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력사소설 《숙적》 제1부 (제3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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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선구자 작성일 23-12-25 01:00 조회 2,868 댓글 0본문
(제 36 회)
제 3 장
거마리
3
(1)
동살이 퍼졌다. 돋을볕은 포도청감옥의 잔설이 덮인 기와지붕우에도, 지붕밑의 팔뚝처럼 굵은 나무창살사이에도 밝게 스며들었다.
바닥에 깔린 짚검불과 거기에서 풍겨 공간에 자욱히 떠도는 사금알갱이같은 누런 먼지들에서 빛나던 볕발은 돼지들처럼 짚검불을 뒤집어쓰고 옹송그리고 자던 수인들의 눈꺼풀에도 비쳐들었다.
하나둘 눈을 비비며 일어난 수인들이 새벽추위에 얼어드는 어깨며 무르팍을 손으로 주물렀다.
지붕이 있어 집이라 하지 겨울에는 추위가, 여름에는 더위가 그대로 몰려들고 비가 오면 비풍이, 눈이 오면 눈발이 그대로 날아드는 감옥은 한지나 다름없었다.
목에는 항쇄(칼)를, 발에는 족쇄(차꼬)를 차고앉은 태봉은 울화가 치솟고 분통이 터져올라 지금도 마음을 진정할수 없었다. 도대체 무슨 까닭으로 자기가 이 생지옥같은 포도청옥에 갇히게 되였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수가 없었다.
세상에 이처럼 답답하고 원통한 일이 또 어데 있겠는가. 장밤 뜬눈으로 새운 태봉의 눈확은 시꺼멓게 멍이 들었고 눈자위에는 벌겋게 피가 져있었다.
그는 밤에 종각의 공지에서 싸우기로 약정한 량반자식이 자기들을 포도청에 고변했을것이라고 짐작하고있었다. 싸우기가 두려우니까 포도청관리들에게 돈을 찔러주고 자기를 감옥귀신으로 만들려고 했을것이다. 이 비렬하고 용렬한 자식, 언제건 다시한번 만나기만 해봐라.
그는 이를 악물고 주먹을 불끈 쥐였다.
그의 곁에서 대통으로 풀썩풀썩 담배를 피우던 중늙은이가 태봉이를 유심히 지켜보더니 말을 건네였다.
《젊은인 밤새 한잠도 안 자더군.》
태봉은 귀찮아 대척하지도 않았다.
둥그런 얼굴에 구레나릇이 검실검실한 중로배는 눈에 측은한 빛을 띠웠다.
《이제라두 눈 좀 붙이라구.》
《…》
《옥살이하려면 마음이 태평해야 하네.》
《이거 시끄럽게 굴지 마오》
태봉은 짜증스럽게 내쏘았다.
《허, 그 젊은이 입청이 곱지 않군그래.》
악의없는 소리로 이렇게 나무람을 한 중로배는 태봉이에게 더 관심하지 않을 심산인지 담배만 피웠다.
나무창살사이로 볼이 홀쭉하고 입이 우무러든 늙은 옥졸이 안을 기웃이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어, 다들 일어났나.》
수인들이 창살쪽으로 다가앉았다. 하나같이 람루를 걸치고 수염이 꺼칠한 어지러운 모색들이였다.
옥졸은 자기앞에 몰켜앉은 수인들은 거들떠보지 않고 담배를 피우고있는 중로배에게 공손히 여쭈었다.
《동소임, 아침진지 드시우.》
동소임으로 불리운 중로배는 옥졸에게 턱짓으로 대척했다. 옥졸이 창살사이로 이빠지고 때묻은 사발에 담은 한덩어리의 보리밥과 멀건 콩나물국을 넣어주었다.
제 몫을 받아안은 수인들이 돌아앉아 그것을 걸탐스럽게 그러나 오래오래 씹어먹었다.
동소임이 태봉이앞에 보리밥사발과 콩나물국사발을 놓아주며 시까슬렀다.
《젊은이도 〈아침진지〉드시게.》
《먹고싶지 않소.》
태봉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퉁명스럽게 내뱉았다. 순간 태봉의 보리밥사발에 대여섯개의 시꺼먼 손이 한꺼번에 덮쳐들더니 보리밥을 한줌씩 움켜쥐는것이였다. 피골이 상접한 수인들은 그것을 입에 넣고 우물우물 맛나게 먹었다.
