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력사소설 《숙적》 제1부 (제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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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회)
제 1 장
갑오년 정월대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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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것이 어둠속에 묻힌 어슴새벽이였다. 눈이 오려는지 하늘도 흐려있어 별빛조차 보이지 않았다. 인정(새벽 4시)이면 큰 쇠종을 서른세번 쳐서 단잠에 든 사람들을 깨우고 성문도 열게 하는 파루도 아직 울리지 않아 사위는 고요하기만 했다.
끝모를 어둠과 싸늘한 추위와 불안한 정적을 깨뜨리며 갑자기 언땅을 구르는 말발굽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렸다. 서울의 남대문인 숭례문에 다달은 파발말은 급기야 멈춰섰다. 앞발을 쳐들고 호용소리를 지르는 말의 주둥이에서 허연 입김과 코김이 뿜어나왔다.
장승들이 우뚝우뚝 서있는 눈덮인 산속의 고샅길이며 얼음이 갓 풀린 강을 뛰여건너 며칠만에 서울에 당도한 파발말과 그우의 파발군은 둘 다 줄땀을 흘리며 숨을 헐떡거렸다.
무거운 대문이 굳게 닫겨있어 젊은 파발군은 문루에 대고 소리쳤다.
《문을 열어주!》
문루에서 석쉼한 소리가 날아왔다.
《파루를 칠 때까지 기다리게.》
《그럴새가 없소.》
《제길, 오늘은 작은보름날인데 무에 바빠서 그러나?》
젊은 파발군이 짜증을 부렸다.
《파발이요!》
《뭐, 파발? 좀 기다리게.》
좀이란 잠간이란 소리겠는데 한참이나 걸려서야 대문옆의 작은 나들문이 열리더니 한손에는 창대를 또 한손에는 등롱을 든 파수군이 파발
말곁으로 지척지척 다가왔다.
어깨가 구부정한 파수군은 등롱을 쳐들어 파발군을 비쳐보더니 앞이가 빠진 입을 열었다.
《파발인가?》
《보면 모르겠소?》
젊은 파발군은 어깨에 걸멘 방울이 세개 달린 가죽가방을 두드렸다.
방울이 세개면 지급파발이였던것이다.
늙은 파수군은 절랑거리는 방울소리를 듣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요즘은 세상이 개명해서 전보를 치면 순식간에 그곳 사정을 알텐데 왜 상기 파발인가?》
《전보국이 고장나서 그러오.》
《그래, 어디서 오는 파발인가?》
《전라도 전주요.》
《무슨 장계인가?》
《전라감사의 장계요.》
나배기 파수군의 눈이 근심어린 호기심으로 반짝거렸다.
《웨, 란리가 터졌나?》
《란리도 이만저만한 란리가 아니요.》
《응? 왜놈들이 쳐들어왔나, 민란이 터졌나?》
젊은 파발군이 버럭 짜증을 냈다.
《젠장, 늙은이와 기닿게 얘기할 새가 없소. 빨리 문이나 열어주.》
《그럽세.》
늙은이가 황황히 물러가고 이윽고 성문이 쩡 열렸다.
파발말은 네굽을 놓고 성문안으로 빠져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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