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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삼정리가 전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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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나이
댓글 0건 조회 1,211회 작성일 23-01-18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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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삼정리가 전하는 이야기​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나라 그 어디에나 수령님의 발자욱이 어리여있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한평생 인민들의 행복을 위해 쉬임없이 포전길을 걷고 또 걸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거룩한 자욱을 새겨가신 곳들중에는 력포구역 소삼정리도 있다.

력포구역 소재지를 지나 얼마쯤 가느라면 높고낮은 구릉지대가 나진다.

이 일대를 가리켜 옛날에는 《불동촌》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마치 물감을 들여놓기라도 한것처럼 땅이 붉어서 《불동촌》이 되였는지 아니면 땅이 가물을 너무 타서 《불동촌》이라고 했는지…

지금은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그 뜻이 희미해진 옛 지명이지만 가물이 너무 심해서 곡식도 타고 땅도 타고 사람들의 가슴마저 타버렸다던 지난날의 한많은 사연을 지금도 옛말처럼 전해오는 이 고장 사람들이다.

사람 못살 고장, 불모지의 하나였던 소삼정리의 전변의 력사는 과연 어떻게 시작되였던가.

주체43(1954)년 4월 15일이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온 나라 인민의 축원의 인사를 받으셔야 할 생신날에 력포구역 소삼정리(당시 중화군 삼정리)를 찾으시였다.

3년간의 준엄한 조국해방전쟁을 승리에로 이끄시고 전후복구건설의 모든 중하를 떠메고계시는 우리 수령님께서 생신날 하루만이라도 편히 쉬셨으면 하는것은 이 나라 아들딸들의 간절한 념원이였다.

하지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전쟁으로 혹심하게 파괴된 농촌경리를 추켜세우고 령락된 농민들의 생활을 하루빨리 안정시키시려고 농업협동화의 첫걸음을 뗀 농촌을 찾아 현지지도의 길을 쉬임없이 이어가시였던것이다.

그때 소삼정리에는 세창, 가작 두 농업협동조합이 갓 조직되여있었는데 협동조합을 어떻게 운영해나가야 할지 조합일군들도 조합원들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있었다. 그날 조합의 농호수와 조합원수, 경지면적과 농민들의 생활형편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알아보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점심식사도 뒤로 미루시며 농업협동조합원들의 협의회를 여시고 조합이 나아갈 길을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새벽길을 걷는 사람이 찬이슬을 먼저 맞듯이 무슨 일이나 먼저 시작하는 사람이 애로와 난관을 많이 겪기마련이라고 하시면서 확고한 신심을 가지고 농업협동조합을 공고발전시키기 위하여 적극 투쟁하여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

열정에 넘치신 어버이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아안는 일군들과 조합원들의 가슴속에는 크나큰 신심과 용기가 솟구치였다.

전후에 맞으시는 첫 생신날에도 농민들을 더 잘살게 하시려고 점심식사까지 미루시며 새로 무은 농업협동조합이 나아갈 길을 밝혀주시는 어버이수령님을 우러르는 일군들과 조합원들의 가슴속에서는 뜨거운 격정이 끓어올랐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흰쌀밥을 먹고싶어하는 이곳 농민들의 소망을 깊이 헤아리시여 대동강물을 끌어올리도록 은정깊은 조치를 취해주시고서야 자리를 뜨시였다.

그후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농업협동조합들에 뜨락또르와 영농기자재들, 여러가지 과일나무모도 보내주도록 하시여 협동조합의 우월성과 생활력이 높이 발양되도록 크나큰 은정을 돌려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폭탄구뎅이를 메우고 뿌린 씨앗들이 싹터 우줄우줄 자라나는 여름에도 오시였고 낟알이 알차게 영그는 가을에도 오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다녀가신 해에 이곳 협동조합들에는 대풍이 들었다.

풍년낟가리를 높이높이 쌓아올리며 마을사람들은 생각하였다.

한 마을에서 거두어들인 낟알에 이처럼 어버이수령님의 헤아릴수 없이 크나큰 로고가 깃들어있으니 온 나라가 거두어들인 수확고에는 어버이수령님께서 기울이신 로고가 과연 그 얼마나 깃들어있을가 하고.

그럴수록 뜻깊은 생신날에 찾아오신 우리 수령님께 쌀밥 한그릇 지어올리지 못한 죄책감이 가슴에 응어리로 맺혀 밤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주체43(1954)년 11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금년에 우리는 중화의 농업협동조합에 세번 나가보았다, 봄에 나갔을 때에는 어떤 농민들은 고개를 숙이고 우리를 바라보더니 여름에 농사가 잘될 때에 나갔을 때에는 희색이 만면하였고 가을에 나가보니 농민들은 너무 기뻐서 입이 귀밑까지 이를 지경이였다고 감회깊이 교시하시였다.

그해 11월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또다시 이곳을 찾으시였다.

콩마당질하는 곳에 이르신 수령님께서는 조합원들에게 추운데 수고한다고 다정하게 말씀하시고나서 콩마당질을 한번 같이 해보자고 하시며 친히 도리깨를 잡으시였다.

추운 날씨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친히 조합을 찾아주신것만도 무상의 영광인데 조합원들과 함께 콩마당질까지 하시는 어버이수령님을 우러르며 모두들 감격의 눈물을 머금었다.

그후 평양시민들에게 사철 신선한 남새를 먹이시려고 마음쓰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곳 농장을 여러차례나 찾으시여 수도의 믿음직한 남새생산기지의 하나로 꾸려주시였다.

하기에 오늘도 이곳 농업근로자들은 어버이수령님의 은덕을 떠나 소삼정리의 전변에 대하여 생각할수 없다고 격정을 토로하며 농장벌마다에 애국의 구슬땀을 아낌없이 바쳐가고있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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