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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5,091회 작성일 22-04-02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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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덕기슭의 녀인들

김 홍 균

1. 오산덕기슭의 녀인들


세상에 나서 처음 보는 재변이였다. 오산덕기슭에서 사는 허정숙이도 나이 56살이면 적지 않은 나이이다. 그 나이까지 살면서 아직까지 보지도 들어보지도 못한 자연의 재난이니 과연 엄청나고도 무서운 변이 아니라 할수 없었다.

련사흘 내린 무더기비와 돌풍이 두만강연안의 여러 시, 군들을 휩쓸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피해가 졸지에 숱한 사람들을 한지에 나앉게 했다.

회령시에서만도 강안동과 망양동, 송학리를 비롯한 여러곳이 큰 피해를 입었다.

두만강수위가 10메터이상 높아졌다니 그 피해를 과히 짐작하고도 남을만 했다. 영수리쪽에서 거대한 힘으로 제방을 밀고 쓸어들어온 두만강물이 논과 밭들을 삽시에 짓이기고 쓸어묻으며 내달려온 기세로 이번에는 그아래에 펼쳐진 변전소와 오리공장 그리고 강안동의 700세대가까운 살림집들을 순간에 삼켜버렸다.

있을수 있는 정황을 예견하여 시당위원회와 보안기관 일군들이 목이 쉬도록 대피를 하라고 소리를 쳐서 미리 움직였기망정이지 새벽시간에 불의에 들이닥친 이 어마어마한 홍수가 숱한 인명피해를 빚어낼번 했다.

무서운 재난이 휩쓸어간 뒤 허정숙은 동네사람들과 함께 뒤덕에 올라 속이 한줌만 해가지고 두만강물이 무섭게 범람하는 강안동지구를 내려다보았다. 바다처럼 되여버린 곳에 빨간 기와를 얹은 지붕들만이 보여 거기가 살림집들이 모여선 주민지구였다는것을 알아볼수 있었다.

허정숙은 집을 잃고 한지에 나앉은 사람들에 대한 동정과 련민으로 가슴이 아파 그대로 서있을수 없었다. 허겁지겁 강안동지구로 내닫는 그를 아들 은철이가 막아섰다.

《어머니, 봐야 가슴이나 아프지. 그만두세요. 가뜩이나 심장이 나쁘신데… 제가 가보구 오겠어요.》

《네가 보구와서 애기해야 내 눈으로 본것만이야 하겠니. 심장이 나빠진다구 남의 아픔을 무관심할수가 없구나.》

종내 피해현장으로 고집쓰고 달려가는 어머니를 은철이도 만류할수 없어 함께 갔다. 그뒤로 지구반장인 조창순이며 동녀맹부위원장을 하는 려진숙이도 따라섰다.

자기네가 사는 동네에서 내려서며 보니 시내도 온통 감탕속에 잠겨 그들의 걸음을 방해했다. 무릎을 치는 감탕을 헤치고 회령천다리를 넘어 종종걸음을 놓던 그들은 강안동에 이르러 발목을 잡혀버렸다. 그 주변부터는 물이 찌지 않아 더 나갈수가 없었던것이다.

그런대로 이리 돌고 저리 피하며 좀더 나가 유선방향으로 가는 철길로반에까지 올라설수 있었다.

로반우에 숱한 사람들이 몰켜서있었다. 피해자들도 있었고 걱정이 되여 달려온 시안의 주민들도 있었고 수습을 위해 나온 일군들도 있었다.

아직 물속에 잠긴 주택구역에 산같은 검불이 쌓이고 그사이로 깨지고 마사진 가장집물들이 등등 떠다니는게 보였다.

무너져내린 지붕우에 어느 집대문이 흘러와 얹혀있고 감탕에 매닥질된 이불이며 으깨여진 가구들이 기우뚱하게 넘어간 굴뚝에 짓눌려있는것도 보였다.

