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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있는 화가 김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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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나이
댓글 0건 조회 1,167회 작성일 23-01-29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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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있는 화가 김홍도

 

- 왕화용(직업: 서예애호가, 주소: 중국 남경) 독자의 요청에 대한 회답기사 -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18세기 우리 나라의 사실주의화가 김홍도가 그린 그림 〈씨름〉 보면 씨름장면이 절정에 올랐을 때의 구경군들의 각이한 성미를 얼굴표정묘사를 통하여 재치있게 보여주고있다.

김홍도는 18~19세기 우리 민족의 화단을 대표한 사실주의적경향의 진보적인 화가이다.

1760년에 수도 한성에서 태여난 김홍도는 어렸을 때부터 뛰여난 그림재능을 보여주었으며 당시의 진보적인 화가였던 김응환에게서 그림을 배웠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공부에 열중하여 10살때에 벌써 뛰여난 재능을 나타낸 김홍도는 15~16살경부터는 이미 당당한 화가로서 이름을 날리였다. 이 나날 그는 집이 가난하여 끼니를 번지는 때가 많았으며 그림을 팔아서 생활을 유지하였다고 한다.

그는 작품창작과정에 당시 풍조로 되여있던 현실생활과 동떨어진 문인화의 형식적이며 사대주의적인 화풍을 극복하면서 당대의 사회생활을 다방면적으로 폭넓게 담으려고 꾸준히 탐구에 탐구를 거듭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인물풍속화분야를 개척함으로써 우리 나라 회화사에서 풍속화의 새로운 혁신적인 길을 열어놓았다.

그는 인물풍속화를 비롯하여 초상화, 산수화, 판화 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걸작들을 남겼다.

특히 김홍도는 당시 실학사상의 영향밑에 도식화된 량반사대부들의 낡은 화풍을 깨뜨리면서 점차 자기 시대의 현실로부터 출발한 사실주의적인 풍속화창작의 길을 개척하였다. 그의 풍속화들은 근로하는 인민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 다양한 주제와 회화기법으로 그들의 창조적로동과 락천적인 생활, 순박하고 건전한 정신세계의 아름다움을 긍정하였으며 봉건관료들과 무위도식하는 계층의 부패타락한 생활을 자연스럽게 야유조소하여 당대의 불공평한 사회적면모를 재현하였다.

김홍도의 인물풍속화작품들로서 대표적인것들은 《집짓기》, 《야장간》, 《서당》, 《마당질》, 《씨름》, 《춤》, 《물고기잡이》, 《밭갈이》, 《천낳이》, 《빨래》 등을 들수 있다. 이 작품들에서 김홍도는 진보적인 사실주의적창작태도와 예술적재능을 훌륭히 보여주고있다. 특히 그는 근로하는 인민들에 대하여 깊은 동정을 가지고 근면하고 락천적인 그들의 성격을 훌륭히 형상하였다.

김홍도는 또한 풍경화들과 화조, 동물을 많이 그리였는데 《숲속의 달밤》, 《구룡폭포》, 《파도》 등 풍경화들은 조국의 아름다움을 재치있게 형상하였고 《개》, 《늙은 사자》, 《표범가죽》 등에서는 동물의 특징과 털의 질감을 생동히 그려냈다.

자그마하고 평범한 소재를 통해서도 풍부한 정서와 깊은 사색을 불러일으키는 그의 많은 작품들은 어느것이나 정확한 소묘와 기발하고 표현적인 화면구성, 힘있고 아름다운 필치가 아주 특징적이다.

이처럼 김홍도는 도식과 규범에 구애됨이 없이 현실생활과 인간들의 성격과 심리를 진실하게 그리려고 노력하였다. 그리하여 김홍도는 18세기 우리 나라 사실주의화단에서 대표자로 되였으며 그의 화풍은 그후 회화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김홍도의 인물화들에서 찾아볼수 있는 생활반영의 진실성과 힘있고 아름다운 필치는 생활에 대한 깊은 침투와 리해, 조선화화법에 정통한 화가의 뛰여난 예술적기교를 잘 보여준다.

김홍도의 대표적작품의 하나인 《씨름》은 우리 인민의 고유한 민속생활과 많은 사람의 개성적인 성격을 재치있는 형상으로 실감있게 보여준 작품이다.

《씨름》은 구경군, 응원군들이 빙 둘러앉은 한가운데 두 씨름군이 승부를 겨루고있는 모습을 형상하고있다.


김홍도의 대표작 《씨름》 -


너무도 아짜아짜하여 눈을 가리우는 사람도 있고 아직은 좀더 보아야 한다는식으로 태연하게 지켜보는 사람도 있으며 몸이 땅에 닿는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허리를 굽혀 아래만 주시하고있는 사람도 있다. 특히 인상적인것은 두 씨름군의 승부에는 관계없이 자기는 엿이나 팔면 된다는식으로 등을 돌려대고 서있는 소년엿장사군의 모습이다.

김홍도는 이렇듯 꾸밈없는 생활세부들을 통하여 개성적인 인물형상들을 창조하였고 작품의 진실성과 예술성을 높이였다.

김홍도는 18~19세기 화단의 새로운 장을 펼쳐놓은 대가로 우리 나라 회화사에 기록되여있으며 오늘도 그의 작품들은 일정한 시대적, 력사적제한성은 있으나 민족회화의 귀중한 재보로 되고있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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