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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련재 《조선의 힘》 제5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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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선구자
댓글 0건 조회 2,735회 작성일 23-08-31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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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1 회

제 2 편

23


만성적인 최현의 병은 정신, 육체적으로 과로할 때 그리고 오래동안 추위속에서 지낼 때에 특히 더했다. 고열과 심한 경련을 동반한 그 병세는 흔히 4∼5일간, 때로는 1주일나마 계속되군 했다.

그날도 최현은 자기의 육체를 게염스럽게 좀먹기 시작하는 병세때문에 불안해하고있었다. 특히 오늘래일중으로 최고사령부에서 파견한 련락군관이 도착하게 되여있어 더욱 안달복달하고있었다. 그는 벌써 군단내 여러 중급간부들과 인민유격대 대장들까지 불러놓고있었다. 련락군관이 전쟁제3계단의 작전적방침과 기본전선의 반공격에 배합한 제2전선부대들의 전투임무를 가지고 올것이 틀림없기때문이였다. 이 중대한 시각에 또 주기적인 병세가 발작하기 시작하였다. 최현은 이를 악물고 병마와 싸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곁의 사람들이 자기의 병증세를 눈치챌가봐 각별히 조심하였다. 특히 일단 맘만 먹으면 최현으로서도 어쩔수 없이 혀를 내두르게 하고야마는 리숙을 떼여버릴 구실을 찾고있었다.

그러는차에 련락군관이 도착하였다. 오후였다. 5명의 끌끌한 자동총수들이 대좌직급의 작전국 방향참모를 호위해왔다. 전선을 돌파하여 수백리길을 쉬지 않고 달려온 그들의 얼굴은 거뭇거뭇하였고 신발과 동복바지가랭이에서는 얼음이 와삭거렸다. 최현은 어깨에 걸친 털외투깃을 활 펴들며 차가성을 가진 방향참모를 부둥켜안았다.

방향참모는 한동안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였다. 밤낮 눈속을 헤치고 칼바람을 맞으며 달려온탓에 입술이 말을 듣지 않았다. 눈섭과 턱수염우엔 허옇게 성에가 불려있었다.

최현은 손수 그를 지휘부가 자리잡은 민주선전실로 데리고 들어가 몸을 녹여주며 장군님께선 건강하신가, 장군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가 하고 조급히 묻고 또 물었다. 방향참모를 호위해온 자동총수들에게까지 그는 손수 더운물을 고뿌에 따라주었다. 병사들이 송구해하자 그는 어성을 높였다.

《어서 들라구. 장군님께서 파견하신 사절이 아닌가. 그래서 이 군단장이 부어주는거야!》

고뿌에 가득 부은 더운물은 그들의 속을 덥히게 할 작정으로 최현이 따로 준비하게 한것이였다.

얼마후 민주선전실에서는 군단군정간부회의가 열렸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일성동지께서 제시하신 전쟁제3계단의 작전적방침과 제2전선부대들의 활동방향이 전달되였다.

장군님께서는 전쟁제3계단은 적의 공격을 좌절시키고 반공격으로 넘어가 적들을 38°선이남으로 몰아내면서 끊임없는 소모전으로 적의 력량을 소멸약화시키는 한편 전쟁의 종국적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우리의 력량을 튼튼히 갖추는것이라고 밝혀주시였다.

제2전선부대들앞에는 주력부대들의 반공격에 합세하여 맹렬한 배후교란작전을 벌리며 적들이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하지 못하도록 퇴로를 가로막고 큰 포위환을 형성할데 대한 작전적방침이 제시되였다. 이를 위하여 제2전선의 기본력량을 전선서부의 대동강, 림진강지역에로 기동시키며 일부 부대들은 전선동부에서의 적의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동해연선으로 적극 진출시킬것이 명령되였다.

최현은 자기의 병세도 잊은듯 했다. 대동강, 림진강류역에로 기본력량을 즉시 기동시킬데 대한 구절을 거듭 읽었다. 그는 이것이 비상히 중대한 사변을 의미한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그는 말라터진 입술을 혀로 추기며 벅찬 흥분에 몸을 떨었다. 장군님께서 적후의 제2군단을 주타격방향의 작전에 불러주신다고 생각하니 흥분을 이길수 없었다.

그는 장군님께서 주신 작전방침에 준한 전투 및 기동계획을 세우고 련합부대, 독립부대들의 임무를 확정하였다. 이어서 각지의 여러 유격대 대장들과 협의하였다. 북강원도의 거의 모든 인민유격대장들이 모여왔었다. 회양과 평강, 이천, 철원, 세포, 화천인민유격대를 이끄는 각이한 사람들이였다. 지난날의 군당위원장, 농맹위원장, 새파랗게 젊은 사람, 대머리진 사나이, 말을 타고 달려온 사람, 어깨우엔 렵총을, 허리춤엔 콜트권총을 찬 사람 등 각양각색이였다.

