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부전역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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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8 회
섬에 남은 세사람
정 철 학
4
어머니는 차별없이 우리 삼형제를 친자식으로 키웠다. 어머니도 성인은 아니였으니 우리를 키우며 더러 잘못한 때도 있었으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머니에게는 처음부터 친자식으로 여기는 진정이 있었고 바로 그것이 우리에게는 중요하였다.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정이 드는데는 사실 특별한 계기가 따로 없는것이다. 매일매일 풍성하지는 못해도 지성이 어려있는 밥상을 마주할 때마다, 어려운 속에서도 아글타글하여 마련한 새옷을 입어볼적마다, 5점을 맞은 숙제장을 보며 기뻐 환하게 웃음짓는 어머니의 모습을 볼 때마다 정은 저도 모르게 깃들었고 깊어져갔다. 어떻게 하나 제대로 먹이고 입히고 옳바로 키워 내세워주려는 어머니의 다심한 지성은 사소한 생활의 이모저모에서 늘 느껴졌고 그 나날속에 형과 나는 어머니에게 친어머니처럼 정이 들었다.
우리가 자랄 때에는 나라가 고난의 행군을 할 때였다. 그처럼 어려운 때 세 아들을 키운다는것이 말처럼 쉽지 않았으나 어머니는 이악하게 집안살림을 꾸려나갔고 우리를 남부럽게는 못해도 축잡히지는 않게 키우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하루는 어머니가 우리 삼형제에게 꼭같이 새 신을 한컬레씩 사주었다. 나와 동생은 그 신들을 신어보고 기뻐서 어쩔줄 몰랐는데 아무 말없던 형은 슬그머니 자기 신발을 어머니의 신과 바꾸어왔다. 우리 동생들은 그제서야 어머니가 몇번이나 꿰진데를 때붙인 낡은 신을 신은것을 생각하고 고개들을 숙였다. 하지만 어머니는 형을 칭찬하지 않고 버릇대로 청높은 목소리로 한참이나 지청구를 늘어놓고나서 형을 데리고 다시 나가 신을 찾아왔다. 그후부터 우리는 놀때에도 신을 꿰뜨리지 않기 위해 무척 애쓰군 하였다.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우리 형제에게 이렇게 말하군 하였다.
《이담에 커서 꼭 훌륭한 사람이 되여야 한다.》
어머니에게는 훌륭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들인가 하는 자기나름의 명백한 견해가 있었다. 어머니는 자주 우리를 데리고 왕재산혁명사적지를 찾군 하였는데 그때마다 항일혁명투사들의 군상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하군 했다.
《저분들이야말로 정말 훌륭한 사람들이다. 사람이 참답게 살려면 꼭 저분들처럼 살아야 한다.》
온성녀인들이 대개 그러하듯 우리 어머니도 위대한 수령님의 항일혁명투쟁사에 아주 밝았다. 항일혁명투사들에 대한 어머니의 가지가지 이야기는 어린 우리들의 마음에 깊은 여운을 안겨주군 하였다. …)
최성준은 어스름속에서 어렴풋이 형체가 드러나보이는 제방을 보며 생각하였다.
(내가 만일 저기로 넘어간다면 어머니는 나를 용서하지 않을것이다.)
조국의 한 부분인 버드나무줄기를 묵묵히 쓸어보던 성준은 거기에 얼굴을 파묻었다. 비에 젖고 꺼칠꺼칠한 나무줄기였으나 성준에게는 정다운 어머니의 품처럼 여겨졌다. 그는 마음속으로 뇌이였다.
(어머니, 이 아들은 어머니를 버리지 못해요. …)
세찬 바람이 폭우를 휘감아 마구 후려치는 속에서 위태롭게 흔들리우는 버드나무가지를 꼭 부여잡은 광룡은 오한으로 하여 자꾸만 몸이 떨려나는것을 느꼈다. 밑에서는 어둠속에서 검푸른 빛으로 보이는 강물이 솨- 솨- 몸서리치는 물결소리를 일으키며 그들을 집어삼킬듯 자꾸만 불어오르고있었다.
광룡은 저도 모르게 제방쪽으로 눈길을 주었다. 그때 그는 지나간 자신의 인생에 대해 돌이켜보았다.
