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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호화주택에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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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나이
댓글 0건 조회 1,173회 작성일 23-03-28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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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호화주택에서 산다

 

우리 집은 온 나라가 부러워하는 경루동의 호화주택이다.

너무도 멋있는 궁궐같은 새 살림집에 보금자리를 펴게 된것이 믿어지지 않아 몇번이고 손등을 꼬집어보던 그 나날이 감회깊이 돌이켜지군 한다.

나의 아버지는 평양의학대학병원 과장이다.

어려서부터 나의 눈앞에 새겨진 아버지의 모습은 자식이나 안해보다 환자를 먼저 놓는 의사였다.

어떤 날에는 환자치료때문에 자정이 깊어서야 들어왔고 어떤 날에는 구급환자를 위해 새벽에도 구급가방을 들고 뛰여나갔다.

또 어떤 때에는 중환자치료를 위해 몇일, 지어 몇달이 넘도록 집에 들어오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버지가 보고싶어 어머니에게 투정질을 했었다.

《엄마, 우리 아버진 왜 집에 못들어오나요?》

그러는 나에게 어머니는 이런 옛말을 해주군 하였다.

《옛날에 여기 평양에서 멀리 떨어진 산골마을에 한 총각애가 살았단다. 그의 아버지는 평범한 로동자였는데 그 총각애는 머리가 남달리 좋았단다. 그래서 분교의 선생님은 그를 훌륭한 인재로 키우기 위해 온갖 심혈을 다 기울였단다.

선생님의 따뜻한 지도속에 총각애는 날이 갈수록 더 머리가 좋아졌고 자기보다 높은 학년의 교재도 척척 풀어나갔단다.

그런 총각애의 마음속에는 이런 소망이 움터나고있었단다. 그것은 앓고있는 아버지를 위해 공부를 더 잘해서 평양의학대학에 입학하겠다는것이였다.

그러던 어느날 소년의 꿈은 이루어졌단다. 나라에서 그의 재능과 배움의 희망을 활짝 꽃피워주기 위해 평양의학대학으로 불러주었던것이다.

그 총각이 바로 너의 아버지였다. 나라에서는 산골마을의 이름없는 로동자의 아들을 평양의학대학에 불러주고 이렇게 평양의학대학의 유능한 의사로, 이제는 한개 과의 과장으로까지 내세워주었구나. 그런데 아버지가 집에서 우리만 돌봐주면 되겠니?》

이렇게 아버지는 고마운 조국에 보답하기 위해 30여년세월을 환자치료에 뜨거운 정성을 기울여 병원을 찾아오는 환자들에게 새삶의 기쁨과 희망을 안겨주었다.

그 나날 아버지는 식도정맥류결찰술과 비장동맥부분전색술을 비롯한 세계적수준의 앞선 치료방법들을 적극 탐구도입하여 환자치료에서 성과를 거두었으며 간장질병치료에서 없어서는 안될 여러 필수의약품들도 연구개발하였다.

그리고 같은 과의 의사들 전원이 학위소유자가 되도록 하고 그들이 가치있는 의학과학기술성과들을 이룩하여 전국적인 의학과학토론회들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도록 하는데서도 많은 기여를 하였다.

그때마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아버지의 자그마한 소행을 공로로, 애국으로 평가해주시며 여러차례나 은정어린 감사도 보내주시고 박사로, 공훈의사로, 사회주의애국공로자로 온 나라가 다 알도록 높이 내세워주시였으며 꿈속에서조차 그려본적 없는 희한한 궁전을 안겨주시였다.

너무도 응당한 일을 한 아버지에게 이렇게 희한한 호화주택을 안겨준 그 은혜가 꿈만 같아 새 집에 입사하던 그날 우리는 2층으로 된 호화주택의 살림방을 몇번이고 보고 또 보면서 눈물속에 웃음을 지었다.

인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켜섰다는 높은 책임감을 안고 환자치료에 흘려온 땀방울을 보석처럼 귀중히 여기며 만복의 주인공으로 내세워주신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

그이의 은혜로운 사랑의 손길아래 이 땅에는 인민의 꿈이 눈앞의 현실로 눈부시게 꽃펴나고있으니 정녕 우리 인민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인민이다.


채 은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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