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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야전렬차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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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3,470회 작성일 22-11-28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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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 회


12

 

천연흑연제작소 소장 최성숙은 기업소 초급당비서가 찾는다는 전갈을 받고 뜨거운 열기가 확확 풍기는 흑연가열로앞에서 물러났다.

50대 초반의 나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몸자세가 꼿꼿하고 활동적인 그는 작업모를 벗어쥐고 옷자락에 묻은 흑연가루를 툭툭 털었다. 그러고나서 비날론걸레에 손을 문댔으나 여전히 손가락마디는 거밋했다. 얼굴도 보나마나 미세한 흑연가루분장이 됐을테지만 언제 손을 씻고 세면을 할 겨를이 없었다. 당비서방에 갔다와서는 다시 가열로에서 연구조수들과 같이 흑연가루반죽을 주물러야 하는것이다.

성숙은 기업소구내 한쪽구석에 위치한 작은 건물인 제작소에서 나와 다른 직장들이 널려있는 구내길을 한참 걸어서야 기업소 본청사에 당도했다.

초급당비서 지광현은 성숙이 들어와 앞상에 마주앉은 다음에야 심기불편한 눈길을 들고 입을 열었다.

《부에서는… 흑연제작소 소장동무의 처사를 두고 대단히 불쾌하게 생각하고있습니다. 불찌가 내한테 떨어지고있소.》

성숙은 지광현의 짜내는듯 한 말에 별로 놀라지 않고 담담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소장동무는 우에서 파견한 다섯명의 사람들을 흑연제작소에 받지 않겠다고 했다지요? 왜 거절했습니까? 세사람은 대학을 졸업한 똑똑하고 전도유망한 젊은 동무들인데.》

《어떻게 똑똑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성숙은 침착히 응대했다.

《비서동지, 우리 천연흑연제작소는 이제 겨우 첫걸음을 뗀데 불과합니다. 장차 세계흑연제품생산대국들과의 경쟁에서 지면 주저앉고맙니다. 실력이 없는 사람들을 받아가지고는 천연흑연제작소를 일떠세우지 못합니다.》

《졸업성적은 괜찮은 편이라고 하던데.》

《성적증은 보지 않았지만 담화해보니 외국어 하나 똑똑히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수물계통의 지식도 얼빤하고.》

《제작소에 몸을 붙이고 일하면서 배우면 되지 않소. 아마 그 동무들은 소장동무의 랭대에 자극을 받고 직심스레 공부할거요.》

《수년간의 대학시절을 헛되게 보낸 사람이 언제 배워가지구 학습당의 원서들을 보겠습니까. 대학시절을 껄렁껄렁 보낸 젊은이는 이제 더 공부하겠다는 자각도 없습니다. 게다가 비서동지도 알다싶이 우리 흑연제작소는 교육기관이 아니지 않습니까. 나한테는 당장 흑연제작소를 떠메고나갈 인재가 필요합니다.》

《소장동무, 좀 도량을 보이오. 그 동무들을 제작소 업무계통에 넣어 원료랑, 자재랑 맡아보게 할수 있잖소. 자재업무일로 외국에 출장도 잦은데… 외국어공부도 할수 있겠구만.》

《비서동지, 흑연제작소는 나그네한테 인심쓰는 려인숙이 아닙니다. 대학졸업생은 자기가 갖춘 전공학식과 자질정도에 알맞는 곳에서 일해야 한다고 봅니다.》

《소장동무는 내막을 잘 모르는것 같구만. 그 졸업생들은 부부장동지가 직접 보냈소. 그러니… 기업소가 어떻게 거절하겠소.》

지광현은 속이 달아 부탁조로 말했다.

《비서동지, 사람문제는 우리 천연흑연제작소가 번성하는가 못하는가 하는 사활적인 문제입니다. 때문에 저는… 그런 부당한 지시에 응할수 없습니다.》

성숙의 맞고집은 그닥 성칼지지 않고 상냥하기까지 했으나 에누리할 틈사리는 없었다.

《좋소, 그럼 어디 소장권한 쓰고싶은대로 쓰구려.》

지광현은 노기를 터뜨릴 온당한 언질을 찾지 못해 허둥댔다.