(내 인생이 여기서 끝난단 말인가. 귀여운 두 딸을 다시 안아보지 못하고 이렇게 간단말인가. 살고싶구나. 정말 살고싶구나. 아직 해야할 일이 많은데, 별로 해놓은 일도 크게 없는데 아직 한창나이에 생을 마치게 되다니. 이럴줄 알았다면 이전에 더 성실히 일하고 더 많은 일을 해놓았을것을. 내가 지금껏 남부끄럽지 않게 떳떳이 살아온것일가. 내가 여기서 죽으면 사람들은 나에 대해 어떻게 추억해줄가. 아버지는 비록 나라앞에 죄를 짓고 갔지만 아들은 그래도 아버지가 지은 그 죄를 씻기 위해 아글타글 애써왔다고 생각할가. 농장에서 작업반장으로 일하던 아버지는 과오를 범하고 법적제재를 받았었지. 그 과오를 씻기 위해 성실히 일하려고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심장질환으로 너무도 일찌기 돌아가셨다. 소년시절의 오래전 일이지만 아직도 아버지가 눈을 감기전에 불러앉히고 남겼던 마지막말이 생생히 떠오른다. 그때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었지.
《이 아버지는 나라앞에 지은 죄를 씻지 못하고 간다. 그러니 네가 이다음에 크거들랑 이 아버지몫까지 성실히 일해다오.…》
나는 여태 아버지의 이 마지막당부를 한시도 잊지 않고 살아왔다.
농장에 진출해서 남들이 꺼려하는 궂은 일도 언제나 스스로 맡아했고 모든 농장일을 알심을 들여가면서 제일처럼 하기 위해 애썼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이 순간에 돌이켜보아도 뼈를 아끼지 않고 근면하게 일해왔다고 자신의 량심앞에 부끄럽지 않게 말할수 있도록 그렇게 살아왔다.
그래도 이렇게 될줄 알았더라면 좀더 많은 일을 했을것을. 그것이 제일 후회되는구나. …
일이 곱다는 말은 과연 옳았다. 내가 성실하게 살기 위해 애쓰니 농장사람들은 나의 진정을 알아주었고 차츰 미더워했으며 많이 아껴주었다.
하지만 항상 좋은 일만 있는것도 아니였지. 사람이 사느라면 슬프고 괴로운 일도 겪기마련이다. 더우기 내가 잘못한 일을 두고 일부 사람들이 나의 아버지와 결부시켜 말할 때면 몇갑절 더 고통스러웠다.
이런 일도 있었지. 작업반에서 마차를 보던 동무가 더 못하겠다고 제기했다. 실지 마차부일은 힘든것이다. 마차만 모는것이 아니라 말도 돌보아야 하니 언제한번 편히 쉴새가 없다. 게다가 자주 마차로 읍에 내려가 진거름도 실어와야 하는데 젊은 사람이 부끄러워 못하겠다고 아예 나가뻗쳤다. 하지만 우리 청년작업반에는 젊은 사람들밖에 없는데다가 마차를 다루는 일은 힘이 있어야 하기때문에 나이든 아바이들에게는 어려운것이다. 누가 하겠는가고 묻자 다들 고개를 숙이고있기에 그때에도 내가 나섰다.
마구간에 가보니 말의 상태는 정말 말이 아니였다. 이따금씩 지나다니면서 볼 때에는 그저 측은하게만 보이던것이 정작 자신이 맡았다고 생각해보니 눈뜨고 못 볼 지경이였다. 갈비뼈는 앙상한게 금시 가죽을 뚫고 튀여나올것만 같았고 눈에는 눈곱이 가뜩 끼여있었다. 잘 먹이지 못한탓이라고 여기고 먹이풀을 가득 해다주었으나 통 먹질 못했다. 단단히 탈이 난것 같아 수의사한테 데려가 보였더니 이제 얼마 더 살지 못한다는것이다.
어머니는 그 말을 듣고 몹시도 걱정하였다.
《에그, 송장치고 살인난다더니 그 격이 될라. 뭣하러 다된 말을 맡아가지구. 그래서 딴 사람들도 선뜻 맡지 못한건데…》
어머니는 말끝을 흐리며 옷고름을 눈가에 가져갔다. 어머니의 우려가 가슴에 마쳐왔으나 나는 마음을 다져먹었다. 지성이면 돌우에도 꽃을 피운다는데 말이라고 못 살려내랴.
