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련재 《너를 사랑하기에》 제68회 > 소설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소설

도서련재 《너를 사랑하기에》 제68회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선구자
댓글 0건 조회 3,270회 작성일 23-08-06 00:04

본문

(제 68 회)

제 6 장

3

(1)


그해의 겨울추위는 례년에 없이 맵짰다. 그 추위속에서 초산비닐합성공정을 돌리는것은 참으로 헐치 않았다. 증기직장의 현존보이라의 능력으로써는 만족할만 한 온도를 결코 보장할수 없다는것이 명백해졌다. 보다 큰 능력의 순환비등층보이라가 완공될 때까지 기다리든가 아니면 날씨가 따뜻해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은 그 누구도 감히 내리기를 겁냈으나 현실은 엄혹한것이였다.

동력과에서 한 30여메터의 증기배관에 유도로형식으로 전기선을 감는 방법으로 증기온도를 높여보자고 시도하였으나 그것도 별로 효과를 보지 못하였다.

다 자기 맡은 일이 바빠서 눈코뜰새없이 뛰고있었지만 초산비닐합성공정의 시운전이 실패하였다는 소식은 종업원 누구에게나 좌절감을 느끼게 했다.

수직방사직장을 향해 걸어가는 강혜경의 얼굴에도 어두운 그늘이 지워져있었다. 그는 수직방사직장개건현장에서 시공을 담당하고있었다. 어찌나 마음이 무거웠던지 어깨에 멘 측량기마저 몸을 짓누르는것만같은 기분이였다.

(그럼 우리는… 과연 우리는 손맥을 놓고 조건이 좋아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단 말인가. 우리가 도와나설 일은 없단 말인가.) 하고 혜경이도 생각하는것이였다.

혜경의 눈앞에는 주승혁의 얼굴이 떠올랐다.

(하루빨리 초산비닐을 뽑아내겠다고 애를 쓰시더니…)

혜경은 아버지 강영식을 통하여 주승혁이가 증기직장의 보이라능력이 낮은 상태에서도 초산비닐합성공정을 돌린다고 장담해나섰다는 말을 들었었다. 그러나 결국은 실패한것이다.

(선철동무 아버지가 얼마나 고심이 크겠는가? 그런데 선철동무는 지금 뭘하고있을가?)

생각은 자연히 선철에게로 돌아간다.

(그 동문 지금도 날 기다리고있을가? 낮이나 밤이나 기다리겠다고 했지. 그건 내가 자기를 찾아오기를 기다린다는것일가?)

별안간 선철이가 고까운 감정이 치밀어오른다.

(무슨 남자가 그래? 남자가 찾아오는게 옳지, 아무렴 녀자가 남자를 찾아갈가. 내가 그때 너무 랭정하게 군게 아닐가? 아무리 그렇더라도… 하긴 그 동무도 지금 초산비닐생산공정의 시운전이 안되여 고민하고있을지도 모르지. 제스스로 비날론가족이라고 했댔지. 그 말을 언제 했던가? 그건 2년전 가소제생산공정개건전투장에서였지.)

선철이와 함께 개건공사장에서 보내던 나날들을 돌이켜보는 혜경의 입가에는 미소가 어린다.

(선철동문 언제까지라도 내가 바쁜 대목을 넘기기를 기다리지 않을가? 그 동문 그렇게 고지식한 사람이야. 헌데 머리칼이 백발이 될 때까지 기다리면 어쩌지. 그러니 내가 그를 찾아가야 해. 주저할게 없어. 이런데서도 용감해야 해. 용감하라, 용감하라, 그런 노래가 있지. 사랑은 쟁취해야 하거니. 난 결코 기다리는 성격이 못되거던.)

혜경이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걸어가는데 뒤에서 그를 찾는 소리가 울리였다.

혜경동무 아닙니까?》

혜경은 심장이 뚝 멎는것만 같은감을 느끼며 멈추어섰다. 마음을 진정시키며 천천히 돌아섰다. 주선철이 다정한 웃음을 짓고 서있었다.

혜경은 저도 모르게 활짝 웃었다. 그러나 얼굴이 달아오르면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아니… 이렇게 만날줄은…》

혜경은 선철에게 별 고려없이 내키는대로 말하던 때가 영원한 과거로 된것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선철이가 어려워졌다. 이것은 새로운 느낌이면서 동시에 벅찬 환희를 안겨준다. 처녀의 얼굴은 불길이 타오르듯 아름답게 혈색이 번지였고 심장은 계속 쿵쿵거리였다.

《어떻게 된 일이예요? 또 현장치료인가요?》 혜경은 어느 정도 진정되여 겨우 물었다.

《그렇지요. 우린 매주 화요일이면 현장치료를 나옵니다.》

《헌데 요새는 왜 볼수 없었을가요? 혹시 날 우정 피해다닌게 아니예요?》

혜경은 언젠가 선철이가 설계실로 찾아와서 자기를 피하는게 아닌가고 물었던 그 일을 상기하고서 역습을 들이댄것이였다.

피해다니긴요.》 선철의 잘생긴 얼굴에 게면쩍은 빛이 어린다.

《그저 오늘처럼 마주치지 못했을따름이 아닐가요? 그 우연이라는게 우릴 도와주지 않았지요.》

《그런걸 난 또 선철선생이 우정 나를 피해다닌다고 생각했댔어요. 사실 그럴 필요는 없겠는데 말입니다.》

혜경은 설계실로 자기를 찾아왔던 선철을 랭랭하게 대해주었던 그 일이 언제 있었더냐싶게 들이대였다.

