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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시대를 노래합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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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나이
댓글 0건 조회 1,636회 작성일 22-12-22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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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시대를 노래합니다 (1)

 

사람들 누구나 사랑하며 즐겨부르는 명곡 《황금나무 능금나무 산에 심었소》!

열렬한 향토애와 보람찬 로동생활을 진실하게 구가한 노래이건만 오늘날까지도 그 의미가 농촌마을의 형상으로만 안겨오지 않는 명곡입니다.

노래가 세상에 태여난 때로부터 60여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오늘도 명곡이 자기의 빛과 의미를 잃지 않는것은 바로 이 노래가 만복의 주인공들이 진정에 넘쳐 부르는 사회주의상징가이기때문입니다.

2022년 사상초유의 격난속에서도 더 높이, 더 우렁차게 울려퍼진 명곡의 구절구절을 불러보며 만복이 꽃펴나는 사회주의조국에서 사는 인민의 긍지와 자부심을 세상에 소리높이 자랑하고싶어 나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격정을 뜨겁게 터칩니다.


사회주의조국찬가의 탄생


나는 자주 한권의 책을 펼쳐보군 합니다.

오랜세월 땀에 젖고 보풀이 지고 네귀가 다슬어진 나의 아버지의 창작수기집입니다.

이 책을 펼치면 아버지의 길쑴한 얼굴과 선량하면서도 무엇을 말하는듯 하던 눈빛이 생생합니다. 그리고 생전에 하시던 아버지의 말이 귀가에 쟁쟁히 울려오면서 마치도 아버지가 살아서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것만 같습니다.

요즈음도 아버지를 만나는 심경으로 이 책을 펼치는데 《황금나무 능금나무 산에 심었소》라고 쓴 눈에 익은 글씨가 어째서인지 나의 마음을 사로잡군 합니다.

무엇때문인지.

이제는 수십번을 읽어보아 아버지의 끓어번지던 열정이 스민 글발들을 뜬금으로 외울 정도인데 어째서 이 제목앞에서 다시금 생각을 가다듬게 되는것인지.

《황금나무 능금나무 산에 심었소》.

조용히 불러보느라니 어린시절 아버지에게서 들었던 하나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그것은 나의 아버지의 어린시절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다섯살 나던 해에 아버지는 심한 고열로 앓은적이 있었습니다.

입맛을 잃고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는 어린것을 두고 누구보다 속을 썩인것은 할머니였습니다.

(시원한 사과라도 있었으면…)

생각은 태산같았으나 하루세끼 죽물로 연명하는 가정형편에서 사과를 살 여력이 안되였습니다. 사과를 사면 온 집안이 두끼를 굶어야 하였던것입니다.

할머니는 하는수없이 아근에 있는 과수원집을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부자집에서 받은것은 랭대와 큰 선심을 쓰듯 내놓은 다 썩은 사과 두알이였습니다.

앓는 자식에게 사과 한알 변변히 먹일수 없는 설음, 짐승도 먹지 않는 썩은 사과때문에 구차한 걸음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한스러움으로 할머니의 눈에서는 눈물만 하염없이 흘러내렸다고 합니다.

어린시절의 설음은 일생에 상처라고 하였습니다.

마땅히 랑만이 넘쳐야 할 유년시절 아버지의 마음속에 사과는 그대로 설음덩어리로 자리잡았습니다.

이것은 비단 나의 아버지의 어린시절에만 있은 이야기가 아니였습니다. 나라잃었던 우리 인민의 생활속에 흔한 이야기였습니다.

예로부터 사과는 조선의 명물이였음에도 인민이라는 두글자와는 멀리 떨어져있었습니다. 땅과 같이 이 나라 인민이 가지고싶어했던 또 하나의 오랜 숙망이였습니다.

언제나 그것은 한줌도 못되는 착취계급의것이였고 땅에 떨어진 사과 한알을 주었다고 하여 청강수로 《도적》이라는 글자가 이마에 찍혀야 했던 소년의 운명과 더불어 식민지약소국의 비극을 떠올리는 눈물의 대명사와도 같았습니다.

그러했던 불우한 력사에 종지부를 찍어 그 빨간 사과 한알한알을 인민의 행복의 상징으로 만들어주신분은 우리 수령님이시였습니다.

어버이수령님의 은덕으로 과일열매 주렁진 어느 한 과수원에서 아버지가 받아안았던 충격은 얼마나 컸는지 모릅니다.

