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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승 칼럼] 전남 빨찌산 소녀였던 오영애동지 빈소를 찾아 참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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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작성일 24-06-14 05:09 조회 66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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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승 칼럼] 전남 빨찌산 소녀였던 오영애동지 빈소를 찾아 참배했다

글: 김영승 (비전향장기수, 통일운동가)


[민족통신 편집실]



고 오영애 동지      2024년 6월 12일 타계




2024년 6월 13일 오후 3시경에 경기도 곤지암 농업장례예식을 찾았다.

오영애동지는 전남 해남군 계곡면 범국리에서 4남매중 장녀로 출생했다.

아버지는1949년에 강진 해남 영암군 지하당 총책임자로 사업하다가 적들에게 체포되어 총살을 당하였다.

오영애동지는 아버지의 희생을 받들어 9.28 일시적 후퇴를 당하여 유치내산으로 입산하여 소녀 빨찌산 투쟁을 전개하였다.

우선 간호원으로서 의무과 환자트에서 부상병들을 치료하는데 열중하였다.

유치내산에 있을 때 필자가 한번 만나보기도 했다.

유치내산은 야산이라 그 많은 수를 정리하여 지리산 등 큰 산으로 파송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오영애동지도 야산에 그대로 있으면 빨리 희생될수 있기 때문에 지리산으로 파송 되었던 것이다. 지리산문수골에 있으면서 천암사골에 환자트가 있기때문에 간호원으로서 부상병을 치료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적들의 대대적인 동기공세로 비무장 성원들이라 손쉽게 적들의 토벌에 희생되거나 생포 당하는 환경속에서 1951년 12월에 체포 당하였다.

광주포로수용소에 있으면서 군법에 의하여 7년형을 받고 만기 출옥했다.

출옥 후 59년부터 63년까지 서울 마장동에 기거하면서 공장노동일에 종사하다가 충남빨찌산출신으로 징역 15년을 살고 출옥한 손경수 동지와 결혼하여 1970년에 딸 하나를 낳았다.

손경수동지는 2017년 11월25일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지금 금산사에 우리 동지들과 안치되어 있다.


오영애동지는 치매가 심하여 백마 효 요양원에 입원해 있다가 2024년 6월 12일 7시 30분에 한 많은 세상을 하직하고 마는 기록을 남기었다.

빈소는 외동 딸인 손순아 여사 부부가 영안실을 지키고 있다.

장지는 서울 금선사에 안치된 손영수 남편곁으로 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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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오영애동지시여!

논산에 살면서 앞 터밭을 일구면서 한번씩 찾아가면 정성스런 성의를 다해주던 시절이 엇그제 같이 느껴지고 있군요 .

오영애 부부는 통일광장 회원이며 서울의 집회나 통일광장에 나오는 성의를 다했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 여간 반가울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 정세는 미제와 윤석렬 정권의 패거리들의 북침 핵 연습을 실전을 방불케 하여 언제 터질지 모르는 전쟁위기와 탄압과 압박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대중들을 총 단결하여 투쟁할 것을 다지는 것입니다.

이젠 모든 아픔과 시름을 다 잊으시고 자주통일의 길 위에서 영생하기 바랍니다. 

유족에게도 깊은 위로와 격려를 보내면서 부모님의 뜻을 따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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