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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영생의 고백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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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나이
댓글 0건 조회 1,320회 작성일 22-12-13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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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영생의 고백 (3)

 

10월 28일(금요일)날씨 흐렸다 개임

오늘 우리는 소년운동회를 하였다.

우리 분단은 송도원이였다.

난 우리 을 목청껏 응원하였다. 우리 선수들이 축구경기에서 이겼을 땐 얼마나 기쁜지 손벽을 너무 세게 쳐서 지금도 손바닥이 막 얼얼하다.

학교에 있을 때도 운동회를 많이 했지만 오늘처럼 응원해본적은 없었다.

왜 그랬을가.

내가 아마 송도원이였기때문인것 같다.

룡악산 동무들은 룡악산이 우리 나라에서 아름다운 산이라고 우쭐댔다. 난 그 동무들에게 우리 송도원은 룡악산보다 더 아름답고 세상에서 제일 멋있다고 뽐냈다.

난 송도원이 우리 고향같이 느껴지고 야영소는 꼭 집만 같다. 여기서 계속 살았으면 좋겠다.

이제 두밤 자면 송도원을 떠나게 된다. 마음이 참 이상하다.

이런 생각을 어른들은 뭐라고 말할가?

송도원야영소를 통채로 우리 무산에 옮겨가고싶다.


10월 29일 (토요일)날씨 개임

래일 우리는 정다운 야영소를 떠난다.

이자 야영기간 찍은 사진들을 모두 사진첩에 끼워넣었다.

사진이 너무 많아 막 놀랐다.

뽀트에 앉아 노를 잡고 찍은 사진은 물론 가면놀이하면서 찍은 사진은 너무 웃어서 눈은 보이지 않고 입만 보였다. 절벽톺아오르기를 하면서 찍은 사진도 있다.

료리실습실에서 내가 료리사모자를 척 쓰고 찍은 사진을 남들이 보면 날 큰 식당 주방장으로 알지도 몰라.

사진들을 다시 보니 웃음이 나왔다. 이 사진들을 보며 아버지, 어머니가 기뻐하실 모습이 벌써 눈앞에 안겨온다.

사진첩을 정리한 다음 나는 배낭가방을 정돈했다.

생일기념으로 받은 옷과 학용품이 얼마나 많은지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서 겨우 배낭가방에 넣었다.

동무들은 야영기간에 새침데기로 불리우던 내가 성격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한다.

정말 그럴가?

오늘 우리는 야영소마당에서 합창공연을 진행하였다.

다같이 노래 《세상에 부럼없어라》를 부를 때 난 다른 동무들보다 더 힘있게 소리높이 불렀다.

노래를 부르며 난 속으로 이렇게 웨쳤다.

《우리의 밝은 웃음을 지켜주시는 경애하는 아버지 김정은원수님 정말 고맙습니다.》

야영소선생님들은 우리에게 아버지원수님의 사랑을 언제나 잊지 말고 학습과 조직생활을 잘하여 앞날의 강성조선을 떠받드는 기둥이 되여야 한다고 당부하였다.

우리는 한목소리로 씩씩하게 대답하였다.

《알았습니다.》


* *


따사로운 해님의 품속에서 꿈같은 야영의 나날을 보낸 소년단원들은 더 밝고 명랑해진 모습으로 씩씩하게 송도원을 떠났다.

자본주의사회에서라면 망울도 피여보지 못하고 스러졌을 꽃봉오리들, 이렇듯 애어린 꽃봉오리들이 경애하는 원수님의 해님같이 따사로운 사랑의 품속에서 더 밝고 싱싱하게 자라 온 세상이 부러웁게 만복을 누려가고있으니 넓고넓은 이 세상 그 어디에 이런 일이 또 있으랴.

정녕 경애하는 원수님의 품을 떠나서는 한순간도 살수 없다는것을 말이나 글로써가 아니라 실생활을 통하여 더욱 깊이 절감한 성광이의 일기의 구절구절은 그대로 활짝 피여나는 해바라기들이 따사로운 해님을 우러러 부르는 고마움의 노래였다.

평범한 무산소년의 소중한 마음이 담긴 이 일기가 송도원국제소년단야영소에서 즐거운 야영의 나날을 보낸 학생들의 고백으로만 새겨지지 않았다.

위대한 김정은시대에 행복만을 누리며 성장해온 복받은 세대의 자서전으로 깊이깊이 새겨졌다.

김 경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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