협의회가 한창일 때였다. 군단장의 치료시간을 얻지 못하여 안절부절하고있던 리숙은 민주선전실쪽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사람들이 옥신각신하는 소리를 들었다. 무심결에 리숙은 그쪽으로 가보았다. 여러필의 말들이 발을 저겨디디며 서성거리고있었는데 울장너머쪽에 말발구 한채가 서있었다. 군단지휘부 위병장이 그 발구에서 내린 장대한 사나이와 다투고있었다. 그 사나이는 허술한 솜동복에 군관혁띠를 띠고있는데 량쪽에 각기 권총집이 매달려있어 위엄을 돋구었다. 손을 허리에 짚고 버텨선것이 천하를 쥐락벼락하는 장수같은 기상이였다. 그가 을러메였다.

《이보게, 가서 군단장동지한테 제꺽 보고하는게 좋을거야. 금강인민유격대 대장이 〈혀〉를 끌고왔다구 말이야!》

《안됩니다. 대장동무 혼자서 들어가십시오.》 키는 작았지만 위병장도 만만치 않은 고집불통이였다. 《지금 회의중인데 〈혀〉가 다 뭡니까. 우리 군단장동지 성미를 몰라서 그러는것 같은데…》

《왜 몰라. 알아두 잘 알지!》

《예?》

《글쎄 가서 보고하라니까. 그러다 이놈의 〈혀〉가 가지고있는 중대한 비밀이 시간을 놓쳐 쓸모없이 된다면 자네가 책임지겠나?》

《아니 그런 〈혀〉는 매일 잡다싶이합니다. 아시다싶이 우리 적후투쟁부대들에서는…》

《적후에서 싸우긴 매 한가질세. 그래 내 말을 들어주겠나 안주겠나?》

그들이 싱갱이를 하는동안 리숙은 발구우의 포로를 보았다. 미군장교놈이였는데 놀랍게도 누군가 개털모자를 씌워놓았다. 그놈이 얼가봐 무던히도 왼심을 쓴것 같았다. 바오래기로 단단히 결박했는데 그것도 안심치 않아서인지 맨머리바람인 한 소년이 그 바줄을 붙들고있었다. 소년은 새파랗게 얼어든 입술을 겨우 움직이며 가까이 다가온 리숙에게 무슨 인사말을 하였다.

리숙은 소년에게 다정히 미소했다.

(이애도 빨찌산인가?!…)

그때 위풍당당한 유격대장이 《혀》를 끌어내리라고 지시했다. 위병장이 끝내 지고만것이였다.

《성일이만 따라오고 동무들은 여기서 기다리오!》

소년은 바줄을 잡아채며 《혀》를 끌어내렸다. 벌써 장대한 유격대장은 두개의 권총집을 앞으로 더 보기좋게 끄당기며 위병장을 따라 민주선전실 뜨락으로 들어가고있었다. 성일이라고 불리운 소년이 잘 걷지 못하는 《혀》를 독촉하며 그뒤를 따라갔다. 리숙은 그때 부지불식간에 소년에게 달려가 그의 두손을, 새빨갛게 얼다 못해 시커먼 빛으로 죽어가는 귀바퀴를 따뜻이 문질러주고싶은 충동이 이는것을 참고있었다. 긍지높은 소년이였지만 보기에도 딱할 정도로 얼어있었던것이다.

얼마후 민주선전실안에서 떠들썩한 소음이 흘러나왔다. 최현군단장의 청높은 소리도 들렸다. 《혀》를 끌어온 사람들을 치하하는것 같았다.

부관이 나와 참모부쪽으로 달려갔다. 잠시후 영어통역을 겸하는 기무참모를 데리고왔다. 그들이 들어간후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른뒤에야 기무참모가 《혀》를 끌고 참모부로 갔다. 성일이라는 소년도 뒤따라 나왔다. 그러나 문턱을 넘어서자바람으로 바람벽에 붙어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소년의 한손엔 지금까지 《혀》의 머리우에 씌워져있던 허름한 개털모자가 쥐여져있었다.

리숙이 다가가 조용히 물었다.

《너 왜 우니?》

그러자 억눌린 흐느낌소리가 멎었다. 몰래 눈물을 닦는것 같았다. 리숙이 또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니?…》

소년은 눈굽을 찍고있던 팔소매를 내렸다. 뻘겋게 된 눈으로 리숙을 보더니 헐떡이듯 한숨을 내그었다. 아까 리숙을 향해 미소를 지어보일 때처럼 그애의 얼굴은 이그러졌다.

《난 그놈이… 괭장한놈인줄 알구… 내 모자까지 씌워주면서… 난 귀가 다 얼면서 왔는데 글쎄 그 (개)자식이… 무슨 후방근무장교라나요!…》

소년은 너무 분해 또 울음을 터칠듯 한 기색이였다. 리숙이 그 애를 위로했다.

