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련재 《너를 사랑하기에》 제4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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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6 회)
제 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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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복은 초산비닐생산공정현장에 나가서 살다싶이 하였다. 생산공정에 대한 료해를 빨리 하여야 그에 맞는 프로그람을 작성할수가 있었다. 1년안으로 비날론생산공정을 살릴데 대한 장군님의 현지말씀이 있은 후 자동화과에서는 전반적생산공정들의 콤퓨터화를 동시에 밀고나갔다. 여러개의 전투조가 조직되였는데 한개 조가 몇개 대상의 콤퓨터화를 담당하였다. 최성복이 책임진 조에서는 초산비닐생산공정의 합성과 정류부문, 잔사처리공정의 콤퓨터화를 수행하여야 하였다. 합성직장의 한방에서 긴장하게 기술자료들을 연구하느라면 때없이 주승혁의 말이 떠오르군 하였다.
《넌 젊었는데 남들이 한대로 답습해서는 안돼. 혁신해야 한다. 알데히드나 초산생산공정에 도입된 콤퓨터화수준을 훨씬 릉가하는 프로그람을 새로 만들수는 없단 말이냐? 완성된 프로그람이 없다고 하지 않느냐.》
성복은 기술자료들을 들여다보던 눈길을 들어 벽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기였다. 최첨단을 지향하며 머리를 굴리였으나 아직은 길이 보이지 않았다. 뚫고나갈 길을 찾아 사색의 미궁속을 헤매이다가 맥이 풀려 주승혁의 얼굴을 떠올리며 속으로 뇌이였다.
(헐치 않군요. 아무래도 난 그런 재목감이 못되는것 같습니다.)
성복은 초산비닐생산공정을 돌려본 경험이 있는 운전공들을 만나려고 현장으로 나갔다. 합성탑들이 해체되고 수리공들이 보수정비를 진행하고있었다. 그들속에는 2카바이드직장 수리작업반성원들도 있었다. 성복은 자연히 김송희의 모습을 찾아보았다. 송희를 발견하지 못하게 되니 허전하였다. 성복은 수리공들과 함께 일하는 나이지숙한 한 운전공을 찾아가 경험적인 이야기를 듣고 필요한것을 수첩에 적어넣었다. 돌아서다가 10리터수지통을 들고오는 김송희의 모습을 발견하였다. 순간 성복은 심장이 후둑 뛰고 짜릿한 흥분이 가슴을 훑는것을 느끼였다. 그는 송희를 대하는 자기의 감정이 더욱더 활활 타는것이 이상하고 또 불안하게 생각되였다. 지금까지 그 어떤 처녀들을 대상하여도 느끼지 못하던 류다른 환희와 즐거움, 늘 보고싶은 그리움을 송희가 자기에게 안겨주고있었던것이다. 처음에는 이렇지 못했다. 자기를 따르는 송희를 적당히 대해주었고 귀여운 동생처럼 생각하게 되였는데 마침내는 사랑을 느끼게 된것이다. 자기와 송희는 애당초 그런 감정을 나눌만 한 대상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점차 자기도 모르게 송희에게 포로되여버린것이였다. 송희는 염소젖이 든 수지통을 들고오다가 성복을 보고 생긋 웃었다. 그는 자기네 작업반원들이 일하는쪽을 힐끔힐끔 살피면서 성복에게 다가왔다.
《여기서 뭘 하세요?》 송희는 조용히 속살거렸다.
주위에 사람들이 있다고보면 더없이 얌전해지는 처녀였다.
《뭘 하긴, 여기서 송희를 기다리고있지.》 이제는 성복의 말도 로골적으로 정을 표시하고있었다.
《피, 거짓말. 연구를 하러 나왔겠지요. 콤퓨터에 인식시킬 자료연구.》
《네가 잘 아는구나. 콤퓨터화를 위해 나온것이기는 하지만 널 만나고싶더라. 아까 나왔는데 네가 보이지 않으니 얼마나 섭섭하던지.》
《정말이나?》 송희의 얼굴에 기쁨이 함뿍 어린다.
《정말이야.》
《그럼 성복동지에게 상으로 뭘 줄가? 음, 그렇지. 내게 염소젖이 있으니까 염소젖 한고뿌를 공짜로 주겠어요.》
《그만둬, 너희 작업반원들이 좋아하겠니. 저것 봐, 송희와 말한다고 날 쏘아보는걸.…》
순진한 송희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가 이내 성복이가 자기를 놀렸다는것을 깨달았다. 송희는 성복에게 눈을 흘기다가 슬쩍 주위를 살피고는 그의 손목을 꼬집었다. 성복은 짐짓 얼굴을 찌프리며 아파서 죽겠다는 시늉을 했다.
