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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시기 이름난 녀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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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선구자
댓글 0건 조회 1,366회 작성일 23-09-11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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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시기 이름난 녀인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나라는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로 빛나는 나라이며 조선인민은 슬기롭고 재능있는 인민입니다.》

신사임당과 허란설헌, 황진이는 15~16세기 우리 나라 력사에 이름을 남긴 녀인들이다.

신사임당(1504-1551)은 재능있는 시인, 서예가, 화가로서 당시 사람들은 그를 《시서화 3절》(시짓기, 서예, 그림그리기 세가지를 뛰여나게 잘하는 사람)이라고 불러왔다.

신사임당은 어려서부터 학문을 익히고 시와 문장을 잘 지었으며 그림그리기, 수놓이, 바느질 등에서도 남다른 재능을 보여주었다.

그중에서도 그림을 잘 그렸는데 어릴 때 벌써 안견의 그림을 본으로 하여 산수화와 포도를 잘 그려 사람들의 경탄을 자아냈으며 새와 물고기, 꽃과 풀, 나비와 벌, 메뚜기 등 자연에서 체험하게 되는 모든것을 화폭에 담았다.

당시 봉건륜리도덕으로 하여 그의 그림소재는 집의 안뜰이나 뒤울안에서 볼수 있는것으로 한정되여있었지만 사물현상들을 세밀히 관찰하고 진실하게 그린것이 오히려 이채로왔으며 그것은 하나의 개성적인 화풍을 이루었다.

대표적작품으로는 《쏘가리》, 《가지》, 《포도》 등을 들수 있다.


-《쏘가리》-


-《가지》-


그림 《가을풀》은 당대의 화단에는 물론 궁중에까지 널리 알려져 궁중자수의 밑그림으로, 궁중도자기의 문양원본으로 리용되였다.

특히 그림 《쏘가리》는 아들 리이(리률곡)의 글이 씌여져있어 더욱 가치있는것으로 되고있다.

허란설헌(1563-1589)은 이름난 녀류시인, 서예가이다.

조선봉건왕조시기 녀류시인이였던 허란설헌은 홍길동전을 쓴 허균의 누이이다.

아름다운 용모를 타고난 그는 어려서부터 남달리 총명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 허엽은 당대의 이름있는 학자였지만 딸에게는 글을 가르치려고 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눈길을 피해 허란설헌은 오빠들(허성, 허봉)이 공부를 하는것을 몰래 엿들으며 글을 익혔고 나중에는 시까지 지었다. 그는 5살때부터 시를 지었다고 한다.

허란설헌은 처녀시절에도, 시집을 가서 아이를 낳아키우면서도 시를 지었다.

그러나 그는 애수하게도 26살 젊은 나이에 세상을 하직하였다.

길지 않은 생애에 그는 많은 시를 지었는데 지금까지 전해오는것은 얼마되지 않는다.

사회가 녀인들이 붓을 드는것을 장려하지 않았기때문이다.

다행히도 몇편의 시가 전해지게 된것은 그의 동생 허균의 덕이였다. 허균은 37살때 다른 나라에서 온 사신과 자주 만나 글짓기로 즐거움을 나누었다. 사신은 허균의 글재주에 감탄을 금치 못해하면서 그에게 기념으로 될 글 몇편을 달라고 하였다. 허균은 자기에게는 변변한 글이 없으나 누이의 글이 있으니 한번 보라고 하면서 그앞에 내놓았다.

그후 자기 나라에 돌아간 사신은 그 시를 묶어 《란설헌집으로 출판하였다.

란설헌집》은 세상에 나오자마자 많은 사람에게서 읽히워지며 사랑을 받게 되였다.

허란설헌의 대표적시작품으로는 《가난한 집 처녀》, 《느낌》, 《죽은 아이들을 슬퍼하여》 등을 들수 있는데 그가 지은 시작품들은 당시 우리 나라 녀류시문학의 발전면모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되고있다.

황진이(1516-?)는 재능있는 녀류시인, 음악가, 서예가로서 당시 유명한 학자 서경덕과 명승 박연폭포와 더불어 《송도3절》 로 불리워졌다.

1516년 개성에서 황진사의 첩의 딸로 태여난 황진이는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용모가 아름다왔으며 예술적소양이 뛰여났다. 하여 그는 일찌기 시 잘 짓고 노래 잘 부르는 재능있는 시인으로, 명창으로, 명필로 알려지게 되였다.

그의 용모와 시적재능이 얼마나 뛰여났던지 10년동안이나 천마산에 들어가 도를 닦으며 생불이라고 자처하던 지족선사도 그를 본 후에는 불교의 계률을 어기였다고 한다.

황진이는 비록 사회적으로 천한 기생의 몸이였으나 기개가 높고 진실하였다. 하기에 그는 당시 봉건통치배들의 도덕적부패성과 기만성을 재치있는 시적표현을 구사하여 비판하였는가 하면 인간의 내면세계를 펼쳐보인 표현이 풍부한 시들과 조국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담은 시들도 많이 창작하였다.

황진이가 남긴 대표적인 서예유산은 박연폭포의 룡바위에 초서체로 휘갈겨쓴 한자련구로서 매우 신묘한 경지에 이른 필체이다.



이처럼 신사임당허란설헌, 황진이는 뛰여난 재능을 지닌것으로 하여 중세시기 조선녀성의 대표적인물로 불리웠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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