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동지애의 숭고한 서사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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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동지애의 숭고한 서사시 (4)
10여년만에 이루어진 뜻깊은 상봉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오랜 기간 혁명을 해오시면서 그가 누구든 일단 동지적관계를 맺으시면 그의 운명과 미래를 끝까지 책임지고 보호해주시였으며 수천수만의 혁명전사들을 한품에 안아 크나큰 믿음을 주시고 온갖 사랑을 다 베풀어주시였다.》
동지애로 시작되고 승리적으로 전진해온 우리 혁명의 력사적로정이 응축되여있는 조선혁명박물관의 《혁명전우관》에 전시된 자료들중에는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 항일혁명투사 안길동지에게 가족을 찾아주시기 위해 각별히 마음쓰신 감동깊은 이야기도 있다.
주체34(1945)년이 바야흐로 저물어가고 집집에서 해방후 첫 양력설을 맞이하는 기쁨이 넘쳐나고있던 때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저택으로 안길동지가 안해와 아들딸들을 앞세우고 들어섰다.
《장군님이시다. 어서 인사를 올려라.》
안길동지의 이 말에 그의 아들딸들이 급히 목수건을 풀었다. 그런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이 인사를 올릴 사이도 없이 그의 아들딸들을 와락 품에 껴안아주시며 이렇게 올줄 믿었다고, 보라고, 이렇게 살아있지 않는가고 기쁨을 금치 못하시였다.
허리굽혀 인사를 올리는 안길동지의 안해에게는 낯설은 이국땅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일제놈들의 억압밑에서 정말 고생이 많았겠다고 하시며 이제는 나라도 해방되고 이렇게 안길동무도 돌아왔는데 온 가족이 모두 모여 행복하게 살라고 친어버이의 정을 부어주신 위대한 수령님.
그이를 우러르는 안길동지의 눈가에는 뜨거운것이 맺혔다.
그의 가족을 찾기 위해 위대한 수령님께서 얼마나 많은 심혈과 로고를 바치시였는가를 잘 알고있기때문이였다.
안길동지의 뇌리에는 지나온 나날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해방이 되여 조국에 돌아온 안길동지는 10여년동안 생사를 모르는 가족을 찾기 위해 여러곳에 수소문을 해보았다.
그러나 가족이 유격근거지해산후 적통치구역으로 내려간것까지만 알아냈을뿐 그 이후 소식을 알수가 없었다.
한동안 애를 쓰던 안길동지는 가족들이 모두 일제놈들에게 잘못된줄로 알고 그들을 찾는것을 단념하고말았다.
하지만 그의 가족문제를 두고 누구보다 가슴아파하신분은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건국의 초행길에 겹쌓인 난국을 앞장에서 헤쳐나가시는 바쁘신 가운데서도 안길동지의 가족을 찾으시기 위해 각별히 마음을 쓰시였다.
여러곳에 항일투사들을 친히 파견하시여 안길동지의 가족을 무조건 찾아오도록 류다른 임무를 주기도 하시고 한편으로는 새 조국건설을 위한 중요한 임무를 맡고 청진에 나가있는 안길동지에게 전화를 거시여 이제 좋은 소식이 있을것이니 걱정말라고, 유격근거지에서 단련된 혁명가의 가족이 그렇게 쉽게 죽을리가 있겠는가고 하시며 전사가 신심을 잃지 않도록 위로해주신 어버이수령님.
온 중국동북땅을 다 뒤져서라도 기어이 찾아야 한다고, 그래야 자신께서 마음을 놓으시겠다고 일군들에게 간곡히 이르군 하신 사연들은 그 얼마이던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안길동지의 가족을 꼭 찾을수 있다는 믿음을 안으시고 친히 그들을 위해 집까지 따로 마련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안길동무네 가족이 어느 산속에 숨어살고있는것이 분명한데 이부자리 하나 변변한것이 없을것이라고 하시며 여러채의 이불을 보내주시고 지어는 식생활도구까지 미리 장만해두도록 세심히 보살펴주시였다.
그 위대한 사랑과 믿음속에 안길동지는 10여년간이나 소식을 모르던 사랑하는 가족과 끝끝내 상봉하게 되였다.
안길동지의 가족을 만나신 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께서 안길동무의 살림집을 구해놓았다고 하시며 이제는 13년동안 헤여졌던 가족들이 한집에서 살게 되였다고 기쁨을 금치 못해하시였다.
10여년만에 이루어진 뜻깊은 상봉!
진정 이는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동지들에 대한 불보다 뜨거운 사랑이 낳은 감동깊은 화폭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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