태봉은 못 볼것을 보았을 때처럼 골살을 찌프리며 그들을 역겹게 흘겨보았다.
수인들이 밥사발과 국사발을 창살사이로 내보내고나서 동소임앞에 다가앉았다.
수인 하나가 헤식은 웃음을 띠우며 동소임에게 청했다.
《동소임, 담배.》
동소임은 말없이 대통의 재를 바닥에 탁탁 털더니 쌈지에서 새 써레기를 눌러담아 입에 물고 성냥을 그어댔다.
볼이 불룩하게 대통의 담배를 빨아들인 그는 대통을 입에서 뽑더니 수인들의 얼굴에 휘- 담배연기를 뿜어주는것이였다.
수인들은 코를 벌름거리며 그 연기를 탐욕스럽게 들이삼켰다.
태봉은 또다시 얼굴을 찌프렸다.
그러는 태봉이를 곁눈으로 바라본 동소임이 비난하듯 중얼거렸다.
《젊은이두 습관될걸세.》
태봉이는 욱하는 성미 그대로 또다시 대들었다.
《뭣때메 내가 옥살이에 습관된단 말이요.》
《허, 그 젊은이 성미 정말 고약하다.》
동소임은 태봉이의 기색을 살피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너그럽게 물었다.
《그래, 젊은인 무슨 죄루 옥에 돌어왔나?》
《모루.》
《모르다니?》
《글쎄 모루.》
고개를 기웃거리던 동소임이 다시금 은근스럽게 물었다.
《자네 돈 좀 있나?》
《돈이요?》
《옥살이란 별게 아닐세. 유전무죄요, 무전유죄란 말이네.》
《예?》
《돈있으면 무죄로 되구 돈 없으면 유죄로 된다 그 말일세.》
태봉은 비록 이틀밤을 옥살이 했지만 이 동소임 권벽이란 사람을 감방안의 수인들은 물론이거니와 밖의 옥졸이나 옥리와 같은 구실아치들까지 무척 존경하고 공경스럽게 대한다는것을 알아차렸다.
그가 지금 옥에 갇혀있는것도 그자신이 무슨 죄를 범했기때문이 아니라 사정이 딱한 자기 동리의 한 젊은이대신 인질로 들어와있었다.
사연인즉은 그가 관할하고있는 동리의 한 젊은이가 여러해째 빚을 물지 못해 옥살이를 하고있었는데 중병으로 앓고있던 그의 늙은 부친이 림종전에 아들을 한번만이라도 만나보고 저세상으로 가겠다고 하기에 그 정상이 하도 가긍하여 동소임인 권벽이가 대신 며칠간 옥살이를 하기로 하고 젊은이를 집에 내보냈다는것이였다. 혹여 그 젊은이가 못된 마음을 먹고 줄행랑이라도 치는 날에는 권벽이가 알쭌히 그 죄를 뒤집어쓰고 죄인노릇을 할판이였다. 하지만 본시 대틀인 권벽은 그런 우려의 기색은 조금도 없이 흔연하고 대범하게 처신하였다.
그런 사람에게 의협심이 강한 태봉이가 어찌 마음이 동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권벽은 태봉이의 신세를 두고 진정으로 동정해주었다.
《백죄 영문도 모르고 옥살이하는 자네 사정이 참 딱할세그려.》
《…》
태봉은 체념한듯한 태도로 한숨만 내쉬였다.
목에는 커다란 칼을 쓰고 발목에는 족쇄를 찬 태봉의 정상은 보기에도 처참하였다. 옷은 갈가리 찢어지고 수척해진 얼굴에는 매를 맞아 멍이 든 자리가 퍼릇퍼릇하였다.
대보름날에 왜인들과 싸운 사실을 토설하라고 그를 다궂던 형리들이 태봉이가 끝끝내 부정해나서자 그에게 매질을 가하기 시작했다.
성미가 불같은 태봉이가 순순히 매를 맞고있을리가 만무했다. 죄없이 잡혀온것만도 원통한데 때리기까지 하니 그는 그만 앞뒤를 가리지 않고 형리들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드센 주먹질과 발길에 형리 여럿이 쭉 뻗어버렸다.
이리하여 그는 중죄인들에게 씌우는 칼을 쓰게 되였고 발에는 족쇄를 차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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