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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께서 먼저 집들이를 한다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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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나이
댓글 0건 조회 1,078회 작성일 23-01-30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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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께서 먼저 집들이를 한다시며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께서는 한평생 인민들속에 들어가시여 인민들의 의사와 요구를 깊이 료해하시고 그에 기초하여 당의 로선과 정책을 세우시였습니다.》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한평생을 바치시며 이 나라 방방곡곡에 새기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거룩한 령도와 뜨거운 사랑의 자욱마다에는 대를 이어 길이 전해갈 감동깊은 이야기들이 수많이 수놓아져있다.

우리 공화국에서 농업협동화운동이 힘있게 벌어지고있던 주체47(1958)년 1월말의 어느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황해북도의 여러 단위들을 돌아보시고 황해남도로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다가 어느 한 농업협동조합(당시)에 이르시였다.

그날은 눈이 푸실푸실 내리는 류달리 추운 날이였는데 어버이수령님께서 마을에 도착하신것은 짧은 저녁해가 서산마루에 걸려있던 저녁무렵이여서 날씨는 더 차졌다.

강추위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마을을 찾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인사를 올리는 조합일군들의 손을 따뜻이 잡아주시며 농사차비정형과 농민들의 생활형편에 대하여 료해하시였다.

이어 농장에서 건설한 새 문화주택들을 한참이나 만족스럽게 바라보시던 수령님께서는 어느 한 집에 들어가보자고 하시며 걸음을 옮기시였다.

집안에 들어서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집주인들에게 불이 잘 드는가, 집이 춥지 않은가고 다정히 물으시며 방바닥도 손수 짚어보시고 벽두터이도 직접 가늠해보시면서 농민들이 이제는 좋은 집을 쓰고살게 되였다고 기뻐하시다가 문득 이 마을에서 하루밤 쉬여가겠다고 하시였다.

순간 일군들은 어버이수령님께서 왜 갑자기 자기들의 마을에서 하루밤을 쉬여가겠다고 하시는지 의문을 풀길없어 서로 얼굴만 쳐다보면서 가슴속에 커다란 걱정이 갈마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도그럴것이 그때로 말하면 우리 공화국이 전쟁의 상처를 채 가시지 못하였을뿐아니라 조합의 살림살이형편도 넉넉하지 못하였으며 더우기 마을에는 어버이수령님을 모실만 한 집이 없었기때문이였다.

그들의 심정을 헤아려보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아직 사람들이 들지 않은 빈집이 있다고 하였는데 그 집에서 묵겠다고 하시며 일군들이 만류할사이도 없이 그 집쪽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집을 덥혀놓았다고는 하나 아직 사람들이 살지 않은 새집인데다가 바깥날씨가 오동지섣달날씨라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난감해하는 일군들의 마음을 풀어주시려는듯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자신께서 먼저 집들이를 한다고 호탕하게 말씀하시며 집안에 들어서시였다. 그리고 그 집에서 때늦은 저녁진지도 드시였고 군과 조합의 일군들을 몸가까이 부르시여 밤늦도록 담화도 하시며 한밤을 지새우시였다.

기승을 부리던 눈보라가 뜸해지는 속에 밤은 소리없이 깊어가고 어느덧 새날이 밝아왔다.

송구스러운 마음을 금치 못하며 아침인사를 올리는 일군들을 반갑게 맞아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하루밤 자면서 보니 농촌문화주택이 마음에 든다고, 집구조도 좋고 불도 잘 들고 겉바람도 없다고, 농민들이 좋아하겠다고 하시면서 농민들에게 이런 문화주택을 더 많이 지어주도록 하여야 하겠다고 하시였다.

그제서야 일군들은 어버이수령님께서 나라일에 그처럼 바쁘신 걸음을 멈추시고 부디 자기 마을에서 하루밤을 묵으신 까닭을 깨닫게 되였으며 농민들의 생활문제를 가지고 그토록 심려하시는 수령님의 숭고한 풍모에 눈시울을 적시였다.

오늘도 이 고장사람들은 어버이수령님께서 오동지섣달의 추운 날 빈집에서 하루밤을 묵으신 사연을 눈물겹게 추억하며 수령님의 고매한 인민적풍모를 길이 전해가고있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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