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력사소설 《숙적》 제1부 (제1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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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 회)
제 1 장
갑오년 정월대보름
11
이 시각 천태봉이와 변옥절이는 종각쪽으로 가고있었다. 성난 기상인 태봉이는 헌걸찬 걸음이고 뒤따르는 옥절이는 울상이다.
《태봉아, 가지 마!》
옥절이가 태봉이의 소매자락을 잡고 애타게 빌었으나 태봉은 옥절이의 손을 왁살스럽게 뿌리쳐버렸다.
《머스메들 일에 삐치지 말어!》
《너 혹시 그 도령한테 잘못되면 난 어찌라니…》
《아따, 맨 머스메들인데 무슨 걱정이야.》
《태봉아, 너 죽으면 나도 죽어.》
문득 태봉이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이 가시내가…》
옥절이는 말없이 태봉이를 쏘아보았다. 하지만 사랑으로 불타는 눈길이여서 태봉이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어느덧 종각주위도 어둠이 깃을 펴기 시작했다.
사위를 둘러보며 태봉이가 혼자소리로 중얼거렸다.
《이 량반자식이 왜 안 와? 겁이 났나.》
옥절이가 뾰로통해서 종알거렸다.
《안 올거야.》
《온다.》
《안 와.》
옥절이의 말은 확정적이였다.
《머스메들은 너희 가시내들하군 달라.》
《흥, 밤새 기다려보지.》
태봉이는 들은체도 안했다.
태봉이의 곁에 옥절이가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나 추워.》
《젠장, 따라와가지구 이 성화야.》하면서도 태봉이는 제 저고리를 벗어 옥절이의 어깨에 씌워주었다.
《태봉아, 그 도련님 정말 안 와.》
《네가 어떻게 알아?》
옥절은 호 한숨을 내쉬였다.
《태봉아, 나 진짜 말할테니까 너 욕 안하지?》
《뭘 말이야?》
《실은 낮에… 도련님 나오지 말라구 일러주었어.》
《뭐라구?》
《함께 온 아씨한테 도련님 나오면 죽는다구 했어.》
《정말이가?》
《응.》
태봉은 결김에 주먹을 쳐들었다.
《이 가시내가!》
옥절은 겁에 질려 목을 움츠렸다.
태봉은 쳐들었던 주먹을 내리며 시린 손을 비볐다.
《그 량반자식이 안 나와도 나는 오늘 밤 기다린다.》
옥절이가 우뚝 일어섰다.
《태봉아, 너 그 성미 좀 고쳐.》
《〈장부일언중천금〉은 량반놈들만 외우는 소린줄 아느냐!》
태봉은 의기라기보다 의분에 넘쳐 웨쳤다.
밤날씨는 점점 차지고 바람이 불었다. 그들의 머리우에서 총총한 별들이 추위에 떨고있었다.
옹크리고앉은 옥절이에게 태봉이가 소리쳤다.
《야! 졸지 말어. 얼어죽어!》
옥절은 잠내나는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게 가자는데.》
태봉은 짜증스럽게 소리쳤다.
《혼자 가라잖아.》
《싫어.》
어깨를 흔들던 옥절이는 문득 목소리를 죽여 소곤거렸다.
《태봉아, 우리 고장 고부에서 란리가 일어났대.》
《들었다.》
《일없을가?》
걱정스럽게 뇌이던 옥절이가 별안간 자리에서 발딱 일어섰다. 그리고는 급한 소리로 웨쳤다.
《태봉아! 래일 대궐에, 대궐에 들어가야 하지 않니?!》
태봉이도 정신이 번쩍 들어 옥절이쪽에 몸을 홱 돌렸다. 중전마마께서 래일 밤 달맞이뒤끝에 우리 전라도광대패의 놀이를 구경하시겠다고 했지, 지금 거사와 사당들이 얼마나 애타게 자기들을 기다릴것인가, 빨리 가자!
《옥절아, 빨리!》
이때 불시에 투닥거리는 발걸음소리가 나더니 어둠을 째며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저놈 잡아라!》
옥절이 깜짝 놀라 태봉의 손을 꽉 잡았다.
또다시 《이놈들, 게 섰거라!》하는 소리가 들렸다.
투닥거리며 뛰여오는 소리가 가까와졌다.
옥절은 겁에 질려 태봉의 곁에 바싹 붙어섰다.
《이 년놈들, 마침 있었구나.》
태봉이와 옥절의 앞에 검은 그림자들이 우뚝우뚝 다가섰다.
《우린 포도청에서 나온 포교다. 오라를 받아라.》
라장과 라졸들이 욱 달려들어 태봉이와 옥절이의 몸을 묶었다.
태봉은 몸부림치며 항거했다.
《우릴 왜 묶소? 우린 아무 죄도 없소!》
옥절이도 악에 받쳐 소리쳤다.
《더러운 손을 치우라요. 왜 묶어요?》
검은 바탕에 흰 실로 바둑판모양의 줄을 놓은 더그레를 입고 륙모방망이를 든 라장인듯 한 포교가 빈정거렸다.
《야, 이 년놈들 봐라. 꽤 사납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태봉이와 옥절이는 오라줄에 온몸을 꽁꽁 묶이웠다.
포교가 그들의 등을 떠밀었다.
《걸어라!》
옥절이가 몸을 흔들며 부르짖었다.
《우릴 어데루 끌고가요?》
《걷기나 해.》
포교가 다시금 그들의 등을 우악스럽게 떠밀었다.
한편 힘껏 달려온 엄병무는 종각앞 공지에 이르자 발길을 멈추고 어깨숨을 몰아쉬였다.
잠시후 그는 공지의 이쪽저쪽으로 가보며 어둠속에 대고 소리쳤다.
《여, 광대 없어?》
밤바람에 가랑잎들만이 굴러다녔다.
병무는 락담하여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자기가 한발 늦었다고 생각한 병무는 주먹으로 언땅을 내리쳤다. 그 광대자식이 자기를 얼마나 욕했을것인가. 비겁하고 너절한 놈이라고… 정말 고라리량반자식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게 되였다.
이런 실수를 하다니!…
어데선가 간간이 들려오는 가락맞는 다듬이방망이질소리가 이밤의 고요와 정적을 더욱 고즈넉하게 하였다.
겨울밤 하늘에서 싸락별들이 떨고있었다.
고개를 떨군 병무는 자리에서 일어나 집쪽으로 몇걸음 옮기였다.
그러던 병무는 고쳐 생각하고 다시금 공지로 되돌아왔다. 약속은… 끝까지 지켜야 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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