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련재 《너를 사랑하기에》 제5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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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2 회)
제 5 장
2
(1)
《아바이, 요새 얼굴색이 좋아보이질 않는군요. 어디 말짼게 아니예요?》
리정삼은 자기옆에서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주승혁에게 근심스러운 눈길을 보냈다. 그가 보건대 주승혁은 눈에 띄게 수척해졌다.
《뭐 잠을 좀 설치니 그렇게 보이겠지.》 승혁은 빙그레 웃으며 심상하게 대꾸하였다.
그들은 지금 아침출근길을 함께 가고있었다.
우연히 만난것이지만 리정삼은 그 우연이 반가왔다. 주승혁을 만나면 마치 삼촌이기라도 한듯 허물없이 흉금을 터놓고싶어진다.
아마도 그것은 그의 부모들을 내놓고는 승혁이가 자기의 고충을 너그럽게 리해해주고 안타까와하는 몇몇 사람들중의 한명이였기때문인지도 모른다.
정삼의 아버지는 인민군군인으로 비날론공장건설에 동원되였다가 공장이 준공되자 제대되여 아예 눌러앉은 사람이였다. 그는 네명의 아들들을 보았는데 정삼이가 막내였다. 정삼의 형들은 군사복무를 하고 돌아와 다 다른 기업소들에 배치되여 일하면서 누구는 직장장을 하고 누구는 대학을 졸업하고 책임기사를 하고 누구는 반장을 하는 식으로 자기 발전의 길을 순조롭게 걸어갔지만 비날론공장에서 일하는 정삼이만은 아직 입당도 못한 처지에 있었다. 그는 술을 좋아하였고 직심스러운데가 부족하였다. 본래부터 일하던 알럼덤직장이 없어져 2카바이드직장 수리작업반에 와서는 더욱더 안착할수가 없었다. 명절날에 온 가족이 모이면 그는 떳떳치 못하였고 형들은 변변치 못한 막내를 꾸짖기가 일쑤였다. 그래도 아버지는 정삼이를 제일 사랑하였고 그만큼 가슴아프게 여기였다. 자기가 후반생을 바친 비날론공장을 귀중히 여기고 대를 이은 자식이 정삼이였기때문이였다. 그러나 그는 때이르게 뇌출혈을 만나 병석에 누웠기때문에 정삼이를 잘 이끌어줄수가 없었다.
정삼은 자기는 늘 운수가 나쁘다고 한탄하였다. 그가 입직한 후에 공장은 생산을 중단하지 않으면 안되였는데 공장의 약동하는 동음이 멀리로, 아득한 그 어딘가로 사라져가면서 그에게 넘치던 많은 의욕도 빼앗아갔다고 할수 있을것이다. 여러 사람들에게서 지청구를 들으면서 한편으로는 위축되고 한편으로는 반발하면서 살아온 그가 마음을 많이 의탁한것이 주승혁이였다. 승혁은 비날론공장을 사랑하는 그의 심정을 귀중히 여겨주었고 따뜻하게 대해주었던것이다.
《정삼이, 희망을 잃어선 안된다. 비날론을 사랑하는 그 마음을 변함없이 간직한다면 넌 인생의 보람을 반드시 찾게 될거다.》 하고 승혁은 언제나 그에게 말해주었다.
지금 정삼은 자기 인생의 보람을 찾게 되는 그런 시기가 왔다고 생각하였다. 비날론생산공정을 되살리는 투쟁에 아직도 젊은 육체에 넘치는 힘과 열정을 다 바쳐 헛되이 살아온 지난날의 오욕을 씻으리라고 그는 각오하였다.
요새는 아침출근길이 참으로 즐겁다. 용접을 하면서 일으키는 불꽃들, 칭찬해주는 말들, 동무들과 일하면서 나누는 그 롱담들이 다 즐겁기때문에 그것을 마중해가는 길이 또한 기꺼운것이다.
