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련재 《너를 사랑하기에》 제26회 > 소설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소설

도서련재 《너를 사랑하기에》 제26회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선구자
댓글 0건 조회 2,823회 작성일 23-06-28 09:06

본문

(제 26 회)

제 3 장

1

(2)


한편 명수는 승혁의 투시하는것만 같은 눈길앞에서 당황해졌다. 명수는 춘섭에게 반감을 품고있으면서도 콤퓨터화문제에서 그가 자기의 의견을 존중하고있는것을 감사하게 여겼다. 아니, 다행스럽게 여겼다는것이 더 정확할것이다. 하여 명수는 은근히 춘섭에게 기대를 걸고 자기의 의도를 실현해보자고 하는것이였다.

명수는 자기의 처사가 스스로도 변덕스럽게 느껴졌지만 알데히드생산공정을 성과적으로 돌릴수만 있다면 사소한 감정이 대수겠는가고 생각한것이였다.

어느덧 승혁의 갱핏한 얼굴에는 고뇌의 빛이 어렸다. 명수는 지금 승혁이가 어찌했으면 좋을지 갈피를 잡을수 없어 고심하는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춘섭의 뜻을 전달했으니 승혁이도 어차피 따르지 않을수 없을것이다.

《시운전은 이전처럼 해봅시다.》 명수는 다시한번 말하였다.

《아니요.》 승혁은 외마디소리를 내지르고 운전조작실을 나가려다가 멈추어섰다. 그는 명수를 돌아보면서 또박또박 찍어말하였다.

《우리 비날론공업이 새 세기의 요구대로 일떠서자면 콤퓨터화를 받아들여야 하오.》

《누가 받아들이지 말자고 했는가요? 난 점차적인 방법으로 하자는거지요.》

명수가 화가 난듯 거친 목소리로 맞받아 소리쳤다.

승혁은 더 명수와 마주서지 않고 운전조작실을 나섰다. 그는 수치감으로 하여 얼굴이 달고 가슴에 불이 이는것만 같았다. 콤퓨터에 대해 얼마나 파악이 있는가고 묻던 명수의 말이 채찍이 되여 계속 머리를 내려치는것만 같았다. 콤퓨터화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을 하면서도 콤퓨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있으니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내가 과연 현시대의 기술자가 맞긴 맞는가. 장군님께서는 늘 지금은 지식경제시대이라고, 언제나 최첨단을 돌파해야 한다고 가르쳐주시는데 당위원회에서는 그래도 나같은 놈을 합성개건 및 시운전책임자로 임명하였는데 콤퓨터를 모르고있으니 이제라도 배워야지 앞으로 콤퓨터화된 비날론공업을 운영해나가자고 해도 껄렁껄렁 살아서는 안돼.

승혁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자동화과로 걸음을 옮기였다.

문득 명수가 박춘섭처장도 콤퓨터화를 달가와하지 않는다고 하던 그 말이 상기되면서 머리가 기웃거려졌다. 정말 춘섭이가 콤퓨터화를 맞갖지 않게 여긴단 말인가? 그야 우리같은 보통기술자도 아닌 간부인데 어찌 그럴수있단 말인가. 우리가 주저하면 깨우쳐주어야 할 사람인데… 아니야, 명수가 지어낸 소리일거야.

바로 얼마전에 춘섭은 승혁의 집에 놀러왔었다. 춘섭은 영희와 따뜻한 인사를 나누었고 승혁과 저녁 한끼를 함께 나누었다. 그때 춘섭은 승혁에게 콤퓨터화에 대한 말을 한적이 없었다. 승혁이가 콤퓨터전문가가 아니다보니 그런 말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것일가?

자동화과를 향해 걸어가면서 돌이켜볼수록 명수가 더욱더 괘씸하게 여겨졌다.

명수는 왜 하필 춘섭이를 꺼들인단 말인가. 내가 춘섭의 말이라면 덮어놓고 따르리라고 여기는게 아닌가. 어처구니가 없다. 이제는 내가 주대도 없는 어수룩한 놈으로 보인단 말인가?

그는 자동화과장방에 들어가 강영식과 마주앉았다.

《과장동무, 내 오늘부터 콤퓨터를 배워야겠소.》

《아니, 갑자기 왜 그러오?》 영식은 무슨 큰 모욕이라도 당한듯 얼굴이 벌개서 말하는 승혁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내 지난 10년간 헛살았소. 아직 콤퓨터를 모른다는게 말이 되오.》

《난 또 무슨 큰일이 났는가 했지. 주동무가 한창 배우고 생산공정을 운영할 땐 콤퓨터가 널리 보급되지 못했지. 그러니 언제 배울새가 있었소. 그 분야에선 젊은이들을 따라가지 못해.》

《어떻든 난 뒤떨어졌소. 이제라도 배우겠소. 정보산업시대에 적응해야지. 시대밖으로 밀려나고싶지는 않단 말이요.》

승혁은 매일 한시간씩 자동화과에 와서 배우겠으니 도와달라고 부탁했고 영식은 웃으면서 젊은 기술자들을 붙여주겠다고 말하였다.

이날부터 승혁은 콤퓨터를 배우기 시작했다. 콤퓨터와 관련한 책을 들여다보았고 하루도 빠짐없이 여가시간을 짜내여 콤퓨터실에 와서 배웠다.