그런데 2카바이드직장 수리작업반원들이 아니라 다른쪽, 정류생산공정으로 통하는 통로쪽에서 한사람이 우뚝 서서 그들을 쏘아보고있었다.
그는 김송희의 아버지인 김명수였다. 2카바이드직장 수리작업반원들이 합성탑보수정비에 동원되고 최성복이 초산비닐생산공정콤퓨터화를 맡은 후 성복이와 송희가 자주 만나 수군대는것을 명수는 몇번이나 띠여보군 하였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다가 점차 심상치 않음을 느끼였다. 딸에게 무슨 관계냐고 따지고들면 딸은 그저 가까운 사이라고 아닌보살을 하였다. 하지만 자루속의 송곳을 감출수 없듯 사랑은 감출수 없는 법이다. 오늘 김명수는 최성복이와 딸이 서로 사랑하고있음을 비통한 심정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는 도무지 분별이 없는 딸이 괘씸하기 짝이 없어 쓰겁게 입을 다시였다.
자기가 소개하는 좋은 대상들을 다 마다해버리더니 결국 선택한것이 저 최성복이란 말인가. 그는 성복의 아버지가 한때 합성직장 작업반장이였기때문에 성복이를 잘 알고있었다. 아버지가 성실한 사람이였었기때문에 그의 가문에 대해서는 조그마한 불만도 없었으나 성복이라는 청년의 인간됨이 탐탁치 않게 생각되였다. 나이가 어지간한 로총각인데 사람이 빠진데가 없다면야 왜 그 나이가 되도록 장가를 가지 않았겠는가 하는것이다. 자기 딸 송희로 말하면 그보다 8살이나 아래가 아닌가. 뻔뻔한놈 같으니라구.
아니, 로총각이라는 점도 눈감고 넘어갈수 있다. 특히 용서할수 없는 점은 성복이가 생활이 곤난하다고 하여, 공장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하여 서슴없이 헌신발 버리듯 하고 떠나갔다가 다시 활성화될 조짐이 보이니 찾아들어온 신념이 없는 인간이라는것이다. 명수에게는 성복이가 그렇게밖에 달리 보이지 않았다. 비날론공장을 사랑하는 명수는 변절기가 다분한 남자에게 딸의 장래를 내여맡길수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이때 박춘섭이가 명수에게 다가왔다. 그는 명수의 눈길이 쏠려있는 곳을 보고 말하였다.
《딸애가 짝이 있는것 같구만. 저 청년이 자동화과의 콤퓨터기술자지요? 잘됐소. 다 연분이 있는 법이지. 그런것도 모르고 우린 괜히 왼심을 썼단 말이요.》
《처장동지, 저 애들은 그저 가까운 사이입니다. 나이차이가 심하지요. 사회동원 다니면서 알게 되였는데 오빠나 누이동생처럼 친하다고 하더군요.》 명수는 변명조로 말하였다.
《그렇게 친하다가 결혼하게 되는게 아니요.》
춘섭은 껄껄 웃더니 준선이네 작업반원들속에 끼여들어갔다. 로동자들과 어울려 춘섭이가 무슨 재미있는 말을 했는지 웃음소리가 터진다.
명수는 여전히 격분한 심정으로 딸과 성복이를 쏘아보고있었다. 방금전 춘섭이가 한 말은 딸과 성복의 관계를 더는 방임해둘수 없다는 강한 충동을 그에게 안겨주었다.
위험하다. 보는 사람들마다 그런 식으로 딸과 성복의 관계를 판단하고 기정사실처럼 소문을 돌린다면 큰일이 아닌가. 손해를 보는것은 우리 딸이고 우리 가정뿐일것이다.
명수는 성난 얼굴로 송희를 불렀다.
송희와 성복은 갑작스레 나타나 불이 이는듯 한 눈으로 흘겨보는 명수를 보고 굳어져버렸다.
《이리 오너라.》
송희가 다가오자 명수는 말없이 뒤돌아서 걸어갔다.