오늘 아침엔 친근한 주승혁아바이를 만난것이 즐거움을 더해준다.
《아바이, 잠을 잘 자야 해요. 잠이 명약중의 명약이라더군요.》 하고 그는 잠을 설친다는 승혁에게 충고를 주었다.
《어이구, 정삼이가 마치 의사처럼 말하는구나. 알겠다, 내 명심하지.》 승혁은 허허 웃었다.
공장정문가에 세워놓은 방송선전차에서 노래소리가 울려나오고있었다. 또한 각지에서 비날론공장으로 달려온, 제복들을 입고 어느 단위의 기동예술선동대라는 완장을 팔에 두른 기동예술선동대원들이 취주악을 울리면서 로동자들을 축하해주고있었다.
정삼이와 승혁이가 미처 그 소속들을 다 알수 없는 기동예술선동대원들의 열렬한 축하의 꽃물결을 헤치면서 정문을 통과했을 때 방송선전차에서 곧 시작하게 될 사회주의경쟁요강을 발표하고있었다.
《이번에 조직하는 사회주의경쟁은 여느때 하던 경쟁과는 좀 다른것 같애요.》 하고 정삼이가 머리를 기웃거리면서 말하였다. 《시작부터 와드드하단 말이예요.》
《그야 다를수밖에 없지. 위대한 장군님의 말씀을 받아안고 진행하는 사회주의경쟁이니까. 지금은 누구나 다 자기의 충정의 열도가 어느정도인지 당앞에 검토받아야 하는 때거던. 그러니 응당 지난날의 경쟁과는 달라야 하는거야.》
승혁의 정색한 말은 정삼에게 그 어떤 각성의 침을 찔러 바싹 정신을 긴장시키는것만 같았다.
(검토받아야 할 때라면 내가 남들에게 뒤져서야 되겠는가!)
승혁은 계속 말하였다.
《이런 시를 들어봤나? 〈희망찬 래일이 우리를 부른다〉.》
《난 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 시는 우리 공장사람들의 심정을 담은 시다. 그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단다. 백두의 번개는 쳤다, 우리모두 비날론폭포로 화답을 하자고 말이야.》
《명문장이로군요.》 하고 정삼은 감탄을 하였다.
《그 구절은 우리가 해야 할 의무를 똑똑히 자각케 하는거지. 그 시를 지은 사람이 누구인지 아니?》
정삼이가 호기심이 어린 눈길로 승혁을 보니 그의 얼굴에는 왜선지 고통스러운 빛이 어두운 구름장처럼 떠있는것만 같았다.
《우리 공장 설계실에 있는 강혜경이라는 처녀란다. 훌륭한 처녀야.》
승혁은 이 말을 남기고 공업기술연구소가 있는쪽으로 가고 정삼은 2카바이드직장 수리작업반실로 들어갔다.
먼저 출근한 수리작업반성원들이 작업복들을 갈아입고 휴계실에 모여있었다. 김준선반장은 길다랗고 널직한 탁의 한쪽면에 무슨 문건들을 펼쳐놓고 보면서 글을 썼다. 강희선아바이는 돋보기안경을 끼고 진지하게 《로동신문》을 들여다보고있었고 안경쟁이청년인 원동식은 담배를 피우며 저 혼자의 상념에 잠겨 희미한 미소를 짓고있었다. 박건일과 김성철은 이번 사회주의경쟁의 발기자가 누구인가를 놓고 다투고있었다. 박건일은 중앙지도소조책임자가 사회주의경쟁의 발기자라고 주장하였고 김성철은 지배인이라고 우기고있었다.
리정삼이 그들사이에 끼여들었다.
《참 형님들, 이런 시를 들어보았어요? 백두의 번개는 쳤다, 우리 비날론폭포로 화답을 하자 하는 구절이 있는 시를 들어봤는가 말이예요?》
박건일이 제꺽 응수하였다.