가슴을 치는 물속으로 집을 잃은 식구들이 막무가내로 들어서는걸 일군들이 막아서고있었다. 늙은 할머니 몇이 일군들의 옷섶을 붙잡고 꺼이꺼이 울고있었다. 억이 막힌 푸념이 가슴을 쳤다.

《이 일을 어쩌면 좋수?》

뜻밖에 들이닥친 너무도 엄청난 피해에 억해 말도 바로 번지지 못하는 그들을 보며 허정숙도 같이 눈물을 머금었다.

그러나 한지에 나앉은 사람들이 말짱 가산을 잃었어도 잃지 않은것이 있었다. 수해민들의 정신적기둥인 위대한수령님들의 초상화였다.

재밤중에 들이닥친 급작스런 란리에도 사람들은 가장집물이 아니라 위대한수령님들의 초상화를 먼저 생각했다.

《가산을 건진 사람은 한명도 없대요.》

멍하니 서서 풀싹 주저앉은 살림집들을 가슴아픈 눈길로 내려다보는데 누군가 옆에서 속살거렸다.

가내작업반장 김성숙이였다. 그제서야 허정숙은 그옆에 김성숙이네 작업반의 강성희며 양미화, 하옥란이네들을 띄여보았다. 그들을 여기서 본게 까닭없이 반가왔다. 그들도 자기처럼 피해입은 사람들에 대한 동정이 없다면 여기에 나타나지 않았을것이다.

허정숙은 생각했다.

시당과 인민위원회에서 피해자들을 안착시키자고 해도 당장 먹고사는것이 문제가 아니겠는가.

허정숙은 자기가 언제 그곳을 떠났는지 알지 못했다.

자기 생각에 옴해 걷기만 하는 어머니를 걱정스레 여겨보며 은철이가 물었다.

《어머니, 심장병이 도지는게 아니예요? 약이라도…》

허정숙은 아들의 물음에 도리질했다.

《그래 가슴이 아프구나. 하지만 이건 병때문이 아니야. 그까짓거 심장의 아픔만이라면 얼마나 좋겠니.》

돌아오는 그 녀자의 눈앞엔 계속 강안동의 참상이 밟혀왔다.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바닥없이 깊어가는 생각은 부절히 답을 찾아 방황했다.

《어머니!》

어머니의 생각을 깨치며 아들이 조용히 부르는 소리다.

《어머닌 지금 결심하기가 힘들어 그러시지요. 결심하세요. 어머니가 기치를 들면 따라서는 사람들이 있을거예요. 어머닌 동무들도 많은데 마음을 합치면 무엇인가 다소라도 도움이 될수 있지 않겠습니까.》

매사에 생각이 깊은 아들이 어머니의 마음을 들여다본것이다.

아들이여서가 아니라 생각하는 품이 남달라서 대견한 아들이였다.

《네가 고맙구나. 그래, 이럴 때 제 생각만 하면 안되지.》

아들의 천금같은 조언이였으나 집에 돌아와서도 오만가지 생각이 허정숙의 발목을 붙잡았다.

가정의 살림살이를 떠맡아안고 사는 녀인들의 속구구엔 언제나 돈이 남아돌아가는 법이 없다.

허정숙의 경우는 더욱 그랬다. 군대에서 제대되여 대학공부를 하는 맏아들과 그아래 동생 은철이를 앞으로 장가보내야 했다.

자식들을 남들보다 더 훌륭하게, 더 멋있게 내세우고싶은것이 그 녀자의 욕심이였다. 거기에다 장기환자로 병이 점점 더 기울어가는 남편의 치료에 대해서도 소홀흐히 할수 없었다.

그런 허정숙이니 장깊이 건사한 돈을 꺼내들고도 선뜻 자리를 일지 못했다.

《어머니!》

어느사이엔가 웃방에 올라온 둘째가 등뒤에서 어머니를 놀래울가 저어하며 나직이 부르는 소리였다.

