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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련재 《너를 사랑하기에》 제5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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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선구자
댓글 0건 조회 3,210회 작성일 23-07-24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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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9 회)

제 5 장

5

(2)


성복은 다시금 콤퓨터화수준을 한단계 올리라고 하던 주승혁의 말을 떠올렸다. 사색에 잠겨 자동화과로 돌아오다가 합성직장에서 나오는 주승혁을 만나게 되였다.

《성복이, 네가 요새 얼굴색이 좋지 않구나. 무슨 고민을 하니? 콤퓨터문제가 잘 풀리지 않아서 그러느냐?》

《아니예요. 인생문제가 잘 풀리지 않아서 그래요.》

승혁은 강혜경때문에 상처를 입은데다가 성복이가 무엇때문엔지 고민을 한다는것을 알게 되니 더욱더 가슴이 찢기는것만 같았다.

《우리 앉아서 이야기나 좀 하자.》

그들은 공업기술연구소곁의 잔디밭에 나란히 앉았다. 성복은 친아버지처럼 느껴지는 주승혁에게 모든것을 털어놓고싶었다.

《아저씨 눈에도 내가 신념이 없는 인간으로 보이는가요?》

《네가 누구에게서 허튼소리를 들은 모양이구나.》 승혁의 목소리는 쓸쓸하게 울리였다.

성복은 명수가 딸을 질책하며 한 소리를 말하고나서 덧붙이였다. 《송희 아버지 눈에는 내가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것 같습니다.》

승혁은 명수의 처사가 노여워 속이 후들거렸다.

《네가 사람이 아니면 뭐라는거냐, 헛참.…》 승혁의 목소리가 거칠게 울리였다.

《흑심을 품고 자기 딸을 유혹하려드는 불한당으로 보이겠지요.》

《그러니 지금 너와 송희와의 관계가 편안치 못하겠구나.》

《편안치 못할것도 없지요. 이젠 다 끝장났으니까요.》 성복은 화가 동하는듯 잔디풀을 와락와락 쥐여뜯었다.

승혁은 성복이가 지금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가를 절감할수록 재능있고 열정적인 한 청년의 가슴을 란도질하고서도 태연하게 제노라하면서 돌아치는 명수가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어쩌면 사람이 그렇게 랭혹할수가 있단 말인가.)

《내가 어리석었습니다. 나같은 놈이 한 처녀에 대한 사랑을 품었다는게…》

성복의 이런 비틀어진 소리를 들으면서 승혁은 자기의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은 상처입은 성복의 마음을 잘 위로해주는것이 중요하다.)

승혁은 침착하게 말을 골랐다.

《합성직장장이 신념을 인간의 가치를 결정하는 기본요인으로 본것은 어떤 측면에선 옳다고 볼수 있다. 송희 아버지는 아마 일생을 굳건하게, 억세게 살아온 모양이지. 그 사람이야 군대에서 단련된 제대군인이니까 남보다 투철할게다. 하지만 그 사람은 자그마한 결함을 너무 어마어마하게 본것 같구나. 너나 나나 당과 수령을 받드는 그 한마음이야 변할리가 있겠니. 하지만 생활과정에 일시적으로 동요할 때도 있는거지, 왜? 그건 이 세상에 완성된 사람이 없기때문이다. 나도 동요한 때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내 아들 선철이의 대학선택에서 나타났고 지금도 난 그것을 후회하고있단다.

난 선철이를 나처럼 화학공부를 시켜 비날론공업의 대를 잇게 하고싶었었다. 그런데 고난의 행군을 하면서 공장이 멎어버리게 되자 너무 신경을 쓰던 끝에 한순간 자포자기의 상태에 빠지게 되더구나. 그때 아들이 중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입학시험을 치게 되였는데 의학대학을 지망하는게 아니겠니. 내가 화학공대에 갈 생각이 없느냐고 하니 비날론의 숨이 끊어져 아버지도 사람들도 기운을 잃었는데 자기는 우선 사람들의 육체적생명을 돌보는 길을 택하고싶다고 하더구나. 그땐 나도 깜박 정신이 돌았댔지. 그래서 네 맘대로 해라 하고 승낙해버렸지. 하긴 나에게 할아버지되는분이 고려의사였단다. 치료를 받자고 가난한 농민들이 많이 찾아왔댔다.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일찍 집을 떠나 강산을 떠돌아쳤으므로 우리 형제에게 자기의 뒤를 잇게 하고싶어 회초리를 들고 공부시키려 애썼지. 아마 그 영향이 작용한것 같기도 해. 나도 소년때 좀 의학에 호기심이 생겼댔는데 비날론이 나타나서 나의 혼을 빼앗아가버렸거던.

