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련재 《조선의 힘》 제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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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회
제 1 편
4
신의주발 평양행 렬차는 날이 어두워서야 도착하였다. 역앞에는 최용건의 승용차와 작전국 대기차가 나와있었다. 마중나온 작전국일군과 악수하면서 최용건은 먼저 《서울은 어떻소?》하고 물었다.
대좌직급을 단 그 일군은 무겁게 한숨을 내그었다.
《상동지, 지금 서울에서는 대단히 힘겨운 싸움이 벌어지고있습니다.》
최용건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부르쥐며 다우쳐물었다.
《어떻게?… 좀 자세히 말하오!》
《지금 적들은 인천항의 안벽을 폭파하고 끝내 인천에 상륙…》
《가만, 그럴게 없이 가면서 얘기하기요. 내 차에 타오!》
차에 오르자 최용건은 인천, 서울 지구의 정황을 하나하나 캐물었다. 적정은 물론 이 지구 방어부대들의 상태, 전투과정을 료해하면서 그는 자기가 예상했던것보다 더 엄중한 위험이 조성되고있다는것을 깨달았다.
작전국의 대좌는 지금 적들이 미1해병사단으로 하여금 주타격을 영등포로 지향시키고 인천-서울간 대도로상에서는 벌써 부평에 들이닥쳤다고 했다.
《부평에?》
최용건이 놀란듯 머리를 돌리자 작전국의 대좌는 재빨리 설명을 달았다.
《인천 동쪽에 있는데 전쟁전에는 미륙군보급사령부가 있었습니다. 수천t의 군수물자를 저장했던 곳인데…》
최용건이 머리를 흔들자 대좌는 입을 다물었다. 최용건이 바란것은 그처럼 자상한 자료가 아니였다.
《부평에서 소사를 거치면 영등포구에 곧장 들어설수 있지 않소?》
대좌는 머리를 끄덕이고나서 한동안 입술을 꽉 악물고있더니 괴로운듯 힘겹게 입을 열었다.
《상동지, 지금 적들이 비행대의 강력한 엄호하에 대도로를 따라 공격하는 형편에서 래일 아니면 모레쯤엔 서울에서 시가전이 벌어질수 있습니다.》
《음-…》
최용건은 불시에 심장한쪽이 뜨끔해져서 어깨를 흠칫했다. 서울이 위기에 처해있다. 서울!… 전쟁이 일어난 첫시기 서울까지 나갔다가 그곳에서 소환되여온 그였다. 그때 최용건은 서울해방작전에 참가한 주타격련합부대들을 련속 공격에로 이끌지 못하고 3일간이나 지체했었다. 3일이라는 시간을 잃음으로써 전선에, 나아가서 전쟁의 국면에 얼마나 많은 난국이 겹쌓였는가는 그후의 사태발전이 잘 말해주고있다. 례사로운 3일, 잃어진 3일을 되찾기 위해 바쳐진 거대한 노력과 희생에 대하여 그는 언제나 가슴저미는듯 한 아픔없이 생각할수 없었다.
최용건은 뜨끔뜨끔 쏘아나는 가슴을 한손으로 꽉 눌러댄채 생각을 이어갔다.
(정세는 극도로 엄중하다. 어떻게 하면 남포와 원산에 있는 부대들을 속히 서울로 기동시킬수 있을가. 하지만 그 부대들도 실상은 아주 적은 력량인데… 지금 장군님께서는 얼마나 마음이 무거우시겠는가?!…)
…최고사령부에 도착하자 대뜸 긴장한 분위기가 피부로 느껴지는듯싶었다. 류달리 조용하고 엄숙했다. 부관실에서 그를 맞이한 강부관장의 얼굴도 여느때와는 판판 달라보였다. 최용건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그에게 손을 들어 대충 답례하며 묵직하게 물었다.
《장군님께선 계시오?》
《예, 지금…》
《보고드리오.》
그는 집무실 문앞에 그냥 서있었다.
그는 골똘히 무슨 생각을 하고있었다. 한꺼번에 너무도 많이 갑자기 생각하고있었기때문에 갈래가 잡히지 않고 가슴만 쿵쿵 걷잡을길 없이 뛰고있었다.
