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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력사소설 《숙적》 제1부 (제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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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선구자
댓글 0건 조회 2,117회 작성일 23-10-10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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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회)

제 1 장

갑오년 정월대보름

1

(2)


건청궁은 경복궁의 제일북쪽 북악산아래에 자리잡고있었다. 하지만 국왕 고종과 명성황후의 침전으로 쓰이는 곳이므로 지엄하게 취급되고있었다. 건청궁에는 록원이라고 불리우는 소나무가 우거진 정원도 있고 향원이란 못도 있어 퍼그나 아름다운 곳이다. 게다가 향원못에는 향원정이란 아담한 정각도 있고 그 정각과 뭍을 이어주는 취향교라는 무지개다리까지 있어 고종과 명성황후가 즐겨찾군 한다. 너무도 평화롭고 아늑하고 고요한 정원이다.

건청궁의 록원에 함박눈이 내린다. 록원의 나무들도 기암괴석들도 전부 하얗게 단장되였다.

한겨울답지 않게 날씨가 온화하여 오늘 명성황후는 아들인 세자 척과 며느리인 세자비 민씨와 함께 설산을 펼쳐든 궁녀들을 시동하고 이곳을 거닐고있었다.

명성황후는 43살의 중년녀인이라 하기에는 너무도 젊고 요염해보였다. 진주분을 바른 그의 낯색은 눈보다 더 희고 백자기마냥 반들거렸다.

그는 평상복인 당의를 입고있었는데 안에 호백구(여우겨드랑이의 흰털.)를 댄 초록색의 거죽에는 룡이 수놓아져있었다. 당의 아래로는 땅에 철철 끌리는 진홍색적의를 입고있어 록의홍상이란 말처럼 색갈이 조화되여 자못 화려하고도 우아하게 보였다. 더우기 머리에 난모로 쓴 암갈색의 수달피로 만든 아얌은 웃부분을 각종 보태로 장식하고 뒤에는 댕기를 늘어뜨린것이 여간만 호화롭고 사치해보이지 않았다.

《참 푸근한 날씨구나.》

명성황후가 하늘을 쳐다보며 감회롭게 말하였다.

세자도 즐겁게 입을 열었다.

어마마마, 금년의 첫눈이오이다.》

고개를 끄덕인 명성황후가 시녀에게 나직이 일렀다.

《설산을 치우거라.》

고개를 쳐든 명성황후가 두손바닥을 펴들었다. 손바닥에 차분히 내려앉는 눈송아리들, 소리없이 녹아버리는 그것들이 간지럼스럽기도 했다.

《정갈하고 소담하고 차분두 하구나. 금년엔 풍년이 들려나.》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린 명성황후가 아들 세자를 정겨운 눈길로 돌아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그윽한 모성의 정이 함뿍 어렸다.

《동궁, 아바마마께서 동궁이 올해에 만 20살이 되기에 생일연회를 특별히 차려주어 기쁨을 표시하시겠다는 하교를 내리셨소.》

허약하게 생긴 세자 척의 눈빛이 기쁨으로 빛났다.

《소자도 들었소이다. 그날 색동옷을 입고 술통사이로 춤을 추며 아바, 어마 두분 전하를 기쁘게 해드리겠나이다.》

세자보다 두살 우인 세자비 민씨도 얼굴에 웃음을 담았다. 그는 갑신정변때 개화파들에게 참살당한 세도재상 민태호의 딸이다.

소첩도 그러겠나이다.》

그리하오.》

이렇게 대꾸한 명성황후는 혼자소리마냥 시름겹게 뒤를 이었다.

《금년엔 세손을 보면 좋으련만…》

그 말에 세자비 민씨가 죄송스러워 고개를 떨구었다. 그는 시어머니 명성황후를 염라대왕처럼 두려워하였다. 평소에도 사무러운 성미인 명성황후라 3년째나 세손을 낳지 못하는 며느리를 온곱게 볼리 없었다.

이제는 조정은 물론 항간에서까지 세는 나이로 21살인 세자 척이 생식불능아란것을 다 알고있지만 그럴수록 왕위를 계승할 손자를 보고싶은 명성황후의 욕망은 더 불타오르기만 하였다. 여북했으면 언젠가는 짐승을 쌍 붙이듯 아들과 며느리를 이불속에 몰아넣고 온밤 지켜보았겠는가. 젊은 아들과 며느리는 너무도 수통스러워 얼굴을 붉히다못해 눈물까지 흘렸으나 랭혹한 명성황후는 눈섭 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들을 독촉하고 훈계하였다. 아무튼 여직껏 왕손이 없는것이 그 녀자에게는 커다란 걱정거리요, 불행이 아닐수 없었다.

이때 여기로 급히 다가온 승지가 명성황후에게 허리를 굽히고나서 아뢰였다.

《중전마마, 입조하시라는 상감마마의 어지옵니다.》

입조? …알겠다.》

명성황후는 머리를 끄덕였으나 세자와 세자비는 명절날인데 웬일인가 하고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큰머리를 얹은 명성황후가 고종과 함께 나라의 정사가 거론되는 경복궁 근정전에 들어서니 《상감마마 납시오!》 하는 소리가 울렸다.

환관과 궁녀들의 부액을 받으며 국왕 고종과 함께 문무백관들이 손에 홀을 쳐들고 읍을 한 자세로 서있는 전각안에 들어온 명성황후는 고종의 옥좌 옆자리인 발을 드리운 옥탑에 가앉았다.

월대우에 선 인의가 읍을 한 자세로 길게 소리쳤다.

숙배, 4배-》

인의의 말을 받아 찬의가 또 소리친다.

《국, 구-응-》

조정의 중신들이 바닥에 꿇어앉는다.

《바이-》

찬의의 소리에 따라 중신들이 고종과 명성황후에게 머리를 조아려 절을 했다.

-응-》

문무백관들이 고개를 든다. 잠간 동안을 두었다가 찬의가 다시 소리쳤다.

《바-이-》

중신들이 다시금 절을 했다.

《평, 시 - 인 -》

찬의의 호소에 따라 비로소 조정의 문무백관들이 허리들을 완전히 펴고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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