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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련재 《너를 사랑하기에》 제1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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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선구자
댓글 0건 조회 3,262회 작성일 23-06-01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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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 회)

제 2 장

2

(1)


주승혁이가 공업기술연구소 합성실에서 실험기구들을 정리하는데 중년나이의 소장이 들어왔다. 그는 기업소 기술과장을 하던 사람으로 연구사업측면보다는 행정실무에 능하다는 평을 듣는다. 생산이 활성화되지 못하는 조건에서 연구사들도 개건공사를 위한 작업에 동원될 때가 있다. 주로 퇴근후에 제기되는 지대정리와 같은 작업인데 소장은 빈틈없는 사업조직으로 맡겨지는 작업과제들을 책임적으로 해제끼군 하였다.

《주동지.》 소장은 여느때없이 느슨한 웃음을 짓고서 불렀다.

소장은 자기보다 나이가 썩 우이고 직장장사업을 오래 한 승혁을 존중하였다. 그러나 많은 경우 별로 웃지 않고 랭정하게 대하였는데 오늘은 이상하다.

《지배인동지가 주동지를 찾습니다.》

《무슨 일이요?》 승혁은 의아한 표정으로 소장을 쳐다보았다.

《글쎄… 나도 딱히는 모르겠는데 중요한 일이 제기되였다는가봅니다. 다른 생각말고 어서 지배인실에 가보라니까요. 빨리 보내달라니까…》

연구소를 나서 행정청사를 향해 걸음을 옮기면서 승혁은 머리를 기웃거리였다. 직장장시절에는 지배인방에도 자주 드나들고 어떤 날에는 하루에도 몇번씩 만나군 하던 지배인이였지만 연구사로 된 후에는 별로 만나지 못하였다. 일개 연구사가 지배인을 직접 대상할 일이란 거의나 없는것이였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겼단 말인가? 아마 비수은법으로 알데히드를 생산하는 문제일것 같은 생각이 든다. 몇년전에 합성직장에서 어떻게 하나 소규모적인 방법으로라도 초산을 생산해보자는 계획밑에 지배인이 주승혁을 불러 토론했던적이 있었다. 비수은법알데히드생산문제가 그때 제기되였고 승혁은 기술료해차로 서해안의 화학공장에 다녀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 시도는 별로 빛을 보지 못하였었다.

주승혁이가 지배인방에 들어가니 정준학지배인은 한창 전화를 하다가 승혁에게 앞상의 의자를 가리키며 앉으라는 손짓을 하였다. 승혁은 벽에 붙어있는 쏘파에 앉아 지배인의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거 말입니다. 무조건 이달중으로 결속이 돼야 합니다.》 지배인은 열이 올라 상대방에게 소리지르고있었다.

키가 큰 미끈한 체격에 지성미가 어린 얼굴의 지배인이 취하는 소탈한 몸짓과 내지르는 목소리에서는 활기가 넘친다. 이전에는 일이 잘 안되고 근심이 많아 대체로 찌프린 인상이던 그 얼굴이 장군님께서 다녀가신 후로 다림질을 한것처럼 부드럽게 펴인것 같았다. 하기야 어찌 지배인뿐이겠는가. 많은 종업원들이 환한 얼굴로 일하고있지 않는가.

정준학지배인은 전화를 끝내고 제자리에서 일어나 앞상으로 나와 앉았다. 그는 담배갑을 들고 승혁에게 담배를 권하고 자기도 피워물었다.

《주아바이에게 중요한 부탁을 하자고 찾았소.》

정준학은 승혁이보다 나이가 서너살아래인때문인지 허물없는 투로 《아바이.》라고 부르고있었다.

《부탁이요?》 승혁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지배인을 보았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군요.》

《아바이가 날 좀 도와주어야 하겠습니다.》

《내가 지배인을 도울 일이 뭐 있겠습니까?》

《다름이 아니라 합성직장을 살리는데 한몫 해달라는거요.》

《아니, 지배인동무가 무슨 착오를 하는게 아니요? 나야 직장장직에서 해임된 사람이 아닙니까?》 승혁은 못마땅해하는듯 한 표정을 짓고 지배인을 여겨보았다.

《내가 그걸 모를가봐 강조를 하는거요? 하지만 생각해보란 말이요. 아바이만큼 합성생산공정에 파악이 깊은 사람이 어디 있소.》

지배인은 진지하고 심각한 눈길로 승혁을 마주보다가 다시한번 말하였다.