그 말을 추켜세우기 위해 얼마나 품을 들였던가. 말에게 좋다는것은 별의별것을 다 가져다먹이고 매일 밤 마구간에서 지새우다싶이 하며 극진히 돌보았다. 소에게 개를 쪄서 먹이면 원기가 추선다는 말을 듣고는 말에게도 그게 통할가 하여 집에서 기르던 개를 잡아먹였었지. 그때 말이 안 먹겠다고 도리질을 해서 찐 단고기를 풀에 겹겹이 싸서 억지로 입안에 넣어주느라고 정말 혼났었다. 그렇게 애쓴 보람이 있어 말이 추서기 시작하자 얼마나 기뻤던가. 나중에 살이 가득 오르고 윤기가 자르르 도는 름름한 말이 되여 보는 사람마다 칭찬하자 으쓱해지기까지 했었다. 말 못하는 짐승이지만 내가 정성을 기울이니 얼마나 나를 따랐던가. 내가 곁에 다가가면 어리광을 부리듯 내 옷자락에 머리를 비벼대군 했었지. 그러다가 그만 일이 생겼다. 농장에서 수로공사를 진행하였는데 석축에 쓸 돌이 모자랐다. 돌채취장에서 돌을 싣고 수로공사장으로 가야겠는데 비가 억수로 쏟아졌었지. 사람들은 돌을 가득 실은 마차를 몰고는 이런 날에 가파로운 산길로 못 간다고 다들 만류하였다. 하지만 이제 본격적인 장마가 지기 전에 수로공사를 끝내야겠는데 돌이 없어 안타깝게 기다릴 동무들을 생각하니 늦잡을수 없었다. 그래서 강심을 먹고 떠났건만 험한 벼랑턱에서 그만 마차가 미끄러져내렸다. 있는 힘껏 벋디디였지만 끝내 마차는 벼랑으로 굴러떨어지고 말은 죽었다.
그때 애지중지하던 말을 부여안고 얼마나 통곡하였던가.
일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말이 죽은것과 관련하여 문제가 서고 관리위원회 부위원장이 내려왔다. 그는 원래 아버지밑에서 일하던 사람인데 아버지가 과오를 범할 때 곁불에 적지 않게 피해를 입은 사람이였다. 작업반성원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그는 나를 추궁하면서 별의별 말을 다 하였다. 실지 말이 죽은 일은 엄중한것이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머리만 숙이고있었다. 마차가 굴러내릴 때 벋디디던 나를 깔고 지나면서 갈비뼈를 심하게 다쳤으나 그것을 내색하면 마치 저지른 잘못을 경감시키려 하는것만 같아 애써 참고 견디였다. 불로 지지는것 같은 동통때문에 숨조차 제대로 쉴수 없었지만 그보다도 부위원장의 말이 더 아팠다. 나중에 그가 아버지까지 꺼들이며 말할 때에는 피나게 입술을 깨물며 겨우 참았다.
그날 밤 나는 인적드문 곳에서 나무를 부여안고 참고참아오던 오열을 터뜨렸다. 차라리 딴곳으로, 아주 먼곳으로 가버렸으면, 아무도 모르는 그런 곳에 가서 새롭게 인생을 다시 시작하였으면…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이 땅에서, 다름아닌 이 땅에서 나는 나의 인생을 꿋꿋이 걸어나가야만 하였다.
그러던 나의 가슴에 봄날의 아지랑이마냥 사랑이 깃들었다. 이웃군에 동원을 나갔다가 나는 한 처녀를 마음에 두게 되였다. 정말 아름다운 처녀였다. 작업의 쉴참이면 노래는 얼마나 잘 불렀던가. 나에게는 그 처녀의 모든것이 마치 신비스러운 후광에 휩싸인듯이 여겨겼다.
매일 같이 일하였지만 나는 동원이 끝날 때까지 그 처녀에게 말 한마디 변변히 붙여보지 못하였다. 그 처녀에 비기면 나는 대체 뭐란 말인가. 키가 작고 가무잡잡한데다가 얼마나 울퉁불퉁하게 막생겼는가. 게다가 나의 아버지는… 우연히 알게 된 일이였지만 그 처녀는 가정환경도 몹시 좋았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얼싸한 대상자를 택할수 있는 처녀였다. 그우에 눈까지 아주 높다는 소문을 들으니 나는 아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품고만 있는 짝사랑은 결코 죄가 되지 않는것이다. 나는 처녀의 쪽을 보지 않아도 온몸으로 그의 존재를 느꼈고 날이 갈수록 그의 모든것이 점점 더 마음에 들었다.
흔히 사람들은 집떠나면 돌아갈 날을 기다린다고들 하는데 나는 그때 돌아갈 날이 다가오는것이 막 두려웠다. 하지만 그날은 닥쳐오고야말았다. 헤여질 때 처녀는 제편에서 나에게 다가와 작별인사를 하였다.
《잘 가요, 광룡동무.》
처녀는 이 말을 하며 생긋 웃었다. 눈을 부시게 하는 그 웃음은 나의 심장을 아프게 파고들었다. 입술은 타들고 목은 말라들었다. 하고싶은 말은 많았으나 나는 끝내 한마디 말도 번지지 못하고 처녀와 헤여졌다.
