의 소원이 되어야 하며, 온 인류는 조선에서 경제적인 평등을 이루는 법을 배우고 추구하고 실천해야 한다. 그러므로 인류의 미래를 위하여 조선은 온 세상을 밝혀주고 이끌어 줄 유일한 등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