허정숙은 깜짝 놀라 손에 든걸 감추느라 허둥거렸다.

《어머니, 우리때문에 결심하기 힘들어하시지요. 걱정마세요. 형님도 저도 다 리해해요. 전 어머니의 결심을 지지해요.》

이제껏 결심하고도 선뜻 자리를 일지 못하던 허정숙은 목구멍이 그들먹해남을 느끼며 알지 못할 충동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둘째야, 고맙다. 정말 고맙다!》

침상에 누운 남편 강창걸이 안해를 고무해주는 말에 허정숙은 또 한번 감격했다.

《옳게 결심했는데 뭘 주저하는거요. 당신답지 않구만. 허정숙이야 그래서 허정숙이지. 당신 마음을 내가 몰라서. 숱한 사람들이 한지에 나앉았는데 자기만을 생각하는건 인간의 도리가 아니지.》

그날 그를 만난 시당위원회 일군은 적지 않은 자금을 내놓는 허정숙의 두손을 그러잡고 이렇게 말했다.

《이 돈이 적다니요. 하지만 액수도 액수지만 더 귀중한건 아주머니의 마음입니다. 쉽지 않은 결심을 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건 시안의 모두가 따라배워야 할 모범입니다.》

시당일군의 칭찬에 허정숙은 몸둘바를 몰라했다. 그는 몸을 응송그리며 얼굴을 붉혔다.

시당위원회청사를 나서는 허정숙의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이런 소리가 새여나왔다.

《돈 몇푼을 놓고 주저한 나를 모범이라니.》

그의 발걸음은 저도 모르게 항일의녀성영웅김정숙어머님의동상앞으로 향해졌다. 기쁠 때나 괴로울 때나 때없이 찾는 곳이였다.

그는 어머님을 우러러 마음속 진정을 아뢰였다.

《어머님, 정말 부끄럽습니다. 어머님은 동지들을 위해 자신의 몫으로 남긴 식사까지 깡그리 덜어주시고 끓는 죽가마를 이시고 고지로 달리기도 하시였는데 전 돈 몇푼을 놓고 바재였습니다. 우리 회령녀자들이 늘 어머님을 따라배운다고 하면서… 그런데도 당조직에서는 훌륭한 일이라고…》

어머님앞에서 어쩐지 부끄럽게만 생각되는 자신이여서 허정숙은 이렇게 속죄를 했다.

이윽하여 허정숙이 계단을 내려 집으로 향하는데 여러 녀인들이 다가와 둘러쌌다. 지구반장 조창순이와 동녀맹부위원장 려진숙이였다. 그리고 녀맹원들로 운영하는 가내작업반의 김성숙반장과 그 반원들도 허정숙을 찾아 달려왔다.

《허동무,훌륭해요!》

《은철이 어머니!》

서로가 달려와 허정숙의 손을 부둥켜잡았다.

《어델 갔댔어요? 우린 은철이 어머니를 찾아…》

《어머님동상을 찾아갔댔어요.》

《어쩜, 우리도 생각 못한 그런 생각을…》

가내작업반장 김성숙이 나무라는 소리였다.

《그렇게 좋은 일을 혼자서 하다니요?》

《늘 어머님을 닮자고 하면서도 나자신도 쉽게 결심할수 없더군요. 그래서 …》

양미화와 강성희가 섭섭한 소리를 했다.

《우린 회령녀인들이 아닌가요.》

허정숙은 자기뿐만아니라 시안의 모든 녀인들이 바로 자기처럼 어머님을 생활의 거울로 삼고 따라배우기 위해 애쓴다는것을 새삼스레 깨쳤다.

허정숙의 뒤를 이어 많은 녀인들이 애써 마련한 귀중한 자금을 수해민들을 위해 아낌없이 내놓았으니 그들은 바로 자기네가 회령의 녀인들이라는 그것으로 그것을 극히 당연한것으로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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