결국 우리 선철이는 의학대학에서 공부하게 되였는데 지금에 와선 내가 완강하지 못했던것을 후회한단다. 이것도 달리 보면 신념이 없는 표현이 아니겠니. 하지만 네 아버지는 널 우리 공장에 입직시켰고 훌륭한 콤퓨터기술자로 자라게 하지 않았니. 그래서 난 네 아버지를 높이 본단다. 그리고 네가 보다 큰일을 할것을 바라는거고…

성복아, 너무 자신을 학대하지 말거라. 남들이 어떻게 보건 제 도리를 잊지 않고 직심스레 일하면 된다. 그래 전번에 내가 말한걸 생각해봤니? 콤퓨터화의 수준을 한단계 올리는것 말이다.》

《꼭 해내겠습니다. 그래서 내 존재를 꼭 시위하겠습니다.》 성복은 여전히 우울한 표정을 지우지 못한채 말하였다.

《아니다, 네 존재를 시위하려 할것이 아니라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크나큰 사랑과 리상이 깃들어있는 비날론, 네 아버지의 한생이 깃들어있는 비날론을 더욱 훌륭하게 빛내여 우리 조국, 우리 민족의 존재를 세계에 시위하기 위해 자기의 정력을 다 바쳐야 하는거야.》

승혁의 두눈은 물기가 어려 번쩍이였다. 그는 성복에게 말하면서 동시에 자기자신에게도 강조하고있었던것이다.

《알겠어요.》 성복의 목소리가 힘있게 올리였다. 《날 믿어달라요.》

승혁은 성복의 의지가 맥박치는 목소리를 듣고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얼마나 큰일을 하고있으며 앞으로 또 얼마나 큰일을 할수 있는 성복이인가.)

승혁은 의분이 끓어넘치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안깐힘을 다하면서 걸어갔다.

(이런 청년들을 우리가 아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재능이 있고 기개가 있고 자존심이 있는 이런 청년들을… 우리 비날론공장의 미래들을 귀중히 여겨야 할게 아닌가.)

《주아바이.》

승혁은 자기를 찾는 소리에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추었다. 그 목소리는 그 시각 자신의 분노를 자아내는 그 사람의 목소리였다.

승혁은 돌아섰다. 그리고 자신이 마치 그를 만나려고 합성직장으로 걸음을 재촉해왔던것처럼 느끼였다.

명수가 느슨한 미소를 짓고 바라보고있었다. 최근에 와서 거의나 볼수 없던 그러한 친근한 미소였다. 화해할 마음이 동하였는가? 아니면 사회주의경쟁총화에서 1등을 하여 마음이 너그러워진것인가?

《무슨 일이요?》 승혁은 거친 목소리로 물었다.

명수는 승혁의 시푸녕스러운 태도를 탓하지 않고 말하였다.

《오늘 저녁 식사를 함께 합시다. 우리 직장이 생산부문에서 1등을 했는데 초산비닐생산공정 시운전책임자에게 인살 해야지요.》

《고맙소.》 승혁의 말은 랭랭하게 울리였다.

승혁은 명수를 향해 마주 웃어줄수 없는 자기자신이 기이하게 여겨졌다.

명수의 친절한 태도는 승혁의 옹친 마음을 풀어주는것이 아니라 그의 가슴속에 울분의 감정들을 가두어두고있던 자제력의 제방을 무너뜨리려 하고있었다.

승혁은 씨근덕거리다가 말하였다.

