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이 생겨 처음있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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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이 생겨 처음있은 일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군인들의 생활조건을 더욱 원만히 보장해주어야 합니다.》
조국과 민족의 자주권, 우리 인민의 운명을 굳건히 수호하시려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 끊임없이 이어가시는 전선길은 단순한 전선시찰의 길이 아니였다.
그 길은 사랑하는 병사들을 찾아가시고 병사들과 뜻과 정을 함께 나누시는 자애로운 어버이의 위대한 사랑의 길이였다.
주체101(2012)년 3월 어느날이였다.
이날 륙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서해의 초도에 경사가 났다.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 서해안전방초소를 믿음직하게 지키고있는 군인들과 그 가족들을 찾아 이곳에 오시였던것이다.
초도로 말하면 주체85(1996)년 11월 사랑하는 나의 병사들이 섬에서 기다린다고 하시면서 쏟아져내리는 비와 배전을 치며 뿌리는 바다물을 한몸에 맞으시며 사나운 풍랑길을 헤쳐오신 위대한 장군님의 불멸의 자욱이 뚜렷이 새겨져있는 력사의 고장이다.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을 그대로 안으시고 멀고 험한 초도를 찾아주신 경애하는 원수님을 우러러 군인들은 폭풍같은 《만세!》의 환호성을 터치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였다.
그이께서는 서해안전방초소를 믿음직하게 지키고있는 초도의 초병들을 만나보려고 왔다고 하시면서 지휘관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시였다.
가슴속에 따스하게 스며드는 친근하신 그이의 음성에 지휘관들은 눈물이 솟구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무릇 섬사람들에게 있어서 제일 그리운것이 있다면 그것은 뭍사람들이라고 한다.
아는 사람이건 모르는 사람이건 뭍에서 왔다면 무작정 반가움부터 앞서는것이 섬사람들의 공통적인 심리라고 말할수 있다.
그럴진대 꿈결에도 뵙고싶던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섬초병들을 찾아오시였으니 그 기쁨과 격정을 더 말해 무엇하랴.
철부지아이들처럼 너도나도 옷자락에 매달리는 지휘관, 병사들을 한몸에 안으시고 기념사진부터 찍으신 경애하는 그이께서는 섬초소의 여러곳을 돌아보시며 사랑의 자욱을 새겨가시였다.
도서실을 돌아보고나신 그이께서 군인회관쪽으로 향하실 때였다.
그곳으로 가시는 길에서 무엇인가 깊이 생각하고계시던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동행한 지휘관들에게 초도에 공훈국가합창단을 보내주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순간 지휘관들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뭍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있는 이곳에서 그런 큰 규모의 예술단이 와서 공연을 해본적은 아직까지 한번도 없었기때문이였다.
놀라는 지휘관들을 웃음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시던 그이께서는 부대장에게 군인회관의 좌석이 몇석인가를 물으시였다.
어안이 벙벙해있던 부대장은 정신을 가다듬으며 좌석수를 보고드렸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군인회관의 가운데좌석에 가앉으시여 한동안 무대쪽을 바라보시다가 회관무대가 작다고 하시며 동행한 일군들에게 공훈국가합창단이 여기에 오면 공연을 할수 있겠는가고 물으시였다.
이윽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일군들을 바라보시며 군인회관의 무대가 좀 작기는 하지만 공훈국가합창단이 공연하는데 큰 지장은 없을것 같다고, 공훈국가합창단이 초도에 들어와 공연하면 섬초병들을 싸움준비강화에로 힘있게 고무추동할수 있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부대지휘관들의 얼굴이 순간에 밝아졌다.
그들의 눈앞에는 벌써 명성이 높은 공훈국가합창단이 초도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뻐 환성을 터칠 군인들과 군인가족들의 모습들이 떠올랐고 섬을 통채로 들었다놓는 공훈국가합창단의 우렁찬 혁명군가가 울려퍼지게 될 장엄한 화폭이 펼쳐지는듯 했다.
며칠후 초도에서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공훈국가합창단의 공연이 성대히 진행되였다.
섬이 생겨 처음있은 일이였다.
초도에 펼쳐진 공훈국가합창단의 공연, 이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대해같은 사랑이 낳은 또 하나의 전설같은 화폭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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