《하, 이거… 난 뭐 피해다닌게 아니고… 난 그저 생각하기를…》 혜경의 공격에 선철은 어쩔바를 몰라 쩔쩔맸다.

《그러니 선철선생은 기다렸다는거지요?》

《맞습니다. 내가 기다리겠다고 했댔지요? 난 혜경동무가 몹시 바빠 하길래 비날론을 뽑아내는 그때까지 참고 이겨내리라 굳게 마음먹었단 말입니다.》

《그래요? 고마워요. 그렇게도 생각이 깊으시니 나로서는 할말이 없군요.》

혜경은 그만하면 충분히 선철을 골려주었다는데로부터 그리고 선철이가 자기를 하찮은 존재로 여기지 않음을 깨달으며 자존심의 만족을 느끼였다.

그러나 그 시각 혜경은 선철이가 큰 행복감속에 참된 사랑에 대한 제나름의 심각한 사색을 하고있음을 미처 헤아릴수가 없었다.

선철의 체험에 의하면 뜨겁게 사랑할줄 아는 사람만이 자기를 이겨낼줄 아는것이였다.

모진 고뇌를 겪으면서 끝내 보다 아름다운 인간으로 성장한 혜경의 모습은 선철을 몹시도 감동시키였다.

그리고 선철은 자기자신 또한 혜경에게 참된 사랑을 바쳤다고 자부하였다. 비록 혜경을 위한다고 하면서 정당한 아버지를 반대해나서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기도 했지만 인차 자기를 뉘우치고 스스로 고달픈 속죄의 길을 걸어온 그였다. 그러나 일이 바쁜 혜경을 방해해서는 안된다고, 보다 큰 사랑을 위해 자기의 작은 사랑을 희생해야 한다고 자신을 납득시켰고 그야말로 《희생적》으로 기다려왔던것이였다. 그렇게 그는 자신을 이겨냈고 혜경에게서도 자기자신을 이겨낸 자부심을 엿볼수 있었다.

(사랑은 참으로 강하고 아름다운것이구나.) 하고 그는 생각하였다.

그는 문득 청년돌격대시절의 잊을수 없는 처녀가 일기장에 쓴 구절을 상기하였다.

《…얼마간이라도 더 살면서 조국을 위해, 동지들을 위해 사랑을 바치고싶다. 그러나 짧은 인생을 탓하지는 않는다. 행복과 보람을 누리며 살았기때문이다.

동무들… 내 몫까지 합쳐 한껏 사랑하며 번영하는 조국의 모습을 보아주세요.》

선철은 비로소 먼저 세상을 떠나간 그 처녀에게 대답할 말을 찾을수 있었다.

(그래, 동무가 바랐던 그런 사람으로 나는 살수 있다.)

선철은 자기를 부르는 혜경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그는 꿈을 꾸는듯 한 미소를 짓고 혜경을 보았다.

선철선생 말마따나 우리야 비날론가족이 아닙니까.》 하고 혜경이 말하였다.

《그렇지요.》 선철은 흥그러운 기분으로 대답하였다.

《우린 다 비날론가족이니 한집안식구나 다를바 없지 않아요? 한집안식구들이야 자주 만나야 하는게 아닙니까, 호호.》

《그건 정말 리치에 맞는 말이군요. 역시 혜경동문 나보다 낫습니다. 내가 혜경동무를 선생이라고 불러야겠습니다. 이제부턴 날 동무라고 부르십시오.》

《그렇게야 어떻게?》

경선생…》 선철은 불러놓고도 어색한지 크게 웃었다.

선철동무.》 혜경이도 깔깔거리면서 웃었다.

그들은 구석진 곳에 서서 그냥 말을 나누었다.

《내 아버지에게서 동무가 촉매직장건물공사에서 기발한 착상을 했다는 말을 들었지요. 아버지는 동무를 꽤 칭찬하더구만요.》

《내가 뭐 칭찬받을 존재나 됩니까. 선철선생 아버님이 괜히 올려추는겁니다. 내가 불쌍해서요, 호호…

그런데 초산비닐합성공정시운전이 실패해서 어떻게 하지요. 선철선생 아버님이 얼마나 속이 상하겠어요. 증기직장사람들이 선철선생 아버님이 요구하는만큼 증기의 온도를 올려주지 못했단 말이예요.》

선철의 얼굴이 금시 어두워진다. 그는 추운듯 곤청색솜옷의 쟈크를 바싹 채웠다. 아닌게아니라 찬바람이 세차게 몰아친다. 헐벗은 버드나무들이 몸부림친다. 혜경은 바람에 날리는 머리칼을 한손으로 누르고있더니 솜옷고깔을 뒤집어썼다. 서있느라니 솜신발을 신은 발이 벌써 시려온다.

《날씨가 우리와 해보려고 접어드는것만 같아요. 날씨가 이렇게까지 춥지만 않았어도 증기온도를 보장할수 있다고 하던데…》

《아버지는 무슨 방도를 찾아야 한다고 하면서 계속 책을 들여다본답니다.》

《무슨 책을요?》

《 〈전기공학〉이던가, 좌우간 전기에 대한 연구를 하는것 같던데요.》

《전기라구요? 그건 모를 소린데요. 전기와 증기가 무슨 련관이 있겠어요. 하긴 내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좌우간 무슨 방책이 있어야 할텐데…》

그들의 화제는 초산비닐합성공정시운전에로 넘어가서 쉽사리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의 마음이 합치되여 함께 걱정하고 하나의 미래를 지향함을 느끼며 기뻐하는것이였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서비스이용약관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상단으로


Copyright © 2010 - 2023 www.hanseattle1.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