부관장이 그를 에돌아 집무실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 순간 최용건은 집무실에서 울려나오는 웃음소리를 들었다. 여럿이 적어도 네댓명의 사람들이 일시에 그리고 허물없이 즐겁게 웃고있는 소리였다. 깜짝 놀라 머리를 들었다. 자기가 잘못듣지 않았는가싶어 저도 모르게 주위를 둘러보기까지 했다. 그 순간 다시 문이 열리며 부관장이 나타났고 장군님의 우렁우렁한 음성이 울려왔다.
《최용건동무, 어서 오시오!》
그이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몸소 그를 향해 마주나오시였다. 악수를 나눈 후 그이께서는 손수 의자를 당겨 자리를 권하시였다.
《최용건동무, 그간 후비부대조직사업에서 수고가 많았습니다. 갑자기 중요한 일때문에 불렀는데…》 그이께서는 책상우의 서류를 가까이 당겨오시였다. 《우선 이것부터 읽어보시오. 그동안 나는 토론하던것을 마저 끝내겠습니다.》
그제서야 최용건은 방안을 둘러보았다.
기이한 일이였다. 여기에는 아직 전쟁을 상기시키는것이 아무것도 없는듯 했다. 숙연한 평온이 깃들어있는 검소한 집무실, 복판에 놓인 작전대와 탁자, 회전의자와 창가의 화분, 파르스름한 상보를 씌운 받침대우의 라지오, 적갈색의 윤기나는 가죽쏘파, 그 쏘파에 두사람이 그리고 그옆의 접이식의자에 또 한사람이 앉아있었다. 쏘파에 앉은 한사람이 리승기박사라는것을 처음으로 알아보았다. 다른 두사람도 학계에서 명망높은 반백의 학자들이였는데 이름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들이 최용건을 향해 목례를 하자 그 역시 얼결에 답례했다. 그때 장군님께서 의자를 당겨가며 학자들과 마주앉으시였다. 최용건도 전화기들이 놓인 탁자를 등지고 앉았다.
눈앞에 그이께서 전선사령관 김책에게 자필로 쓰신 명령서가 있었다. 그는 먼저 《전선사령부관하 군집단들에서 작전대형을 1개 제대로 편성한 조건에서…》라고 씌여있는 글줄부터 주의깊게 읽기 시작했다.
《전선사령부는 주요방향에 력량과 기재를 집중하고》 《기동성이 높고 강력한 타격력을 가진 기계화련합부대를 전선사령부 작전적예비대로 장악하고》 등의 글줄이 계속되였다. 드디여 그의 눈길은 《기동방어의 형식으로…》 하는 곳에 가 멎었다. 홀연 눈시울이 아프게 죄여드는듯 했다. 방어?… 대구와 부산을 눈앞에 두고있는 지금 장군님께서 방어를 명령하신다?!…
불시로 최용건은 어깨를 흠칫하며 머리를 돌렸다. 등뒤에서 장군님의 호탕하신 웃음소리가 울려왔던것이다.
《여러분의 심정은 알만합니다.》하고 그이께서는 마주앉은 학자들을 향해 웃으며 말씀하시였다. 《우리 조국에 위험이 닥쳐온 이때 여전히 실험실에만 들어앉아 무엇을 내라, 무엇을 해결해달라 하기가 괴롭다는 이야기가 아닙니까?…》
《장군님! 사실 어찌할바를 모르고있다가 장군님께서 불러주셔서야…》
반백의 학자에 이어 리승기박사도 궁싯거리며 어줍게 미소했다.
《루란지세라고 저희들의 소견에도 형세가 위태로와보여 사실… 숨을 죽이고있었습니다.》
《루란지세라!… 뭐 알을 쌓아놓은 형세처럼 그렇게 위태롭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이제부터 력량상 비할바없이 우세한 적과 매우 힘겨운 싸움을 하게 된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두고보십시오. 이제 우리는 온 나라 전체 인민을 궐기시켜 침략자들을 쳐부실것입니다. 그런즉 여러분이 연구사업까지 중단하고 숨을 죽이고있을 필요야 없지 않겠습니까!》
그이께서는 가볍게 웃고있는 학자들에게 담배를 권하시였다. 학자들은 피우지 않는다고 사양했다. 그리고는 타는듯 한 기대에 눈빛을 빛내면서 그이께서 계속 말씀해주시기를 기다리고있었다. 최용건도 은연중 귀를 강구고 그이의 말씀을 마디마디 새겨듣고있었다.