《오, 그거 설계실의 설계원처녀가 지은 시지. 정말 좋은 시야. 난 그 시를 가지고 가사를 지어보았다네.》
한바탕 아는체 하려던 리정삼은 순간에 풀이 죽어 입을 벌리고 건일을 쳐다보았다.
《아니, 건일동무가 가사를 쓰는줄은 몰랐는걸. 역시 팔방미인이야.》 하고 김성철이 느물거렸다.
그러건말건 박건일은 굵직하게 잘 울리는 목소리로 흥분하여 말하였다.
《내 도예술선전대 작곡가에게 곡을 부탁해봐야겠어. 그 노래가 나오면 내 한번 멋지게 불러보자는거야.》
《노래야 우리 송희가 잘하지.》 김성철이 무슨 소설책을 들여다보는 송희에게 말을 던졌다.
요사이 송희에게서는 웃음을 보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그가 최성복과의 결렬된 사랑때문에 고민하고있는줄은 아직 작업반의 누구도 모르고있었다.
《노래요?》 송희는 영문을 깨닫지 못하고 김성철을 의문의 눈길로 쳐다보았다.
《소설에 심취되여 우리가 무슨 소릴 하는지 모르고있구만. 박건일동무가 갑자기 노래가수가 되겠다고 해서 송희보다도 노래를 못 부르면서 어벌크게 나서지 말라고 퉁을 주었소.》
《그래요?》 송희는 흥심없이 말하며 례의적인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때 갑자기 원동식이 말하였다.
《세상에서 제일 듣기 좋은 소리는 아이가 태여나면서 내지르는 소리라고 하더군요.》
좌중에 유쾌한 웃음이 터지였다. 원동식의 안해가 결혼후 5년만에 드디여 임신했다는것을 잘 알고있는 사람들은 그가 아들을 안아보는 상상을 하고있었음을 짐작하였다.
강희선아바이는 지금 진행되고있는 말들이 별로 들어볼 가치도 없는 시시한 소리라는듯 여전히 근엄한 자세로 《로동신문》을 뒤적거리면서 한마디 하였다.
《온 세계가 우리 공화국이 〈광명성2〉호를 발사한것을 두고 벅적 끓고있구만. 미국놈들과 남조선괴뢰놈들은 우리가 또 미싸일발사를 했다고 나발을 불어대고있소.》
잠시후 작업반성원들이 다 들어와앉았고 김준선반장도 문건정리를 끝내였다. 강희선아바이가 《로동신문》의 사설을 독보하고나서 김준선반장이 조회를 시작하였다.
《오늘부터 사회주의경쟁이 시작되오. 난 우리 작업반이 이 사회주의경쟁에서 본때를 보이자는거요.》
김준선은 이렇게 서두를 떼고나서 자기의 말에 대한 반응을 가늠해보듯 반원들을 휘둘러보았다. 즉시 건일과 성철이가 《해봅시다.》 하고 나섰다. 다른 사람들은 긍정한다는듯 웃으면서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래서 말이요.》 하고 김준선은 두주먹을 탁우에 올려놓았다. 《내 생각엔 우선 당원들이 응당 앞장에 서야겠은즉 당원들로서 결사대를 조직하자는거요. 어떻소?》
《난 찬성입니다. 반장동무가 아주 좋은 제기를 했다고 봅니다.》 하고 강희선아바이가 미더운 눈길로 준선을 보면서 말을 했고 다른 당원들은 긍지높은 얼굴로 느긋한 미소를 지었다. 건일이 이럴 때 자기의 목소리가 쉬여서는 안되겠다는듯 크게 소리쳤다.
《반장동무가 그야말로 아주 적중한 시기에 아주 적중한 제기를 했다고 생각하오.》
그리고 그는 손을 번쩍 쳐들었다.
