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라남의 열풍 25
페이지 정보
작성자 강산 작성일 22-08-16 01:38 조회 4,664 댓글 0본문
제 2 편
5
이튿날 새벽에도 3시에 일어난 주혁민은 늘 하는 일과대로 생산직장들을 한바퀴 돌아보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일력에다 《아침 7시 수봉으로 출발!》이라고 써놓고 일본어로 된 유압공학원서를 펼치였다.
보름전부터 열독하는 책이였다. 《HM기》개발에서 제일 힘든것이 유압계통의 설비라고 해서 유압공학에 관심을 돌리게 되였다. 이제 그에게 있어서 유압공학은 제3의 전공분야로 될수 있었다.
무슨 일이나 일단 달라붙으면 미친듯이 해내는 주혁민은 시간가는줄을 모르고 책을 읽었다.
그는 문기척소리를 듣고야 책에서 눈을 뗐다.
당위원회 부원이 문을 벙싯하고 머리를 들이밀면서 지금 수봉작업장으로 갈 사람들이 책임비서를 기다리고있다고 하였다.
《아, 벌써 7신가?》
주혁민은 책상우의 문건들을 급히 정돈하고 반달음을 치며 밖으로 나갔다.
마당에서 10톤급 대형자동차가 책임비서를 부르듯 경적을 울리고있었다. 넓은 짐칸에는 《HM기》제작단 성원들과 조립작업을 조력할 10여명의 조립공들이 앉아있었다.
자동차곁에서 서성거리고있던 오성오가 달려오는 책임비서에게 빨리 오르라고 손짓을 하고 운전칸문을 열었다.
《어서 올라타십시오.》
《지배인동무, 먼저 오르시오. 지배인동문 가운데 앉아야지 옆에 앉았다간 몸이 가벼워 차문밖으로 뿌려나갈수 있습니다, 하하하.》
주혁민은 크게 웃으면서 오성오의 작은 몸을 허궁 들다싶이하여 운전칸으로 떠밀어올리고 그 옆자리에 앉았다. 그랬다가 다시 문밖으로 나와 짐칸을 올려다보며 《윤현덕실장동무, 내려오시오. 나하고 자릴 바꿉시다. 바람을 쐬면 기침이 더합니다.》하고 짐칸으로 오르려고 하였다.
《책임비서동지, 이거 복잡하게 굴지 마시오다. 〈관료주의문제연구소〉소장이 눈을 감아줄테니 마음놓고 앞칸에 타시오다.》
짐칸에서 강충현이 떠들며 하는 말에 웃음이 터지였다.
윤현덕이도 한사코 사양하여 주혁민이 하는수 없이 다시 운전칸으로 들어갔다.
운전사가 시동기를 밟자 자동차는 우르릉거리며 몸을 떨더니 자국을 떼기 시작하였다. 차가 시가지를 벗어나자 무엇인가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듯싶던 오성오가 입을 열었다.
《아침에 도당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촬영기자들까지 온다고 하는데 이거 망신을 하지 않겠는지 모르겠소.》
《망신을 왜 하겠소. 재간둥이들이 만들어낸 기계인데.》
주혁민은 요즘 얼굴빛이 더 창백해진 오성오의 얼굴을 생각깊이 바라보았다.
(이 사람이 정말 전극생산기지를 없애버릴 생각을 하고있단 말인가?)
주혁민은 어제부터 내처 의문을 굴려온 그 문제를 알아보려다가 그만두었다. 그 대신 며칠전 공장당집행위원회에서 지배인에게 주었던 분공이 떠올라 《누이동생네 집에 한번 가보았소?》하고 물었다. 고개를 수긋하고있던 오성오는 《예-》하고 외마디소리를 내는데 그것은 가보았다는 소린지 아니면 질문의 뜻을 몰라서 반문하는 소리인지 가늠할수 없었다. 오성오는 같은 라남구역에서 살고있는 누이동생의 집이 어디에 있는지 아직 알지 못하고있었다. 지난달 주혁민은 일하는것밖에 몰라 5년전에 시집을 간 누이동생네 집을 한번도 찾아가보지 않은 오성오를 비판했었다. 그리고 이번 달에는 공장당집행위원회 분공이라고 하면서 누이동생네 집을 가보라고 하였다. 밥은 유치원아이들보다 더 적게 먹고 불교도의 금욕주의자들처럼 술, 담배, 고기를 일생 한번도 입에 대보지 않은 이 조그마하고 딱딱한 사나이가 어디에서 그런 힘과 열정이 생겨 밤낮을 모르고 무섭게 일을 해대는지 주혁민은 기이하게 생각되였다. 그가 섭취하는 영양에네르기와 로동강도는 너무도 비례가 맞지 않았다.
라남에 있는 누이동생네 집을 5년동안 한번도 가보지 않은 오성오에 대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를 일밖에 모르는 노력가, 정열가라고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반대로 그를 열도, 정도 없는 목석처럼 몰인정한 인간이라고 하였다.
주혁민은 지배인이 그런 비난을 받고있는것이 가슴아파 당위원회의 분공으로 누이동생집을 찾아가보게 하였던것이다.
주혁민은 이제 오성오가 전극생산기지문제로 해서도 사람들로부터 더 큰 비난을 받을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저, 지배인동무. 한가지 물어봅시다. 지배인동무가 전극생산기지를 없애버리겠다고 말했다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사실입니다. 앞으로 당위원회에 제기하여 토론하자고 하는데 아무래도 없애버려야 하겠습니다.》
오성오의 얼굴은 대리석처럼 싸늘해졌다. 주혁민은 억이 막혀 한참이나 오성오를 덤덤히 지켜보았다.
