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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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사건
《판문점사건》은 미제국주의자들이 1976년 8월 18일 판문점공동경비구역에서 공화국북반부를 반대하는 전쟁도발의 구실을 찾기 위하여 꾸며낸 계획적인 도발사건이다.
《8. 18사건》이라고도 한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정치, 경제적으로 심각한 위기에 빠진 미제는 전쟁에서 그 출로를 찾으려고 미쳐날뛰면서 공화국북반부에 대한 침략책동을 그 어느때보다도 강화하였다. 미제는 남조선괴뢰들을 부추겨 우리 조국의 신성한 하늘과 땅, 바다에서 1974년에는 2만 3 800여건, 1975년에는 무려 2만 8 150여건의 무모한 군사적도발행위를 감행하였으며 1976년 1월부터 7월사이에만도 판문점공동경비구역안에서 우리측을 반대하여 400여건의 적대행동을 감행하였다. 우리측을 반대하여 계통적으로 불집을 일으켜오던 미제는 8월 18일 판문점공동경비구역에서 계획적인 충돌사건인 《판문점사건》을 일으켰다.
이날 10시 45분경 미제는 도끼를 가진 14명의 불한당들을 내몰아 쌍방의 합의없이 일방적으로 처리할수 없는 판문점공동경비구역안의 나무를 제멋대로 찍는 도발행위를 감행하였다.
그리고는 비법행위를 그만둘것을 요구하는 우리측 경비인원들에게 흉기를 휘두르며 집단적으로 달려들어 폭행을 가하려 하였다.
우리측 경비인원들은 적들의 분별없는 도발에 대처하여 부득불 단호한 자위적조치를 취하지 않을수 없게 되였다.
이렇게 되자 미제는 미리 대기시켜놓았던 30여명의 불한당들을 더 증강하여 도발을 확대해나섰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의 포드행정부는 남조선주둔 침략무력에 전투태세를 갖출데 대한 도발적인 지시를 하달하고 남조선일대에 현대적군사장비들과 병력을 대대적으로 증강하면서 그 무슨 《보복조치》를 떠들어댔다.
하여 우리 나라에는 당장 전쟁이 터질수 있는 위기일발의 사태가 조성되였다.
그러나 미제의 군사적망동은 조국의 안전과 혁명의 전취물을 믿음직하게 수호해나선 우리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의 영웅적투쟁에 의하여 수치스러운 패배로 막을 내리고말았다.
《판문점사건》은 미제국주의자들이야말로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도발자, 침략자라는것을 세계앞에 다시금 똑똑히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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