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봉령의 메아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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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봉령의 메아리 (1)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인민을 하늘로 여기며 인민의 행복을 위해서는 하늘의 별도 따오고 돌우에도 꽃을 피워야 한다는것이 우리 장군님께서 지니신 숭고한 인민관이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의 현지지도의 길에 꽃펴나 온 나라에 파다하게 퍼졌던 혁명일화 《구봉령》을 사람들은 잊지 않고있다.
억척으로 다져진 로반이며 패인자리 한점없이 번듯하게 정리된 령길, 잘 째인 물홈이며 길섶에 곱게 피운 꽃들…
달리는 차창너머로 령길에 남모르는 정성을 고인 이름모를 주인공들의 갸륵한 마음을 읽으시며 뜨거운것을 금치 못하신 위대한 장군님이시였다.
령마루로 오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바쁘신 사업을 미루시고 김성녀녀성과 그의 가족소대원들을 친히 만나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해볕과 바람에 검실검실해진 얼굴들을 한사람한사람 익히시며 그들의 손을 일일이 뜨겁게 잡아주시였다.
행복에 울고웃으며 위대한 장군님앞에 선 가족소대장 김성녀녀성은 과연 어떻게 되여 구봉령도로의 주인으로 되였던가.
그는 원래 성간군량정사업소에서 일하였다. 그무렵 그는 굽이가 많고 경사가 심한 구봉령에서 가끔 사고가 나군 한다는 말을 듣게 되였다. 이 령길을 오르내리는 많은 자동차운전사들은 구봉령을 《불길한 령》이라고까지 불렀다고 한다.
김성녀녀성은 어버이수령님께서 자주 그 험한 령길을 넘으시여 강계로 가신다는 생각이 미쳤다.
하여 그는 지체없이 도로관리원이 될것을 결심하게 되였으며 주체58(1969)년부터는 구봉령구간을 맡아보게 되였다.
쉽지 않은 결심, 헐치 않은 일이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지나가실 길에 주단을 펴드리지는 못할망정 내 한몸을 다 바쳐서라도 기어이 본보기도로로 만들리라.)
이런 불타는 일념으로 한창시절에도 멋을 부려보지 못하며 걸어온 인생길이였다.
한평생 오로지 어버이수령님께서와 위대한 장군님께서 자기가 맡은 도로를 기쁨속에 지나가시기를 일일천추로 갈망하면서 구봉령도로에 심혼을 바친 도로관리원, 한 녀성이 걸어온 가슴뜨거운 인생길을 뜨겁게 헤아리시며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격정어린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자기보다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동무들과 같은 애국자가 많기에 우리 당이 강하고 우리 민족이 번영하는것입니다.》
크나큰 격정을 진정 못하는 그들의 가슴가슴에 위대한 장군님의 자애에 넘치신 음성이 다정하게 들려왔다.
《도로가 아주 좋습니다. 동무들의 애국적소행을 높이 평가합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령길에서 만난 기념으로 사진을 찍자고 하시며 김성녀녀성과 그의 가족소대원모두를 사랑의 품에 안으시고 단란한 가족사진과도 같은 불멸의 화폭을 남기시였다.
수십년간 품어온 간절한 소원을 성취한 그날로부터 김성녀녀성과 그의 가족소대가 보낸 날과 달은 행복한 꿈의 련속과도 같은것이였다. (계속)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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