무지개마냥 휘여든 아지마다 홍옥인듯 청옥인듯 주렁진 사과알들, 진귀한 보석을 세여보듯 헛갈릴세라 사과를 세고 또 세여보는 로인들, 향기속에 날아예는 나비인가 유쾌한 웃음발을 날리는 사과따는 처녀들, 머리보다 큰 왕사과 한알을 들고 무거워 걸음마를 못떼는 아기를 보며 함박웃음을 짓는 녀인들…

혹시 전설속의 무릉도원에 온것은 아닌가 하여 눈을 비벼보는데 사과알을 세여보는 로인이 해주에서 살 때 면목이 있었던 박로인이였습니다.

《사과나무는 태고부터 있었지. 하지만 그 나무의 열매가 어디 우리의것이였나? 수령님께서 보내주신 사과나무가 진짜 우리 사과나무지. 그래서 모두들 황금나무라고 한다네.》

황금나무, 로인의 말이 옳았습니다.

어버이수령님의 은덕으로 난생처음 사과맛을 보았다는 마을처녀의 이야기며 황철의 용해공들과 검덕의 광부들에게 보내준 사과가 감사편지가 되여 돌아온 이야기, 탁아소와 유치원 아이들의 손에서 사시절 사과가 떨어질줄 모른다는 이야기, 사과풍년으로 흥겨운 조합살림살이에 내집살림도 늘어나니 사람들 절로 웃음꽃을 피운다는 가지가지의 이야기, 이것은 그대로 우리 수령님께서 보내주신 《황금나무》의 덕이 아닌가.

지난날 그것으로 하여 설음을 감수해야만 했던 사과를 인민의 행복의 열매로 주렁지게 해주신 어버이수령님의 은덕에 눈물을 흘리며 나의 아버지 김상오가 지은 가사가 바로 《황금나무 능금나무 산에 심었소》였습니다.

아버지가 지은 가사에 김옥성작곡가가 곡을 붙인 가요 《황금나무 능금나무 산에 심었소》는 1960년에 나오자마자 사람들속에서 널리 불리웠다고 합니다.

흥취나는 선률이 고르롭고 안정된 리듬을 타고 시작부터 즐거운 이야기를 펼치듯이 흘러가는 《황금나무 능금나무 산에 심었소》의 구성진 노래가락, 그것은 그대로 어버이수령님의 품속에서 력사상 처음으로 사회주의생활을 맛보게 된 우리 인민의 남다른 기쁨, 어버이수령님께서 세워주신 사회주의락원이 제일이라는 긍지와 자부심이였습니다.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락원은 사람들의 갈망의 대상이였습니다.

그래서 누구는 락원을 《꿈에 본 동산》이라는 그림에, 또 누구는 《유토피어》라는 글에, 또 누군가는 《에덴동산》에 담아보았습니다.

그러나 누구를 막론하고 그러한 락원을 보지도 못하였고 살아본 이는 더구나 없었습니다.

오랜 세월 아름다운 락원을 갈망하여왔으나 인간의 자주적존엄과 창조적인 삶을 억누르는 착취사회에서는 인민의 웃음 그 자체를 생각할수 없었고 락원은 한갖 꿈일수밖에 없었습니다.

오직 위대한 수령님께서 세워주신 사회주의제도에서 사는 우리 인민만이 자기의 진정한 행복의 보금자리를 가지게 되였고 락원에서 살려는 인류의 오랜 갈망을 성취하게 되였습니다.

어버이수령님의 은덕으로 락원의 주인이 된 인민의 목소리가 가사가 되고 인민의 아름다운 웃음소리가 그대로 곡이 된 가요《황금나무 능금나무 산에 심었소》였습니다.

그러니 노래속의 《황금나무》가 어찌 사과나무에 국한된것이라 하겠습니까.

노래속의 《황금나무》는 어버이수령님께서 마련해주신 사회주의락원, 우리 조국이였고 인민의 행복은 위대한 어버이께서 이민위천의 헌신과 로고속에 주렁지우신 《황금나무》의 열매였습니다.

정녕 이민위천의 숭고한 리념을 자양분으로, 인민에 대한 열화같은 사랑과 정을 빛과 열로 인민의 행복이 꽃피는 사회주의락원, 《황금나무》를 자래우신 위대한 수령님은 사회주의조선의 위대한 태양이시였고 노래 《황금나무 능금나무 산에 심었소》는 태양의 빛발아래 꽃피는 사회주의조국찬가였습니다.


조국수호의 찬가 높이 부르시며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의 하늘같은 은덕을 구가한 노래 《황금나무 능금나무 산에 심었소》를 무척 사랑하시였습니다.

