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 칼럼] 지철 선생님의 조용하고 깊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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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작성일 22-04-23 01:04 조회 2,790 댓글 0본문
지철 선생님의 조용하고 깊은 사랑
황선 (통일운동가)
[민족통신 편집실]
서울 강북구에 위치한 <평화이음> 사무실엔 참 많은 사람들이 오갑니다.
형편이 고만고만한 단체가 힘 모아 사무실을 함께 사용하고 있기도 하고, 공간이 제법 넓어서 청년학생들이나 지역 활동가들이 다양한 회의나 행사장소로 이용하기도 합니다.
장소만 넓을 뿐 모든 것이 소박하다 못해 빈곤한 편인 이 사무실에 뜻밖의 물건이 있는데, 바로 원두커피 기계와 향긋한 원두입니다.
사무실을 마련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커피기계를 선물해 주시더니 그 후로 꼬박 4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도록 매달 직접 고른 원두를 잊지 않고 보내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지철 선생님이십니다.
지철 선생 (페이스북 홈페이지에서)
처음 얼마간은 원두가 도착할 때마다 감사 인사를 드리곤 했는데, 제가 건강상 이유로 사무실 출근을 쉬어가게 되면서 기계도 원두도 잊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최근 사무실에 들렀다가 여전히 기계에서 커피를 내리는 활동가들을 보고 놀랐습니다.
속으로 이미 관리가 안 되고 있지 않을까 여겼었나 봅니다. 최근 몇 해 개인적으로 다사다난하셨던 선생님의 생활을 알고 있었던지라 그 와중에 어떻게 멀리 있는 사무실 커피원두를 일일이 챙기시겠나 생각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변함없이 일꾼들이 먹을 커피를 챙기고 계셨습니다.
감사의 문자를 보내면 선생님은 늘 ‘뭘 그런 걸 갖고 인사를 하고 그러냐’는 투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걸 해줘야 하는데 직접 가지도 못하고 가끔 차 한잔정도 대접하는 것’이라고 여기며 도리어 수줍어 하셨습니다.
사업에서도, 남을 위해서도, 한 번에 티가 확 나는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고 어려운 일인 경우가 많지만, 티 나지 않는 일을 묵묵히 꾸준히 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평소 커피를 거의 마시지 않지만, 사무실에서 원두커피를 내리는 소리를 듣고, 사무실을 방문한 손님들께 갓 내린 커피를 대접할 때면 선생님이 어떤 마음으로 다달이 원두를 챙겨 보내실지 생각하게 됩니다.
지철 선생님과 관련해 이런 일도 기억이 납니다.
재미동포이신 신은미 선생님과 진행했던 통일대담으로 종북몰이를 당할 때 일입니다.
신은미 선생님도 저도 종편의 왜곡보도와 선동, 수구단체들의 과격한 시위, 공안기관의 수사 등으로 심신이 지쳐있었는데, 그 때 의사이신 지철 선생님이 자신의 병원으로 우리를 불러 영양주사를 놓아주신 일이 있었습니다.
그날 선생님은 많은 말씀을 하지 않으셨지만, 피로회복에 좋은 영양주사를 놓아주고 그 시간 동안 병원 침상에서 쉬어갈 수 있게 해주는 걸로 안타깝고 염려하는 마음을 전하고 격려의 말을 대신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말이지만, 종편방송에 시간마다 얼굴이 나가고, 신은미 선생님도 저도 정신 나간 마녀 취급을 받던 당시에 환자들이 수두룩하게 대기하는 동네병원에 우리를 불러 챙긴다는 것은 보통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역시 청을 받고도 혹 민폐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해줄 수 있는 게 이거밖에 없다고 미안해 하셨습니다. 특유의 정중하고 조용한 어조로 가만가만 ‘힘내시라’ 말씀 하셨습니다.
그 때도 누가 알아줄 수도 없고, 어디 내놓고 자랑하기는커녕 오히려 성가시고 부담되는 일을 솔선해서 조용하게 챙겨주신 것입니다.
진보운동을 하는 사람들 중에 마음이 선하고 너그러운 분들이 많긴 하지만, 그 중에서도 지철 선생님은 유독 겸손하고 선하신 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저도, 의사들이 다른 직업군에 비해 유독 권위적이고 고집스러울 거란 선입견이 상당했지만 지철 원장님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평생 겸손을 단련한 사람처럼 상대방을 존중하고 높이는 것이 생활화 된 분입니다.
선생님은 의학공부를 위해 유학중이던 미국에서 재미동포 통일운동가들을 만나 민족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후로 내내 의사이자 통일운동가로서 활동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의료인의 일이 녹록치 않음에도 꼭 틈이 나면 통일운동 발전에 일조하시려 노력하셨습니다. 특히 청소년 청년들이 민족사와 분단문제를 더 정확하게 더 많이 배울 수 없겠는지 고민을 많이 하셨고 물심양면의 도움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정세토론이며 철학적 문제를 논하기 위해 동지를 찾고 다양한 모임에 참여하기 위해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기위해 노력하셨습니다.
그런 선생님이 지난 해 암수술을 하셨습니다. 치료율이 높은 암이라고는 하지만 늦게 발견한 편이라 주변에서는 염려를 많이 했는데, 정작 본인은 대수롭지 않게 인사하시고 병원으로 향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수술이 잘 되었다고 이내 생활로 복귀하시나 싶었는데, 최근 다시 발견되어 재수술을 하셨다는 소식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사랑하는 동지들 더불어 그 좋아하시는 정세이야기도 더 많이 나누고 웃음도 더 자주 함께 할 수 있도록 어서 쾌차하시길 바랄 뿐입니다.
오늘도 챙겨 보내주신 원두커피를 내려 마시며 따뜻한 위로를 받은 사람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늘 힘이 되어주신 동지께 우리도 응원을 보냅니다.
힘내세요, 우리 동지, 우리 원장님.
그 조용하고 깊고 따뜻한 사랑 우리도 따라 배우고 귀감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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