《책임비서동무! 그 문제는 〈HM기〉시험이나 끝낸 다음에 토론합시다. 지금은 거기에 머리를 돌릴 여유가 없습니다.》
오성오는 여전히 랭담한 표정이였다.
《여보, 지배인동무!》
주혁민은 속이 울컥하여 지배인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쾌속으로 달리던 자동차가 별안간 허궁 떠올랐다가 내리찧는 서슬에 말을 잇지 못하였다.
짐칸에선 비명소리, 웃음소리로 법석이였다.
오성오는 운전칸 천정에 짓쫗은 머리를 문지르며 젊은 운전사에게 눈을 흘기였다.
《야, 차를 조심히 몰아라. 그러다간 스프링이건 뭐건 다 마사지겠다.》
그때부터 길이 좋지 못해 몸이 가벼운 지배인은 계속 들추어대는 차안에서 여기 짓쫗고 저기 부딪치고 하였다.
《우선 자동차길을 잘 닦아야 할것 같습니다.》
오성오가 차창을 내다보며 말머리를 돌리였다.
주혁민이도 자동차가 그냥 들추어대여 전극에 대한 생각을 잊어버리고 길에 대한 걱정을 하게 되였다. 이 길은 앞으로 최첨단과학기술을 개발하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다녀야 할 길이였다.
《길을 잘 닦읍시다. 지배인동무, 길닦이는 내가 책임지고 하겠소.》
주혁민의 머리에서는 벌써 길닦이공사의 작전이 펼쳐지고있었다. 그와 함께 그의 눈앞에 자기들이 정성스레 닦아놓은 탄탄대로로 승용차를 몰아오시는 김정일동지의 모습이 어려왔다.
(《HM기》시험에서 꼭 성공해야겠는데.
장군님께서 큰 기대를 가지고 성공의 소식을 기다리고 계실텐데…)
주혁민은 가슴이 두근거리였다.
x
며칠후 11월 9일 저녁, 손에 땀을 쥐고 《HM기》의 소식을 기다리고있는 5월10일종합공장 종업원들에게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날아왔다.
《HM기》가 10분도 돌아가지 못하고 멎어 버렸다는것이다.
공장은 삽시에 초상난 집처럼 되여버렸다.
녀인들은 분해서 울고 기분주의가 있는 흥분파들은 주먹으로 책상을 치면서 《HM기》제작단 성원들에게 욕을 퍼부었다. 거의 모든 종업원들이 그날은 저녁을 먹지 못하였다. 그들은 특히 《HM기》시험과정을 록화한 카세트를 김정일동지께 올린다는 말을 듣고 경악하였다.
숱한 사람들이 당위원회에 찾아와서 제발 카세트만은 장군님께 드리지 않도록 해달라고 제기하였다. 가뜩이나 마음고생이 많으신 그이께 그런 가슴아픈 화면을 보여드릴 필요가 무엇인가 하는것이였다.
군중의 의견이 하도 절절하여 주혁민은 이튿날 어뜩새벽 서정후가 들어있는 청진호텔로 찾아갔다.
침대에 누워 책을 보고있던 서정후는 신새벽에 불쑥 나타난 주혁민을 눈이 둥그래서 지켜보았다.
《책임비서동무가 이 새벽에 어떻게?》
《한가지 중요하게 토론할 문제가 있어서 왔습니다.》
주혁민은 찾아온 사연을 구체적으로 말하고나서 《나의 생각도 우리 종업원들의 의견대로 장군님께 시험결과만 보고드리고 록화카세트는 드리지 않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하고 말하였다.
서정후는 보던 책을 베개우에 얹혀놓고 생각밖에 너그러운 웃음을 지었다.
《너무 걱정할건 없습니다. 첫 시험이 아닌가요. 교훈을 찾고 고치면 됩니다. 다른 공장들에선 첫 시험에서 라남보다 훨씬 성적이 좋았습니다. 여기서 교훈을 찾아야 합니다.》
서정후는 역시 기술실무가였다. 《HM기》개발의 방향각을 자기의 의도대로 돌려세우려고 주혁민을 구슬리고 설복하였다. 허나 주혁민에게는 그런 말들이 귀에 들리지 않았다. 오직 록화카세트에 대한 생각뿐이였다. 그 기미를 알아챈듯 서정후는 말머리를 돌리였다.
《록화카세튼 기자들이 가지고있으니 그들에게 의견을 제기해보시오. 거기엔 나도 아무런 권한이 없습니다.》
기색을 보니 서정후도 록화카세트를 장군님께 드리지 않기를 바라는것 같았다.
주혁민은 더 군소리를 하지 않고 기자들이 들어있는 옆방으로 찾아갔다.
그는 체면불구하고 침대에 누워있는 기자를 깨워 찾아온 사연을 말하였다. 얼굴이 둥실한 중년의 기자는 선량한 웃음을 지으며 뜨직뜨직 말하였다.
《카세트는 장군님께서 요구하신겁니다. 시험과정을 촬영해오라고 하셨습니다.》
순간 주혁민은 정신이 아찔해져 몇발자국 비칠거리였다. 큰 기대를 가지고 록화기를 돌리다가 실망하고 걱정하시는 김정일동지의 모습이 눈앞에 어려와 팔다리가 일시에 나른해졌다.
이걸 어쩌면 좋단 말인가.
(뜨락또르도 처음엔 뒤로 굴러갔다지? 그러나 그것과는 같지 않아. 우리 기계는 돌아가지 못하고 아예 멎어버렸거든.)
주혁민은 스스로 위안을 받아보려고 하였으나 잘되지 않았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