《얼마전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이께서 계속하시는 말씀이였다. 《외국에 가있는 류학생들이 귀국하여 총을 메고 싸우겠다는 전선탄원서를 보내오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전쟁은 반드시 우리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 동무들은 안심하고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공부를 더 잘하기 바란다는 회답전보를 보냈습니다.
물론 지금 전선에서는 한명의 전투원이 귀한 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래일을 생각해야 하며 래일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되 오늘을 반복하는 래일이 아니라 더 좋고 더 훌륭한 래일을 오늘에 준비해야 합니다. 이제 머지 않아 전쟁을 이기고 파괴된 나라의 경제를 복구하고 더 발전시켜야 하겠는데 그때에 가서 또 무에서 새로 시작하겠습니까. 아니, 그렇수 없습니다.
리승기선생! 이제 전쟁을 이기면 그처럼 영웅적으로 잘 싸운 우리 인민을 남부럽지 않게 잘 해입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선생은 그때에 가서야 실험기구며 설비들을 빨리 내라고 요구하겠습니까?!…》
학자들은 스스럼없이 소리내여 웃었다.
최용건은 자기 역시 입을 벙글써하고있는줄 알지 못했다. 장군님께서 하시던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재삼 강조합니다만… 여러분은 과학연구사업에 전념해주십시오. 그럼 또 제기할 문제들이 없겠습니까?… 서슴지 말고 말씀하십시오. 무엇이든 다 해결해드리겠습니다. 그것이 다 우리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우리 인민을 더 잘살게 하기 위한 일인데 무엇을 아끼겠습니까. 한껏 욕심을 부려 제기하십시오. 인민을 위함이라면 욕심이 하늘에 닿을수록 좋습니다!》
학자들은 지금까지 자기들이 느끼던 불안이 가뭇없이 사라진듯 또 소리내여 웃었다. 어언 집무실은 더 밝아지고 더 포근해진듯싶었다. 최용건은 어깨를 쭉 폈다. 그는 장군님께서 학자들과 일일이 작별인사를 나누실 때까지 그쪽의 대화를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열심히 귀를 기울이였다.
학자들이 방에서 나가자 장군님께서는 전화로 김종항비서(내각사무국 부국장 겸임)를 찾으시였다. 내각사무국에서 직접 과학자들의 연구사업을 보장해줄데 대하여 특히 필요한 설비, 자재들을 우선적으로 보장해줄 대책을 세우라고 말씀하시였다.
이윽고 그이께서는 탁자를 에돌아 작전대앞까지 오시였다. 최용건은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곧추 들었다. 비로소 그이께서 전쟁의 엄혹한 현실로 돌아오신것이다. 그이께서는 잠시 지도의 한점을 응시하고계시였다. 서울- 역시 서울이였다.
《최용건동무.》 마침내 그이께서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지금 맥아더란놈이 뭐라고 장담하는지 압니까?… 닷새동안이면 서울을 강점하고 우리의 전선과 후방을 완전히 차단해버린다고 하고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듯 방대한 무력을 가지고도 작은 섬인 월미도를 점령하지 못해 얼마나 발광하였습니까!》
그이께서는 탁상일력을 끄당겨 거기에 가득 씌여진 글들을 한동안 눈여겨보시였다. 그리고나서 천천히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보고에 의하면 월미도의 해안포병들은 불과 4문의 포로 3일동안에 적구축함 3척을 포함하여 각종 함선 13척을 격침격파하였습니다. 그야말로 불사신처럼 싸웠습니다. 포병 한개 중대와 보병 한개 중대의 력량이 약 l 000대의 비행기와 수백척의 함선을 동원한 적의 대병력을 상대로 무려 3일동안이나 섬을 지켜냈으니… 세계전쟁사에도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그들은 우리 인민과 인민군대의 영웅적기개를 남김없이 떨쳤습니다.》
잠시 생각에 잠기셨던 그이께서는 이윽고 지도우에 눈길을 옮기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맥아더는 여전히 방대한 무력으로 서울을 강점하고 락동강전선의 미제8군과 함께 우리 주력부대들을 포위하려고 미친듯이 날뛰고있습니다. 이러한 정세하에서 지금 우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시간을 쟁취하는것입니다. 바로 여기 서울에서 놈들의 모험적인 기도를 파탄시키고 시간을 얻어내야 합니다. 서울방어가 사활적입니다.》
그이께서는 잠시 주의깊은 시선으로 그를 여겨보시는데 그것은 마치 《최용건동무의 생각은 어떻습니까?》하고 물으시는듯 하였다.
