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련재 《너를 사랑하기에》 제7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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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4 회)
제 6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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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산비닐정류작업반휴계실에 모여앉은 20여명의 젊은이들이 존경의 빛이 어린 눈으로, 혹은 호기심과 열정이 넘치는 눈으로 승혁을 바라보고있었다. 그들은 승혁의 설명을 들으면서 초산비닐생산공정에 대한 기술학습을 진행하고있는중이였다. 승혁은 학습장에 무엇인가 부지런히 적으면서 자기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젊은 운전공 한사람, 한사람을 정어린 눈길로 바라본다. 이들이 앞으로 현대적인 초산비닐정류공정의 운영을 담당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기술학습만으로 끝내고싶지 않았다. 더구나 이 작업반은 승혁이가 합성직장에 들어와 첫 로동생활을 시작한 곳이였다. 여기서 그는 한생 직종을 바꾸지 않고 일하리라는 각오를 가지고 직심스레 배우고 일에 전념하여 35살에 벌써 초산비닐정류공으로서 가장 높은 기능급수인 8급공으로 되였다. 그래서인지 자꾸 지난날의 추억이 떠오르고 처음으로 공정을 돌리는 젊은이들에게 무엇인가 당부하고싶기도 했다.
오늘도 그는 계획된 학습을 기본적으로 끝내자 한바탕 자기의 체험담을 들려주리라 작정하였다.
《…무엇이 중요한가. 그건 자기 직업에 대한 애착이요. 어디 더 좋은 직업이 없겠는가 두리번거리지 말란 말이요. 한 직종에 들어붙어 그 분야를 파고들어 꼭 1인자가 되겠다고 결심해야 해. 비날론공업의 심장부를 지켜섰다는 긍지를 가지고 부지런히 배우고 부지런히 기능을 련마하고 부지런히 일하느라면 자기도 모르게 기둥으로 자라나게 되는거지. 문제는 사랑이란 말이요. 인생의 모든것을 다 쏟아붓는 사랑이지. 최영빈이라고 이전에 알데히드작업반 반장을 하던 사람이 있었소.》
주승혁이 막 최성복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고 하는데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체격이 그쯘하고 잘생긴 젊은이가 전기가열기의 설계를 담당했다고 자기 소개를 했다.
《동무요? 그래 어떻게 됐소?》 승혁은 반가운김에 미소를 짓고 대뜸 물었다.
젊은 설계원은 설계에 들어가기 전에 전기가열기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싶어 왔다고 말하였는데 어쩐지 침울하고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있었다. 승혁은 이상한감을 느끼면서 설계원을 데리고 작업반휴계실을 나섰다. 조용한 운전조작실에 들어가서 차근차근히 전기가열기의 원리를 설명하였다. 그런데 설계원의 얼굴에는 점점 공포감이 짙게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남자치고는 드물게 피부색이 흰 얼굴이 컴컴해지는것 같았다.
승혁이가 말을 끝내자 설계원은 단호하게 말하였다.
《확실히 위험합니다. 폭발이 일어나면 책임질 사람은 주승혁동지를 내놓고는 설계를 한 내가 아니겠습니까. 아무래도 주승혁동지가 제출한 의안서에다 증기를 전기로 직접 가열해도 그것이 합성탑의 폭발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담보서를 붙여야 하겠습니다. 그 담보서에는 기사장뿐만아니라 동력과장, 열관리과장, 기술발전과장, 합성직장장들의 수표가 있어야 합니다. 그 담보서를 받기 전에는 설계를 못하겠습니다.》
《설계원동무, 기사장이 의안서에 수표했으면 다지 담보서가 무슨 필요요?》 승혁은 아연하여 눈을 쪼프렸다.
《주아바이야 의안자니까 목을 내대도 무방하겠지만 일단 사고가 나면 나야 억울하지 않습니까.》
《어디 동무 맘대로 해보오. 하지만 설계도면은 빨리 내놓아야 하오.》
젊은 설계원은 어쩐지 휘청거리는듯 한 걸음으로 운전조작실에서 나갔다.