그런데 저으기 불쾌한 눈빛으로 김준선을 쳐다보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리정삼이였다. 어제날엔 준선이를 몹시도 고깝게 여기였지만 어언간에 그에게 감심하고 그 사내다움에 반하게 되기까지 하는 정삼이였다. 특히나 그는 2년전의 어느날 밤 준선이가 자기 집에서 기르던 개를 끌어다준 그 일을 잊을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김준선반장의 처사에 참을수 없는 모욕감을 느끼면서 격분하게 되는것이였다. 그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준선을 향해 부르짖었다.
《반장동지의 제기는 잘못된것입니다.》
좌중의 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얼굴이 길죽하고 입이 큰 정삼이를 쳐다보았다. 정삼은 계속 말하였다.
《왜 당원들만 결사대를 한다는겁니까. 직맹원들은 사람이 아닙니까. 난 직맹원들도 함께 결사대에 참가해야 한다고 봅니다.》
김준선의 긴장했던 얼굴에 미소가 어리였다. 그는 정삼이에게 따뜻한 눈길을 던지고나서 직맹원들의 얼굴들을 하나하나 찾아보았다.
《그래 직맹원들도 다같이 하자오?》 하고 준선이 물었다.
《같이합시다.》 4명의 직맹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였다.
《좋소, 직맹원들도 당원들과 함께 결사대원이 되기요.》 준선이가 말하였다.
리정삼의 얼굴에 순간에 밝은 웃음이 피여올랐다. 그는 그럼 그렇겠지 하는 시틋한 얼굴로 제자리에 앉았다. 그가 자리에 앉자마자 김송희가 조용히 일어났다.
원래 많은 사람들앞에 나서기를 싫어하는 송희인지라 누가 어쩌지도 않는데 괜히 얼굴이 붉어졌고 좌중의 사람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저… 반장동지…》
송희는 자기에게 집중된 반원들의 눈길을 감촉하면서 더욱더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는 예술소조원이여서 때없이 군중들앞에 나서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으나 담이 작아서인지 얼굴이 붉어지는 천성과 좀처럼 결별하지 못하고있었다.
《무슨 일인지 어서 말하오.》 준선이가 고무하듯 웃어보이였다.
그제야 송희는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청년동맹원들도 결사대에 참가하게 해주십시오.》
작업반원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웬간해서는 잘 나서지 않던 송희까지 일어나서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듯 결사대에 참가하겠다고 하는것이 어째선지 모두의 마음을 흐뭇하게 해주는것이였다.
《청년동맹원들도 하겠소?》 준선이가 청년동맹원들에게로 눈초리를 돌리였다.
두명의 청년동맹원들이 호응해나섰다.
《좋소.》 흥분한 김준선이 주먹으로 탁상을 가볍게 쳤다. 《그럼 우리 작업반 전체 성원들이 다 결사대원이 됩시다. 사회주의경쟁에서 다 1등을 해보기요. 그래서 장군님의 명령을 결사관철하고나서 기쁜 마음으로 평양견학을 갑시다.》
반원들의 얼굴에 싱글벙글 웃음이 떠돌았다.
《금수산기념궁전(당시)에 영생의 모습으로 계시는 어버이수령님도 뵈옵고 장군님께서 계시는 평양의 거리도 한번 돌아보는게 우리들의 한결같은 소망이 아니겠소. 10차례의 사회주의경쟁에서 다 1등을 하고나서 평양견학을 보내달라고 당당히 제기해야지. 우리 가족들이랑 다 데리고 가기요.》
하여 김준선의 작업반원들은 모두 결사대가 되여 사회주의경쟁에 뛰여들게 되였다.
그들은 보수부문에 속하였는데 여러 직장 수리작업반원들과 같이 중합직장의 생산공정을 꾸리는 작업을 하였다. 배관들을 련결하고 탕크들을 제작하는 작업이였다. 다른 작업반은 용접공, 제관공들이 각기 자기가 맡은 일만을 하였으나 김준선의 작업반원들은 네일 내일이 따로없이 한사람같이 움직이였다. 그만큼 그들은 다기능공들이였고 각오가 남다른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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