최용건은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약간 지릅떠보는듯 한 눈길을 지도우에 떨구고있었다. (지금 장군님께서는 비상한 결심을 가지고계신다.)하고 그는 생각하고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이겠는가, 전선사령관 김책에게 쓰신 명령서에 밝혀있는 《기동방어》일것인가, 아니면 전반적인 기동전일것인가?…)
《최용건동무!》
그이께서 조용히 부르시였다. 최용건은 눈길을 높이 들었다. 그 순간 송곳처럼 찌르는 날카로운 예감으로 장군님께서 이제 전례없는 비상한 그 결심을 말씀하시리라는것을 깨달았다.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장군님의 다음 말씀을 기다렸다. 그러자 그이께서는 준절한 어조로 마디마디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나는 후퇴를 결심하였습니다!》
《후퇴?》
《그렇습니다. 전쟁의 최후승리를 이룩하기 위한 주동적인 조치로서 우리는 전략적인 일시적후퇴를 하게 됩니다. 지금 조성된 정세가 바로 그것을, 단호한 결심을 내릴것을 요구하고있습니다. 지금 적들이 추종국가군대들까지 끌어들여 력량상 비할바없는 우세를 조성하고 인천상륙작전으로 우리의 전선과 후방을 차단하려 하는만큼 우리는 모든 힘을 다하여 우선 락동강전선의 주력부대들을 뽑아야 합니다. 우리 군대의 골간, 우리의 핵심무력이 거기에 나가있습니다. 모든것은 우리 무장력의 기본을 이루는 이 부대들을 구출하는가 구출하지 못하는가 하는데 달려있습니다. 바로 이 부대들이 앞으로의 결정적인 반공격의 기본골격으로 되여야 합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빠른 시일내에 강력한 후비부대들을 조직하며 전체 인민을 침략자들을 반대하는 성전에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그러자면 시간이 필요한데 어데서 그 시간을 얻어내겠습니까… 여기 서울입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여기서 놈들을 저지시키고 당면한 전략적과업을 수행하여야 합니다. 최용건동무, 이 어려운 과업을 최용건동무에게 맡기기로 하였습니다. 서해안방어사령관으로서 곧 서울로 떠나야 하겠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
최용건의 두눈이 숯불처럼 이글거렸다. 관자노리의 힘줄들이 금시 터질듯 부풀어오르고 꽉 틀어쥔 두주먹엔 땀이 홍건했다. 그는 가슴속에 꽉 들어찬 격정과 열화같은 흠모의 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알수 없었다. 벅찬 흥분으로 검붉어진 두볼이 후들후들 떨렸다. 그 어떤 위험앞에서도 결코 드놀지 않는 억센 담력을 지니신 우리의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일성동지!… 이렇듯 한순간 만나뵙기만 해도 마음이 거뜬해지고 한마디 말씀만 들어도 드센 배심이 생기는것을!… 그는 또한번 마른침을 삼키면서 더욱더 허리를 꼿꼿이 폈다. 그러자 장군님께서 또 말씀하시였다.
《어려운 임무입니다. 최용건동무, 이제 열흘이상은 더 서울을 견지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락동강에 나가있는 주력부대들을 구출할수 있습니다.》
《열흘이상!… 예, 알겠습니다. 장군님 말씀대로 꼭… 기어이 막아내겠습니다.》
그이께서는 잠시 검붉어진 최용건의 얼굴을 여겨보시였다.
