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련재 《너를 사랑하기에》 제7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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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1 회)
제 6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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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승혁이 내놓은 전기가열기제안은 박춘섭에게 있어서 처음엔 엉뚱하기 짝이 없는, 다소 환상적인 요소가 섞인,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한것이였다. 그저 가능성이 희박한 정도가 아니라 큰 사고를 일으킬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있는 어쩌면 폭발물과도 같은 제안이였다.
단지 위험한 물건처럼 여겼던 전기가열기제안은 점차 박춘섭의 운명에 큰 혼란을 일으키는 괴물같은것으로 변해버렸다. 그 괴물은 몇차례의 곡절을 겪으면서 끝내는 고요하고 순조롭게 흘러가던 운명의 강물속에 뛰여들어 지진처럼 아름다운 수초들을 잡아흔들고 뽀얗게 감탕물을 일으키며 모든것을 뒤흔들어놓았다.
춘섭에게 첫 타격을 가한것은 그 괴물의 아버지라고 할수 있는 승혁이였다. 승혁은 무자비한 규탄으로 춘섭의 인생을 허무한것으로 부정해버렸다. 춘섭은 자기의 심장이 마치 승혁의 《독설》이라는 집게에 물려 비틀리우는것만 같은 아픔을 느끼였다. 그러나 그는 완강하게 버티며 자기의 체면을 유지할수가 있었다.
그다음 춘섭은 승혁의 무정하고 무례한 처사에 대한 반발이라기보다는 승혁의 무모한 열기를 식히며 자기의 운명뿐아니라 현대적인 비날론공업의 운명도 위험에 빠뜨리려는 승혁의 그 괴물을 제거하기 위해 안깐힘을 썼다. 그는 기술혁신문제에 결정권을 가지고있는 한명산기사장을 찾아가 전기가열기를 반대하는 립장을 명백히 밝히였다. 그러면서 자기가 중앙지도소조를 대표하여 발언한다는 인식을 강하게 주었다. 사실 지도소조의 리영복책임자는 순환비등층보이라건설을 하루빨리 추진시키기 위해 대안중기계공장에 출장중이였다.
《말씀의 뜻을 알겠습니다. 물론 우린 심사숙고하자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과도 토론해보고 대책을 세우겠습니다.》 하고 한명산은 헌헌하게 춘섭의 의견을 접수하는 태도를 보이였다.
춘섭은 괴롭고 쓰라린 심경속에서도 자기는 절대로 아녀자들처럼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않았으며 공정한 판단과 행동으로 기어코 친구의 탈선을 막아냈으며 나아가서 현대적인 비날론공업의 순조로운 발전을 지켜냈다고 애써 자기를 위안하는것이였다. 그러나 스스로도 눈물겹게 느껴지는 그 자부감은 오래가지 못하였다.
리영복이 출장에서 돌아왔다. 그는 그간의 개건공사정형을 료해하는 과정에 현존보이라능력으로 초산비닐합성을 실현하기 위한 방도로 전기가열기라는 안이 제기되였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는 무척 흥미가 동하는듯 춘섭의 말을 듣는것으로 그치지 않고 자신이 직접 관계부문일군들을 만나기 시작하였다. 한명산을 만나고 김명수를 만나보았으며 반대의 립장에 선 동력부문 일군들도 만났고 제안자인 주승혁도 만나보았다. 그리고 박춘섭을 다시 불렀다.
춘섭은 영복이 사람들에게서 어떤 말을 들었으며 또 그가 어떤 견해를 세웠는가를 알수 없었지만 방문을 열고 들어설 때 벌써 영복의 심중이 편안치 않다는것을 제꺽 느낄수 있었다. 영복은 무슨 문건을 들여다보면서 인차 춘섭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이것은 그가 지금 무엇인가 속으로 격하게 끓어오르는 감정을 가라앉히려고 애쓰고있음을 말해주는것이였다.
영복과 마주앉은 춘섭은 은근히 가슴을 조이면서 그가 무엇때문에 자기에게 불만을 품었겠는가고 머리를 굴려보았다. 별로 딱히 집히는것이 없었다. 초산비닐촉매용 담체를 제때에 해결하지 못한것때문에 새삼스럽게 신경이 살아올랐다고는 여겨지지 않았다. 그외에야 자기가 잘못한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동무는 창피하지도 않소?》 리영복소조책임자의 비판은 이렇게 시작되였다.
춘섭은 긴장했던 가슴이 후들후들 떨리였다. 처음부터 강도높은 힐책이였다.
《주승혁동무가 내놓은 전기가열기제안 말이요. 어쩌면 동무가 그런 태도를 취할수 있었는지 난 도대체 리해되지 않소.》
그제야 춘섭은 전기가열기라는 괴물이 자기의 멱살을 물자고 달려드는듯 한감을 느끼고 황황히 공격자세를 갖추었다.
