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련재 《너를 사랑하기에》 제5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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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5 회)
제 5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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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날론이야말로 그의 희망이고 힘의 원천이였다.
(비날론폭포로 화답을 하자.)
강혜경이 쓴 시구절을 입속으로 뇌이면서 얼핏 밖을 내다보던 승혁은 깜짝 놀라 몸이 굳어졌다. 직장건물 앞도로를 걸어가는 강혜경을 띠여보았던것이였다.
혜경은 도면두루마리를 손에 쥐고 바닥을 내려다보면서 걸어가고있었다. 어쩐지 혜경의 걸음에는 힘이 없어보이였고 그 어떤 슬픔에 짓눌려있는것처럼 보이였다. 승혁은 아픔이 못 견디게 명치끝을 쑤시고듦을 느끼였다.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것일가? 혹시 아직도 나를 원망하고있는것이 아닐가?
《혜경아.》 그는 저도 모르게 건물밖으로 나가 나직이 불렀다.
혜경이가 펀듯 놀라더니 머리를 쳐들었다. 처녀는 당황함이 어린 눈길로 승혁을 바라보더니 인사를 하였다.
《어디 가는 길이냐?》
《수직방사직장에 나왔다가 설계실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그래?》
승혁은 어떻게 해서든지 분명 크게 상처를 입었을 처녀의 마음을 위안해주어야 할 도덕적인 의무감을 느끼였다.
더 길것없이 그를 붙들고 무슨 말이든 해야 한다. 그러나 하고싶은 말은 무척 많은것 같은데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겠는지는 똑똑치 않았다.
《혜경아, 잠간 나와 말 좀 하자꾸나.》
《예.》
혜경은 승혁이가 이끄는대로 구석진 곳으로 갔다.
《혜경아, 너 내가 밉지?》 승혁은 갑자르다가 입을 열었다.
《무슨 말씀입니까?》 혜경은 의아한 눈길로 쳐다보았다.
《내 다 안다. 내가 잔사처리공정을 합성직장건물안으로 옮겨야 한다는 제안을 들고나와서 너의 훌륭한 건물설계가 허사로 되지 않았느냐?》
《아이참, 그게 무슨 대단한거라고…》 혜경은 뜻밖에도 미소를 띄웠다.
《전 일없습니다. 난 지금 그에 대해 아무런 미련도 없습니다. 그러니 너무 마음쓰지 마십시오.》
《그래? 그렇다면 좋고…》
승혁은 혜경의 진심을 투시해보듯 지그시 그의 희고 갸름한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혜경은 고개를 숙이고 두손으로 도면두루마리를 더욱더 가늘게 말고있었다.
《혜경아, 네가 내 심정을 리해해주었으면 좋겠다. 비날론공장을 현대적으로 개건하기 위해 난 할수 있는껏 다 해보자는거다. 그래서 내 선철이를 통해 네가 잔사처리공정건물설계를 했다는것을 알면서도…》
《전 다 압니다. 그러니 그에 대해선 더 말씀하지 마십시오.》 혜경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말하였다.
승혁은 자기의 변명투의 언동에 스스로 언짢아졌다. 자신이 어쩐지 비루하게 느껴졌다. 혜경이가 장차 내 며느리가 될수도 있는 처녀이기때문에 부디 리해를 바라는것인가?
승혁은 강잉히 자신의 마음을 다잡았다.
아니다! 나는 혜경이가 꺾이지 말고 비날론공업의 기둥으로 자라기를 바랄뿐이다. 그렇다, 그외 다른 사심은 없다.
《혜경아, 내 너에게 부탁하고싶은것은…》
이때 잔사처리공정 설비조립에 동원되였던 보수공 한명이 달려와서 승혁의 팔소매를 잡아당겼다.
《아바이, 우리 부직장장동지가 찾습니다.》
《알겠소. 곧 가지.》 승혁은 시끄럽다는듯 손을 저었다.
보수공은 혜경이가 승혁이처럼 바쁜 사람을 왜 붙들고 시간을 보내는지 알수 없다는듯 마뜩지 않는 눈으로 혜경의 아래우를 훑어보았다.