《후방근무장교도 많은걸 알고있단다. 얘, 너무 분해할건 없어.》

《그래도 우린… 최현대장동지한테 큼직한 선물을 가져온다구 막 흥이 나 하댔는데… 그만에야 그 (개)자식 같은게… 그따위 허줄한 놈팽인줄은 모르구…》

리숙은 여러가지 말로 소년을 위로하면서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하여 한성일이라는 이 소년이 《꾀꼴새소년빨찌산》의 참모장이며 그들 소년빨찌산대원들이 미군장교놈을 생포했다는것, 그리고 금강인민유격대는 최현군단장과 인연이 깊으며 800명으로 자란 유격대의 적극적인 투쟁으로 아직 서화면에는 단 한놈의 적도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는것 등을 들었다.

협의회가 끝나자 여러 유격대장들이 유쾌하게 웃으며 나왔다. 서로 어깨를 툭툭 치며 롱질을 하기도 했다.

《여보, 우리한테 좀 들렸다 가지 않으려나? 전엔 도에 회의갔다 올 때마다 그쪽 신세를 지군 했는데 오늘은 내가 한턱 쓰지.》

《그럴새가 없군, 유감스러우이.》

《꿀술이 있는데두?》

《그럼 며칠후에 들르지. 미국놈들을 다 몰아내구. 응?!》

최현은 3명의 유격대장들과 같이 맨 나중에야 나왔다. 앞서 나온 대장들이 인사를 하고 떠나갔다. 말을 타고 가는 대장도 있고 걸어서 가는 사람도 있었다. 철원군유격대장은 2차철원해방전투때 인민군대와 협동작전을 잘해준데 대한 감사로 박정덕사단장이 로획하여 보내준 말 5필을 모두 끌고왔었다. 대장이 탄 말을 따라 4명의 호위대원들이 위세를 뽐내며 떠나갔다. 여러 대장들이 그를 부러워했다.

그때 최현이 문득 생각난듯 소리쳤다.

《가만, 곡산!… 곡산대장은 벌써 갔소?》

《아닙니다. 여기 있습니다.》

울담너머에서 솜모자를 눌러쓴 나이 지숙한 사람이 대답했다.

《아까 말하던 그 녀장부를 좀 만나보기요. 걸이대로 미국놈 셋을 잡았다는… 같이 왔다구 하지 않았소!》

《예, 여기 있습니다.》

곡산유격대장은 같이 온 사람들가운데서 키가 작은 한 녀인을 데리고 왔다. 민주선전실에서 흘러나온 불빛이 그 녀자의 얼굴을 비쳐주었다. 키도 작고 얼굴도 작고 다소곳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는것이 얌전때기 새색시같았다.

《이 동무가?…》

최현은 놀랐다. 이렇듯 젊고 아릿다운 녀성이 걸이대로 미국놈을 제꼈다니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곡산유격대장이 허연 입김을 내뿜으며 말해주었다.

《미국놈들에게 온 가족을 다 잃은 동무입니다. 남편과 두살잡이 애까지 모두 일곱이나… 그래서 밤마다 외통길을 지켜섰다가 걸이대로 세놈씩이나 잡았습니다. 놈들속에선 지금… 미친 녀자 하나가 돌아다니며 무섭게 달려든다고 소문을 내면서 이 동무를 잡지 못해 지랄발광이지요. 벌써 우리 유격대에 들어와있는줄은 모르구…》

《음-》

최현은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 이상 더 물을 필요는 없었다. 그는 젊은 녀인에게 손을 내밀었다.

《알고지냅시다. 군단장 최현이요.》

《홍이순이라고 합니다.》

《음- 홍이순!… 알게 되여 반갑소. 지금 녀성소대를 책임졌다지?》

《예.》

《잘 싸워주- 그럼 승리한 다음… 또 만납시다.》

이어 최현은 나머지 유격대장들, 한성일소년과도 일일이 악수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들이 어둠속으로 사라져갈 때까지 한자리에 서서 지켜보고있었다.

리숙은 그의 뒤에 서있었다. 비로소 치료시간을 짜낼수 있게 되였다.

《군단장동지!》

리숙은 조용히 불렀다. 인제는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양보하지 않을 생각이였다.

최현이 몸을 돌렸다.

《오 간호장! 마침 잘 왔소.》 그는 이제야 리숙을 발견한듯 했다. 《들어가자구. 오늘은 무슨 명절날같군… 어서 들어가자니까!…》

리숙은 그를 따라 민주선전실로 들어갔다. 방금 모임이 있은 뒤여서 방안은 써레기담배연기로 꽉 차있었다. 최현은 앉은뱅이 책상우에서 가방을 열고 두툼한 봉투를 꺼내였다.

《자, 아버지 편지!》하고 최현은 말했다. 《련락군관이 가져왔더군.》

《?!…》

《사연깊은 편지야. 장군님께서 친히 리숙이 아버지더러 편지를 쓰라고 하셨다는거야.》

《장군님께서?… 그럼 장군님께서 저를 아십니까?…》

《아시구말구, 잘 아시지. 그래서 이렇게 편지도 보내주신게 아닌가!… 자, 어서 받으라구.》

《?!…》

꿈같은 일이였다. 리숙은 두손을 가슴에 얹고 최현의 상기된 얼굴을 물끄러미 넋잃은듯 쳐다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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