《그런데 소장동무, 나머지 두사람은 왜 부결했소? 그들은 흑연전문가들이 아니요. 쓸모있을텐데.》

《인조흑연전문가들입니다. 우리 나라에 흔한 천연흑연은 되지 않는다고 도리머리를 젓던 그 사람들을 우리 제작소에 받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지 않아도 론쟁과 시비거리가 많고 실용이 검증되지 못한 천연흑연전기솔인데… 개발에 도움이 되지 못할건 뻔하지 않습니까.》

《소장동무는 정말 코대높고 까다롭소. 도고한게 아니라… 거만하다는 표현이 적중할것 같소. 난 이 기업소에 오기 전에 사람들이 흑연제작소 소장을 두고 하는 말을 뒤시비질일거라고 생각했더랬소. 흑연을 가지고 큰일을 칠 녀자같으니까 질투하는거라고 말이요. 그런데 이제보니 인정해야 할것 같소. 상급도 모르는 거만한 녀자라는 딱지가 왜 붙었는지 알겠소.》

《쉰살이 넘은 녀자가 사람들의 말밥에 오른다는건 수치스럽구 부끄러운 일이예요. 그렇지만 난 변명하고싶지는 않습니다.》

최성숙은 태연스레 뇌이고 초급당비서의 방을 나왔으나 기분은 울적했다. 부부장이 내려보낸 사람들을 제작소에 받지 않은것으로 하여 미치는 후과를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흑연제작소의 운영자금은 말할것 없고 당장 필요한 까벨선퉁구리와 흑연등방압설비, 배풍설비들을 보장받는데 또 장애가 생길수 있지 않을가. 그러나 부부장이 자존심을 상했다고 그렇게 사업에 감정을 섞는 편협한 일군이 아닐것이라고 믿었다. 그런 우려감보다도 사람들의 말밥에 오른 자신의 진짜 모습이 그를 더욱 상심케 했다. 어찌하여 까다롭고 공명심에 찬 코대높은 거만스런 녀자라는 비난이 그림자처럼 떨어지지 않는가.

성숙은 천연흑연연구를 처음시작할 때 자기가 하는 일의 정당성을 확신한것으로 하여 사람들의 뒤공론을 모욕으로 받아들였고 그래서 억울하고 분해했다. 그러나 흑연에 지내 마음쓰며 뛰여다니고 시간을 바치다나니 맡은 번역원사업을 감당해낼수 없어 말밥에 오르면서부터는 자중하게 되였다. 흑연을 연구하라고 학습당에서 그한테 과업을 준것도 아니고 그것이 성공할 가망도 막연한 처지에서 번역원일을 잘못한다고 추궁하고 비난하는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였다. 그에 대해 반감을 가지거나 변명한다는것은 어리석은 일이였다. 돌아앉아 직분에 알맞지 않은 왕청같은 일을 벌려놓았으니 학습당에 더 눌러있을 명분을 상실한것이므로 퇴직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하많은 실패와 고충의 파도를 넘어온 지금에도 역시 일군들로부터 고운 소리를 듣지 못하고있다. 정말 내가 그렇게 거만방자하고 못돼먹은 성격의 녀자란 말인가. 흑연제작소의 형편과 전망은 상관없이 그들의 지시에 단순히 고분고분하지 않아 그런다면야 너무도 불공평하지 않는가.

그러나 최성숙은 이런 남모르는 괴로움을 당하는 순간에도 장군님을 생각하고는 착잡한 불안과 쓰라림을 누르고 진정했다. 10여년전 눈보라치는 벌판의 밤길, 어깨를 파고드는 흑연시료배낭을 지고서 지친 걸음을 하는 그를 승용차에 태워주시고 가슴속에 응어리진 연구사업의 곡절을 물어주신분은 오로지 장군님이시였다. 천연흑연연구에 대한 지지나 도움보다 무관심과 외면, 랭대가 심했고 그로하여 화력발전소의 빈 창고칸에 가장집물까지 팔아 초라한 실험로를 겨우 차려놓았던 그에게 그쯘한 실험설비를 갖춘 천연흑연연구제작소를 꾸려주신분도 김정일장군님이시였다.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이름없는 연구사에 불과했던 그가 장군님의 관심과 사랑이 없었다면 어떻게 세계흑연과학기술발전추세를 실지 눈으로 보고 관찰하고 연구를 심화시킬수 있었겠는가. 비행기의 폭신한 좌석에 앉아 창공높이 떠서 알프스산줄기를 넘을 때 최성숙은 진정 자기에게 미지의 천연흑연개척의 날개를 달아주고 지혜를 주신 장군님을 생각하였으며 첨단기술공업을 발전시켜 부강하고 또 부강해야 할 조국을 생각하며 울었다.