그리고 승혁에게 다시한번 《다 기다립니다.》 하고 말하고는 돌아섰다. 그가 얼마간 멀어지자 승혁은 말을 이었다.
《혜경아, 난 네가 의기를 잃지 말고 계속 사업에서 성과를 올리기를 바란다. 그래, 난 네가 계속 사람들의 선망속에 살기를 바란다.》
《알겠습니다. 좋은 말씀 해주어서 고맙습니다.》
혜경은 머리를 약간 쳐들며 다시금 웃어보이였다.
그런데 그 웃음은 왜선지 랭정해보이였고 승혁이 이전에 느끼던 그 발랄함과 생기가 없어보이였다. 승혁은 가슴속에 그 어떤 안개같은것이 가득차는듯싶었고 하여 자기 가슴을 찢어발기고싶도록 안타까왔다. 언제인가 강영식이 딸에 대해 비꼬듯 하면서 말하던것이 떠올랐다. 강영식은 자기 딸에겐 남보다 자기를 돋보이려고드는 경향이 있다고, 그 정도가 지나치다고 말했었다. 그때 승혁은 그건 자기의 능력이 그만큼 뛰여나고 자신심이 넘치기때문일것이라고 좋게 말했었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확실히 그의 아버지 강영식이 딸의 결함을 정확하게 진단한것만 같았다.
그렇다. 혜경은 남들에게 돋보이려는 자기의 지향이 좌절당했기때문에 무척 자존심이 상했을것이고 지금도 그 상처는 그대로 남아있다.
분명히 아들의 사랑도 그때문에 시련을 겪을것이다.
《됐다, 어서 가봐라. 다시한번 말하지만 결코… 결코 꽁한 처녀로는 되지 말아. 너야 원래 대범한 처녀가 아니였니.》
《말씀을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혜경은 깍듯이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뒤돌아 걸어갔다. 승혁은 아릿한 심정으로 혜경의 뒤모습을 바라보았다.
혜경에게 하고싶은 말을 했는데 왜 이렇게 가슴이 후련하지 못할가? 승혁은 결연히 몸을 돌이켜 잔사처리공정설비조립장으로 걸음을 옮기였다.
믿자, 혜경이를 믿자.
혜경이는 그렇게 옹졸한 성격의 처녀가 아니다. 당당히 비날론공장의 미래를 떠메고 나갈수 있는 청춘이다. 그렇다, 난 믿는다.
잔사처리공정설비조립장에서는 조립을 책임진 보수직장 부직장장이 김명수를 비롯한 합성직장 기술일군들과 무슨 열띤 론쟁을 벌리고있었다.
보수직장 부직장장이 선망의 미소를 띠우고 승혁을 맞이하는데 김명수는 시푸녕스러운 표정으로 건성 승혁에게 머리를 끄덕인다.
잔사처리공정을 직장건물안으로 옮기는 문제가 제기되여 충돌을 한 후로부터 격화된 그들의 감정마찰은 계속 지속되고있었다. 명수는 잔사처리공정 설비보수와 조립현장엔 될수록 낯을 내밀지 않았고 승혁은 될수록 그를 피하였다. 그는 어쩐지 명수와 마주서기가 지긋지긋하였다. 하지만 초산비닐생산공정의 시운전이 성공하는 그날까지는 불쾌한 모든것을, 그 어떤 난관이나 괴로움도 묵묵히 이겨나가리라 마음먹은 승혁이다.
그는 잔사처리공정조립현장에 갑자기 명수가 나타난것에 의아스러움을 느끼면서 보수직장 부직장장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 생겼소?》
《주아바이, 우리가 토론을 해보았는데 말입니다. 이 저장조들을 이렇게 위치를 바꾸어 조립해도 될것 같다고 보는데… 어떻습니까?》
무섭게 사업전개력이 강하면서도 또한 무섭게 일솜씨가 꼼꼼한 일군인 부직장장은 크기가 서로 다른 저장조 두개를 가리켰다.
