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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력사소설 《숙적》 제1부 (제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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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선구자
댓글 0건 조회 1,853회 작성일 23-10-13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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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회)

제 1 장

갑오년 정월대보름

2

(1)


조정에서의 회임을 마치고 자기 처소인 건청궁으로 돌아온 명성황후는 승지를 시켜 병조판서 민영준이를 불러오도록 분부하였다. 별안간 지난 임오군란때가 상기되면서 이제 전라도의 민란이 커져 한양으로 밀고 올라오면 어쩌랴 하는 공포감이 전신을 휩쌌던것이다. 설사 그들이 한양으로 올라오지 않아도 우리 민란을 구실로 외국군대가 서울에 들어오는 경우도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어쨌든 그에 대한 방비책을 미리미리 세워두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그는 생각하였다. 다행히 얼마전에 민영준이를 시켜 청나라로부터 총을 구입하도록 하였는데 그것을 다그쳐야 했다.

명성황후를 집안의 맏누이처럼 섬기는 마흔두살난 민영준은 그를 가장 공경스럽게 대하였다.

민영준이 나타나자 명성황후는 직방 무기구입건부터 물었다.

《청나라에서 사들여오기로한 총 2천자루는 어찌되였소?》

《마마, 래달까지 청국기선으로 실어오기로 원대인(원세개)과 약정이 되였소옵니다. 인천까지 실어온 다음 인천에서 한강을 통해 룡산까지는 소형기선으로 나르기로 하였소옵니다.》

민영준의 자신심에 넘친 대답을 듣자 명성황후는 얼마간 마음이 놓였다.

쓰다버린 총들이 아니요?》

《아니옵니다.》 민영준이 펄쩍 뛰듯이 두손을 내저었다. 《덕국 (도이췰란드)에서 만든 신식모젤총 천정에 레밍톤마르티니게베르, 엔힐…》

《호호…》

갑자기 유쾌하게 뿜어대는 명성황후의 웃음소리에 말을 끊은 민영준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명성황후를 쳐다보았다.

《돈밖에 모르던 〈금송아지대감〉 이 병조판서가 되더니 병기문세도 퍽 유식해졌소그려, 호호…》

그제야 명성황후가 웃어댄 까닭을 알게 된 민영준은 게면쩍어했다.

여하튼 일에 드이 없도록 하라고 강조한 명성황후는 지금처럼 군사가 허술해서야 나라는 고사하고 궁성도 지켜내지 못할것 같다고 탄식하였다.

잠시 생각에 잠기던 명성황후는 민영준에게 나가던길에 상감마마께 들려 무기구입건에 대해 상주하라고 당부하였다. 자기가 나라정사를 독판친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민영준은 물러가지 않고 그대로 앉아있었다. 왜, 무슨 할말이 있는가, 명성황후는 그를 의아쩍게 여기며 말없이 건너다보았다.

《중전마마.》

민영준이 드디여 갈린 목소리를 터치였다.

《저 갑신의 란이 있은 때로부터 금년은 꼭 10년이 되는 해옵니다. 하온데 상기도 갑신의 역적들인 옥균이며 영효가 일본땅에서 활개치며 다니고있으니 이런 통분스러운 일이 어데 있겠나이까. 이제 그 역적놈들이 기여들어 남도의 민란을 부채질하면 어찌하겠소이까!》

웃음이 떠돌던 명성황후의 낯색이 싸늘해졌다. 자기의 수족같던 사람들이 수많이 살해된 갑신의 란, 절치부심할 그 일을 어찌 잊을수 있으랴. 싸늘한 눈길을 허공에 박은채 명성황후가 이새로 내뱉듯이 뇌였다.

《일본에 리일식이며 홍종우같은 자객들이 가있으니 이제 소식이 올겁니다.》

《금년엔 기어이 우리 민씨일족의 원한을 풀도록 해주옵소서, 마마!》

《그만 물러가세요.》

민영준이 합문밖으로 나가자 진령군대감이 대령하였다고 아뢰는 소리가 울렸다.

《들라 해라.》

밖에 대고 나직이 소리친 명성황후는 입가에 가는 웃음발을 띠웠다.

진령군 박소사, 명성황후의 개인무당이며 점쟁이인 그 녀자는 명성황후에게 있어서 입안의 혀같고 수족같은 존재였다.

어딘가 한들거리는듯한 걸음으로 방안에 들어온 진령군은 명성황후앞에 못미처 납죽 엎드렸다.

곤전마마, 상원절(정월대보름)문안드리오이다.》

진령군인가, 이리 가까이 오게.》

《황공하오이다, 곤전마마.》

《편히 앉게.》

황공무지로소이다곤전마마.》

문무백관들이나 백성들은 명성황후를 가리켜 중궁 또는 중전마마라 했으나 유독 진령군만은 여느 사람들과 달리 명성황후를 곤전마마라 불렀다. 그렇게 함으로써 명성황후에 대한 자신의 친근감, 숭모심을 나타내려 했는지도 모른다. 중전 혹은 곤전이라 함은 명성황후의 처소를 가리키는 말인데 임금을 대전, 세자를 동궁이라 부르는것처럼 곤전은 명성황후가 거처하는 건청궁의 곤녕합에 비겨 이르는 말이였다. 항간에서 우물집이요, 배나무집이요 하는것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것이였다.