해쓱하여 집에 돌아온 나를 보고 어머니는 놀랐다.
《너 나가서 너무 무리하게 일하다보니 앓은게로구나.》
하지만 진짜 앓음은 그후에 시작되였다. 눈을 뜨나 감으나 처녀의 밝은 웃음과 발랄한 목소리가 생생히 떠올랐다. 그를 잊자고 죽기내기로 일을 했으나 도무지 그렇게 되지 않았다. 점점 꺼칠해지는 나를 두고 어머니만 걱정한것이 아니였다. 하루는 세포비서동지가 나를 만나 심중히 물어보았다.
《요즘에 대체 어찌된거요? 무슨 고민거리가 생긴게 아니요?》
어머니에게도 말 못했던 사연이지만 세포비서동지에게는 털어놓게되였다. 이야기를 다 듣고난 세포비서동지는 나의 어깨를 툭 쳤다.
《원 사람두, 이렇게 못났다구야.》
가슴속사연을 다 털어놓고보니 마음은 퍼그나 개운해진것만 같았다.
그러나 세포비서동지가 반장동지와 함께 농장에서 쉬는 날 멀리 떨어진 처녀의 집까지 찾아가 나와 인연을 맺게 해줄줄은 정말 몰랐다. 그날 세포비서동지와 반장동지는 처녀와 부모들에게 나에 대해 숨김없이 이야기해주고나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 청년은 정말 성실한 사람이다. 그의 사람됨이 진국이라는데 대해서는 우리 작업반모두가 보증한다.
후날 안해에게서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울었다. 고마워서 울고 앞으로 일을 더 잘하리라 생각하며 울었다.
지금도 그를 자전거에 태우고 우리 집에 선을 보이러 데려가던 때를 잊을수 없다. 자전거뒤에 태운 처녀는 살며시 얼굴을 내 잔등에 파묻었는데 심장은 세차게 고동치고 믿을수 없는 이 행복이 혹시 꿈이 아닌가 겁이 났다. 꿈이라면 제발 깨지 말아주렴. 생시라면 행복아, 가지 말아다오. 소중히 깃든 행복아, 아무데도 가지 말고 내곁에 있어주렴.…
꿈같은 행복은 련이어 찾아왔다. 결혼후 안해는 우리 농장에서 선동원으로 일하였으며 성격이 좋고 명랑한 그로 하여 우리 집에서는 언제나 웃음이 넘쳐났다. 그후 귀여운 두 딸이 태여나 이제는 유치원과 탁아소에 다닌다. 아, 그 애들을 한번만이라도 다시 안아보고싶구나.
가정이 안착되고 집안이 화목하니 일도 성수가 났다. 게다가 딸들이 태여난 후 그 애들을 보아서라도 아버지로서 더 많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지런히 몸을 적셔가며 성실하게 일을 하느라니 작업반과 농장에서는 나의 입당문제를 제기하였다. 하지만 우에서 아버지문제가 상정되여 입당은 종시 보류되였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날 나는 밤늦도록 농장에 나와 일을 했다. 내가 어떻게 감히 그런 영광을 바라랴. 그저 이 땅에 나의 성실한 땀을 파묻으리라. 그러면 이 땅은 나의 진정을 알아줄것이다. 나는 그때 이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곁에는 고마운 우리 동지들과 당조직이 있었다. 작업반의 세포비서동지와 농장의 일군들은 나의 입당문제를 두고 많은 걸음을 하고 숱한 품을 들이면서 마침내 해결을 보고야말았다.
입당준비를 하라는 세포비서동지의 말을 듣고 나는 처음으로 사람들앞에서 아이처럼 소리내여 울었다. 아, 차별없이 안아주는 은혜로운 품이여, 한없이 고마운 우리 당이여…
그토록 소원하던 당원증을 끝내 품에 안아보지 못하고 이렇게 가는것이 분하구나.)
조광룡은 밤의 장막속에 가리워진 고향쪽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보이는것은 없었으나 그의 심중에서는 눈에 익은 정경들이 생생히 떠올랐다. 그에게 가슴에이는듯 한 아픔도, 쓰라린 눈물도 많이 안겨주었지만 참된 행복도, 인생의 보람과 긍지도 깨닫게 하여준 이 땅은 절대로 버릴수 없는것이다.
광룡은 어둠에 묻힌 제방뚝쪽을 다시금 바라보았다. 생명을 건질수도 있는 뚝쪽을 보며 그는 생각하였다.
(이 땅에서 죽을지언정 남의 땅에는 안 간다.)
광룡은 제방쪽에서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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