《내 사실 직장장동무와는 될수록 마주서지 않으려 했댔소. 초산비닐을 성공적으로 뽑아내는 그날까지는 많은것을 참으면서 살자고 했댔소.》

《아니, 도대체 왜 그러는겁니까?》 명수는 어리둥절하여 얼굴을 찌프렸다.

《내 오늘 최성복이를 만났댔소. 그에게서 직장장동무가 그를 신념이 없느니 뭐니 하면서 모질게 비난한 소리를 들었소.》

《그게 뭐 어쨌다는겁니까? 내가 그를 그렇게 보는데요. 주아바이가 최성복이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겁니까?》 명수는 볼멘 소리를 내뱉았다.

《상관이 있소.》 승혁은 성칼지게 말하였다.

마침내 제방은 무너졌다. 격분의 감정이 길길이 날뛰면서 쏟아져내린다.

《성복이는 먼저 눈을 감은 내 친구의 아들이여서 내가 남다르게 생각하는 애요. 아니, 그보다도 성복이는 초산비닐생산공정의 콤퓨터화를 담당한 기술자요. 그런데 직장장동무가 그에게 아픈 상처를 입혔단 말이요. 훌륭한 청년을 밀어주지는 못할망정 그게 뭐요. 내 이것만은 참을수가 없단 말이요.》

승혁은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계속하였다.

《청년들의 진심을 볼줄 알아야 하오. 근시안적으로 사람을 보지 마시오. 당신은 낡았소. 당신은 진부하오. 그리고 당신은…》 승혁은 숨을 후 내쉬고나서 뒤를 이었다. 《너무나 모진 사람이요. 그 집 송희가 그래 성복이를 버리면 행복할것 같소? 아니요. 그 애는 불행하게 될거요. 딸의 행복을 망치지 마시오.》

《그만하오.》 명수는 사납게 눈을 흘기면서 소리질렀다. 《내 일은 내가 알아 처리할것이니 아바이는 상관하지 말기요.》

《상관하지 말자고 했소. 그러나 그 일만은 상관해야겠소. 내 말을 명심하시오. 청년들을 사랑하시오. 비날론의 미래를 사랑하란 말이요.》

《난 나대로의 사랑을 할것이니 아바이가 걱정할게 없소.》 명수가 씹어뱉듯이 말하였다.

《그렇겠지. 동문 자기식대로 사랑하겠지. 자기식대로 청년들을 사랑하고 우리 비날론을 사랑할거요. 헌데 김명수동지의 식이라는게 별로 찬양할게 못될것 같구만.

이왕 사랑에 대한 말이 나왔으니 좀더 명백히 찍어 말하고싶은게 있소. 아마 동문 비날론에 대한 사랑이 부족하다고 누군가 말한다면 노발대발할거요. 바로 지금처럼 말이요. 나도 동무가 남달리 비날론을 사랑한다는것을 인정하는바요. 그런데 동무의 사랑은 순결하지 못하오. 지금까지는 잘 몰랐는데 오늘 성복이의 말을 듣고 확신하게 되였소. 동무의 사랑은 아직 무엇인가 부족하다고…

그래 동무가 사랑을 바치면서도 자기에게 차례지게 될 그 어떤 자기의 몫을 바라지 않았단 말이요? 그래, 비날론을 생각하기 전에 딸 송희의 운명문제를 먼저 생각지 않았단 말이요? 동무가 지닌 사랑이 순결했다면 콤퓨터화의 기둥인 성복이에게 그렇게 아픔을 줄수가 없었을거요.

내가 너무 혹독하게 말한것인지도 모르겠소. 하지만 성내지 말고 늙은이의 어리석은 속단인셈치고 들어두시오.》

승혁은 주먹으로 홱 공기를 내리베고나서 돌아섰다. 속에 응어리진것을 다 털어놓으니 후련하였고 동시에 가슴속이 텅 빈것처럼 허탈감을 느끼였다.

(까짓거, 이제부터 맘대로 날 생각하고 맘대로 날 대하라지. 그만하면 할소리는 시원하게 한셈이다. 앞으로도 할소리는 하면서 원칙을 지킬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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