일찌기 김일성종합대학에서 혁명활동을 벌리시던 그 시절 와산동-룡성사이도로확장공사에 참가하시여 노래를 불러주실것을 요청하는 학생들에게 몸소 《황금나무 능금나무 산에 심었소》를 부르시며 그들의 가슴마다에 조국의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도 소중히 품어안는 숭고한 애국의 마음을 심어주신 우리 장군님.

이렇듯 명곡이 태여난 첫시기부터 자신의 마음속에 소중히 자리잡은 노래 《황금나무 능금나무 산에 심었소》를 한평생 뜨겁게 사랑하신 위대한 장군님이시였습니다.

사랑하는 인민이 봄철에는 구름꽃이 하얗게 피여나고 가을이면 알알이 오곡백과가 주렁지는 무릉도원에서 웃고 노래부르며 행복하게 살게 하려는것은 우리 장군님의 리상이였습니다.

퇴근시간이 지나 조용해진 사무실에 계실 때면 펼쳐놓았던 문건들을 밀어놓으시고 창가에 기대신채 나직한 음성으로 가요 《황금나무 능금나무 산에 심었소》를 부르시며 사색에 잠겨계시던 위대한 장군님.

언제인가 한 일군이 그이께 노래를 무척 좋아하신다고, 그런데 왜 그 노래만 자주 부르시는가고 물음을 올린적이 있었습니다.

그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절절히 교시하시였습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고 절규하던 이 땅에 황금나무, 능금나무 설레이는 인민의 무릉도원을 펼쳐주신 수령님의 은덕을 진심으로 노래한 명곡이라고, 부를수록 생각이 깊어지고 당중앙위원회 일군으로서의 사명감에 어깨가 무거워지기때문에 자주 부르신다고.

이 노래를 부르고부르시며 위대한 장군님께서 인민의 행복을 위해 이 땅에 주렁지우신 《황금열매》는 그 얼마였습니까.

위대한 장군님의 정력적인 지도에 의하여 훌륭하게 일떠선 인민의 보금자리들과 현대적인 극장과 병원들, 공장, 기업소들과 문화휴식터들…

조국이 시련을 겪던 고난의 시기에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황금나무 능금나무 산에 심었소》의 구절을 불러보시며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초강도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였고 인민의 웃음소리가 이 땅우에 끝없이 울려나오고 그것이 곧 례사로운 사회주의생활로 되기를 간절히 바라시였습니다.

그처럼 어렵고 간고하였던 나날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지키시려 비가 와도 넘으시고 눈이 와도 넘으신 철령, 밤에도 낮에도 쉬임없이 넘으신 력사의 그 령길에서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황금나무 능금나무 산에 심었소》의 노래를 부르시였고 강계의 모진 눈보라를 앞장에서 헤치시면서도 마음속으로 이 노래를 부르시였습니다.

이 노래와 함께 위대한 장군님께서 가꾸어주시고 지켜주신 행복의 열매들이 오늘날 철령아래 사과바다로 주렁졌고 과일군의 희한한 과일대풍도 안아왔습니다.

명곡과 함께 태여난것이 어찌 이뿐이겠습니까.

주체공업의 위력으로 새롭게 태여난 CNC와 주체철, 주체비료, 사회주의땅답게 전변된 조국의 대지며 우후죽순처럼 일떠선 기념비적건축물들과 대지를 박차고 솟구쳐오른 우리의 자랑스러운 인공지구위성 《광명성-1》호, 선군시대의 과학과 문화의 비약적인 발전을 비롯하여 온 나라 방방곡곡 그 어디에서나 만복의 씨앗들이 깊이 뿌리내려 《황금나무》는 더욱 푸르러 설레이고 금빛찬연한 황금열매들이 바야흐로 주렁져 빛나게 되였습니다.

미증유의 고난속에서 뿌려주신 만복의 씨앗이여서, 시련속에서 더 높이 울려퍼지게 하여주신 인민의 웃음이여서 위대한 장군님의 헌신과 로고는 더더욱 눈물겨운것이며 가슴속에서 터져나오는 감사의 인사는 끝이 없는것 아닙니까.

노래는 진정 자신의 한몸을 깡그리 태워서라도 인민이 만복을 누리는 사회주의강국을 이 땅우에 기어이 세우시려는 위대한 장군님의 굳센 신념이였고 불굴의 의지였으며 인민의 락원을 지켜주신 위대한 어버이의 불같은 헌신을 구가하는 사회주의수호가였습니다. (계속)

김 하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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