녀자의 볼언저리로 흐르는 눈물이 어찌 슬픔과 나약성을 상징하는것만으로 되랴. 맑으면서도 쩝쩔한 녀자의 눈물은 때로 마르지 않는 샘처럼 원천이 풍요하며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것도 휘여잡아 정복할수 있는것이다.

서유럽공업국들에 있는 이름난 흑연연구소들과 흑연제품회사들을 참관하는 과정에 최성숙은 식견을 넓히고 많은것을 터득하였다. 하루에도 수백리씩 다니며 련이어지는 기술분석과 료해, 정리연구나날에 그는 자기의 연구방식이 독특하고 유럽흑연공업에 없는 전혀 새로운것이며 성공의 문어구에 도달하고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였다. 그리고 조선의 천연흑연을 가지고 서방의 인조흑연을 누를수 있는 우수한 흑연전기솔과 전극, 흑연제품들을 만들수 있다는 신심과 의지를 굳건히 하였다.


조국에 돌아와 다시금 고심어린 탐구와 거듭되는 실험으로 밤을 패던 성숙은 흰쌀떡에 찹쌀을 섞으면 풀기강한 맛좋은 떡을 만드는것과 같은 단순한 착상으로 특이한 점결제를 연구해냈고 잇달아 천연흑연결정시편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하였다.

그날 밤 성숙은 너무도 기뻐 시험로에서 방금 구워낸 뜨끈뜨끈한 흑연시편을 손에 쥐고 제작소안을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었다.

날샐무렵에는 세상에 처음 태여난 이 천연흑연시편덩이를 장군님께 올리려고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 천연흑연시편은 성숙의 창조물이기 전에 장군님의 지지와 사랑과 믿음의 결정체였다.

그러나 성숙은 편지와 흑연시편을 장군님께 올리지 못하고 미루었다. 천연흑연시편이 인조흑연솔에 비할수없이 우수한, 가동시 접촉이 유순하고 호광이 없으며 내마모성이 좋고 탄소먼지가 나지 않는 전기솔제품이 되여 실용이 검증되였을 때 장군님께 올려야 한다고 생각을 고쳐했기때문이였다. 연구의 성공으로부터 완성에 이르고 나라에 실제적인 덕을 주자면 아직도 갈길이 멀었다. 다시 몇해가 흐른 뒤 성숙은 드디여 천연흑연제작소의 실험설비들을 가지고 수공업적으로나마 전기솔을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성숙은 제작소사람들을 데리고 공장, 기업소들과 농촌들에 나가 인조흑연전기솔이 없어 돌리지 못하고 묵어있는 전동설비들에 자기들이 만든 천연흑연전기솔을 설치하였다. 과연 평이 어떨는지?… 흑연제작소내에서 시험해본 결과는 아주 좋았으나 실지 천연흑연전기솔을 써본 공장, 기업소들의 객관적인 평가와 반영이 중요한것이다. 생산된 천연흑연솔이 먼저 국내에서 성능이 인정되고 세계발명특허권도 받아야 대외수출판로도 열릴것이다.

아직도 긴장해서 할일이 많고많은데 천연흑연제품개발에 적합치 않고 쓸모없는 사람들을 배치하려고 한다. 흑연제품으로 해서 다른 나라들과 거래건들이 있고 외국출입이 잦은 흑연제작소라는걸 알고 욕심을 내여 들어오지 못해 그러는지… 실력을 키워가지고 뼈심을 들여 일할 생각은 애당초 없고 평균주의그늘밑에서 남의 노력의 대가인 복리를 제것처럼 누려보려는 리기심이 머리통에 들어찬 사람들을 성숙은 경멸하였다. 사회적복리를 누리는데 습관된 그런 사람들을 받아가지고는 종업원수나 불어날뿐이지 연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성숙은 천연흑연기술개발보다도 흑연제작소의 운영발전과정에 미치는 이러루한 행정실무사업의 복잡성에 더 시간을 뺏기고 골머리를 앓았다.


×


소형가열로앞에서 흑연먼지를 뒤집어쓰고 비지땀을 흘리며 일하던 최성숙은 밤늦어서 퇴근길에 올랐다.

