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홰불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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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홰불저수지》
공화국의 삼석구역에는 이곳 사람들이 《홰불저수지》라고 부르는 저수지가 있다.
이 부름에도 삼석마을인민들을 위해 바쳐오신 위대한 김일성동지의 인민사랑의 세계가 뜨겁게 깃들어있다.
당시 가렬한 전쟁의 후과로 나라의 살림형편이 어려웠던 주체46(1957)년 1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삼석마을을 찾으시였다.
이날 허물없이 농민들과 함께 무릎을 마주하신 수령님께서는 농민들의 생활형편을 구체적으로 알아보시고나서 앞으로 논을 풀 계획은 없는가고 물으시였다.
원래 옛날부터 이 고장에 흔한것은 마을이름에도 붙어있는것처럼 돌이고 제일 바른것은 먹는물이였다.
그래서 논을 풀고 백미밥을 먹었으면 하는것이 이 마을 농민들이 하나같이 품고있는 소원이였으나 워낙 물이 없는 고장이였던지라 벼농사에 대해서는 아예 단념하고있었던것이였다.
이에 대한 실태를 료해하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로부터 사흘후 진눈까비가 내리는 험한 날 또다시 삼석마을을 찾아주시였다.
그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마중나온 일군들에게 그새 논 풀 생각을 해봤는가고 다정히 물으시였다.
한 일군이 그동안 생각한것에 대하여 말씀드리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잠시 생각에 잠겨계시다가 이런 내용으로 교시하시였다.
집에서 콩나물을 길러내던 때를 한번 생각해보자. 아마 콩나물 한시루를 길러내는데 밑창에다가 버치를 받쳐놓지 않고 기른다면 물이 수십동이가 훨씬 넘을것이다. 그러나 콩나물시루밑에다 버치를 받쳐놓고 콩나물시루에서 흘러내린 물을 다시 시루에다 퍼주군 하면 물을 얼마 안가지고도 콩나물 한시루를 다 길러내지 않는가. 논을 푸는데도 물을 이렇게 순환식으로 아껴쓴다면 능히 될수 있다.
위대한 수령님의 통속적인 가르치심에 마을사람들은 벼농사를 얼마든지 할수 있다는 신심을 가지게 되였다.
이때 한 로인으로부터 자작골에 샘이 좀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밤이 좀 깊었지만 그리로 가보자고 하시며 진눈까비가 기승을 부리는 험한 날씨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몸소 홰불을 높이 추켜드시고 앞장에서 걸으시였다.
그렇게 오랜 시간 진눈덮인 험한 비탈길을 앞장서 헤치시며 자작골에 이르시여 샘터에 도착하신 수령님께서는 못내 기뻐하시면서 홰불로 사위를 비쳐보시다가 여기에 저수지를 만들자고 하시며 저수지언제를 쌓을 자리까지도 잡아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추켜드신 홰불은 캄캄한 골짜기를 비치며 활활 타올랐다. 그 홰불이 타오른 곳에 얼마후에는 생명수 차넘치는 장수원저수지가 생겨나게 되였고 그후 마을에서는 벼농사의 새 력사가 펼쳐지게 되였다.
세상에 흔한것이 흙이고 물이라지만 내 나라의 한줌 흙, 한방울의 물에는 이렇듯 우리 수령님의 사랑의 한평생이 눈물겹게 어려있다.
하기에 삼석마을사람들은 력사의 그밤을 영원토록 잊을수 없어 장수원저수지를 《홰불저수지》라고 부르며 그이의 불멸할 업적을 길이길이 전해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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