《밖에 나가 좀 거닐지 않겠습니까? 아 덥군!…》
밖에서는 바람이 불고있었다. 고즈넉한 어둠속에 잠겨있는 정원길을 따라 그이께서 앞서 걸으시였다. 최용건은 묵묵히 그이께서 찍으신 발자국을 그대로 옮겨짚고있었다. 줄줄이 내려드리운 버드나무가지들이 어깨를 스치군 했다.
《최용건동무, 어련하겠소만 이제 서울에 가면 우리 인민군병사들과 인민대중에 의거하여 전인민적항전의 바리케트로 적들을 저지시켜야 하겠습니다.》
그이께서는 무엇인가 더 하고싶으신 말씀이 많은듯 했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가던 그이께서 돌연 최용건을 돌아보시였다.
《참, 이번에 가면 틈을 내여 내 부탁을 좀 들어주시오.》
《예.》
《몇사람의 소식을 몰라 그러는데… 우선 경성기관구의 한덕모라는 기관사를 찾아보시오. 지난 7월에 내가 서울에 나갔을 때 전선원호수송대를 뭇고 맨 선참으로 떠나던 기관사가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성균관대학의 서만우교수와 비행기헌납운동을 발기했던 변영환이라는 상공인도 있는데… 시간이 나는 차제로 만날수 있으면 나의 인사를 전해주시오. 서울에 가있는 문화선전상 허정숙동무를 통해 다른 문화인들 소식은 받았는데 이들은 아직 소식이 없어 그럽니다. 참 잊을수 없는 사람들인데…》
그이께서는 손가까이에 있는 나무줄기를 당겨 잎사귀들을 뜯기 시작하시였다.
하나, 둘, 셋… 어둠속에서 은빛물고기인양 반짝이며 떨어져내리는 버들잎사귀들… 최용건은 부지중 자기의 팔소매에 와붙은 잎사귀 하나를 꼭 쥐였다.
(장군님께선 그때 서울에 반나절밖에 안계셨어도 난 나흘동안이나 눌러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나는 지금 그곳에 회상할만 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 그리움을 가지고 꼭 찾고싶은 사람이 단 한사람도 없으니… 과연 어찌된 일인가?!…)
그는 놀랐다. 발밑에서 바람에 불린 가랑잎들이 어수선하게 굴러다녔다.…
해방산언덕의 키높이 자란 나무우듬지너머로 검푸른 하늘의 작은 귀퉁이가 바라보였다. 어데선가 밀려온 구름장들이 밤하늘을 온통 뒤덮고있었다. 창공의 눈물같이 번뜩인 하나의 별빛, 싸늘하게 미소짓고는 구름속에 잠겨버렸다.
《최고사령관동지!》 최용건은 심장에서 피가 솟구치는것을 느꼈다. 《그럼… 떠나겠습니다.》
그이께서는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최용건동무, 어려운 싸움길을 가게 됩니다. 그렇지만… 잊지 말아주시오. 거기엔 우리 인민군병사들과 수십만의 서울시민들이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꼭 명심하겠습니다!》
《나는 믿습니다. 최용건동무, 지금 맥아더는 수만에 달하는 병력과 현대적인 비행기, 땅크, 대포를 가지고 오만하게 날뛰는데 이제 비싼 대가를 치를것입니다. 놈들은 이제 조직된 인민의 힘이 얼마나 거대하며 무서운것인가를 알게 될것입니다. 벌써 놈들은 월미도에서 비참한 패배의 쓴맛을 보았습니다. 이번엔 서울에서 그리고 놈들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에서 전인민적항전에 부딪칠것입니다. 그러므로 놈들이 이 땅에 침략의 발걸음을 들이밀수록 그것은 스스로 함정에 빠지는것으로 됩니다. 우리는 기어이 침략자들에게 수치스러운 패배를 안기고야말것입니다. 자 그럼… 부탁합니다!…》
《장군님!-》
최용건은 그이상 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나 그 한마디 부름속에 자기의 마음속 격정과 맹세를 다 담고있었다.
…정문옆에 최용건의 부관과 자동총수 2명이 풍친 차를 등지고 서있었다. 차광막을 내리지 않은 접수구의 불빛에 철갑모들이 번쩍거렸다.
최용건이 정중하게 거수경례를 올리자 그이께서 그 손을 잡아내리고 꽉 힘주어 잡아주시였다.
군용차들이 발동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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