지친 걸음으로 아빠트부근에 당도해서야 그는 빈집에서 남편이 기다리겠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딸은 며칠째 혼자 외롭게 지내는 고모의 병시중을 들어주고있었다. 남편 장인섭은 평소에 안해나 딸이 퇴근할 때까지 텔레비죤앞에서 끄덕끄덕 졸면서도 좀처럼 부엌일에 손을 적시는 성미가 아니였다.

성숙은 아빠트층계를 올라 집문을 열었다.

남편은 텔레비죤도 켜지 않은채 방가운데 퍼더앉아 술잔을 기울이고있었다.

원래 주량이 센 남편의 얼굴이 단 쇠덩이처럼 불그레해진걸보니 벌써 소주 한병은 실히 제껴치운것 같았다. 성숙은 남편이 껍질벗긴 흰 파줄기를 고추장에 찍어 질겅질겅 씹으면서 자기쪽은 거들떠보지조차 않는것을 보고 어지간히 속이 부르텄음을 짐작했다.

성숙은 군말없이 곰살궂은 태도로 옷을 갈아입고 부엌쪽으로 갔다. 결혼시절부터 스무해넘는 세월 흑연을 연구하는데만 정신을 쏟다보니 평소에 가정주부답게 남편을 살뜰히 돌봐주지 못한 성숙이였다. 안해로서의 그런 죄스러움이 세월의 언덕을 넘어 례사로와지고 희박해져서 전연 의식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여보, 괜히 부엌에서 버성거리지 말구 여기 와 앉소.》

장인섭의 목소리에는 어딘가 아량이 느껴졌다.

성숙은 금방 지져낸 닭알볶음접시와 무우오가리보시기를 밥상에 가져다놓고 마지못해 앉았다. 술을 마실 때면 장인섭은 안해가 곁에 앉아 시중들어주고 엿가락같이 늘어나는 두서없는 훈시질을 공손히 받아들이는것을 맛좋은 안주감을 집어먹는것보다 더 좋아했다.

남편이 술을 들이키고 손에 든 빈 술잔이 허공에서 반원을 그리며 호기롭게 밥상에 떨어지는것을 보니 훈계의 첫 고패가 금시 시작될것 같았다.

《내 저녁밥을 지을게요.》

성숙은 미리감치 자리를 피하려고 무릎을 세우며 상냥하게 말했다.

《앉아있소. 먹지 않아도 되오. 술배 부르니까. 당신과 의논할 일이 있소. 여보…》

취기가 부쩍 오른 남편의 충혈된 눈에는 여느때없이 깊은 고뇌가 비껴있다.

《당신 오늘 기업소 초급당비서를 만났댔소?》

성숙은 불안해서 머리를 끄덕이고 주저앉았다.

《우리 공장정문에 손님이 찾아왔다기에 나갔더니 당신네 비서더란말이요. 내 다 들었소. 여보, 어떻게 된 일이요? 아무리 당신이 자존심 센 녀자라고 해두 당비서와 엇나가서야 되겠소? 대학졸업생들의 실력이란거야 다 도토리 키 대보긴데 뭘 그다지나 깡지파면서 그러오. 흑연제작소가 어디 당신 개인회사요? 지금껏 당에서 밀어주고 보장해줬으니 실험단계나마 성공한셈이 아니요.》

성숙은 남편의 말을 잠자코 듣기만 했다. 남편의 곱지 못한 술버릇을 탓하다가도 그가 심중에 고패치는 말마디들을 솔직히 터놓을 때는 은연중 머리숙어지고 반발할 생각이 없어지는것이였다. 도리에 맞지 않고 귀에 거슬리는 말이라도 남편 아니면 누가 해주겠는가.

《난 당신네 비서가 찾아온것이 고맙더란 말이요. 우리 가정을 생각해서 왔겠지. 초급당비서란 사람이 기업소에 속해있는 작은 흑연제작소 소장을 틀어쥐지 못해 그러는걸 보니 동정이 가기도 했소. 너무 코를 세우고 엇서지 마오.》

성숙은 말없이 술병을 잡고 빈 술잔을 채웠다.

《이거 만날 술 못마시게 하더니 래일 아침엔 해가 서쪽에서 뜰것 같다.》

장인섭은 흡족해서 잔을 비웠다.