《책임자동지, 난 그 전기가열기가 믿음성이 가지 않더란 말입니다. 자칫하다간 지금까지 쌓아온 공이…》
《뭐 공이라구?》 소조책임자의 강철빛얼굴에 얼핏 조소가 떠올랐다.
춘섭은 자기가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공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써서는 안된다. 그건 일군들의 입에 오르면 순간에 역겨움을 자아내는 언어들중의 하나이라고 춘섭은 생각하였다.
《아니, 공력이라고 말하는게 옳겠지요. 우리가 지금까지 위대한 장군님의 명령을 관철하자고 얼마나 애를 썼습니까. 온 나라가 떨쳐나서 공력을 바치지 않았습니까. 그 공력이 전기가열기때문에 허사로 될수가 있다는겁니다.》
《그러니 동무의 생각대로 한다면 비날론을 뽑아내는것은 순환비등층보이라가 완성된 다음에 본다는거겠소? 그것이 몇달안에는 가동할수 없다는것을 모르지 않겠는데…》
《글쎄…》 춘섭은 대답이 궁하여 쩔쩔맸다.
그의 이마전은 솟아나는 진땀으로 축축해졌다.
《알만 하오. 동무의 그런 정신상태로써는 좋은것도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여있소. 그저 안전하게, 실수없이 가자는거겠지. 과오를 범하지 않고 말이요.》
춘섭은 리영복소조책임자의 말이 또다시 자기의 병집을 명백히 찌르고드는데서 그리고 그의 말이 승혁의 말과 비슷한데가 있다는것을 느끼면서 흠칫 놀랐다.
《물론 모험적인 요소도 있다고 할수 있소. 그래서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을거요. 그러나 동문 그들속에 속해서는 안될 사람이요. 우리야 비날론을 하루빨리 뽑아내기 위한 투쟁을 지도하기 위해 파견된 일군들이 아니요. 우린 응당 어떤 사람들이 모험이라고 보는 그 제안속에서 높뛰는 충정의 심장을 보아야 하오. 그 심장을 감득할줄 알아야 한단 말이요.
주승혁동무의 그 제안은 지금 조성된 역경을 뚫고나가기 위한 유일한 방도로 나섰소. 그렇다면 우린 그 제안의 가능성을 여러 각도에서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하오. 난 가능성을 보았소. 기술적인 가능성도 보았지만 승혁동무의 심장을 느꼈기때문에 무엇보다도 사상정신적인 신심을 얻었단 말이요.
그런데 왜 동무에겐 그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가? 그건 동무가 말로는 현대적인 비날론공업을 위해 일한다고 하지만 자기보신에 사로잡혀있기때문이요. 지난날처럼 다시는 과오를 범하지 말자는 그 생각만이 지금 동무의 행동을 지탱해주고있는거요.》
춘섭은 영복이가 지난날의 과오를 끄집어내는 바람에 그야말로 발가벗기우는것처럼 수치감을 느끼였다. 그렇다. 자기는 더는 실수하지 말자고 굳게 마음먹었던것이 아닌가. 그런 각도에서 모든것을 저울질했던것이 아닌가. 춘섭은 영복의 비판을 아프게 감수하면서 머리를 숙이였다.
《내 이제야 동무가 초산비닐촉매용 담체를 해결하지 못한것이 우연한게 아니였다는것을 똑똑히 알게 되였소. 동무가 우리 힘으로 할수 없다던것을 최동무는 해내지 않았는가. 무슨 차이가 있겠소?
위대한 장군님의 사상과 신념을 자기의것으로 받아들인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의 차이가 있는거요. 장군님께서 언제나 가슴에 품고계시는 비날론, 그 비날론이 동무의 가슴에 살아있지 않기때문에 동무는 지금 여기서 껄렁껄렁 살아가고있는거요.
진심으로 비날론을 사랑하시오. 비날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이 비날론공장에 있을 필요가 없소. 나아가서 이 땅, 이 제도에서 살 자격도 없소. 이걸 명심하시오.》
춘섭은 자기가 어떻게 영복의 방에서 나왔는지 알지 못하였다. 천천히 구내길을 걸어가는 춘섭은 가슴을 에이는듯 한 아픔과 수치감으로 하여 금시 쓰러질듯 휘청거리였다.
그는 문득 승혁이가 자기에게 하던 질책이 상기되였다.
그저 실무적인 리해타산만 앞세우면서 진심으로 사랑을 바칠줄은 모른다고 하던, 비날론에 대한 사랑이 없다고 하던, 비날론에 너무나 많은 의미가 깃들어있나고 하던 그 예리한 비판이 다시금 가슴을 아프게 쑤시고들었었다.
어쩌면 영복이의 비판과 승혁의 질책은 그리도 비슷한것인가. 결국 자기라는 인간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그렇게 비쳐진것이 아니겠는가.