하루는 좀 늦게 콤퓨터실에 갔더니 승혁을 배워주던 애어린 청년이 난색을 지어보이였다.

《아바이, 오늘은 그만둡시다.》

《왜 그만둔단 말인가?》

《오늘은 힘들어서 일찍 퇴근해야겠어요.》

이마와 입주위에 여드름이 돋은 애리애리한 얼굴에 머리칼을 눈섭우까지 드리워 답답한 인상을 주는 청년은 로골적으로 시끄러워하는 기색을 보이였다.

《그런가?》 승혁은 실망하여 엉거주춤 서있었다.

벌써 외출복을 갈아입은 청년은 벽에 걸린 거울을 보면서 빗질을 꼼꼼히 하고 두손으로 이마의 여드름을 짜며 외모를 가꾸고있었다. 승혁은 이 청년이 지금 어떤 처녀를 만나러 가려는것이라고 짐작하였다. 승혁은 한마디 던졌다.

《이보라구, 선생. 여드름을 짜지 말라구. 얼굴에 자꾸 손을 대면 독이 여드름을 통해 뇌수까지 뻗칠수가 있어. 그러면 콤퓨터도 못하고 끝장을 보는거야.》

《그래요?》

청년은 울상을 지으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쌀뜨물로 꾸준히 세면을 해보라구.》

《쌀뜨물로 세면을 한단 말이지요?》

청년은 알만하다는듯 머리를 끄덕이는데 승혁은 최성복을 머리속에 떠올렸다. 아마 성복이라면 이렇게 날 괄시하지는 않을거야.

콤퓨터에 대한 파악이 생기면서 주승혁은 최성복의 존재가 더 귀중하게 여겨지였다. 이제라도 성복이같은 콤퓨터인재가 온다면 공장의 현대화에 얼마나 큰 기여를 할것인가.

승혁이가 허전한 심정으로 막 방문을 열려는 순간 청년이 그를 불렀다.

《아바이, 가지 말라요. 오늘강의를 그만두어서야 안되지요. 내가 아바이를 위해 희생돼야지요.》

《그래?》 승혁의 얼굴에 금시 웃음이 비끼였다.

《그럼 처녀를 만나는건 래일로 미루어도 되나?》

《아니, 그건 무슨 말이예요? 내가 시시하게 처녀나 따라다니겠어요.》

청년은 볼이 부어 투덜거리였다.

《처녀따위야 내 집앞에 가면 수두룩이 기다리고있는걸요.》

청년이 얼굴을 붉히며 부정할수록 승혁은 자기의 추측이 옳다는것을 더욱더 확신하게 되는것이였다.

《그럼 처녀들은 좀 기다리라지 뭐. 총각때는 좀 비싸게 굴어야 해.》

《아바이, 무슨 련애박사같구만요.》

《나도 총각시절에 다 겪어보았지.》

이 청년은 오늘 처녀를 만나지 못한것이 아쉬울것이다. 그러나 나는 오늘 배우는 시간을 잃는것이 그에 못지 않게 아쉽다. 아니, 비날론을 위한 실력을 갖추는 그 시간을 잃고싶지 않다.

《자, 그럼 시작해보자요.》 청년은 승혁과 나란히 콤퓨터와 마주앉았다.

승혁은 진정으로 자기의 귀중한 련애까지 희생시키는 청년이 고맙게 생각되여 담배갑까지 꺼내놓았다. 나많은 늙은이가 애젊은 청년에게 담배를 권한다는것이 조금도 무안스럽지 않다. 나이는 어려도 당당한 콤퓨터지도교원이 아닌가. 승혁은 자기보다 기술이 높은 사람들을 나이에 관계없이 높이 쳐다보는것이였다.

《여보게, 선생, 담배를 한대 피워보게.》

《알겠어요. 선생이 제자의 성의를 마다하면 안되지요 뭐.》

청년은 스스럼없이 응대하였으나 담배갑은 승혁의 쪽으로 밀어놓는다.

한참 콤퓨터에 대해 강의를 하던 청년이 정색하여 물었다.

《헌데 아바이는 그 나이에 뭘 콤퓨터를 배우는데 그리 열성입니까?》

《그걸 말하자면 시간이 걸려. 한마디로 이제라도 최첨단을 지향해보는거지.》 승혁은 잠시 침묵했다가 덧붙였다.

《우리의 비날론을 위해서…》

《아바이 머리속엔 그저 비날론생각만이 꽉 차있는것 같애요.》

《지금은 빨리 합성직장의 알데히드생산공정을 돌려야 해.》

그렇다. 주승혁에게는 하루빨리 알데히드생산공정을 돌리는것외의 다른 생각이 있을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지난날의 생산공정의 복구를 의미하는것이 아니라 보다 발전되고 현대화된 합성공업을 의미하는것이였다. 의무감에서 출발한것이 아니라 자기의 살붙이처럼 여기는 합성직장, 나아가서 비날론의 새 모습을 세상에 널리 자랑하고싶은것이 그의 심정이였다.

하여 그는 직심스레 콤퓨터를 배웠다. 깊이 알게 될수록 콤퓨터는 경탄할만 한 신비의 세계로 그를 매혹시키는것이여서 콤퓨터를 모르고 살아온 자신의 지난날이 허무하게 느껴지는것이였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서비스이용약관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상단으로


Copyright © 2010 - 2023 www.hanseattle1.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