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전렬차의 초침소리를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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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전렬차의 초침소리를 들으며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장군님은 나의 심장속에, 우리 인민군군인들과 인민들의 심장속에 영원히 함께 계십니다.》
금수산태양궁전에는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 리용하시던 야전렬차가 정히 보관되여있다.
오늘도 꺼질줄 모르고 밝게 켜져있는 불빛, 집무탁우에 쌓여있는 문건들, 위대한 장군님의 쪽잠을 지켜드린 창가의 하얀 문발과 수수한 의자, 강행군의 눈보라를 막아준 색날은 솜옷과 보풀인 장갑…
이 소중한 사적물들과 함께 멈춤없이 돌아가는 야전렬차 벽시계의 초침소리가 귀전에 들려오는듯싶다.
그러면 이 렬차안에서 우리 어버이의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분초가 안타까이 흘렀다는 생각, 시간이 아까와 시계를 보는것조차 저어하시던 우리 장군님의 그 영상이 숭엄히 어려오고 이제는 정이 들어 집보다 낫다고, 렬차의 덜커덩거리는 소리는 나의 자장가이고 잠동무이라고 하시던 우리 장군님의 그 말씀이 가슴을 허비며 아프게 울려온다.
진정 우리 장군님께서 달려오신 강행군의 그 나날들을 오늘도 눈물겹게 전해주는 야전렬차의 초침소리이다.
어느해인가 눈보라치는 백두의 전구를 찾으신 우리 장군님께서 전사들에게 하신 비장한 심중의 그 말씀 우리 심장을 세차게 끓게 한다.
험난한 길을 웃으며 가는것은 쉽지만 죽음도 각오해야 하는 길을 웃으며 가는것은 간단한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길을 가야 합니다.
그것은 인민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고 가장 숭고한 책임감이였다. 그때부터 우리 장군님께서는 조국과 인민을 위한 야전렬차의 기적소리를 더 세차게 울리시며 쪽잠과 줴기밥으로 눈보라강행군, 삼복철강행군, 심야강행군길을 더욱 줄기차게 이어가시였다.
동무들, 정말 미안하오. 내가 잠간 쪽잠에 들었댔소.…
며칠동안 순간도 쉬지 못하시고 전선시찰의 길을 이어오신 우리 장군님께서 자정이 지나서야 소박한 야전식사를 하게 되시였건만 밀려오는 피로에 그만 수저를 떨구신채 눈을 감으시였던 그 밤, 너무도 가슴이 저려와 전사들이 조용히 자리를 피해드리며 한초라도 더 쉬시기를 고대하였지만 몇분도 못되여 다들 오라고 하시며 오히려 량해를 구하신 우리 장군님의 그 음성이 야전렬차의 초침소리에 어리여오는듯싶다.
우리 장군님은 한생을 그렇게 살아오시였다.
시계는 어김없이 자기의 자리길을 따라 초침을 움직이고있었지만 그이의 마음은 초침보다 더 빨리 사랑하는 인민들에게로 달리시였다.
해빛도 바람도 마음대로 넘나들지 못한다는 자강땅의 험산준령에 개척의 첫 자욱을 새기시며 희천발전소건설의 돌격명령을 내려주실 때, 세인이 알지 못하는 삼복철강행군, 눈보라강행군의 력사를 새기시며 선군길을 이어가실 때, 인민의 만복을 꽃피우는 사회주의재산이 하나둘 늘어나는것을 두고 그리도 기쁘시여 환히 웃으실 때 그이의 마음속에 넘쳐난것은 인민을 위하여 바치시는 자신의 한생에 대한 무한한 자부였고 즐거움이였다.
주체89(2000)년 1월 어느날 평안북도에 대한 현지지도의 길에서 하신 우리 장군님의 말씀은 또 천만군민의 가슴을 얼마나 뜨겁게 울려주고있는가.
그때 일군들은 불철주야로 분투하시는 어버이장군님께 현지지도를 좀 미루셨으면 하는 의향을 말씀드리였다. 그이께서 다문 하루만이라도 쉬시였으면 하는것이 그들의 간절한 소원이였다.
그러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자신에게는 일하는것이 곧 휴식이라고 하시며 일군들의 간절한 청을 만류하시고 길을 떠나시였다. 그이께서는 달리는 야전렬차에서도 집무를 보시느라 잠시도 휴식하지 못하시였다. 그러시고도 새날이 밝아오자 또 하루일을 시작하시였다.
자신의 건강에 대하여서는 조금도 생각지 않으시고 한밤을 지새우신 위대한 장군님께 일군들이 너무도 안타까와 안녕을 바라는 전사들의 청을 한번만이라도 받아주실것을 거듭 아뢰였건만 그이께서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시였다.
걱정말라고, 그래도 지난밤 자신께서는 30분동안 푹 잤다고.
이렇게 이어가신 우리 장군님의 현지지도길이였고 이렇듯 눈물겨운 야전렬차의 두줄기 궤도우에서 꽃펴난 인민의 행복이였다.
그래서 언제인가 한 해외동포도 우리 나라를 방문하여 가는 곳마다 그리고 인민생활의 갈피마다 위대한 장군님의 헌신의 자취가 어려있는것을 목격하고 어디가나 그이의 높은 뜻과 사랑이 어려있는 거룩한 땅이니 이 성스러운 지역을 차를 타고 지나기가 송구스럽다, 신발을 벗고 땅을 디뎌야 마땅하지 않겠는가고 격동되여 말한것 아니랴. 그래서 이 나라 인민들은 노래 《우리는 잊지 않으리》를 비롯하여 수많은 그리움의 노래를 창작하여 위대한 장군님과 뗄래야 뗄수 없는 혈연의 정을 소리높이 구가하는것 아니랴.
진정 오늘도 울리는 야전렬차의 초침소리는 위대한 장군님의 거룩한 혁명생애를 전하는 혁명시간의 일분일초, 애국애족의 축도이거니 그래서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 간직된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다함없는 그리움의 열도는 날이 가고 해와 달이 갈수록 더욱 높아만 가고있는것이다.
우리 조국의 10년세월 멈춤이 없이 울린 멸사복무의 초침과 더불어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불같은 헌신으로 궂은날, 마른날 가림없이 이어가신 야전렬사의 기적소리, 그 두줄기 궤도우에서 솟아난 창조물들이 눈에 삼삼히 밟혀온다.
릉라인민유원지, 창전거리, 류경원, 옥류아동병원, 문수물놀이장, 마식령스키장, 연풍과학자휴양소, 김정숙평양방직공장 로동자합숙, 송도원국제소년단야영소, 미래과학자거리, 과학기술전당, 려명거리, 중평온실농장, 련포온실농장, 송화거리와 경루동의 새집들이경사, 피해지역들에 솟아난 사회주의선경마을들…
하기에 우리 인민은 지금도 력사의 증견자와 같은 초침소리에서 온넋으로 느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계시여 승리하는 조국, 전진하는 인민과 언제나 함께 계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뜨거운 체취와 숨결을.
김 순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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