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스표 한장의 무게
페이지 정보
본문
뻐스표 한장의 무게
얼마전 잡지를 보던 나는 한 기사에서 눈길을 뗄수 없었다.
어느한 자본주의나라의 임신부가 병원을 네곳이나 헤매다가 돈이 모자라 끝내는 길거리에서 아이를 낳고 숨지였다는 사실…
우리 사회, 우리 생활에서는 상상도 못할 사실앞에서 온몸을 엄습하는 경악감과 함께 가슴아픔을 금할수 없었다.
곧 태여날 새 생명을 지닌것으로 하여 가정과 사회의 더없는 축복과 보호를 받았어야 할 그 녀인의 참혹한 죽음이 같은 녀성인 나에게 안겨주는 충격은 너무도 컸다.
문득 나의 뇌리를 치는 다른 한 녀성의 모습이 있었다.
언제인가 취재길에서 만났던 서성구역 상흥소학교 교장 한미화녀성의 이야기,
《뻐스표 한장을 들고 나선 걸음이였어요.》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20여년전 한미화녀성은 두번째로 임신하게 되였다.
정기적인 검진을 받기 위해 평양산원으로 가는 길에 그가 들고 나선것은 다름아닌 작은 뻐스표 한장이였다.
우리 공화국에서는 무료나 다름없는 뻐스표였다.
그러나 그 뻐스표 한장을 가지고 산원행 뻐스에 오른 그때부터 시작된 국가의 혜택이 과연 얼마나 크나큰것인지 그는 그때 다는 알수 없었다.
무심코 들어선 산원에서 그는 깜짝 놀라게 되였다.
종합검사실에서 세쌍둥이임신이 확정되고 임신유지불가능이라는 진단을 받았던것이다.
의사, 간호원들의 관심속에 중환자나 되는듯이 밀차에 정히 실려 그가 옮겨간 곳은 입원실이였다.
그때로부터 그의 임신 전기간은 고스란히 산원의 침대에서 흘러갔다.
임신 8개월만에 낳은 아들 세쌍둥이는 어머니의 몸에서 곧 보육기로 옮겨졌다.
3대의 보육기를 둘러싸고 값비싼 약들이 아낌없이 흘러들며 또다시 수개월.
출생당시 몸무게가 겨우 1. 2kg밖에 안되던 세쌍둥이 둘째도 정상체중으로 되여 녀성은 마침내 평양산원문을 나서게 되였다.
한품에는 다 안기 어려운 사랑의 선물을 한가득 실은 차가 수많은 의사, 간호원들의 바래움을 받으며 그를 따라섰다.
3개의 은장도며 모포와 솜내의, 쎄타, 양복지, 꿀, 졸인젖, 사탕가루…
뻐스표 한장을 들고 집을 나서서 근 200일간의 나날에 받아안은 혜택과 이 모든 선물앞에서 한미화녀성은 그냥 눈물을 흘릴수밖에 없었다.
과연 그 작은 가슴에 다 받아안을수 있는 혜택이였던가.
필요한 모든 설비들이 일식으로 갖추어진 종합검사실과 해산실, 미량가감주입기와 해산감시장치, 각종 소모품들과 의약품 등 그에게 든 해산봉사비만 해도 수만US$의 액수이다.
보육기안의 저체중아인 세쌍둥이들은 10여명의 의사, 간호원들이 밤낮을 이어 교대하며 전문으로 담당하여 키웠다. 이 기간에 들어간 비용을 돈으로 계산하면 자본주의나라 일반근로자가 근 한생을 축적해야 할 돈이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였다.
세쌍둥이들은 다시 육아원과 애육원에 보내여져 전문적인 보육교양을 받게 되였다.
이 비용마저 전부 국가가 부담하였다.
결국 그가 지출한 돈은 산원까지 오는데 든 뻐스표 한장뿐이였다.
낳기만 하였을뿐 젖 한모금 먹여본적이 없이 나라에서 금이야 옥이야 떠받들며 키우고있는 아이들을 바라볼 때마다 문득 떠오른 생각은 무엇이였던가.
(내가 만일 이 제도가 아닌 저 자본주의땅에서 이 아이들을 낳았다면?…)
너무도 분명하고 달리는 될수 없는 운명이였다.
그럴수록 눈물겹도록 고맙고 아름찬 이 사랑에 무엇으로 보답하랴 하는 불같은 생각으로 퇴근길이라는것도 잊고 정신없이 다시 학교로 발길을 돌리군 하였던 그였다.
온몸에 솟구치는 힘과 열정을 성스러운 교단에, 새별같은 눈을 깜빡이며 자기를 바라보는 학생들에게 아낌없이 쏟아붓지 않고서는 견딜수가 없었다.
그렇게 달려온 후대교육의 33년세월이였다.
그런데 오직 보답의 의무만이 있다고 생각해온 마음뿐이였던 그를 당에서는 사회주의애국공로자로, 구역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영광의 단상에 또다시 내세워주는것이 아닌가.
그의 남다른 인생이 나에게 안겨주는 여운은 컸다.
뻐스표 한장.
우리 생활에 대하처럼 흘러드는 사회적혜택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너무도 작은 뻐스표 한장에 이렇듯 거액의 사회적혜택이 비껴있는줄 내 언제 생각해본적 있었던가.
뻐스표 한장의 무게.
그것은 인민을 위함에 당도 국가도 제도도 있는 세상에 둘도 없는 인민의 나라인 우리 안겨사는 품의 소중함의 무게이고 그 품에서 복된 삶을 누려가는 우리모두가 받아안는 하늘같은 사랑과 은정의 무게이다.
이 땅에 생을 둔 사람이라면 누구나 따뜻이 품어안아 사랑과 정을 다해 보살펴주고 천만가지 소원을 다 꽃피워주는 은혜로운 어머니 내 조국, 후손만대의 행복도 미래도 오직 그 품에만 있는 사회주의 우리 제도의 더없이 소중한 무게였다.
해산비가 없어 길가에서 아이를 낳고 비참하게 운명해야만 했던 자본주의나라의 불행한 녀성은 꿈에서조차 그려보지 못하였을 한미화녀성의 복된 인생은 지금도 나에게 가르치고있다.
뻐스표 한장의 무게를 잊지 말라고.
소중한 이 제도를 애국의 한마음으로 더욱 빛내이라고.
신 순 영
관련링크
-
https://dprktoday.com/news/67969
336회 연결
- 이전글사연깊은 계단을 오르며 23.09.18
- 다음글삼복에 대한 생각 23.09.18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