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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위인상》을 다시 펼쳐보며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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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선구자
댓글 0건 조회 1,274회 작성일 23-06-04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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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위인상》을 다시 펼쳐보며 (6)

 

조용히 흘러간 명절


주체76(1987)년 2월 16일로 말하면 위대한 장군님의 탄생 45돐이 되는 민족대경사의 날이였다.

일군들은 그이의 탄생 40돐때의 전례로 보아 일이 성사되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자신의 탄생일을 쇠지 않겠다고 단호히 말씀하시였으나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는 김정일동지가 생일을 쇠지 않겠다고 하지만 다른 때와는 달리 40돐에야 어떻게 그냥 지나칠수 있겠는가고 하시면서 금수산의사당(당시)에서 자신의 명의로 소박한 오찬을 마련하시고 정치위원들을 친히 부르시였던것이다.

그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정치위원들의 축하를 인민을 위하여 더 많은 일을 하라는 과업으로 받겠다고 겸허하게 말씀하시였었다.

그때로부터 5년세월이 흘렀다.

이 5년동안에 우리 인민은 위대한 장군님의 령도밑에 혁명과 건설에서 전례없는 기적과 혁신을 이룩하였고 우리 당은 자기 발전에서 새로운 전환기를 펼쳐나가고있었다.

어느날 우리 일군들은 위대한 장군님께 그이의 탄생 45돐을 뜻깊게 맞이하려는 전체 당원들과 인민들의 소원을 담은 행사계획을 말씀드리였다.

하지만 그이께서는 무슨 쓸데없는 말을 하는가고 단마디로 거절해버리시였다.

하는수없이 나(허담)는 해당 일군들과 토론을 거듭하던끝에 그이를 찾아뵙고 《떼질》 해서라도 기어이 승낙을 받아내리라고 굳은 마음을 먹었다.

그날은 주체76(1987)년 2월 9일이였다.

나는 당중앙위원회 일군들의 한결같은 마음을 담아 위대한 장군님께 온 나라 인민들의 절절한 소청을 담아 그이의 탄생 45돐이 되는 2월의 명절을 크게 기념하도록 승인해주실것을 말씀드리였다.

이야기를 다 듣고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환한 미소를 지으시더니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동무는 나를 설복하러온 특사처럼 보입니다. 떼질을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동무의 마음이 얼굴에 씌여있습니다. 하긴 울며 보채는 아이에게 젖을 준다는 속담도 있기는 합니다.》

내가 아뢰이는 진정이 무엇인지 제꺽 알아맞히시는 그이의 통찰력에 나는 어느덧 마음이 놓이였다.

한동안 방안에는 침묵이 흘렀다.

그이께서는 웃음을 거두시고 잠시 아무 말씀도 없으시였다.

전체 당원들과 인민들의 한결같은 청원이니 한마디로 거절하실수 없는 그이의 심중이 헤아려졌다.

이윽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낮으나 웅심깊은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나는 동무들의 마음을 잘 압니다. 그리고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인민들의 마음도 잘 알고있습니다. 내가 인민들의 마음을 알고있으면 되지 않습니까.》

그이께서는 동안을 두시고 무엇인가 깊이 생각하시다가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나는 동무들이 2월의 명절이라고 하면서 무슨 행사를 하겠다고 할 때면 정말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나는 어디까지나 수령님의 전사입니다. 전사의 생일이 무슨 명절입니까.

우리는 수령님께서 탄생하신 4월의 명절만을 민족적대경사의 날로 크게 쇠야 합니다. 나는 인민들이 4월의 명절을 즐겁게 쇠는것을 볼 때 제일 기쁩니다.

그 어떤 가식이나 꾸밈이 없는 진정은 사람의 심장을 울리는 법이다. 그이의 말씀은 나의 심장을 뜨겁게 하였다.

하지만 우리의 운명이시고 행복이신 그이의 탄생일을 명절로 경축하지 않고 어떻게 례사로운 날처럼 지내보낼수 있겠는가.

나는 그대로 물러설수 없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나를 납득시키려고 많은 말씀을 하시였다.

그러나 나는 자리를 뜰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앉아있었다.

그러자 그이께서는 애타게 타이르시였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동무까지 이렇게 나오면 나는 정말 난처합니다.

동무야 내 마음을 잘 알지 않습니까.

어서 돌아가 나의 말을 전달해주기 바랍니다.

나는 나의 마음을 즐겁게 하여주려는 동무들의 제안에 대하여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나의 생일 45돐을 요란하게 기념하는것은 허락할수 없습니다.

정말 단호한 말씀이였다. 그러나 나는 일군들의 한결같은 심정을 안고온 《대표》인것만큼 쉬이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는 나를 이윽히 바라보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이제 오래지 않아 수령님의 탄생 75돐이 다가오는데 그때 우리 한번 4월의 명절을 본때있게 경축합시다.》

그이의 말씀은 2월의 명절을 절대로 성대히 경축할수 없다는 선언처럼 들리였다.

나는 그이의 결심을 더는 어쩔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냥 돌아서자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나는 위대한 장군님께 지금 온 나라 인민은 2월의 명절을 즐겁게 쇠시는 장군님의 모습을 뵙고싶어한다고 다시금 말씀드리였다.

내가 다시 애원하다싶이 말씀드리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우리 인민은 정말 좋은 인민입니다. 그렇기때문에 나는 우리 인민을 숭배하고있습니다. 나는 생일을 맞을 때마다 인민들을 위해서는 돌우에도 꽃을 피워야 한다는 좌우명을 깊이 새겨보군 합니다.

인민들이 바란다면 돌우에도 아름다운 꽃을 피워 인민에게 영광을 드리고싶은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나는 더이상 《떼질》 할수 없었다.

2월의 명절은 하루하루 다가왔다. 온 나라 인민들의 마음은 위대한 장군님의 탄생 45돐이 박두할수록 더욱 걷잡을수없이 끓어번졌다.

우리 일군들은 서로 마주앉아 거듭되는 토의를 해보았으나 해결책을 찾지 못하였다.

하지만 2월의 명절을 맞는 인민들의 앙양된 축원의 마음을 그대로 보고만 있을수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2월 12일 위대한 장군님께 다시한번 청원편지를 올리기로 결심하고 한자한자 글발을 엮어나갔다.

편지를 올린 그날 밤 나는 그이의 말씀이 계시기를 기다리며 한순간도 잠들지 못했다.

이튿날 아침 나를 부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지금 무엇을 하고있는가고 물으신 후 자신께서는 동무들의 다른 요청을 다 받아주지만 이번 청원만은 절대로 받아줄수 없다고 말씀하시였다.

결국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완강한 만류로 하여 그이의 탄생 45돐이 되는 2월의 명절은 인민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아무런 행사도 없이 조용히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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