성복은 얼친 사람마냥 서서 그들의 뒤를 바라보다가 저도 모르게 따라갔다. 그는 분명 송희 아버지가 자기와 딸이 사귀는것때문에 성이 났다는것을 직감하였다. 평시에 자기를 보는 송희 아버지의 눈길이 곱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는 앞날에 대한 회망을 품고 송희를 더 뜨겁게 사랑해온것이다. 지금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것을 느낀 성복은 벌어지는 사태를 똑똑히 알고싶었다.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1층의 구석진 곳에 아버지와 딸이 마주서있었다. 성복은 송희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였다.
《내 그만큼 말했는데도 저녀석과 붙어다니느냐? 어려울 때 공장을 쉽게 떠나는 저녀석처럼 신념이 없는자는 녀자와의 사랑에서도 신념이 없는 법이야. 다시 내 눈에 저녀석과 붙어다니는 꼴이 뜨이면 가만두지 않겠다.》
《아버지.》 송희는 어찌할바를 몰라 아버지의 팔소매를 잡아당기며 말한다.
《아버지, 제발 조용하세요. 그런게 아니예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송희 아버지의 목소리가 더욱더 커지였다. 《사람들의 눈이 뜸자리인줄 아느냐?》
성복은 가슴이 활랑거려 벽에 몸을 기대였다. 그는 자기가 송희 아버지의 눈에 얼마나 비렬한 인간으로 비껴있는가를 깨닫고 몸서리쳤다. 다음순간 분노가 온몸을 활활 태우는것만 같았다.
《처신을 똑바로 해. 당장 시집가게 된 처녀가 그게 뭐냐. 사람들이다 보는데도 부끄럽지 않아?》 명수는 다시한번 소리쳤다.
이윽고 명수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리였다. 성복은 피하지 않았다. 그대로 서서 명수를 바라보았다. 명수는 성복을 보자 순간적으로 놀랐으나 인차 자기를 수습하고 경멸의 눈초리로 흘겨보았다. 성복은 마치 그어떤 생명이 없는 물체를 보듯 랭랭한 눈으로 명수를 보았다. 그렇게 한동안 서로 마주보다가 명수가 《음-》 하고 멸시가 슴배인 입놀림을 하고는 성복을 지나쳤다. 말할만 한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태도였다.
성복은 덤덤히 서있었다. 그는 그 자세로 서서 분노를 애써 뿌리쳐 버렸으며 벌어진 현실과 자신의 감정, 앞날에 대해 랭정하게 생각하고 분석하였다.
성복은 지금 스스로 자신을 떳떳하게 생각지 못하는 립장에 있었다.
비날론공장을 떠나갔다가 다시 왔다는 그 사실은 어쩐지 자신을 다른 사람들보다 정신적으로 나약한 체질로 느끼게 하는것이였다. 그런데 그는 오늘 송희 아버지가 하는 말을 듣고 남들도 자신을 신념이 없는 인간으로 보고있다는것을 깨닫게 되였다.
이런 말을 듣자고 공장으로 다시 왔단 말인가. 주승혁아바이가 찾아와 설복하지만 않았어도… 자동화과의 사람들도 겉으로는 나를 반겨주었지만 속으로는 송희 아버지처럼 생각할수 있지.
《성복동지.》 송희가 부르고있었다.
그제야 성복은 송희를 처음 발견한것처럼 그에게 눈길을 돌리였다. 성복은 담배를 피워물었다.
《성복동지.》 송희가 다시한번 불렀다.
송희의 두눈에 눈물이 가랑가랑 맺혀있었다.
《너 왜 그러니?》 성복은 이상하다는듯 물었다.
《성복동지, 미안해요. 아버진 앞으로 다 리해하게 될거예요.》
《뭘 리해한다는거야?》
《아버진 성복동지에 대해 잘 모르고있어요.》
《아니야, 알아도 잘 알고있어. 내가 괜히 송희와 친한것 같아. 사실 그럴만한 자격도 없는데 말이야. 내가 량심이 없는 놈이지. 그러니 앞으로 다신 만나지 말자.》
《성복동지, 그러지 말아요.》
《됐어. 난 네 아버지가 하는 말을 다 들었어. 난 신념이 없는 인간이고 그런 남자는 녀자의 사랑에서도 신념이 없는 법이야. 그 말 하나만은 네 아버지가 명대사를 외웠다고 생각해. 자, 우린 이젠 끝났다.》
성복은 송희를 외면하고 걸어갔다. 송희는 두손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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