(비겁한 녀석같으니…)
이때 기사장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촉매용 담체가 들어와 촉매생산공정을 돌리니 촉매직장으로 와달라는것이였다.
촉매의 활성이 떨어져 많이 고심한 주승혁에게 있어서 촉매생산공정이 돈다는것은 더없이 기쁜 소식이였으나 현재는 초산비닐합성공정이 돌지 못하니 큰 의의가 없게 되였다. 그는 더욱더 전기가열기에 신경을 쓰게 되였고 설계원의 처사가 괘씸하게 여겨졌다. 자기가 내놓은 안이 많은 사람들의 의혹과 불신을 자아내는것만은 사실이였기에 리해하자고 애쓰지만 초산비닐합성공정 시운전이 드티여지는것을 생각하면 치미는 격분을 금할수가 없었다.
승혁은 속으로 설계원을 욕하면서 촉매직장으로 갔다. 촉매생산공정운전조작에는 한명산기사장을 비롯하여 일군들과 기술자들이 모여있었다. 승혁이가 촉매생산공정물계에도 환하다는것을 알고있는지라 모두 반갑게 그를 맞았다. 류량지시가 의도대로 되지 않는다고 한다. 승혁은 인차 류량계설치위치에서 약간의 모순점을 발견하고 위치를 수정하도록 하였다. 그렇게 하니 운전이 제대로 되였다.
돌아오면서 한명산에게 설계원에 대한 불만을 말할가 하다가 그만두었다. 어쨌든 설계를 빨리 내놓으면 될것이다. 두고보자고 생각하였다.
승혁은 밤에 다시 촉매직장으로 갔다. 촉매가 빨리 확보되여야 하기에 자연히 신경이 씌여지는것이였다. 그가 가니 생산공정이 멎어있었다. 촉매생산용 전기보이라의 물공급뽐프가 고장나서 수리하고있었다. 로동자들과 함께 뽐프를 수리하고있던 한명산기사장이 승혁를 반겨맞았다.
《마침 잘 왔습니다. 주아바이, 뽐프의 출구압력이 그렇게 높지 않아도 될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승혁은 호주머니에서 전자수산기를 꺼내들었다. 그의 몸에서는 언제한번 전자수산기가 떨어져본적이 없었다. 그는 초기선정한 압력보다 낮은 압력에서도 촉매를 생산할수 있다는것을 인차 계산해냈다.
《맞습니다. 괜히 뽐프에 부하를 많이 주었댔군요.》 하고 기사장이 말하였다.
뽐프수리가 끝나 생산공정을 돌리였다. 한명산기사장은 승혁에게 담배를 권하였다. 담배를 몇모금 빨고나서 승혁은 입을 열었다.
《기사장동무, 전기가열기제작을 추진시켜주어서 고맙습니다.》
《난 주승혁동지가 고마운데요. 초산비닐생산을 내밀수 있는 방도를 찾아주지 않았습니까. 비날론생산공정을 다 살려놓고 비날론까지 뽑아내고서 장군님을 모셔야지요. 올해 2월 장군님께서 기업소에 찾아오시였을 때 그이께서 만족하실만 한 대답을 올리지 못한것을 생각하면 밤에 자다가도 소스라쳐 일어나군 합니다. 내가 일군의 자격이 부족하지요.》
한명산기사장의 가슴에 타고있는 충정의 불길이 승혁을 감동시키였다.
(모두 훌륭한 일군들이다. 그러니 우리 공장의 일이 쭉쭉 펴나가는것이지. 전기가열기제작도 문제가 없다.) 하고 생각하니 힘이 생기는것만 같았다.