《아니, 그건 왜 그렇게 한다는거요?》 승혁은 볼멘 소리를 했다.
《그렇게 하면 조립하기가 쉽고 그러니 시일을 앞당기게 된다는거지요.》 부직장장은 여전히 사근사근한 웃음을 짓고 말하였다.
승혁은 보수직장 부직장장이 김명수의 그 어떤 기술적인 주장에 유혹당했음을 깨달았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릴 하오.》 그는 퉁명스럽게 말하였다. 《허튼 생각말고 설계도면대로 하오.》
이때 김명수가 참을수 없다는듯 끼여들었다.
《아바이, 우리가 보건대 일없을것 같은데요. 그렇지 않소?》 명수는 지원을 바라듯 합성직장에서 오래 근무한 설비관리원을 돌아보았다.
《별로 큰 차이가 없습니다.》 늙수그레한 얼굴에 주름살들이 얼기설기했으나 체격이 박달몽치처럼 단단해보이는 설비관리원이 승혁과 명수사이의 그 어떤 공간을 바라보면서 정중한 어조로 대답하였다.
《동무가 뭘 안다고 그러오?》 승혁은 그 어딘지 먼곳을 바라보는듯 한 설비관리원의 눈길을 잡아챘다.
승혁에게 끌리운 설비관리원의 두눈이 당황하여 허둥거리고있었다.
《동무같이 반짓부리 아는 사람들이 문제란 말이요. 동무가 설비에 대해선 좀 안다고 할수 있을거요. 하지만 잔사처리공정을 운영해보기라도 했소? 똑똑히 아는가 말이요. 모르면 하라는대로 하란 말이요.》 승혁은 성이 독같이 나서 서슴없이 모욕적인 말을 내던졌다.
승혁의 말이 곧 자기에게 하는 말이라는것을 모르지 않는 명수는 얼굴이 벌겋게 되여 헛기침을 깇었다.
그러나 승혁이가 화가 날수밖에 없는것은 저장조들의 합리적인 배치안을 놓고 참으로 많은 고심을 했기때문이였다. 그는 거의 일주일을 자지 못하면서 조립략도를 그려서 설계실에 넘겨주었다. 원료 및 반제품 저장조들의 합리적인 배치안을 내놓기 위해서만도 100여장이 넘는 조립략도를 그리였다.
《아바이, 어디 한번 생각 좀 해보십시오. 이렇게 조립하면 우린 결정적으로 시일을 당기게 됩니다.》 명수가 절절한 목소리로 하는 말이였다.
그는 그저 일을 빨리 내밀자는 의욕에 불타고있었다.
《직장장동무의 심정은 리해되오.》 승혁은 어조를 눙치며 온화하게 말하였다. 《그러나 설사 좀 힘들고 시일을 잡아먹는다고 해도 그대로 해야 하오. 내가 백번, 천번을 생각해본거요.》
《에이 참-》 명수는 속이 내려가지 않는듯 씨근거리였다.
《직장장동무가 정 내 말을 받아들이기 힘들다면 기업소 기술일군들, 설계일군들을 다 모여놓고 협의를 해봅시다.》
승혁은 마치 타협이라도 하듯이 말하였다. 더는 명수와 목소리를 높이면서 정면충돌을 하고싶지 않았다.
《됐습니다.》 보수직장 부직장장이 말하였다. 《주아바이말대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보수공들에게 소리쳤다. 《자, 시작해보자구.》
승혁은 기분이 상해 그 자리를 떠나는 명수의 뒤모습을 보며 가늘게 한숨을 쉬였다.
왜 명수와는 계속 다투게 되는것인지 기이하게 생각되였다.
따뜻하게 협력하면서 일을 해나갈수는 없단 말인가. 무엇때문인가? 다음순간 그의 눈앞에는 혜경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혜경이와 같은 새 세대 청춘들에게 보다 훌륭하고 조화롭게 일떠선 생산공정들을 넘겨주어야 한다. 그러면 내 할바를 하는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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