《어디 말해보오, 누가 또 있소?》

승혁은 지배인의 안타까운 심정이 리해되였다. 비날론중간체생산공정의 개건에서 합성직장의 복구는 선차적으로 나서는 과제였다. 그런데 오래동안 합성생산공정이 돌지 못한 형편에서 이제는 기술자, 기능공대렬이 거의나 무너져버렸다.

이 복잡한 유기합성공정복구를 이끌어나갈만 한 기술력량이 결정적으로 부족하였다. 정준학도 화학전문가이긴 하지만 합성공업에 대한 현장파악이 없었다. 그는 명석하고 열정적인 일군으로 지배인사업을 하는 지난 기간에 어떻게 하나 기업소를 살려보자고 애도 많이 썼고 일정하게 실적도 올리였다. 그가 지배인을 하면서 가성소다생산공정과 염화비닐생산공정을 현대적으로 다시 일떠세웠던것이다. 제대군인출신으로 화학부문의 대학교육을 받았고 2.8비날론련합기업소에 배치되여 현장에서 좀 일하다가 공장대학에서 교육사업도 하고 학장사업도 하였으며 그후 기업소 행정일군으로 소환되여 지배인으로까지 발전한 그에게 있어서 부족한것은 여러 생산공정에 대한 현장경험이였다. 비날론계통의 생산공정들이 너무나 오래동안 돌아가지 못하였기때문이였다.

하여 그는 주승혁과 같이 오랜 현장경험을 가진 능력있는 기술자들을 중시하였고 그들이 자기의 역할을 충분히 하도록 하는데 깊은 주의를 돌리고있었다.

《현재 김명수동무가 합성직장장을 하고있지만 그 사람도 기술이 약하오.》

준학은 이렇게 말하면서 벽에 붙어있는 개건 1단계 공사공정도를 쳐다보았다. 그 공정도에는 합성직장의 알데히드와 초산생산공정개건계획이 큼직한 붓글씨로 씌여져있었다.

《그러니 주아바이가 합성직장에 가서 개건을 봐주어야 하겠소. 한마디로 지배인의 고문이 되여달라는거요.》

《내가 합성에 가서 지배인의 고문이라 하면 그곳 사람들이 웃겠는데요.》 승혁은 여전히 얼굴을 찌프리고 퉁명스러운 소리를 해보았다.

그러나 그의 가슴속에서는 어쩔수 없는 힘으로 활력의 물결이 일어번지고있었다. 그것은 합성직장의 재생을 눈앞에 바라보는 기껍고 쩌릿한 감정의 소용돌이이기도 했다. 승혁은 눈굽이 뜨거워져서 머리를 숙이고 담배를 피웠다.

《엇드레질은 그만하시오.》 정준학지배인은 느슨하게 웃으며 말하였다.

《아바이가 합성을 살리는데 강건너 불보듯 하지 못할것이라는걸 내 다 안다니까. 책임비서동무와도 이미 토론이 있었소. 그러니 합성직장에 가서 개건공사에 참가해주시오.》

승혁은 덤덤히 앉아있었다.

《아바이, 우리 합성직장을 잘 살려봅시다. 아바이의 손때가 묻은 생산공정들이 아니요. 우선 어떻게, 어떤 식으로 살려낼것인가를 타산해야 하겠소.》

《알겠습니다.》

승혁이가 지배인방을 나서는데 준학지배인은 문어구까지 따라나오면서 《그럼 수고를 해주오.》 하고 말하며 친근한 웃음을 지어보이였다.

승혁은 뻐근한 가슴을 안고 기업소구내의 한복판을 꿰지른 넓다란 아스팔트포장도로를 걸어갔다. 시원하게 뻗어간 도로처럼 자기의 앞날이 다시금 훤하게 펼쳐지는것만 같았다.

10년나마 버림받다싶이 했던 합성생산공정을 다시 복구한다는 그것이, 그 복구투쟁의 한복판에 뛰여든다는 사실이 주승혁에게는 마치 사그라져가던 인생의 불꽃이 다시 일면서 갑작스럽게 세찬 불길로 타오른것과도 같았다. 그처럼 그의 인생은 비날론생산계통의 심장부인 합성생산공정과 밀착되여버린것이였다.

그의 머리속에는 지난날의 일들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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