촉매직장을 나선 승혁은 집으로 향하였다. 집에 들어가 속옷을 갈아 입으리라 작정하였다. 피곤이 몰려들어 눈이 자꾸 내려감기는데 생각은 다시 전기가열기에로 달린다. 설계원이 제가 말한 일군들의 수표를 다 받아내고 설계에 들어갔는지 궁금하였다. 그 수표를 다 받아내느라고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고있는지도 모른다.
(에이, 비겁한 녀석…)
승혁은 입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자전거를 몰아가다가 깜박 정신이 흐려지는 순간에 길가의 나무를 들이받았다. 어둠속에 쓰러져 한참 있다가 겨우 일어났다. 이때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사람이 곁에 멈추어섰다. 그는 자전거에서 내려 승혁을 부축하였다.
《주승혁동지구만요.》
승혁은 상대방이 누구인지 알수 없었으나 그는 승혁을 알고있었다. 그는 자기의 자전거를 끌고 승혁을 부축하여 집까지 데리고갔다. 집에 도착하여 누구인가고 물었는데 《비날론공장사람입니다.》 하는 한마디 말을 남기고 가버렸다.
그 다음날 승혁은 출근하지 못하였다. 아들 선철이가 유능한 의사들을 데리고 와서 진찰해보고 갈비뼈에 금이 갔으니 절대안정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내렸다.
집에 누워있노라니 걱정하는 전화들이 걸려온다. 승혁은 넘어져서 약간 상했는데 며칠 쉬고 나간다고 대답을 하였다.
저녁에 강혜경이 병문안을 왔다. 아들에 대한 사랑이 깊어지니 자기에게도 관심이 많을것이라고 생각되였다. 아프고 괴로운 속에서도 청춘들의 사랑은 그에게 위안을 주는것만 같았다.
《설계가 바쁘겠는데 면회를 왔구나.》
문득 혜경에게 설계실에서 전기가열기설계가 어떻게 되였는지 알고있느냐고 묻고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어쩐지 두려운 생각이 들어 바재이는데 혜경은 신중한 표정으로 이윽히 승혁을 내려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아버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전기가열기때문에…》
승혁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그러니 네가 내 마음을 다 들여다보고있었구나. 선철이 그 녀석이 이 애에게 말했을가?)
그런데 혜경의 입에서는 더욱더 놀라운 말이 흘러나왔다.
《아버님의 전기가열기에 대한 설계를 제가 담당하게 되였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하고 승혁은 숨이 차서 물었다.
《설계담당자가 담보서를 달기 전엔 설계를 못한다면서 복잡하게 놀기에 설계실에서 론의가 많았습니다. 제가 자진하여 맡았습니다. 전 본래 장치설계가 전문이였습니다.》
《네가 정말… 고맙구나. 넌 폭발이 생길가봐 겁나지 않니?》
《전 아버님을 믿습니다. 그리고 한시바삐 비날론을 뽑아내야 한다는것을 명심하고있습니다.》
《혜경아.》
주승혁은 혜경의 두손을 꽉 잡았다.
《네가 나에게 큰 힘을 주는구나. 이제는 만시름이 풀리는것 같구나.》
승혁의 두눈에는 눈물이 글썽하였다.
문득 자기가 초산비닐정류공정 운전공들에게 하던 로파심어린 당부가 떠오르면서 스스로 자신이 가소롭게 여겨져 피식 미소를 머금게 되였다.
혜경이와 같은 청년들에게 무슨 훈시가 필요하단 말인가. 이들의 가슴속엔 이미 사랑이 활활 불타고있지 않는가. 그 초산비닐정류공정 운전공들이라고 다를수 있겠는가.
이런 젊은이들, 이런 사람들이 달라붙었는데 어찌 위대한 장군님의 말씀을 관철하지 못하겠는가. 어찌 장군님께 충정의 보고를 제때에 올리지 못하겠는가.
승혁은 흥분과 격정으로 가슴이 뻐근해지는것을 느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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