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솜옷에 깃든 사연​ > 기사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기사

학생솜옷에 깃든 사연​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사나이
댓글 0건 조회 2,520회 작성일 22-07-04 00:22

본문

학생솜옷에 깃든 사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후대들을 위해서는 아까울것이 없습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한평생 후대들을 제일로 사랑하시며 주실수 있는 모든 행복을 다 안겨주시였다.

주체52(1963)년 12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결정에 따라 얼마동안 휴식하시기 위하여 황해북도에 내려가시였다.

그러나 말이 휴식이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매일과 같이 여러 군을 돌아보시면서 인민들의 생활형편을 일일이 알아보시였다.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느 한 산간마을 중학교(당시)앞을 지나시다가 차창밖으로 솜옷도 입지 못하고 길가에서 노는 몇몇 학생들을 보게 되시였다.

차를 멈추게 하신 그이께서는 차에서 내려 학생들을 부르시였다.

학생들이 달려와 위대한 수령님께 모자를 벗고 정중히 인사를 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학생들에게 모자를 다시 씌워주시며 물으시였다.

《춥지 않느냐?》

그이의 물으심에 어린이들은 일제히 합창이라도 하듯이 《춥지 않습니다.》라고 씩씩하게 대답을 올리였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홑것을 입었는데 왜 춥지 않겠느냐고 나직이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학생들의 언 손을 감싸쥐시고 그들의 잔등을 쓸어주시며 좀처럼 자리를 뜨지 못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너희들에게 줄것이란 사과 몇알뿐이니 이 사과라도 받으라고 하시며 손수 학생들의 손에 사과를 쥐여주시고나서 차에 오르시였다.

달리는 차안에서 그이께서는 조용히 눈을 감으신채 아무 말씀도 없으시였다.

동행한 일군은 한낮이 기울었으나 위대한 수령님께서 너무도 심각한 표정이시니 점심식사를 하셔야 하겠다는 말씀도 선뜻 올리지 못하였다.

그날 밤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방에서는 밤늦도록 불이 꺼지지 않았다.

한 일군이 몇번이나 쉬실것을 간청드렸으나 그이께서는 농민들의 생활이 펴이지 못했는데 백날을 휴식한들 내 마음이 편안하겠는가고 하시며 도내일군들의 협의회를 해야겠으니 그들을 부르라고 하시였다.

그리하여 다음날 협의회가 진행되였다.

협의회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느 한 군의 책임일군에게 군과 도에서 생산되는 천은 얼마이며 중앙에서 받는 천은 얼마이고 옷을 해입혀야 할 군내학생들의 수는 얼마나 되는가고 물으시였다.

그 일군은 머리를 숙인채 대답을 드리지 못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에게 지금 국가에서 천이 없어서 어린이들의 옷을 해입히지 못하는가, 어째서 못해입히는가고 다시금 물으시였다.

당시 우리 공화국에서 1년간 생산되는 천으로는 유치원어린이들로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모두에게 겨울옷과 여름옷을 각각 한벌씩 얼마든지 해입힐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있으면서도 일군들이 인민생활에 너무도 무관심한탓에 어린이들에게 옷을 제대로 입히지 못하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에게 도와 군의 주인들인데 아이들에게 겨울옷을 제대로 해입히려고 관심을 돌린다면 왜 이런 문제가 제기되겠는가고 엄하게 추궁하시였다.

《인민들이 우리 당을 지지하는것은 우리 당이 어머니당이기때문입니다. 학생들과 어린이들이 옷을 제대로 입지 못하고 다니는것을 보고도 본체만체하는 사람을 어떻게 어머니당의 일군이라고 말할수 있겠습니까.》

계속하시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이 실정을 잘 모르는것을 보아 회의를 아무리 계속해도 성과가 없을것 같으니 이제부터 일군들이 몇개 리에 내려가 구체적인 실태를 알아가지고 온 후에 회의를 다시 계속하자고 하시였다.

일군들을 파견하신 다음 수령님께서는 그길로 봉산군의 어느 한 리에 나가시여 밤늦게까지 농민들을 만나보시였으며 그 다음날에는 또다시 다른 리를 찾으시여 형편을 료해하시였다.

마을을 떠나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에게 나는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결정에 의하여 한 10일동안 쉬려고 황해북도에 왔는데 아이들이 호호 불며 오돌오돌 떠는것을 보고서야 어떻게 마음을 놓고 편히 쉴수 있겠는가고 자신의 안타까운 심정을 터놓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휴식아닌 《휴식》을 도중에서 끝내시고 평양으로 올라가시였다.

그로부터 1주일후인 그해 12월 20일 전국의 모든 어린이들과 학생들에게 솜옷과 모자를 무상으로 공급할데 대한 내각결정이 채택되였다.

본사기자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서비스이용약관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상단으로


Copyright © 2010 - 2023 www.hanseattle1.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