《마감잔이예요.》

《아니, 당신이 내 충고를 받아들이는걸로 알구 기분이 좋아 더 마셔야겠소.》

《참작하겠어요.》

성숙은 수긍하기라도 하듯 상냥하게 뇌이였다. 그는 술자리에서 남편에게 사연을 설명하고 거부의 뜻이 확고한 자기 립장을 드러내며 말씨름을 하고싶지 않았다. 남편을 찾아가는것과 같은 우회적방법으로 졸업생배치문제를 해결하려는 지광현이 불만스러웠지만 다른 편으로 자기의 성품문제를 두고 남편에게 각근히 일깨워주는것을 나쁘다고 할수 없었다.

안해의 복잡한 마음속을 들여다보지 못한 장인섭은 제흥에 떠서 다음말을 꺼냈다.

《여보, 거 당신네 제작소가 넘겨받은 청운흑연광산 있잖소, 거기에 선광해놓은 흑연정광가루가 많지?》

《그런데요?》

성숙은 긴장해서 되물었다.

《당신네 비서는 그걸 얼마간 팔아서 흑연제작소 설비갱신자금이랑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하더구만.》

성숙은 불만에 차 도리머리를 저었다. 재작년에도 지광현비서의 요구로 제작소에서 흑연판대기와 전기솔생산에 쓰려고 선광해놓은 고품위흑연가루를 팔지 않았던가. 그때도 당장 급한 흑연제작소설비들을 사오고 락후한 흑연광산설비들을 갱신한다는 명분을 세워 헐값으로 수출했지만 결과는 어떠했는가.

흑연제작소에 필요한 대형변압기와 고압까벨선은 사오지도 못했으며 제작소산하의 3개 흑연광산운영에 달라진것은 꼬물도 없었다. 흑연가루를 판 자금은 기업소의 다른 단위들에 급히 소요되는 원천자금에 쓴다어쩐다하다가 깨끗이 없어지고말았다.

가슴아픈것은 실험생산단계를 하루빨리 벗어나야 할 흑연제작소의 운명이 또 두해라는 공시간을 흘려보낸것이고 설비갱신의 전망은 묘연해진것이였다.

《이봐요, 향미 아버지, 우리 천연흑연제작소는 누가 뭐라고 지시하고 요구하든 다시는 흑연정광가루를 팔지 않겠어요. 그걸루 흑연판대기와 전기솔, 흑연관제품들을 만들어 수출하면 많은 외화를 벌수 있는데 뭣때문에 소경 채 자라지 않은 제 닭잡는 그런 머저리짓을 하겠어요?》

《여보, 당신네 흑연광산들이 있는 곳에는 발길에 채우도록 많은게 흑연광석이요. 너무 독선을 부리지 마오. 천연흑연제조기술을 연구하면 했지 정광가루는 절대로 못 판다, 인조흑연전문가는 제작소에 받지 못한다 이게 어디 됐소?! 녀자소장이 좀 아량있구 너그러워야지.》

성숙은 잠자코 남편이 술기운에 뜬 맘을 가라앉히기를 기다렸지만 분김을 삭일수 없어 쪼아박았다.

《내가… 결함이 많은건 사실이예요. 그렇지만 당신은 흑연을 어떻게 수출하는가 하는 문제에는 간섭하지 마세요. 흑연수출때문에 향미 아버지 말고도 날 괴롭히는 사람들이 수두룩해요. 그 뻔한 진리를 고수하는데 이젠 지쳤어요. 흑연가루를 팔아 다른 수출단위들에 필요되는 자금보장이나 하다나면 우리 흑연제작소는 언제 일떠서겠어요? 우리 흑연제작소 사람들은 자금을 할당해주지 않아도 참고 이겨내면서 수공업적방법으로 흑연판대기와 전기솔들을 만들어요. 흑연전기솔 하나, 판대기 하나라도 더 만들면 발전소의 발전기가 돌아가고 전기기관차가 달리고 전동기들도 돌릴수 있다는 생각뿐이예요. 우리가 실험설비나 타발하고 생산조건이 불비하다고 주저앉으면 공장, 기업소들의 그 숱한 전기설비들도 쓸수 없고 철도도 멎어요.》

장인섭은 애원과 비분이 담긴 안해의 강인한 열변에 말문이 막혔다. 그는 버벙해서 눈물이 그렁한 안해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골을 젓고는 잔을 들어 술을 목구멍에 부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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