문득 몇년전 설비해체그루빠를 이끌고 비날론공장에 와서 주승혁과 대결하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 벌써 나의 진면모기 드러난것이 아닐가? 그리고 승혁은 가슴속에 뿌리내린 비날론에 대한 사랑을 어쩔수가 없어 모진 각오를 가지고 상급의 조치에 도전해나섰던것이 아닌가.
아, 수치스럽구나. 나는 정녕 헛살아온것인가.
춘섭은 수그렸던 얼굴을 쳐들었다. 사람들이 부리나케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 걸어가는 사람들의 걸음걸이도 반달음이다. 자동차들이 찬바람을 일구며 옆을 지나친다. 모두가 바쁜 모습들이다. 천천히 걸어가는것은 자기뿐이라는 생각은 자신에 대한 환멸과 수치감을 더욱더 배가시킨다. 이게 무슨 꼴인가. 비날론개건공사를 도와주려 왔다는 사람이 이게 무슨 꼴인가 말이다.
1카바이드직장의 전기로들에서 돌물빛이 건물밖으로 황황 내비치는것이 보이였다. 차라리 저 전기로앞에서 한바탕 일을 하면서 자기를 잊고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런 맥도 없었다. 그러니 그저 전기로의 열에 자기의 육체를 태우고 이 육체속에 생긴 병집, 정신의 종양을 활활 태워버리면 시원할것만 같았다.
터벌터벌 걸어가던 춘섭은 누군가 찾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승혁의 안해 백영희가 근심스런 눈으로 쳐다보고있었다.
《오빠, 어떻게 된 일이예요? 어디가 아파서 그러지 않아요?》
그제야 춘섭은 자신을 수습하고 비죽이 웃어보였다.
《아프긴… 그저 요새 좀 생각이 많아 그런거야. 그런데 넌 어떻게 공장에 나왔니?》
《지원나왔지요 뭐.》
춘섭은 영희의 옆에 손달구지가 놓여있고 그 손달구지엔 네발을 묶은 큰 돼지 한마리가 올라앉아있음을 알아보았다.
《아니, 집에서 키우던 돼지를 내오는거냐?》
《그렇지 않구요.》 영희는 살며시 미소를 띄웠다. 《다 비날론을 하루빨리 뽑아내자고 분투하는데 나도 성의를 보여야지요.》
춘섭은 영희의 얼굴에 남은 화상흔적을 보면서 가슴이 찌르르해졌다. 화상을 입으면서 키운 돼지를 비날론을 위해 바치러 나온 영희가 돋보이였다. 아, 이런것이 사랑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런 사랑이 나에겐 없었단 말인가.
《용쿠나. 그래 선철이 애비가 알고있니?》
《알지 않구요. 다 토론을 한걸요. 세대주가 아니예요?》
《그렇지. 선은 다 섰구나. 그래 어디에 가니?》
《합성직장에 가지요 뭐.》
그전날에는 남편이 합성직장에 나간다고 그리도 야살을 부리던 녀인이 오늘은 자기의 성의를 안고 직장사람들을 찾아가고있다. 일시 다투기는 할지언정 좋은 남편이고 좋은 안해가 아닌가. 그런데 난 영희가 꼬장꼬장한 남편때문에 고생한다고 동정했었지. 그리고 그에게 남편을 잘 얻어주지 못한듯싶어 은근히 가책을 느끼기도 했고…
인간생활은 정말 측량할길이 없구나. 내 이제와서 인생을 새로운 눈으로 돌아보게 될줄 어이 알았단 말인가. 하지만 다행스러운것은 내 동생 백영희와 그의 남편 주승혁의 인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바로 그것이다. 춘섭은 자신에 대한 환멸과 수치에 사로잡혀있으면서도 사랑하는 동생과 그의 남편, 다시말하여 자기의 옛친구의 일이 잘되였다는것으로 하여 감개무량함을 느끼였다.
《오빠, 우리 선철이 아버지를 잘 도와줘요. 그 사람은 자제할줄 모르는게 큰 결함이예요.》 영희가 기대어린 눈으로 쳐다보며 부탁의 말을 하였다.
《아니다, 선철이 아버지는 훌륭한 사람이다. 내가 무슨 힘으로 그를 도와주겠니. 그가 나보다 난사람인데…》
억지로 지어보이는 춘섭의 웃음이 얼마나 쓸쓸하고 처량해보였던지 영희는 의혹을 느끼며 두눈이 커졌다. 지금까지 얼마나 자신만만하고 거연한 모습을 보여주던 춘섭오빠인가. 헌데 지금은 금시 쓰러질것만 같지 않은가.
《오빠, 오늘은 이상하군요.》
《이상하긴… 어서 가봐라.》
춘섭은 영희의 어깨를 두드려주고는 천천히 1카바이드직장쪽으로 걸어갔다.
(그래, 나한렌 그런 사랑이 없었어, 없었단 말이야.) 하고 춘섭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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