박소사는 12년전 임오군란때 명성황후가 몸을 피해 충주 장호원에 있던 민응식의 집에 잠시 은거해있을적에 사귄 무당이였다.

그 녀자는 불안과 고독감에 잠겨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있던 명성황후를 시종 즐겁게 해주었고 명성황후가 상경할 날까지 점찍어놓고 고무해주었었다. 그런데 그가 점찍어놓은 그날에 바로 환궁하게 될줄이야 어찌 알았으랴. 그의 신통력에 감동되고 감탄한 명성황후는 환궁할 때 그를 서울로 데리고왔을뿐만아니라 자기의 개인무당으로 삼았으며 진령군이란 높은 칭호를 안겨주고 온갖 총애를 다 베풀어주었다.

명성황후의 신임과 총애를 한몸에 모은 진령군은 갖은 전횡을 다 부리며 매관매직을 일삼는가 하면 궁성안에 온갖 무당, 점쟁이, 광대들을 끌어들여 매일과 같이 떠들썩하게 놀아대군 하여 조정의 관리들은 물론 항간에서까지 악녀마녀로 지탄받고있었다. 하지만 명성황후의 신임을 받고있기에 누구도 내놓고 욕하지는 못하였다.

《그래, 오늘 점괘는 어떤가?》

명성황후는 습관처럼 입가에만 웃음을 담고 물었다.

명성황후는 원래 미신이 심한 녀인이였다. 그런것만큼 신령과의 중개자인 무당 진령군에 대한 믿음도 컸다. 분독이 올라 퍼릿퍼릿한 볼의 반점을 가리우느라 분을 회박같이 바른 진령군은 웃음을 흘리며 가살을 부렸다.

《아주 좋소옵니다. 더우기 얼마후에 맞을 세자마마의 생일점괘가 보기 드문 명점복점이오이다.》

《오, 그래.》

명성황후의 얼굴에는 다시 기쁨이 실리였다. 이런 경우에도 그의 눈만은 여전히 예리한 빛을 잃지 않고있었다.

진령군은 한무릎 다가앉으며 더욱 간사하게 여쭈었다.

《마마, 소인이 조상궁과 함께 계원사의 부처님께 상원절시주를 가야겠소옵니다.》

《금년엔 세손을 보아야 할텐데…》

계원사의 부처님은 령험하다는데 시주에 각별히 정성을 기울여야겠소옵니다.》

《그래야지.》 하면서도 명성황후는 한숨을 쉬였다.

《이제 강녕전에서 벌릴 세자의 생일 외진연연회와 내진연연회 그리구 또 청국에서 무기도 구입해야 하고… 참으로 돈 쓸 일이 한두가지가 아닐세. 한데 설상가상으로 남도에서는 민란이 터지고…》

《민란이 터지다니요?》

진령군은 부지불식간에 낯색에 긴장한 빛을 띠웠다.

명성황후는 전라도 고부민란으로 하여 심사가 울적하던차에 말동무를 만나게 되니 자기의 걱정거리를 털어놓지 않을수 없었다.

《그래서 오늘은 작은대보름인데도 어전회의를 열었소옵니까?》

명성황후의 말을 들은 진령군은 여전히 긴장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혼자소리하듯 중얼거렸다.

임오군란때처럼 비도들이 대궐을 범하는 일이 없어야 할텐데…》

이렇게 뇌이는 명성황후의 안색에는 우려의 빛이 짙었다.

《설마 그렇게야…》 진령군은 슬쩍 말머리를 돌렸다.

《참, 곤전마마, 지금 한양에 전라도광대패가 왔다는데 래일 대보름달맞이뒤끝에 그들을 불러들여 놀이판을 벌려야겠나이다.》

놀이판을 좋아하는 명성황후의 성미를 잘 알고있는 진령군은 이런 말로 그를 꼬드겼다.

전라도광대패?》

네에, 듣자니 여간 구경스럽지 않다 하옵니다.》

명성황후의 낯에도 화색이 돌았다.

마침일세. 래일 외국녀인들을 위해 연석 열기로 했는데 그 뒤끝에 놀이판을 벌리면 안성맞춤일세그려.》

그러자 진령군은 굿들은 무당처럼 큰 입을 벌리고 좋아 어쩔줄을 몰라했다. 그는 표정, 몸짓 섞어가며 명성황후에게 발라맞추었다.

《아, 노래가락, 춤가락도 볼만 하지만 마상재 비수던지기는 너무도 아슬아슬해서 손에 땀을 쥐다못해 눈까지 감게 된다 하더이다.》

《그래?… 임자 그 일이 튀지 않도록 잘 신칙하게.》

네에, 여부 있소옵니까. 가부간 래일 전라도사당패의 놀이를 보옵시고 고부민란으로 인한 마마의 심뇌 훌 털어버리시옵소서.》

이렇게 가살을 떨고 자리를 인 진령군은 급급히 명성황후의 편전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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